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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비아쩔어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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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36645
    작성자 : 15번지
    추천 : 1
    조회수 : 277
    IP : 222.104.***.22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1/08 00:06:25
    http://todayhumor.com/?readers_36645 모바일
    소설] 마왕의 목을 벤 다음날 - 14.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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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오만

     

     

     

    안 됩니다. 선약 없이 오신 분들은 대기하셔야만 합니다.”

     

    저의 직속상관이 라투에르 교황님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분의 소개서를 들고 오지 못했을 뿐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면회를 앞당겨 주세요!”

     

    성기사단은 누구나 직속상관이 교황님이고, 황궁기사단은 누구나 직속상관이 황제 폐하이지 않습니까? 설령 황제 폐하의 명을 직접 받들고 오셨더라도 황제 폐하의 직인을 받아오지 못하셨다면, 관례대로 차례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망할! 일국의 학자 주제에 그의 의지가 어떻게 황제나 교황의 명령보다 우선할 수 있단 말이오!”

     

    그분의 의지가 우선하는 게 아니라, 황제 폐하의 재산을 보호하려는 조치입니다. 현자님의 존재 자체가 다이아라 반도의 보물이며, 테오나 왕국의 미래입니다. 선약하신 분들을 우선으로 입실시키는 건 이미 선약 과정에서 신분 검증이 끝났기 때문이며, 이런 통과의례 절차는 모두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른 겁니다.”

     

    탑 내부까지는 무사히 들어섰지만, 현자를 만나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라반과 일행들은 대기실 입구에서 막혀 발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수련생에게 공손하게 부탁도 해보고 윽박지르기도 해보았지만, 수련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곤란하군. 쓸데없이 소란을 피울 수도 없고난감하군.”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초조해진 갈라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깨물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전장을 누비며 손에 방패와 무기를 들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지만, 함부로 칼을 꺼낼 수 없는 장소에 서게 되자 오래도록 저절로 감추어졌던 나쁜 습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플로렌시아가 갈라반의 엄지손가락을 입에서 떼어내며 귀를 당겼다.

     

    불을 질러버리면, 현자라고 해서 방안에만 있겠어요?”

     

    하후현은 유년을 배와 항구에서 보낸 몸이었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뱃멀미로부터 완벽한 어른은 아니었다. 내륙에서 오래도록 생활한 탓에, 그의 몸은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파도의 물결을 잊었는지 오래였다. 게다가 섬과 가까워질수록 암초며 물살이 달라져서 군함의 운행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군함이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소형 상륙선으로 옮겨타셔야 합니다.”

     

    알고 있네.”

     

    말과 달리 하후현은 쉽게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오로지 기합으로 버티며 속을 비워내고, 또 비워낼 뿐이었다.

     

    그냥 도선 병력을 따로 추려서 그들만 다녀오게 할까요?”

     

    사태의 경중을 아직도 모르는 건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가 직접 가서 빈틈없이 해야 한다.”

     

    그렇게 다섯 번째 상륙을 강행하였다. 테누항 인근에만 수십 개의 작은 섬들이 있었고, 평소의 경계 영역 밖에도 제법 크기가 큰 섬들이 있었다. 하후현은 분대 단위의 병력이 숨어들기에도 작은 무인도들까지 하나하나 직접 상륙하여 눈으로 확인하려고 했으니 그의 뱃멀미는 피할 수 없는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대장님이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괜찮아, 내 육신은 테누아스님 덕에 오늘까지 왔다. 신의 나라가 내일 당장 침공당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고작 멀미 하나에 쓰러져 있겠는가?”

     

    잔뜩 실은 기합과 달리 이번에도 상륙한 섬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하후현은 잠시 해안가에 서서 숨을 골랐다. 화재를 진압하고 바로 수색에 임한 상태라 벌써 꼬박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잠도 청하지 못한 상태였다.

    해안가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그때, 멀리 점처럼 보이는 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신호다! 적의 흔적을 발견했다!”

