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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arch_1438
    작성자 : 간담브이 (가입일자:2020-05-15 방문횟수:6)
    추천 : 0
    조회수 : 300
    IP : 218.55.***.53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5/18 16:08:11
    http://todayhumor.com/?sisaarch_1438 모바일
    (제 3편) 북한과 (중공)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마지막편..
    <span style="font-size:16px;">북한과 (중공)중국과의 역사적 관계 </span>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제 3편)     마지막편</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36년 말 국부군은 20개 사단 병력을 동원해 옌안의 홍군을 공격했다. 장제스가 추진한 ‘배일(排日)과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반공(反共) 동시 수행 정책’은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비판받았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산시(陝西)성 실력자로 한족 민족주의자인 양후청(楊虎城)은 홍군 토벌에 소극적이었다. 만주를 일본군에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빼앗기고, 부사령관으로 부임해온 장쉐량도 항일 우선을 주장하는 홍군에 동정적이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장제스, 감금되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시안사건 속 국민당원. 앞줄 가운데가 장제스.</span> </p> <p>   </p> <p><br><span style="font-size:16px;">양후청과 장쉐량은 1936년 12월 12일 독전(督戰)을 위해 시안(西安)을 순시한 장제스를 체포·구금하고, 항일과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내전을 종식할 것을 강권했다. 홍군의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까지 협상에 참여한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결과 양후청과 장쉐량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장제스는 석방될 수 있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이로써 1937년 9월 제2차 국공합작이 성사됐다. 홍군 3만은 국민혁명군 8로군(八路軍)으로, 중·남부 유격대는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신사군(新四軍)으로 개편됐다.</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일본은 1937년 7월 베이징 근교 루거우차오(蘆溝橋)에서 일어난 국부군과의 충돌을 핑계로 중국 본토를 공격했다.</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일본은 전쟁 초기에는 파죽지세를 과시했으나,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대도시와 주요 도로만 점령하는 데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성공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힘의 한계를 드러냈다. 게다가 미국과 소련이 중국을 지원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과 함께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중국에서 열세를 보였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일본이라는 외적(外敵)과 싸우면서도 만주족이 잃어버린 ‘중원의 사슴’을 차지하기 위한 장제스와 마오쩌둥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간 경쟁은 계속됐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홍군은 일본군에 밀린 국부군이 후퇴한 농촌지역에 침투해 권력 공백을 메워나갔다. 1936년 초반 1만 명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수준이던 홍군은 1945년에는 근 100만 명을 헤아리게 됐으며, 당원 역시 4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늘어났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지배지역은 100만㎢, 인구는 1억 명을 넘어섰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일본이 패배할 조짐이 보이자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 재발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국민당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重慶)에서 평화회담을 개최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이 회담 결과 1945년 10월 10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전을 피하고, 독립·자유·부강의 새로운 중국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건설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충칭 시대의 국민당 정부는 관료 부패 이외에도 장(蔣), 안(安), 쿵(孔), 천(陳) 4대 가문으로 이뤄진 정권 핵심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세력의 전시치부(戰時致富)로 악명을 떨쳤다. 화폐 남발이 가져온 악성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민 불만이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높아갔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국부군은 미국의 원조와 소련의 중립적 태도에 힘입어 홍군에 대해 4대 1이라는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10월 10일 협정’을 파기했다. 1946년 6월 26일 장제스가 홍군에 대한 공격을 명령함으로써, 국부군과 홍군은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내전에 돌입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홍군은 각개격파 작전을 해나갔으며, 점령지역 내 토지개혁을 실시해 정칟군사적 기반을 확대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또한 ‘인민민주통일전선’을 결성해 국부군을 고립시키는 전략·전술을 추진했다. 부패한 국민당은 민중의 지지를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상실했다. 1947년 말부터 국민당, 공산당 간 세력관계가 역전됐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br><span style="font-size:16px;">한강 이북 통제하려 한 장제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당시 가장 공업화된 만주는 국·공 모두에게 사활이 걸린 곳이었다. 만주에는 1930년대 이후 일본이 건설한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상당한 규모의 공업시설이 있었다. 