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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_8-1_일본의 비열
게시물ID : history_305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얀돌
추천 : 0
조회수 : 4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5/11/11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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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경남 밀양에는 의열단의 젊은이들과 일제 시대 최고의 현상금을 기록한 의백 김원봉이 있다. 1919년 11월 9일 의열단 설립 당시 최초 결성단원 13명 중 5명과 조직의 고문이던 황상규, 김대지가 모두 밀양 출신이다.


일본은 밀양에서 박춘금이라는 무학자이자 무뢰한이자 폭력배이자 날건달이자 밑바닥 인생인 자를 정치 깡패인 동시에 직업적 친일파인 동시에 일제 시절 조선인으로는 유일한 제국의회 중의원으로 양성했다.


대한제국의 안중근 장군은 조슈의 이토를 사살하였고 일본은 안중근 장군의 차남인 안준생을 온갖 교활한 수단을 동원하여 민족반역자로 만들었다. 


일본의 비열함이 조선의 감정을 매우 많이 건드린 것 역시 사실이다. 명산의 혈처에 쇠말뚝을 박고,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 건물의 대부분을 헐어버리고, 조선의 주요 궁궐이었던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온갖 동물들의 둥지로 만들고, 조선 왕조의 국립묘지였던 장충단을 공원으로 밀어버리고, 조선의 국모를 살해하고, 한일합방 당시에 맺었던 약속을 어기고 조선인을 2등 민족으로 차별 비하하고, 조선 민족의 전통 고분들을 발굴이라는 이름 아래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조선의 전통 문물들을 반출하고, 조선의 명예를 모욕하였다. 


일본으로서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고향이라 여겼던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의 반칙, 몽골과 함께 일본의 근간을 흔들려 하였던 고려의 침공, 유사 이래로 지속되었던 한반도의 일본 열도에 대한 멸시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여러 비열한 행위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한반도 도래인 위주의 세력에 의해 개척된 바다 건너편의 새로운 식민지였다. 인종적 문화적 특징, 신화와 민담, 역사적 지리적 영토 개척 과정 등을 감안할 때, 바다를 건너 온 새로운 집단에 의해 원주민들이 제거되거나 흡수되어 가며, 일본 열도를 따라 새로운 주거지들이 확대 되어나갔던 역사임이 분명하다. 미국 현대 역사의 2000년전의 반복이라 할만하다. 


당사자인 조선인들의 강렬한 불쾌감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후반부로 갈수록 한반도와 일본은 동일한 조상과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라고 일본인들은 주장하였다.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이나 인도를 점령한 영국이 결코 주장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다. 


조선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인구는 조선의 인구에 비해 더 작았고 실질적으로 개척된 영토도 더 작았으며 16세기 이후에야 폭발적인 농경지 확장과 인구의 성장이 이뤄졌을 뿐이다. 홋카이도는 1869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개척이 되기 시작하였고 오키나와는 1879년이 되어서야 일본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 팽창의 길을 걸었으나 정확히 50년만인 1945년 9월 2일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 하는 치욕을 겪는다.



출처 https://brunch.co.kr/@sonsson/7
https://brunch.co.kr/@sonsso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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