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8년인 1426년 2월 15일, 한양은 화마에 휩싸인다. 한양 남쪽 인순부의 하인 장룡의 집 부엌에서 난 불이 때마침 불어온 강한 서북풍을 타고 크게 번진 것이다. 삽시간에 번진 불길은 한양을 잿더미로 만들면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민가와 시전의 행랑채 2만여 채가 불에 탔고, 3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났지만 실종자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미뤄보면 더 많은 사망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제외하고는 한양이 입은 가장 큰 재해라고 할 수 있겠다.<br><br>때마침 세종대왕은 군사훈련과 사냥을 겸한 강무(講武)를 위해 강원도로 떠난 상태였다. 보고를 받은 그는 강무를 취소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의전 절차를 생략하고 불끄기에 전념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이재민을 돌봐줄 대책을 세울 것을 예조에 지시했는데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일단 피해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이재민에게 식량을 공급해서 굶주림을 막도록 했다. 아울러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유가족들에게 쌀 1석과 거적, 종이 등을 지급하도록 했다. 그리고 사망자의 가족이 없을 경우 한성부에서 주관해서 장례를 치를 것을 명령했다.<br><br>후속 대책도 꼼꼼하게 진행됐다. 의정부와 병조에 명해서 이재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잘 살펴볼 것을 지시하는 한편, 불탄 집을 다시 짓기 위한 목재를 공급하도록 했다.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세웠는데 집 사이에 방화용 담장을 쌓고 우물을 파도록 했으며, 관청에 불을 끌 도구를 비치할 것을 명했다. 이런 대책으로도 부족하다고 느낀 세종대왕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울 것을 결심한다. 그러한 결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서인 금화도감의 설치로 이어졌다. 이어서 불을 낸 용의자들을 냉정하게 조사하라고 따로 지시한다.<br><br><a target="_blank" href="http://mw.humanrights.go.kr/web/detail_view.jsp?article_idx=24830&no_idx=24808&title=%5B%EC%97%B0%EC%9E%AC%5D%20%EC%A1%B0%EC%84%A0%EC%8B%9C%EB%8C%80%EC%9D%98%20%EC%9E%AC%EB%82%9C%20%EB%8C%80%EC%B1%85%20&writer=%EA%B8%80%20%EC%A0%95%EB%AA%85%EC%84%AD%20%20%EA%B7%B8%EB%A6%BC%20%EC%A1%B0%EC%8A%B9%EC%97%B0" class="autolnk">http://mw.humanrights.go.kr/web/detail_view.jsp?article_idx=24830&no_idx=24808&title=[%EC%97%B0%EC%9E%AC]%20%EC%A1%B0%EC%84%A0%EC%8B%9C%EB%8C%80%EC%9D%98%20%EC%9E%AC%EB%82%9C%20%EB%8C%80%EC%B1%85%20&writer=%EA%B8%80%20%EC%A0%95%EB%AA%85%EC%84%AD%20%20%EA%B7%B8%EB%A6%BC%20%EC%A1%B0%EC%8A%B9%EC%97%B0</a><br><br>===========<br>그리고 2014년, 당금의 황상께서는 사고가 일어난지 7시간에 걸쳐 무려 7번이나 대책을 지시하시었고<br><br>그 결과 3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대형 참사는 아직도 해결이 안돼 유족들이 길바닥에서 자고 있습니다. <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