만주의 전력, 제철, 시멘트 생산량은 본토 전체를 합한 것의 몇 배에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달했다(1943년 기준 중국 전체 석탄생산량의 49.5%, 제철 87.5%, 시멘트 66%, 전력 72%, 철도 50%).</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30~40년대 만주(다롄선양창춘하얼빈치치하얼 지역)는 세계에서 공업이 발달한 지역 중 하나였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만주에서의 승패가 국·공 내전의 승부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마오쩌둥은 1945년 6월 11일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우리가 만주를 장악한다면 승리의 토대를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확보하는 셈이고, 승리는 결정된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장제스 역시 “만주가 없으면 중국도 없다” “우리가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만주를 점령하지 않으면 중국이 근대 산업국가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마오쩌둥은 만주에 20명의 공산당 중앙위원을 비롯한 고위간부 2만여 명과 최정예 20만여 병력을 투입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장제스 역시 ‘동북행영 정치위원회’와 ‘동북보안사령부’를 설치해 슝스후이를 주임, 두위밍을 총사령관에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임명하고 베이징 북부 청더(承德)를 통해 최정예 기계화사단 포함 13만7000명을 투입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미군도 톈진항, 다롄항 등을 통한 국부군의 만주 투입을 적극 지원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이보다 앞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을 전후해 장제스는 한강 이북을 국</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부군 통제 아래 두려 했다. 그만큼 만주와 한반도는 중국 처지에서 순치(脣齒)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만주 쟁탈전은 중국 내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초강대국 미·소는 물론 남·북한 문제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만주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남북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김일성, 총력 다해 中공산당 지원</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 행사(왼쪽)와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경축 대회.</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국부군이 만주를 차지하면 북한은 남북 양쪽에서 포위당하고, 공산군이 승리하면 한국의 안보 부담이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가중된다. 특히 북한은 만주에서의 승패가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기에 전쟁 진전 상황을 초조하게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지켜봤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코민테른 계열 동북항일연군과 강한 연계를 가진 김일성은 “조선혁명의 입장에서 만주가 장제스의 통치하에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들어가는 것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승만은 “중국이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선언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북한 정권 기관지 ‘민주주의’는 “미국이 해로(海路)와 공로(空路)를 통해 수십만 명의 국부군을 만주로 수송해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중국의 내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혼란 상태이던 한국이 장제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소련의 도움으로 정권을 공고히 한 북한은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공산군을 적극 지원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마오쩌둥 옆 김일성. 1954년 10월 1일 중국 톈안먼 광장 망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5주년 기념 열병식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함께 지켜보는 마오쩌둥 중국 주석(오른쪽)과 김일성 북한 주석. [징화시보]</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만주에는 1936년 조직된 동북항일연군을 비롯해 10만 명 넘는 사회주의 계열 무장 세력이 있었다. 만주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조선인들은 대거 공산군(인민해방군)에 가담했다. 만주 조선인들이 공산군을 지지한 주요 이유는 공산군이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토지개혁을 실시한 데다가 민족 차별을 하지 않아서다. 훗날 지린성 당서기까지 승진하는 청주 출신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자오난치(趙南起·조남기·1926~2018)도 이때 공산군에 가담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강건, 김무정, 박일우, 김광협, 김웅, 최광, 이권무, 방호산(이천부), 전우 등이 조선의용군을 지휘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br></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만주지역 전투 과정에서 공산군에 입대하는 조선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만주에 잔류한 140만 조선인의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5%인 6만2942명이 입대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48년 랴오선(遼瀋)전투 후 방호산의 제1지대는 공산군 제166사단으로 재편됐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국·공내전 초반 국부군과 북한경비대 간 충돌도 발생했다. 북한 기록에 따르면 “1946~1947년 5월간 국부군은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16차례 불법 월경을 했으며, 17차례 북한 쪽에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중국공산당(中共·중공)은 전쟁 초기 불리한 상황에서 북한을 후방기지로 활용했다. 1946년 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동북민주연군(공산군의 일부) 부총사령관이자 백족(白族) 출신 저우바오중은 김일성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중공은 1946년 7월 평양에 조선주재 동북국판사처(사무소)를 설치해 전략물자 공급, 남만주북만주 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교통·통신선 확보, 각종 물자 구입 업무를 수행했다. 