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게시판 옆에 제짝처럼 사이다 게시판이 있어 살포시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 봅니다. <div><br></div> <div>1. KTX</div> <div><br></div> <div><br></div> <div>당시 전 금요일만 되면 한양으로 백일장을 치르러 가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div> <div>백일장이 으레 그렇듯, 신청만 하면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고,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div> <div>그 해엔 이상하게 문장의 신이 접신이라도 하셨는지 예선이란 예선은 모조리 통과해서 저는 매주 서울로 올라갔었죠.</div> <div>아무래도 부산과 서울은 너무 먼 거리여서 KTX를 탄 뒤에 학교 인근 모텔로 가서 숙박, 다음 날 아침 시험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이 이야기는 네트워크상에 몇 번 올라온 적 있는 이야기 입니다.</div> <div>아이만 좌석 끊어놓고 엄마는 입석으로 끊어서 옆사람 눈치 주는 이야기.</div> <div><br></div> <div>네 제 이야기였습니다. 그저 지난 기억의 편린으로 놔두었던 그 일을 꺼내볼까 합니다.</div> <div>으레 시험을 보기 전 긴장을 하곤 하지만 전 익숙한 일이라 능숙하게 책과 아이폰을 꺼내 기차의 움직임을 리듬으로 승화시켜 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div> <div>지금도 이상하게 살짝 시끄러워야 집중이 잘 되더군요.</div> <div>기차는 부산을 떠나 밀양으로 향했고, 밀양역에서 어떤 아이가 제 옆에 앉게 됩니다. 아이는 태연하게 엄마를 보며 묻습니다.</div> <div><br></div> <div>- 엄마는?</div> <div>- 엄마는 밖에 있을 거야.</div> <div><br></div> <div>눈으로 들어오는 문장 사이에 섞여 제 귓속을 파고들어, 문장을 저장해야 했을 제 머릿속에 암덩어리처럼 스멀스멀 박히던 두 사람의 대화.</div> <div>하지만 그땐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설마 알바할 때 자주자주자주자주 보았던 진상은 아닐꺼라고 생각하며 다시 책을 읽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아이가 답답한 탓인지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 앞좌석을 발로 차서 앞에 있던 아저씨가 역정을 내기도 하셨습니다.</div> <div>그럴 때마다 아이 엄마가 들어오셔서는 아이를 달래곤 하셨는데, 계속 저를 힐끔거리는 겁니다.</div> <div>대놓고 양보해달라는 못하겠고 눈치만 준거겠죠.</div> <div><br></div> <div>뭐, 저도 그냥 양보해주면 그만이긴 했습니다. 그냥 밖에 앉아(KTX는 간의 좌석이 있는데 거기가 은근 조명이 밝아서 책 읽기 수월했었거든요) 책을 읽어도 상관 없었어요. 나중에 대구를 막 지났을 때,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끄러운 나머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상태였구요. 재생리스트에 팝송이나 중국노래만 가득했지만 가사 있는 노래는 가독성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으니 빗소리를 켰었습니다. Rainymood 개꿀</div> <div><br></div> <div>박모가 시작되는 시간대의 아주아주 맑은 하늘이었지만 귀에선 빗소리가 흘러 나오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을 때, 누가 제 어깨를 툭툭 치는 겁니다. 아이의 어머니셨습니다.</div> <div><br></div> <div>- 저기, 저희 애 때문에 그런데 자리 좀 양보해주시면 안 될까요?</div> <div><br></div> <div>솔직히 저런 부탁 한다면 좀 공손하게라도 말하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했을까요. 자존심에 스크래치라도 생길까요.</div> <div>진짜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너는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 식의 분위기와 말투를 저에게 시전하시는데</div> <div>순간 저도 욱 하는 성질에</div> <div><br></div> <div>- 제가 왜요?</div> <div><br></div> <div>해버렸습니다. 그분은 흡사 보스몹을 잡았는데 레어템이 안 떨어져서 상황 판단이 흐트러진 MMORPG게임의 유저처럼 얼굴이 구겨졌습니다.</div> <div><br></div> <div>- 애가 계속 우니까...</div> <div><br></div> <div>라고 하시길래 그냥</div> <div><br></div> <div>- 애가 우는 건 그쪽 사정이고요,</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라고 말을 끝낸 뒤 전 그냥 이어폰을 꽂고 책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께서 제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빼더라고요.