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세미롱은 큼큼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최대한 호의적인 억양으로 말을 걸었다.</div> <div><br></div> <div> "저기, 저흰 어제 여기 도착했는데.. 좀 놀랍네요. 이런 곳이 있다니요."</div> <div><br></div> <div> 세미롱의 가꾸어낸 태도는 꽤나 효과가 있는지 스크래치를 향한 강한 적개심과는 달리 그다지 경계 없는 기색이 돌아왔다. 스포츠웨어가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div> <div><br></div> <div> "이런 곳요?"</div> <div><br></div> <div> "좀비가 없고 그.. 블루 존이잖아요."</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가 긴가민가한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div> <div><br></div> <div> "되게 깨끗해지긴 했죠? 여기도 한번 어~엄청 난리가 났었는데, 청소부 아저씨들 오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금처럼 된 거 거든요. 전 여기에만 있어서 밖이랑 얼마나 다른지는 잘 모르지만요. 아, 청소부 아저씨들이란건 그.."</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의 혹시 알고 있느냐는 눈빛에 세미롱은 살짝 긴장한 눈빛을 되돌리며 대답했다.</div> <div><br></div> <div> "알아요. 스위퍼스 분들 말씀하시죠? 민간 군사 기업."</div> <div><br></div> <div> "아 맞아요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요."</div> <div><br></div> <div> 이른 새벽부터 정찰에 나선 것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역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청소부들과의 평화적인 접촉이었다. 아예 총기도 놓아두고 완전히 비무장 상태로 만나러 가는 것도 고려했지만 당장이라도 그냥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당에 총까지 두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무리였다.</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가 기억을 더듬듯 말을 이었다.</div> <div><br></div> <div> "이 학교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죽었었고, 저도 꼼짝없이 갇힌 상태였거든요. 그 아저씨들이 오셔서 운 좋게 살았죠."</div> <div><br></div> <div> '사람들은 다 죽었었다?'</div> <div><br></div> <div> 세미롱은 조금 의아했다. 바로 어제 박사를 만났으니까. 그 회의장이 이 대학부지 바깥 어딘가인 것도 아니었다. 방향을 필사적으로 가늠했었던 탓에 부지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 밖에 하나있는 높은 건물이 바로 박사의 회의실이 있던 빌딩이다. 생각해보면 박사는 이곳 대학의 연구원이거나 교수인 듯 싶었다. 건축 당시부터 보안을 고려해 지어진 듯한 구조도 연구시설이어서라고 생각하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div> <div><br></div> <div> '서로 안면은 없는 건가?'</div> <div><br></div> <div> 세미롱은 머릿속으로 질문해야 할 것의 순서를 저울질하며 말을 골랐다. 박사에 대한 것도 궁금했지만 우선은 청소부 쪽이다. 딱히 숨길 것이 없는 사안이므로 질문이 최대한 단도직입적이 되도록 건넸다.</div> <div><br></div> <div> "청소부 분들에게 저희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div> <div><br></div> <div> 세미롱 바로 꺼낸 본론에 스포츠웨어가 기쁜 내색을 했다.</div> <div><br></div> <div> "소개 해드릴게요! 그럴 테니까 대신, 이곳을 떠날 때 저도 그룹에 넣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전 여기를 떠나려고 생각해요!"</div> <div><br></div> <div> 활기찬 스포츠웨어의 반응에 세미롱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 완연히 드러나 버린 표정에 스포츠웨어도 조금 멈칫했다. 뻔히 긍정적인 대답을 줄 수 없어 곤란한 표정이다. 어색한 시선을 조금 피하며 세미롱이 말끝을 끌었다.</div> <div><br></div> <div> "...그룹으로 받아드리는 것은 괜찮지만요.."</div> <div><br></div> <div> "다른 조건이 있나요..?"</div> <div><br></div> <div> 여전히 시선을 피한채로 스스로도 아직 납득하지 못한 결정에 대해 미간을 찌푸리던 세미롱은, 결국 털어놓듯이 말했다.</div> <div><br></div> <div> "저희는 여기에 정착할 생각이에요. 이제 밖으로는 나가지 않아요."</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가 실망했다.</div> <div> </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 어젯밤 이어지던 버스 안의 토론에서는 기묘한 잠정결론이 내려졌다. 블루존의 발견과 청소부의 존재를 놓고 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르던 토론. 모두가 청소부를 극도로 꺼려하면서도, 누구도 블루존을 포기하지 못한 까닭에 나온 기묘한 만장일치가 토론의 결과였다. 그룹은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div> <div><br></div> <div> 그것이 아무리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결정은 결정인 이상 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세미롱의 스타일이었다. 