중공은 남포와 신의주, 만포, 나진에 4개 분소도 설치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46년 가을 국부군은 만주 토벌전에 나섰다. 린퍄오의 제4야전군은 전쟁 초기 연전연패했다. 중국공산당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지원하는 것은 신생 북한 정권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나, 중국 내전 결과에 정권의 존망이 달려 있다고 본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김일성은 총력을 기울여 공산군을 지원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1946년 국부군이 선양과 창춘 등을 점령하고 주요 철도와 교통로를 장악함으로써, 공산군은 남만주와 북만주로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분리된 채 고립됐다. 국부군에 속했다가 공산군에 투항한 1만8000여 명 약 2개 사단 병력이 부상자와 함께 전쟁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물자 2만여t을 갖고 단둥과 지안에서 북한 내부를 거쳐 북만주로 이동했다.</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공산군은 물자는 물론 병력 이동도 불가능하게 돼 국부군에 의해 각개격파 위기에 처했는데, 북한을 교통로로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활용함으로써 패전 위기를 극복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br><span style="font-size:16px;">민족의 비극</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br><span style="font-size:16px;">삼각고지 전투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br><span style="font-size:16px;">만주의 조선인들은 대도시로 도망해 생명을 부지했으며 북한은 일제가 남겨둔 기차 2000대분 군수물자를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공산군에 제공했다. 1947년 북한중공 간 ‘중국동북물자북조선통과협정’이 체결돼 1947년 10월부터 1년간 나진항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등을 통해 총 1435만t의 물자를 공산군에 수송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북한은 국부군에 의해 고립된 만주 내 해방구에 식량, 석탄, 의약품, 소금 등을 1948년 1년간 30만t 이상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지원했다. 여기에는 화약 420t, 초산 200t, 고무신 15만 켤레가 포함돼 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산둥성 등 여타 지역에도 원조 물자를 제공했다. 공산군의 북한 내 통로는 2개로, 육로는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①단둥→신의주→투먼으로 연결되는 선과 ②지안→만포→투먼을 연결하는 선이었으며,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해로는 ①다롄→남포 ②다롄→나진이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중공은 1948년 말 랴오선 전투 승리 후 북한의 지원이 더는 필요 없게 되자 설치 2년 7개월 만인 1949년 2월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동북국사무소와 분소를 폐쇄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이렇듯 만주의 조선인들은 공산군의 내전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공산군은 내전에서 승리한 직후 소수민족의 땅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신장과 티베트를 유혈 점령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조선인들은 주로 제4야전군에 소속돼 랴오선 전투에서부터 쉬저우 전투, 창장 도하, 하이난다오 공략까지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투입됐다. 하이난다오 공략 전투는 조선인 장교의 아이디어(트럭 엔진 장착 보트로 초신속 접근)를 활용해 쉽게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승리로 끝났다.</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동북항일연군 및 소련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김일성의 북한 정권 장악은 외세의 영향 아래 성장한 지도자가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한반도 정권의 권력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몽골 지방군벌 이성계의 조선조 개창과 비슷한 점이 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국·공내전 말기 김책이 마오쩌둥에게 공산군(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소속 조선인 대원의 북한 귀국을 요청한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결과, 이들은 1949년 말부터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군의 중핵이 되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이들은 북한군 4, 5, 6, 7사단 등에 편입됐다. 마오쩌둥으로서는 인민해방군 내에 대규모 조선인 무장 세력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안고 갈 이유가 없었다. 김일성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조선인 3개 사단(북한 육군의 47% 차지)과 남일, 알렉세이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허(허가이), 박창옥 등의 기여로 고려인 1개 연대를 확보하고 난 다음 남침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조선인으로 구성된 4사단 18연대가 제일 먼저 서울에 입성하는 등 조선인 부대가 남침 선봉에 섰다. 북한군 중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최초로 한강을 건너 김포와 영등포를 거쳐 경기 서부와 충남, 호남, 경남 지역을 석권한 북한군 6사단 주력도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국·공내전 시 명성을 얻은 사단장 방호산 휘하 조선인으로 구성돼 있었다.</span>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중국에 잔류한 조선인들은 6·25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인민지원군) 38, 39, 40, 42군에 집중 배치돼 한반도에 </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투입됐다. 북간도(옌볜)는 6·25전쟁을 전후해 북한의 충실한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br></span></p> <p><span style="font-size:16px;"> </span>    </p> <p><span style="font-size:16px;">  끝 ~</span>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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