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최초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의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수상을 한국 영화만 좋아하는 팬으로서 매우 축하합니다. 아래 어떤 분이 역시 봉준호 감독일 수밖에 없는 일화를 올려주신 것을 공감되어 공유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인상적이었던 봉준호 감독에 대한 썰도 덧붙어서요. 그동안 한국 영화 100주년 동안의 주류는 수구보수적 혹은 친독재 성향의 모습이었습니다만, 이제 봉준호, 박찬욱 등등 인간적이면서도 진취적이며 이타적이기도 한 실력 있는 이들이 주류와 국제화도 일구어가게 된 것을 매우 다행이라 여기며 든든해지는 마음입니다. 색귀 김기덕 따위와는 분명 다르게 좋은 분들로서 말이죠.
* 저는, 2000년도였던가 2000년대 초반이었던가 당시 대구 참여연대 회지에서 이제 겨우 상업판에 들어선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그는 대학 시절 기억 중 농촌활동을 했던 기억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었지요. 사람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에 대한 존중. 그런 분이 한국영화판의 주류가 돼서, 그리고 세계와도 교감하게 돼서 너무 기분이 좋고 든든합니다.
공유. 성지수
1월 4일 오전 10:05
봉준호.
그를 실제로 만나 본 건 학부 캠퍼스에서였다.
당시 우리 학교는 ‘백양로 재창조 사업’이라 이름 붙인 대규모 캠퍼스 난개발을 강행하려 했다. 학내 공동체 어느 곳과도 소통하지 않은 채 나무를 뽑아가며 아스팔트를 깔고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교수 및 학생들은 조직적으로 다양한 대응을 실행했다. 그 공사가 지반 약화를 야기하여 안전상의 문제가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교직원이나 교수,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신촌 상권 부흥’을 대비한 주차장 개발임을 지적하며 대학이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담론을 형성하여 ‘재창조’라는 프레임에 대응했다. 기자회견과 입장문 발표를 지속적으로 하는 한편, 캠퍼스를 파헤치는 포크레인을 직접 막아서며 공사를 저지하는 직접 행동도 진행했다. 한 교수님이 몸으로 지켜낸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의 은행나무 한 그루는 이러한 행동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그 나무는 높은 공사장 펜스로 기둥 부분이 가려진 상태였는데, 밤에 학교 몰래 몰려가 펜스에다가 가려진 부분을 선명히 그려넣었다.
또 우리는 텐트를 치고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당시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소속 동료들이 밤새 기타를 치면서 즐겁게 밤을 샌 이후, 학내 공연 동아리들과 연대하여 밤낮으로 다양한 게릴라 이벤트들을 열었다. 낮에는 연세극예술연구회가 거리공연을, 밤에는 재즈 동아리 쏘왓이 버스킹 연주를 하는 식이었다. 춤도 추고 손팔찌 만드는 공방도 차렸다. 공사장 안전등을 슬쩍 뽑아다가 무드 조명처럼 쓰기도 하고, 각자의 동아리방에 있던 크고 작은 소품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참 낭만적인 순간들이 자주 연출되었다. 공사가 재개되면 없어질 백양나무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시하는 참여형 행동도 진행되었고, 간이 카페를 꾸려 백양다방과 백양 옷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동문 선배들과의 연대도 이루어졌다. 서명으로 공사 반대를 위한 행동에 동참해주신 분들도 있었고, 물심양면으로 학내의 활동을 지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곧 사라질 백양로를 배경으로 여러 추억을 쌓았다. 야외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지는 해와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 제작에 함께 하셨던 선배들이 직접 방문하셔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코너도 있었다. 장비 대여와 행사 참여에 기꺼이 함께 해주신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봉준호 선배였다. 봉준호라니. 그때에도 이미 봉준호는 매우 유명한 영화인이었다. 우리들이 연락한다 해서 와줄 거라 기대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인 동문들이 우리의 초청을 거절하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 학교와 동문회가 찬성하는 공사를 막아보겠다며 문화제를 하는 후배들의 뜬금없는 연락에 기꺼이 달려와 줄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온다는 것이었다.