세미롱은 반드시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스포츠웨어를 마냥 생각하게 둘 순 없다. 세미롱은 다소 닦달하는 구색이 되는 것을 감수하며 말을 밑어붙였다.</div> <div><br></div> <div> "청소부 분들은 어디에 계시죠."</div> <div><br></div> <div> 경계없던 방금 전과 정반대로 눈에 띄게 머뭇거리는 기색이 떠오른다. 스포츠웨어의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의심이 피어날 여유를 주고 싶지 않은 세미롱은 시간을 끌리지 않기 위해 단언했다.</div> <div> </div> <div>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기 전에 관계정리를 했으면 해요. 최대한 빨리요. 저희는 진짜 무섭거든요?"</div> <div><br></div> <div> 그 말에 '당신들은 무서운 사람들인가요?!'하고 바보처럼 되물으려던 스포츠웨어는 이내 세미롱의 표정에서 그녀가 청소부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멀찍이 떨어져 둘의 대화를 쳐다보던 스크래치가 혀를 찼다.</div> <div><br></div> <div> "야 무섭다니. 좀 더 폼 나는 표현은 없어?"</div> <div><br></div> <div> 세미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div> <div><br></div> <div> "최대한 폼 나는 게 '진짜 무서워' 에요. 나 당장이라도 눈물 줄줄 샐 거 같으니까."</div> <div><br></div> <div> "아 그래?;;"</div> <div><br></div> <div> 세미롱의 기분이 나빠지는 건 대체로 그에게 유쾌한 일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건 논외였다. 세미롱은 정말 서럽게 질질 짜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였다. 스크래치는 그걸 굉장히 보기 힘들어했다.</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는 실망감을 느꼈지만 지금 자신이 입을 다문다 해도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란 것쯤은 알았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려 낙심하는 티를 내며 대답했다.</div> <div><br></div> <div> "저에게는.. 정말 아쉽지만, 여러분들에게도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청소부분들이라면 저쪽 산에서 생활하고 계세요. 초입에 지어진 산림 관리소에요."</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운동장 반대쪽으로 난 창문이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지어져있다. 그녀의 말을 듣던 모두의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했다.</div> <div><br></div> <div> 그리고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프로펠러 소리가 두두두두 울려왔다. 순간 그 소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떴던 세 사람이 동시에 정체를 깨달았다.</div> <div><br></div> <div> '헬기소리야.'</div> <div><br></div> <div> 방향이 정확히 산림 관리소 방향이라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자, 정말로 관리소 뒷편에서 중형 헬기가 떠올랐다. 세미롱은 생각했다.</div> <div><br></div> <div> '왜지? 뭐지?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인가?'</div> <div><br></div> <div> 저격병이 탄 헬기, 발칸포가 달린 헬기, 토마호크 미사일이 한 쌍인 헬기까지. 헐리웃 영화에서 본 모든 헬기들을 순식간에 떠올리며 이대로 뛰쳐나가서 도망가다 무력하게 죽는 모습까지 시뮬레이션 끝마친 세미롱은 재빨리 의자 밑으로 몸을 낮추며 외쳤다.</div> <div><br></div> <div> "바닥에 엎드려요!!!"</div> <div><br></div> <div> 긴장감이 순식간에 팽창해 건물내부를 가득 채웠다. 산림 관리소 뒷편에서 떠오른 헬기는 아니나 다를까 물류센터의 상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 헬기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온 창문이 떨리는 소리를 낸다. 저 작자들은 진작에 도망치지 않은 것을 비웃으며 첫 대화의 장을 헬기 폭격으로 열려하고 있었다. 세미롱은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을 자책하며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엎드려서 떨었다. </div> <div><br></div> <div> 그렇게 5분 가까이 엎드려있던 그녀는 헬기소리가 멀어졌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닫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div> <div><br></div> <div>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헬기가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 청소부 중 몇이 헬기로 대학 부지를 떠났다는 것, 고로 상대는 만전이 아니리란 것이었다.</div> <div><br></div> <div> "진짜 좀 있으면 후회할거 같은 결정이긴 하지만.. 일단 산림 관리소로 가봐요. 그들에게 최대한 대등한 제안이 가능하다면 지금이겠죠. 상황이라도 확인해야겠어요."</div> <div><br></div> <div> 세미롱은 스스로 터무니없는 실언을 뱉는 기분이면서도 계속 말했다.</div> <div><br></div> <div> "언제까지 벌벌 떨고만 있을 순 없으니 좋든 나쁘지않든 청소부라는 사람들과 첫인상이라도 쌓아야겠고요. 