</div> <div><br></div> <div>- 학생 가정 교육 그렇게 받았어요?</div> <div><br></div> <div>??????????????????????????????????????????</div> <div>두 눈에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 어머니를 얼척없이 쳐다보았습니다. </div> <div><br></div> <div>- 아니 내가 이렇게 까지 공손하게 부탁하는데!</div> <div><br></div> <div>아니 존나 현빈이세요? 순간 그 상황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div> <div><br></div> <div>- 적어도 아주머니처럼 행동하라고 교육 받진 않았는데요?</div> <div><br></div> <div>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근처에서 풉- 하고 웃는 건 덤이었구요. 그 아주머니, 주변 시선 의식했는지 아니면 건너편에서 단말기 들고 걸어오는 승무원 때문이었는지 앉았던 연결칸으로 돌아가시더군요.</div> <div><br></div> <div>사실 아이 때문에 귀찮거나 한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는 자거나, 동화책 읽거나 그랬지 수시로 들락거리는 아주머니가 더 거슬렸어요.</div> <div>혹은 고삼이었던 그 때, 스트레스때문에 제가 예민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div> <div><br></div> <div><br></div> <div>2. 하늘이시여</div> <div><br></div> <div><br></div> <div>당시 명동이랑 회현 넘어가는 사이에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전 홍대로 놀러갔었습니다. 이때도 백일장 때문에 갔다곤 하지만 솔직히 이땐 70%가 놀러가는 심정이었으므로;;;;</div> <div><br></div> <div>아는 형님께서 앨범을 내셔서 홍대에 위치한 소규모 공연장에서 공연한단 소식을 듣고 달려갔었죠.</div> <div>아무튼 홍대입구 9번출구에 내려서 상상마당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절 잡습니다.</div> <div><br></div> <div>- 학생~ 얼굴이 선해 보여서 그런데</div> <div><br></div> <div>...</div> <div>머릿속에선 나는 무신론자인데 대체 왜 이런 사람의 설명을 듣기 위해 나는 내 시간을 허비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고 1초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했던 방법이 생각났었습니다.</div> <div><br></div> <div><b>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라</b></div> <div><br></div> <div>저는 아주아주 쪽팔렸지만 그걸 수행하려고 했습니다.</div> <div><br></div> <div>- 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div> <div><br></div> <div>솔직히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이것뿐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 응? 학생 뭐라고? 일단 하나님이...</div> <div><br></div> <div>- 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div> <div><br></div> <div>스타카토로 뚝뚝 칼국수 면발 끊어지듯 끊어서 말했습니다. 솔직히 이때까진 쪽팔려서 목소리 크게 못 냈어요.</div> <div><br></div> <div>- 그러니까 내 말은 하나..ㄴ....ㅣ...</div> <div><br></div> <div><b>- 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b></div> <div><br></div> <div>진짜 큰소리 더하기 스타카토 더하기 눈 부라리기 시전하니까 이 아주머니 헐레벌떡 다른 곳으로 달려갑니다.</div> <div>그리고 제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장도 벌렁거렸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날 홍대에서 저 보셨던 분들은 제발 잊어주세요.</div> <div><br></div> <div><br></div> <div>아무튼 위 두 사건 다 고딩 때 일어난 일이네요. 암튼 파란만장한 고삼이었습니다.</div> <div>백일장 안 보내줘서 담임이랑 대판 싸우고 예심신청서 들고 교장실 찾아간 일도 있었고(그리고 그 대회에서 상탐!)</div> <div>옛날에 멘붕게에 썼던 식중독 사건도 이때 일어난 일이었을 겁니다.</div> <div><br></div> <div>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사 새옹지마는 참 명언인 듯 합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