     

    왕비는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공사 중인 터널로 내려갔다. 명령대로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했지만, 지금쯤이면 꼬투리를 잡기 위해 라투에르 교황이 직접 순찰을 왔을 거란 예감이 들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라투에르 교황이 바위처럼 딱딱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등도 바위처럼 둥글게 굳은 모양새였다.

     

    안녕하십니까, 왕비 마마. 이런 곳에서 인사를 올려 예의를 차리기가 어려운 점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교황께서 이곳까지 내려오시다니 오히려 제가 민망하군요.”

     

    줄리아 왕비는 겸연쩍다는 듯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국의 왕비께서 와인 창고 하나쯤 장만하고 싶으시다는데, 당연히 노역을 부려야죠. 그리고 노역을 부렸으면, 누군가는 관리를 해줘야 하는 법이니까요.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왕비 마마께서 신경 쓰시기 전에 제가 먼저 내려와 봐야지 않겠습니까?”

     

    신전에서 일어나는 일만 신경 쓰셔도 바쁘신 분이시잖아요. 저도 잘 압니다. 제가 괜히 나서서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래도 국고가 쓰인 일인데, 이 나라의 총리직을 겸하고 있는 제가 모른 척해서야 되겠습니까? 게다가 소문에는 왕비 마마의 사적 재산까지 쓰였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더더욱 제가 경비를 절감할 방안이 있는지 검토를 해보아야죠.”

     

    라투에르 교황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노련한 그의 계산도 그릇된 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으니까. 왕비의 돌발행동은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황제의 아내로 시메온 가문의 줄리아를 천거한 건 다름 아닌 라투에르 교황 자신이었다. 그가 본 줄리아라는 여성은 왕비가 되기 이전에도, 왕비가 된 이후에도, 고요한 저수지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다이아라 반도의 여성이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아름다운 미모와 풍만한 몸매 말고는 그녀를 따로 기억해야 할 다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왕비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자산이 풍부한 가문을 왕가의 사돈으로 두어서 나쁠 게 없다. 오히려 국란이 닥치면 급한 대로 그들의 재력을 끌어다 쓰면 그만이다. 얌전히 뜨개질이나 하고, 심심하면 연회를 열어 드레스 자락을 쓸고 다니는 일만 할 여자로 보여서 줄리아를 천거하였고, 그녀는 지금까지 나서는 일 없이 왕궁의 권태로운 생활에 제대로 젖어가고 있었다.

     

    결국 이 여자도 권태에 미쳐버린 건가?’

     

    왕비가 지하에 터널을 뚫어 자신만의 보물 창고를 만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가 차서 혀를 차기도 아까웠었다. 라투에르 교황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터라 늘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왕비처럼 자신의 경계 순위에서 이미 한번 까마득하게 밀려나 버린 사람을 다시 새롭게 의심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만큼 스스로 내린 결정과 판단을 과신하는 성향도 짙은 게 라투에르 교황이었다.

     

    부끄럽네요.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사실입니다.”

     

    단순한 와인 창고 건설에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 이유는 없을 텐데, 이상하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전체 비용을 다시 검토해봐도 될까요?”

     

    줄리아 왕비는 정말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입으로 가린 채 대꾸하였다.

     

    , 안 됩니다. 사실이건 황제 폐하께는 비밀입니다. 믿으실 수 있는 분이시니 교황님에게만 알려드리는 겁니다.”

     

    라투에르 교황은 슬며시 웃으며 그의 귀를 왕비에게 가까이 가져다 놓았다.

     

    내년이면 폐하와 맺어진 지 15주년이 됩니다. 폐하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자 우리만의 보물 창고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국고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왕궁에만 있어 돈을 융통할 방법이 없어 곤란해하니 속사정도 모르시는 폐하께서 저를 돕는다고 그만 국고까지 꺼내 쓰셨네요. 그렇게 되니 저도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폐하께서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여러모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폐하께서는 안목이 높으셔서 다이아라 반도 안에서는 구하기도 힘드실 텐데

     

    말씀대로입니다. 바다 건너 동양의 물건들로 수집하려니 제 생각보다도 훨씬 비용이 들어 이제는 감당이 벅찰 정도입니다.”