봉준호가, 학교에. 후배들을 만나러.
우린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그의 대표작을 다같이 볼까? 뭐하러? 다들 영화관에서 봤을 거고 그 양반도 지겹게 봤을텐데. 그러다가 학생들 영화를 봉준호 선배와 함께 보는 상영회를 하자는 결론이 났다. 곧바로 영화 관련 동아리와 신방과 측에 연락을 하여 상영 목록을 세우니 26편의 작품이 라인업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상영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가을밤 추위가 걱정되긴 했으나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행사 당일. 그 양반이 학교에 왔다. 번듯한 강의실이나 백주년기념관 강연이 아니라 우리가 민주광장에 얼기설기 꾸린 야외 상영장에. 출품했던 학생들도 다소 긴장한 얼굴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현장 진행을 하느라 감독님이랑 첫 인사만 했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키가 엄청나게 크시네, 그러고는 바로 일하러 갔던 것 같다.
내가 그날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봉준호 선배가 가장 앞자리에 앉아 그 긴 시간동안 그 추위 속에서 모든 작품을 흥미롭게 관람했기 때문이다. 선발을 하지 않아 퀄리티도 들쭉날쭉한 20여편의 작품을 모두 보고 마이크를 잡은 그는 한 편 한 편에 대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뭉클했다. 저 사람,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저 사람, 그냥 얼굴만 비추러 온 거 아니구나. 저 사람, 우리 작업을 진짜 작업으로 봐 주며 이 시간을 보냈구나.
추위를 피해 무악극장으로 다같이 자리를 옮겨 덧마루를 식탁 삼아 우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나는 계속 진행을 보며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곁눈짓으로 잠깐잠깐 앉아있는 쪽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뿐이었다. 옳은 일이면 쉽지 않은 일, 폼나지 않는 자리에서도 열정적인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봉준호는. 그가 최고의 영화제에서 좋은 상을 받았다는 소식보다 영화 제작 환경 개선 및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냈다는 기사에 더욱 눈길이 갔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후 학교는 추위 때문에 불침번이 느슨해진 틈을 타 야밤에 인력을 투입하여 공사를 재개했다. 마지막 나무도 뽑혀서 펜스에 그려진 줄기만 그림으로 덩그러니 남았다. 백양다방도, 야외상영장도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현재의 백양로가 되었다. 나무 그늘 하나 없이 아스팔트가 들끓고 관광객들이 사진 찍으러 왔다가 지하 스타벅스에서 쉬는, 이상한 캠퍼스. 깊게 판 지하 공간엔 학내 공동체를 위한 공간보다 훨씬 많은 주차 공간이 들어선 캠퍼스. 이제 백양로는 내 또래의 졸업생들이 학교를 잘 찾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난장에 가까웠던 그 때의 여러 축제와 이벤트들을 떠올리면 미지근한 온기를 느낀다. 그 대형스크린 한쪽을 가리던 봉준호의 큰 뒤통수(!)도 기억난다. 여러 면에서, 특히 여성 서사나 여성 캐릭터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매우 부족한 영화감독이지만 그래도 그를 응원한다. 다들 추워서 난롯가로 모여들거나 제자리뛰기라도 해야 했던 그날, 단 한순간도 자리를 뜨지 않고 맨 앞자리를 지키며 스크린을 가린 커다란 뒤통수 때문에.
**널리 알려진 이에게 경조사가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그 사람과의 개인적인 인연이나 그와 관련된 기억 한 조각에 대한 글을 쓴다. 나도 몇 자 덧붙이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쑥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러지 못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오르는 걸 보며 이제라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첫 타자에 대한 글. <기생충> 보고나서 실망한 다음이나, 수상 이후에 쓰고 싶었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