<p>어렸을때는 제법 영특했는지 엄마한테 한글배우는 형의 어깨넘어로 한글을 깨우쳤다.</p> <p>학교에 다녀오면 가방을 던지고 친구들과 나가놀던 형과는 다르게 나는 집에서 책읽는걸 즐겼다. </p> <p>정확히는 글자를 읽는 재미가 맞았을것 같다. </p> <p> </p> <p>유치원때는 이미 집에 있던 그림동화는 다 섭렵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얼마 두껍지도 않은 교과서도 술술 읽어버렸다. </p> <p>언제고 중학생들이 된 사촌들이 읽던 세계 문학전집, 세계 위인전집이 우리집에 들어온날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p> <p>집에는 요즘 스마트폰 크기의 작은 학생용 국어사전과 교과서 몇권을 합친것 같은 크기로 </p> <p>그 당시의 나로선 들기 힘들정도로 무거운 국어대사전도 있었다.</p> <p>학교에서 보는 교과서는 내용도 적고 재미도 없었지만 집에 새로 들어온 책들은 모르는 단어와 모르는 내용들 투성이었다. </p> <p>나는 그때부터 국어사전을 보는 재미를 알아갔다. </p> <p>간혹 이해가지 않는 단어들은 부모님께, 혹은 선생님께 물어가며 익혔다.</p> <p>어휘량이 많으니 글도 술술 잘 썼다. </p> <p>물론 그만큼 말도 많이 늘었다. </p> <p> </p> <p>억지로 억지로 공부를 해야해던 고3때까지, 내 맞춤법을 감히 의심해본적이 없었다. </p> <p>글에 쓰여진 논리가 어긋나더라도 혹은 잘못된 단어를 쓰더라도, 내 맞춤법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p> <p>책이 나를 가르쳤고, 사전이 나를 단련시켰기 때문이리라. </p> <p> </p> <p>그 마저도 20년전의 일, 이제는 나를 믿지 못한다. </p> <p>이게 맞나 틀리나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일들이 늘어간다. </p> <p>내심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p> <p>무림의 고수들은 시간이 들면 내공이 쌓여 여유롭게 천하를 주유하기 나름인데, </p> <p>이 무명소졸은 기초가 부실한지 아직도 서적의 도움이 필요하다. </p> <p> </p> <p>독서의 양이 여실히 줄었다. 술과 유흥을 알았기 때문이다. </p> <p>또한 접하는 글의 질도 썩 좋지만은 않다. </p> <p>몇 번씩의 검토를 거쳐 탈고된 원고의 글보다는 편하게 쓰고 편하게 읽히는 커뮤니티의 글을 주로 본다. </p> <p>공부하던 시절의 글은 말과 분리가 되어있었다. </p> <p>말로는 육두문자가 난무했지만 연필로 적는 글들은 언제나 정갈했다. </p> <p>통신수단의 발달은 사람과의 소통을 편하게 만듦과 동시에 말과 글의 장벽도 허물었다. </p> <p>한글자씩 정성스럽게 적던 손편지와는 다르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 난무하는 메신져들도 그렇다. </p> <p>이것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p> <p>다만 내 스스로가 편함을 추구했고, 그로 인해 나의 한부분이 도태되고 있음을 깨달아서 슬플 뿐이다. </p> <p> </p> <p>나도 어렸던 적이 있었고, 우리만의 언어를 쓰던 시기가 있었고, 그런 우리를 보며 혀를 차던 어른을 무시하던 때가 있었다. </p> <p>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었고 요즘말을 이해못하는 나를 보며 뒤쳐진것도 몰랐노라며 혀를 찬다. </p> <p>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말들이 많이 나온다. </p> <p>어제 새로운 말을 익히면 오늘은 이미 지난말이 되어버린다. </p> <p> </p> <p>문득 속상한건 내가 젊지 않아 요즘말에 뒤쳐져서라기 보다는, </p> <p>나이를 먹었던 내가 쓰던 말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 <p>집에는 10년째 읽지 않고 있는 유리알 유희가 있고, </p> <p>아내가 재미있어서 추천해준 달러구트의 꿈백화점도 몇달째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p> <p>그래도 이제는 이유를 알았으니 넋놓고 잃지 말고 부지런히 나의 어휘들을 챙겨야겠다. </p> <p> </p> <p>책을 읽어야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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