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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연예인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전 여자친구가 떠올라서 글을 적어봐요.
피부가 하얗고 눈도 큰, 되게 예쁜 사람이였는데.
편한 말투로 써내려가도 이해해 주세요. 그렇게 하는 편이 기억이 더 잘 나거든요. 부탁할게요.
만났던 때부터 적어가 볼까.
그러니까 2014년 10월이였어. 벌써 2년이 넘었네.
군대를 전역한 지 몇 개월 안 된 때였고, 몇 년째 솔로로 지내는 것도 적응해 그냥 뭐든지 무덤덤해 질 때였지. 밤이면 근처 공원에 가서 산책하면서 노래를 들었고. 그 밤에도 참 심심했어. 멜론을 이용했는데 내가 즐겨듣던 음악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노래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생각없이 그걸 눌렀는데, 그 몇 명 안되는 사람중에 어떤 프로필 사진이 눈에 딱 띄더라고. 크게 보기 했을 때 사진화질은 깨졌지만 하얀 피부에 큰 눈이 인상적인 여자의 사진이였어. 그리고 자연스레 아이디를 눌러서 그 사람의 프로필로 들어갔지.
그 사람의 플레이 리스트들을 보는데, 와 이럴수가- 곡들의 취향이 너무나 나랑 닮은 거야. ‘잔잔할 때 듣는 노래’라던가 ‘차에서 듣는 노래’, ‘팝송’같은 개인 리스트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나만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노래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걸 보고 혼자 신기해 했었어.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 없는 노래들까지 있는걸 보고 말야. 살펴보고 나서는 바로 친구 추가? 같은 버튼을 눌렀지. 그러면 나중에도 바로 찾아와서 그 리스트의 노래들을 들을 수 있거든. 그리고 그 날, 비어있던 내 프로필에도 사진을 올렸어. 혹시나 하면서 잘 나온 사진을 말야. 근데 그 때는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금방 잊었지.
며칠이 지나고, 저녁을 먹고 또 공원에 가서 노래를 듣고 있었어. 지금도 기억나.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맨 위였고, 밤 이슬에 조금은 젖은 잔디위에 그냥 앉아있었거든. 그 때 노래를 틀려고 핸드폰을 봤는데 멜론 아이콘 옆에 갑자기 1표시가 떠 있더라. 마치 카톡 와있을 때 톡 갯수 뜨는 것처럼 말야. 어라 멜론에서 뭔 알림이 올 게 있던가 하고 들어가서 봤는데,
신기하게도 ‘메세지’ 가 하나 와 있었어, 메세지가.
[안녕하세요? 친구추가가 되어있는데 혹시 잘못하신 건가 해서요-]
라는 글과 함께 노래를 한 곡 추천해 준 메세지였어. 나도 몰랐던 기능인 음악 메세지라는 게 있던거야. 신기하기도 하고 그 때부터 왠지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지. 조용하던 일상에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기려 한다는 걸 직감했었어. 게다가 메세지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까지 보내주다니말야.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하고 멋대로 결론도 내 버렸지. 기다릴 것 없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어.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 안녕하세요. 그건 아니고, 우연히 찾아 들어갔는데 그 쪽이 제 노래취향하고 많이 비슷해서요. 종종 리스트 찾아 들으려고 추가 했습니다-]
뭐 이렇게 적었던 것 같아.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에 대한 공감대를 시작으로 메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어. 그 날 밤부터 새벽까지 음악 메세지는 계속 나와 그 사람의 핸드폰을 오갔고, 150자가 전부인 메세지에 많은 걸 꾹꾹 눌러담아 보냈어. 뭔지 모를 설렘이 그 밤 하늘에 가득했지.
