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옅은 어둠 속에서, 불현듯 너무 오랫동안 자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잠은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변 분위기를 예민하게 살폈다. 오늘따라 햇살은 내 방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급히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8시 25분. 오, 맙소사.
회사 출근은 8시 30분까지다. 나는 이 상황이 실감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야하나 말아야하나, 밥은 뭘 먹어야 하나, 옷은 뭘 입어야하나 같은 평소에 하던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점이 원망스러웠다. 그것은 뾰족한 대상을 갖춘 원망이 아니었다. 나와 내 주변 모든 것들에 대한(알람을 담당한 휴대폰을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저주였다.
8시 30분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장염에 걸렸다고 하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2년 전에 심한 장염을 앓아본 일이 있었다. 어찌나 장이 민감했던지 물만 마셔도 화장실에 가서 배를 부여잡고 앉아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때의 경험을 잘 떠올리면 어떻게든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단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뒤에 떠올린 모든 변명꺼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게는 지금 내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 곧 진실이 부족했다. 하지만 더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 어떤 변명이든 출근시간 전에 회사에 알렸더라면 어느 정도 믿음을 줄 수 있었겠지만, 출근 시간이 지나버린 이 시점에서는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히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렸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있었던 현실감을 잃고 나니 오히려 일말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모든 것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때 나타나는 그러한 안도감이었다. 모든 것. 나는 내가 포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것은 내가 여태껏 취직하기 위해 애썼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내 인생 자체, 그리고 나의 존재 이유 이기도 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절망감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시간은 9시 10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전화를 받기 전, 나는 꼭 말해야하는 몇 가지 단어를 추스르고, 목을 가다듬었다. "여보세요?" 목이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진수씨? 나야." 이 목소리는 재은 선배다. 사무실에 드물게 있는 여자, 그리고 천사역할의 선배였기 때문에 선배가 내게 전화를 해줘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 있어? 아직 까지 출근을 안했네?" 나는 변명거리를 못 찾았고 결국 늦잠을 잤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성격답게 조용한 소리로 웃었다. "그럼, 오후 출근으로 해 둘 테니까 좀 있다 봐." 나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이토록 간단히 해결해준 선배가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말야, 진수씨 생각보다 잠이 많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 제 목 | 이름 | 날짜 | 조회 | 추천 | |||||
---|---|---|---|---|---|---|---|---|---|---|
22 | 방한화를 새로 샀다 [1] | 그렇기에 | 19/01/22 04:29 | 104 | 1 | |||||
19 | [단편] 양해(諒解) | 그렇기에 | 14/10/30 03:45 | 15 | 1 | |||||
18 | [단편] 구원(完) [1] | 그렇기에 | 14/10/27 02:54 | 22 | 3 | |||||
▶ | [단편] 구원 (1) | 그렇기에 | 14/10/26 02:26 | 23 | 2 | |||||
16 | [단편] 첫 차 | 그렇기에 | 14/10/23 02:02 | 29 | 2 | |||||
15 | [단편] 끝의 그때 [3] | 그렇기에 | 14/10/19 03:26 | 25 | 2 | |||||
14 | [단편] 예지몽 | 그렇기에 | 14/10/17 04:13 | 20 | 1 | |||||
13 | [단편] 비바람 | 그렇기에 | 14/10/09 16:56 | 17 | 0 | |||||
12 | 무슨일이냥? | 그렇기에 | 14/10/07 23:15 | 84 | 3 | |||||
11 | 모두의마블 폭군 [2] | 그렇기에 | 14/10/02 22:45 | 310 | 1 | |||||
10 | 가슴이 무너질것 같은 기분 [2] | 그렇기에 | 14/09/02 01:10 | 77 | 1 | |||||
9 | 캣초딩의 괴력.jpg [5] | 그렇기에 | 14/09/01 22:14 | 173 | 4 | |||||
8 | 연애의 배아픔 | 그렇기에 | 14/07/02 03:02 | 61 | 0 | |||||
7 | 못생김 대결 합시다 [6] | 그렇기에 | 14/06/30 14:08 | 603 | 20 | |||||
6 | 오늘 이근호 정말 해설대로 프래쉬 했음!! [1] | 그렇기에 | 14/06/27 06:59 | 407 | 11 | |||||
5 | 오늘 친구랑 싸운썰 [5] | 그렇기에 | 14/06/05 00:50 | 51 | 11 | |||||
4 | 완벽한 알리바이 [3] | 그렇기에 | 14/06/01 16:40 | 257 | 1 | |||||
3 | 말실수. | 그렇기에 | 14/05/15 02:55 | 19 | 0 | |||||
|
||||||||||
[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