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7박9일 유럽순방은 끊임없는 설득의 시간이었다. 대북 제재완화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유럽국가의 인식의 토양을 바꾸는 사전 정지작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br><br>비록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의미있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평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황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br><br>◇佛·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집중 공략 <br><br>문 대통령은 취임 후 본격적인 유럽순방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순방의 첫 국가로 프랑스를 낙점하면서 목적 의식을 분명히 드러냈다. 대북제재 결의안 해제 열쇠를 쥐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br><br>미국의 주도로 형성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단일 전선에 일종의 틈을 만들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빈방문 형태로 프랑스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내 역학 구도를 치밀하게 계산한 것으로 해석된다.<br><br>'브렉시트(영국의 유렵연합(<span class="word_dic en">EU</span>) 탈퇴)'로 <span class="word_dic en">EU</span> 국가들 사이에서 마찰을 빚고 있는 영국보다는 프랑스를 지렛대 삼아 유럽 내 제재완화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해보겠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움직인다면 '무게추'가 제재완화 쪽으로 기울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접근이었다. <br><br>상임이사국 P5 국가가운데 북한과 가까운 중국·러시아와 미국 주도의 영국·프랑스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제재완화 쪽에 힘을 실어준다면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었다.<br><br>문 대통령은 프랑스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심국가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서 중요한 역할과 기여를 하고 있는 국가"라며 프랑스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강조했다.<br><br>◇신중했던 마크롱 "비핵화 먼저"···제재완화 거절<br><br><br>많은 기대를 안고 마주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한·프랑스 정상회담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원했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span class="word_dic en">CVID</span>)'가 선행돼야 한다며 제재완화에 확실히 선을 그었다. <br><br>마크롱 대통령은 한·프랑스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에 협력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유엔 안보리 상임위가 제재를 계속해야할 것"이라며 제재완화의 전제조건으로 <span class="word_dic en">CVID</span>를 주장했다.<br><br>만찬사에서는 "안보리 결의안을 전적으로 준수하는 가운데 명확한 기저 위에 대화를 구축할 때 우리가 원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며 "<span class="word_dic en">CVID</span>를 실현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저희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있다"고도 했다.<br><br>북한의 강한 반발을 의식해 미국마저도 <span class="word_dic en">CVID</span>를 버리고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span class="word_dic en">FFVD</span>)'라는 톤 다운된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보다 강경한 <span class="word_dic en">CVID</span>를 고수했다.<br><br>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span class="word_dic en">EU</span>의 공동안보 입장이 <span class="word_dic en">CVID</span>인 것이고, <span class="word_dic en">EU</span> 차원에서 그렇게 정리가 돼 있기 때문에 <span class="word_dic en">EU</span>의 중심국가인 프랑스가 <span class="word_dic en">EU</span> 차원의 승인없이 다른 용어를 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br><br>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일 <span class="word_dic en">tbs</span>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프랑스와 미국은 몇 가지 불편한 문제가 있다. 농업시장 개방 문제, 이란 핵문제도 있다"며 "그런 문제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제재완화 문제와 관련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불이익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br><br>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단독회담 가운데 거의 모든 시간을 비핵화 문제에 대해 집중했다"며 "상임이사국으로써의 프랑스의 위치와 입장이 단시간에 바뀌긴 어렵더라도 본격적으로 제재완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는 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br><br>◇프랑스 거절로 힘빠진 文···교황 메시지로 극적 반전<br><br>기대했던 프랑스의 제재완화 설득 작업에 실패한 문 대통령은 교황청 방문을 통해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의사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락했다. <br><br>게다가 평화의 상징이라 평가받는 교황으로부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문 대통령의 노력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 표명을 이끌어내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일종의 '보증'을 받은 셈이 됐다.<br><br>교황은 18일 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느냐'는 문 대통령의 질문에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며 초청을 수락했다.<br><br>아울러 "한반도에서 평화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했다.<br><br>비록 제재완화를 통한 비핵화 촉진이라는 문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교황의 지지가 외교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합의나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강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br><br>가톨릭 신자가 많은 유럽에서 존경을 받는 교황으로부터의 지지 메시지는 유럽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br><br>문 대통령의 평화 추구와 그에 대한 교황차원의 보증이 대북제재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작용될 수 있다는 희망섞인 관측도 제기된다. 이는 곧 제재의 고삐를 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우회적인 압박 메시지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br><br>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교황의 메시지는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교황 예방으로 인해 이번 목표했던 유럽 순방의 성과를 모두 이뤘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br><br>◇30개국 유럽 정상 앞에서 외친 한반도 평화···다자외교 무대 활용<br><br>문 대통령은 계속된 유럽순방에서도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 1년 안에 이뤄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소개하며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당부했다.<br><br>특히 아시아유럽정상회의(<span class="word_dic en">ASEM</span>·아셈)를 설득의 무대로 삼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한반도 평화가 유럽의 이익과 무관하지 않다는 실용적인 접근으로 유럽 정상들을 설득했다.<br><br>문 대통령은 20일 아셈 전체회의 1세션 발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는 궁극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공동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아셈 회원국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br><br>이어진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는 리트리트 세션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구도를 해체하는 과정은 유럽에서와 같은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은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br><br>본격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추진하면 이는 곧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으로 이어지고, 특히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이 실현되면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이익으로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제시했다.<br><br>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의 동북아철도공동체 구상이 과거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공동체로 출발해 현재의 유럽연합(<span class="word_dic en">EU</span>)를 구성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한반도 정책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br><br>문 대통령은 "유럽은 인류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 정치적으로는 이념과 군비경쟁으로 치달았던 냉전 구도를 극복했다"며 "경제적으로는 석탄철강공동체로 시작하여 유럽연합을 이뤄냈다"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도 통합과 화합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발신했다.<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