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의 항해 [초단편소설]

게시물ID : readers_34204

작성자 : 랭보冷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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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9/09/30 16: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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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의 항해 [초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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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의 항해- '여, 여긴 어디야?' 눈을 뜨자마자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꿈인가?' 나는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프다. 꿈이 아닌 것 같다. 내 오른쪽, 왼쪽에 있는 침대에는 나처럼 볼을 꼬집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있다. 그들은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하의와 상의를 입고 있다. 왜인지 나도 그들과 같은 복장이다. 나는 내 오른쪽에 있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 저 여기... 어, 어디에요?" 여자에게 말을 건네고 나서야 내가 사람과 마지막으로 대화해본 것이 5년 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그녀의 몸짓을 보고 나서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소한 사람의 눈을 마주칠 수는 있는 나와 달리 그녀는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나보다 증상이 심해 보이는 여자를 뒤로하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곳이 꽤 큰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수십 개의 침대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히키코모리'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간이 우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키코모리는 좁은 방에 홀로 있어야 한다. 우리들의 친구는 컴퓨터여야 하고 학교와 직장은 모니터에 떠 있는 인터넷세상이어야 한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불 꺼진 좁은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였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왜...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걷다 보니 계단이 보였다. 나는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을 번갈아 보다가 계단을 올랐다. 위층도 내가 잠에서 깬 층과 마찬가지로 침대 위에 히키코모리들이 가득했다. "침대로 돌아가게 곧, 방송이 시작될 거야..." 어느새 나타난 중년남자가 내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남자를 보자마자 언젠가 보았던 외국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였다. 갑자기 예전에 본 영화가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는 이유는 남자의 복장이 영화 속에 등장했던 선원들의 옷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침대로 돌아오자마자 벽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음성이 튀어나왔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드넓은 바다 위에 있습니다." ‘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자의 침대 위에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보였다. "여러분, 오랜만에 집 밖, 아니 방 밖으로 나오게 되어서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나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내 표정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 표정을 알 길이 없었다. 내가 나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 3년 정도 전, 내 방에 있는 거울을 깨뜨리기 직전, 그때 잠깐 본 것이 내가 나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란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꼴도 보기 싫은 내 얼굴이 기억이라도 날까 봐 급하게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여러분, 모두 일어나서 걸어주세요. 그리고 계단을 내려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스피커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간절해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수많은 사람 중 몇 명 만이 계단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지금 드넓은 바다 위에 있다는 사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해서 계단 방향으로 걸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호기심이었다. 어딘가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면 밟을수록 코끝에 바다냄새가 났다. 더이상 내려갈 계단이 없었을 때 눈에 보인 것은 드넓은 바다였다. 나는 거대한 배 위에서 드넓은 바다를 항해 중이었다. "여러분, 내려와 줘서 고맙습니다. 정말 넓은 바다지요?" 스피커에서 나왔던 음성과 똑같은 음성으로 어느 중년남자가 말했다. "저, 저 우리가 왜 왜 여기에 있는 건가요?" 나는 용기 내 중년남자에게 질문했다. 남자는 항해의 끝에 내 질문의 답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끝... 하루하루 별다른 것 없는 생활을 지속하던 나에게 있어서 끝이란 단어는 너무 생소했다. 무언가 시작되어야 발생하게 되는 끝이란 단어가 굉장히 생소했다. 그때,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바다를 볼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남자가 바다를 보고 있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어서인지 머뭇머뭇 거리는 몸짓을 했다. "여러분,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여러분 침대 양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침대에 돌아오자마자 중년남자의 말대로 내 양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내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대답이 없었고, 내 왼쪽에 있는 아저씨는 조금 흥미가 생겼는지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는 질문했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질문했고, 그는 대답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다를 보러 갔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침대를 벗어나 바다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중년남자는 바다를 보러 나온 사람들에게 언제나 “여러분,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여러분 침대 양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내 옆에 있는 아저씨는 옆에 있는 아줌마에게 "저... 같이 바다 보실래요?"라고 말했고 아줌마는 옆에 있는 중학생에게 "학생, 같이 바다 볼래?" 하고 말했다. 수십 일이 지난 후 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 공간에 있는 모두는 바다를 보러 나가게 되었다. 모두가 바다를 보고 있을 시간, 나는 내 왼쪽에 있는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어, 어제는 바다에서 도, 돌고래 떼를 봤어요..." 다음날,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다를 보러 나갔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어제는 날씨가 좀 흐, 흐려서 그런지 바다색이 좀 어두웠어요..." 다음날,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다를 보러 나갔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나를 보고 있다. 그녀의 눈을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 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어제 바다에서 보았던 것을 말해 주었다. "저, 왜 나를 포기 하지 않나요? 며칠이나 말을 걸어도 저는 바다를 보러 가지 않잖아요?" 여자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여자에게 "제 옆에 있으니까요" 하고 말했다. 여자는 질문했다. 나는 대답했다. 여자가 어정쩡한 미소를 보냈다. 나도 웃었다. 분명 어설픈 웃음일 거다. 나와 여자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바다가 유난히 맑고 투명해 보였다. 여자는 눈이 부신지 실눈을 뜬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바다향기를 맡았다. "고맙습니다" 여러 사람의 대화 소리 가운데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내 마음이 물컹해지면서 부드러워졌다. 다음날, 이 공간에 있는 모두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인다. "여러분, 여러분의 항해가 곧 끝납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중년남자가 우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도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러분이 육지에 발을 디디면 새로운 항해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무사히 항해를 마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년남자는 말을 마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바다를 보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 육지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육지가 가까워질수록 불안해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생겨났지만, 그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 시켜 주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배가 완전히 멈췄을 때 우리들은 육지로 내려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았다. 내가 육지로 내려갈 차례가 되었을 때 누군가 내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중년남자였다. 그는 별 말 없이 그저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그 미소를 뒤로 한 채 육지로 내려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았다. 더 이상 밟고 내려갈 계단이 없었을 때 나는 "다녀왔습니다!"라고 외쳤다. -END-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peGYR9AsY-o" frameborder="0"></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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