우리는 매일매일 메세지를 주고 받았어. 이 노래는 어때요? 저는 이 앨범이 더 좋더라고요 라며 서로 추천해주는 수 많은 노래들. 항상 조용하기만 했던 내 핸드폰이 처음으로 쓸모가 있어지는구나 싶었지. 손이 저려와도 그냥 좋았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열렬히 토론하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으니까. 음악으로 공감대를 쌓는 게 의외로 어려웠거든. 그게 맞는 상대를 처음 봤으니 내가 얼마나 좋았겠어. 음 사실은 말야, 저 메세지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먼저 물어볼 수가 없었어. 그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즐거운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던 나였거든.
그러다가 그 사람이 나에게 물어왔어.
[ㅋㅋㅋ근데 프로필 사진 본인이에요?]
그녀가 먼저 물어봐 준 덕분에, 나도 답장을 핑계삼아 물어볼 수 있었지.
[그럼 그쪽도 본인 사진이에요?]
여자들이 종종 그러하듯 무슨 연예인 사진이라던가 그런 걸 띄워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 편에 있었는데, 자기 사진이라고 하더라. 그 대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고 그 때부터는 서로에 대한 궁금증으로 질문을 하나씩 채워갔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 어떤 계절이 맘에 드는지 같은 그런 소소한 것들로 말야. 그리고 나보다 누나였어, 네 살 높은. 그래도 나이차가 난다는 걸 실감하진 않았었어. 연락에 생각보다 적극적이였던 그 사람 덕분에 우린 계속 이어질 수 있었어. 나만 그랬다면 분명히 그저 그러다 떨어져 나갔을테지.
그렇게 자연스레 연락하다가 그 사람과 좀 더 많이 연락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어. 번호를 주는 게 잠깐(십 초 정도?)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난 계속 나아가고 싶었지.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저녁. 우리는 당산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 그 사람이 그 쪽에서 일을 마친다고 했었거든. 그렇게 시간을 정하고 그 곳으로 나가는 길, 그 때가 내 생에서 가장 긴장되고 설레던 순간이였어. 그 어떤 순간보다 말야. 당산역을 가는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았는데 그 때부터 머리가 자꾸 멍해지는 거 있지. 만나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그 전까지는 전혀 없었던 두려움도 슬쩍 고개를 내밀고 말야. 아무리 연락을 주고 받았어도 우린, 만난적이 없는 상대잖아.
그럼에도 아직 강렬하게 기억하는 건, 그 때 들었던 음악이야.
만나러 가는 길에 그 사람이 음악메세지로 음악을 하나 보내줬어. [이따가 만나요] 라는 말과 함께. 그 음악을 들으면 아직도 지하철 안에 가만히 앉아있던 내가 떠올라.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마크가 헤드셋으로 음악을 틀자 그 순간 거리가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였어. 응 왠지 모든 게 갑자기 달콤해지듯이.
첫 만남에 나보다 더 부끄러워하며 약속장소 뒤로 숨어버리던 그 사람과, 밥이 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던 우리의 저녁 식사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여태 늘 해왔던 것처럼 얘기를 나누던 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밝아서 좋았던 밤.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다 그렇게 2호선 전철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 집으로 돌아갔어.
‘사실은 멜론에서 사진보고 맘에 들어서 메세지를 보낸 거였어요’
‘그냥 딱 내 이상형이라 지하철에서 마주치면 번호 따고 싶을 정도인데 아마 나는 쑥쓰러워서 고개만 숙이고 갔을거예요’
‘누나가 다 해 줄테니까 걱정말고 그냥 내 옆에만 있어요’
‘첫 날 우리 헤어지기 전에, 나 J씨한테 뽀뽀하고싶은 거 참느라 혼났어요.’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말들을 들으니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 내가 누군가의 이상형이 된다라니. 푹 빠져버릴 것 같은 거 있지. 그 사람은 자신의 외모만 보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내가 더 고맙다고 말 해줬어. 나도 처음엔 그 사람의 사진에 호기심이 간 거였으니, 아니라고는 말을 못했지만 말야.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는 사귀게 됐고,
물론 지금은
솔로야.
휴..................
그 사람에게 난 부족하기만 해서
여전히 미안함만 떠올라.
늦은 밤에 갑자기 생각이 나 한바탕 적어봤어.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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