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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1145669
    작성자 : jkh (가입일자:2018-08-02 방문횟수:421)
    추천 : 15
    조회수 : 951
    IP : 182.212.***.19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9/11/17 22:39:59
    http://todayhumor.com/?sisa_1145669 모바일
    [이탄희의 공감(公感)] ‘월세 구속, 전세 석방’의 논리
    형사재판을 담당할 때의 일이다. ‘차용금 사기’라는 사건 유형이 있다. 쉽지 않은 사건이다. 재판이 다 끝나봐야 유무죄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검사가 구속영장을 잘 청구하지 않는다. 판사도 영장을 잘 발부하지 않는다. 구속했다가 나중에 무죄면 낭패다. 그런데도 유독 구속된 채로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거가 상대적으로 덜 안정적인 사람들이다. 쪽방,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에 사는 이들 말이다. 그렇게 구속된 이들은 대부분 직장을 잃는다.
    몇해가 지난 뒤 영장재판을 맡았다. 전국의 영장판사들이 한곳에 모여 연수를 받았다. 많은 판사들이 이런 현상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논리는 이랬다. “자가를 보유하거나 전세보증금을 납입한 사람은 도주할 가능성이 작다. 자가와 전세보증금을 버리기엔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에 사는 사람은 다르다. 대부분 월세다. 도주해도 손해가 덜하다. 보증금 몇백 빼면 잃을 돈이 없다. 주거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더하다. 재판에 나오라는 우편통지서조차 보낼 수 없다. 구속해두어야 재판에 출석시킬 수 있다. 이들이 더 많이 구속되는 건 합리적 결과다.”
    얼핏 보면 논리적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어떤가. 전 재산이 보증금 몇백인 사람이 그걸 모두 잃는 게 과연 ‘손해가 덜한 것’일까. 나는 이것을 ‘월세 구속, 전세 석방’의 논리라고 불렀다. 그 논리를 계속 따라가 보자.
    가까운 판사에게 이런 사건이 있었다. 남자아이 하나가 부모에게 버림받고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랐다. 18살이 되어 시설에서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지하주차장 한구석의 움막을 거처로 삼았다. 겨울엔 추웠다. 시장에서 난로를 훔치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못 내서 노역장에 유치됐다. 노역장에서 나온 뒤 이번에는 음식을 훔쳤다. 마트 앞에 쌓여 있던 참치캔들이었다. 소년은 구속됐다. ‘월세 구속, 전세 석방’의 논리에 따르면 소년은 도주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 움막이 돈으로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소년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다시 죄를 저지르면 이번에는 실형이다. 집행유예가 취소되면 앞의 형까지 합쳐서 산다. 다 살고 나오면 그때는 누범이다. 누범 기간에 구속되면 형량은 최대 곱절이다. 금방 나이 서른을 넘기고 여생은 교도소와 길거리를 오가기 십상이다

    어떤가. 이런 결과도 합리적인가. 나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정의로운 결과라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의 형사처벌은 가진 자들에게 별다른 위하력이 없다. 한 전직 대통령은 1심 재판에서 인정된 뇌물·횡령액이 300억원을 넘었다.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대중은 ‘20억에 1년씩이니 남는 장사’라며 탄식했다. 한 재벌 3세는 인정된 횡령액이 80억원, 재산국외도피액이 36억원이었다.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횡령 액수가 감액된 항소심에서는 아예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대마불사의 믿음이 얼마나 강했던지, 분식회계가 발견되었다는 금융당국의 발표에도 주가에 큰 타격이 없었다. 관련 회사의 가치를 4조5천억원이나 부풀렸다는데도 말이다.
    반면 없는 자에게 우리의 형사처벌은 유난히 가혹하다. 빈곤이 형벌이다. 차용금 사기 피고인은 전세에만 살았어도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을 잃지 않고 차용금도 일부나마 갚았을지 모른다. 난로를 훔친 소년에게 납부 가능한 벌금 액수를 정해줬다면 어땠을까. 초범에게 노역장은 무서운 곳이다. 어떻게든 나눠 내고 노역장을 피했을 것이다. 재판받는 딱 두달간만 집 없는 사람을 수용하는 복지시설이 있다면 어떨까.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가지 않아도 된다.
    사법 선진국들은 이런 상황을 손 놓고 구경만 하지 않는다. 결과적 불공정함을 조정하기 위해 애쓴다. 벌금 액수를 소득수준에 연동시키는 일수벌금제도, 사법절차와 복지시설을 연계하는 시스템, 대마불사를 깨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모두 그런 노력으로 탄생했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9년 보고서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법원과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신뢰도가 37개국 중 꼴찌였다는 소식이다. 대법원이 항의하여 보고서에서 빠졌다고 한다. 그런다고 국민이 모르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약자들에게 모진 상황을 방치하고 조장한다. ‘월세 구속, 전세 석방’의 논리 역시 후진적 제도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 엉뚱하게 보고서 막는 데 힘쓸 때가 아니다.

    출처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9173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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