     

    라투에르 교황은 고개를 내저었다. 귀부인의 사치심이나 채우자고 그간 살림을 불려온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는 그의 계획이 눈앞에 이르렀는데, 이런 터무니 없는 일로 대업을 그르칠 수도 없었다.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올립니다. 왕비 마마에게까지 심려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던지라 말을 아끼고 싶었지만, 마마께서 제게 솔직히 말씀해주시니 저도 현재 나랏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사실대로 알려드려야겠습니다. 마마, 놀라지 마시옵소서. 최근 북쪽 마왕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려 국토의 최남단인 테누항까지 내려와 기습 공격을 감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지금은 군수물자를 확충해야 할 시기라 여기 공사는 미루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랬군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줄리아 왕비는 고개를 돌려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라투에르 교황은 일이 커지기 전에 정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몸을 돌려 출구 방향으로 향했다.

     

    그럼, 잔고는 다시 반납하여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니에요, 저는 자금 융통을 전혀 할 줄 몰라서 저의 오라비들에게 이미 보물을 수입해 들어오는 모든 일을 맡겼어요. 폐하께서 손을 써주셔서 이미 자금까지 전부 넘겨주었답니다. 그래봤자 오라버니들이 어제 회의를 마치고 돌아갔으니 아직 돈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오라비들에게 당장 연락해서 그 돈으로 병력을 모으고 무기를 제작하라고 하겠습니다. 폐하께도 제가 지금 당장 가서 알리겠습니다!”

     

    ? 그게 무슨!”

     

    걸음을 떼서 옮기려던 라투에르 교황은 어이가 없어서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줄리아 왕비는 그 짧은 틈에 이미 드레스 자락을 끌어 올린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다다다닥, 지하를 울리는 구둣발 소리에 라투에르 교황의 눈앞으로 마차들이 지나쳐갔다. 긴급회의로 소집한 귀족들, 당연히 시메온 가문의 자녀들도 손쉽게 궁에 들어왔다 나갔을 터였다. 그들이 탄 마차에 잔뜩 실렸을 금화를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마마! 기다려주시옵소서! 나라의 자금을 쓰는 일에는 모두 다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지금 위기가 닥쳤는데 그런 절차가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어차피 이 나라는 황제 폐하의 나라. 폐하께서 바로 결정하시면 될 일이죠!”

     

    계단을 다급하게 뛰어오르는 당찬 구둣발 소리를 들으면서 라투에르 교황은 홀로 습한 지하에 남았다. 평생 신을 모시는 목회자를 자청했으면서도 인간을 믿지 않았던 남자, 인간의 추한 욕망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걸 발판으로 매번 사람 위에 올라서던 노인. 라투에르 교황은 모두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던 자였지만, 평생을 타인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본 적이 없었기에 사랑에 빠진 여자가 얼마나 전력으로 마음을 다할 수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 권력 놀음은 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는 남자들만의 것이라는 그의 오만이 그에게 생애 처음으로 패배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애송이 녀석! 기껏 생각해낸 수가 마누라 치마폭에 기대는 거였냐!”

     

    라투에르 교황은 분노로 치가 떨렸지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당장 다음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넘어가면 레오폴드 황제가 눈앞에서 보란 듯이 병력을 늘려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당장 막아설 묘수, 당장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릴 명분이 필요했지만, 낡은 몸뚱이에 혈압이 올라 어지럽기만 할 뿐이었다.

    출처 https://m.novel15.net/product/list.html?cate_no=44
    15번지의 꼬릿말입니다
    13월을 살고 싶었지만... 벌써 1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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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1/08 11:27:31  112.171.***.130  윤인석  72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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