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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곰팡이, 맥각 이야기
게시물ID : science_689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라매딕
추천 : 4
조회수 : 3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6/02/06 21:21:15

중세 유럽, 마을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던 괴질이 있었다. 멀쩡하던 사람의 손발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 속에 검게 괴사하고, 헛것을 보며 발작을 일으키다 죽어가는 병. 사람들은 이를 '성 안토니오의 불(St. Anthony's Fire)'이라 불렀다.

 

원인은 주식인 호밀 빵에 핀 검은 곰팡이, '맥각균(Ergot)' 때문. 당시엔 이유를 몰랐기에 환자들은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성 안토니오 수도회의 수사들은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신기하게도 수도원에서 지내면 증세가 호전되곤 했다. 맥각이 없는 깨끗한 곡물을 섭취한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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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 공포의 곰팡이가 오늘날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귀한 약'이 되고 있다.

 

현대 의학은 맥각균의 독성에서 혈관 수축 성분을 정제해 냈다. 지독한 편두통 치료제가 되었고, 무엇보다 출산 후 자궁 출혈이 멈추지 않는 산모들의 피를 멎게 하는 결정적인 지혈제로 쓰이며 수많은 생명을 살린다. 때문에 유럽의 일부 농장에서는 제약용 원료를 위해 엄격한 통제 하에 이 '독 곰팡이'를 일부러 재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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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수확 방식. 식용 밀은 맥각을 버려야 하지만, 약용은 반대로 맥각만 골라내야 하니까. 농부들은 '소금물'의 부력을 이용한다. 기름진 맥각은 물에 둥둥 뜨고 곡물은 가라앉는 원리를 이용한다고.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그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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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가 먹는 빵은 안전한가?"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심해도 된다. 현대 제분소에서는 최첨단 '색채 선별기(Color Sorter)'가 0.1초의 찰나에 곡물을 스캔한다. 수만 개의 알갱이 중 검은색 맥각이 발견되면 고압의 공기(Air-Jet)를 쏘아 정확히 그 녀석만 튕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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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악마의 저주'라 불렸던 곰팡이가 인간의 지혜와 기술을 만나니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었다.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그 쓰임은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달려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참고로 맥각균과 '깜부기병'은 엄연히 다르다. 보리 이삭에 검은 가루가 날리던 깜부기는 독이 없거나 아주 약하다. 옛날 배고픈 아이들이 입가가 시커멓게 되도록 훑어 먹기도 했던 그 추억의 깜부기. 사람 잡는 맥각과는 근본부터 다른 녀석이니 오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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