멋진 기선제압을 당했으니 기죽은 거라도 보여주러 가야겠죠."</div> <div><br></div> <div> 스크래치가 습관적으로 혀를 찼다.</div> <div><br></div> <div> "쯧, 역시 폼은 안 나는구만. 근데 좋든 나쁘지않든은 둘 다 같은 뜻 아니냐."</div> <div><br></div> <div> "그 뜻으로 쌓지 않으면 죽어요 우린."</div> <div><br></div> <div> 세미롱은 맞는 말 위주로만 좀 하는 편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 부자연스러울 만큼 핏자국이 하나 없는 대학 부지를 지나, 마치 멸망한 바깥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산림 관리소를 향해 세미롱 일행은 조심스럽게 나아갔다.</div> <div><br></div> <div> 물품센터에서 나오는 중에도 과도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세 사람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하나 의아해하던 스포츠웨어는, 체대와 물품센터라는 평소의 이동반경을 벗어나자마자 세 사람의 심리를 뼈저리게 이해했다.</div> <div><br></div> <div> 그저 머릿속 상상으로 끝나던 익숙한 공간의 기억들과는 달리, 조금이라도 낯선 곳에선 어디선가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순간 소름과 압박감이 되어 다가왔다.</div> <div><br></div> <div> '이렇게까지 겁이 날줄 몰랐어.'</div> <div><br></div> <div> 화단에 심어진 다소 무성하게 자란 어느 관상목 뒤에서 좀비가 부패한 시체를 뜯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한 번 시작되자, 스포츠웨어는 그 방향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div> <div><br></div> <div> 마치 새벽에 어두운 창문 밖을 바라보다 무표정인 귀신이 자신을 마주본다는 상상을 시작 해버렸을 때처럼, 주변의 정적과 고요가 길어질수록 그 섬뜩함은 더더욱 색채를 더해갔다.</div> <div><br></div> <div> 귀를 기울이고 눈을 돌리며 아무리 감각을 확장 시켜 봐도 달리 다른 소리나 인기척이 없다. 그런 사실을 깨달아갈 때마다 온 신경이 관상목 너머의 공간으로 매몰되어갔다.</div> <div><br></div> <div> 네 사람이 천천히 전진했다. 그 관상목과의 거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다. 그리고 바로 옆을 지나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포츠웨어녀는 걸음을 재촉하며 숨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 친 후 곧바로 후회했다. 외면만 할 게 아니라 저 뒤를 뒤져보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등 뒤가 되어버린 상상이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팽배해져 도저히 진정 할 수가 없었다.</div> <div><br></div> <div> "잠깐."</div> <div><br></div> <div> 가장 뒤에서 걷던 근육질의 중년 남성, 원경이 가운데서 걷던 스포츠웨어에게 다가와 등을 두드렸다.</div> <div><br></div> <div> "숨 셔. 그대로 가면 기절해."</div> <div><br></div> <div> 그제서야 자신이 계속 숨을 멈춘 채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포츠웨어는 현기증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숨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거칠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div> <div><br></div> <div> 현기증이 사라질 때까지 등을 두드려준 원경은 스포츠웨어의 시선떨림이 멈추자마자 손을 때고 앞장서는 스크래치를 쳐다봤다.</div> <div><br></div> <div> "다시 움직이지."</div> <div><br></div> <div> 온몸을 휘감아온 탈진감이 당혹스러웠다. 세 사람을 둘러보는 스포츠웨어 눈빛엔 시선떨림이 사라진 대신으로 당혹스러움이 자리 잡았다.</div> <div><br></div> <div> 방금 전까지도 당장에 이 사람들을 따라나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무서운 거지?</div> <div><br></div> <div>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탠가..?'</div> <div><br></div> <div> 체력도 정신도 충분하도록 준비했다고 여겨왔다. 불안감과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태껏 해 온 모든 것들이 택도 없는 애들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허탈한 감각이 엄습했다.</div> <div><br></div> <div> 그저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을 뿐이다. 바깥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런 생각이 들자 난데없는 복잡한 공포감이 느껴졌다.</div> <div><br></div> <div> 스포츠웨어는 말 없이 세 사람을 뒤따라 걸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 아스팔트로 포장된 오르막길이 잠깐 돌계단으로 바뀐다싶더니 금세 정문이 나타났다. 다만 그대로 진입할 순 없었다. 몇 겹의 바리케이트로 막힌 길 너머에 관리소의 1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장 발길을 돌릴 듯한 모습이다.</div> <div><br></div> <div> 주변을 둘러보던 스크래치가 경사를 조금 내려간 곳에서 진입할 수 있는 반지하 구간을 발견했다. 언뜻 관리소와 전혀 다른 구조물의 입구처럼 보이지만, 혼자만 덜렁 첨단소재가 사용된 센서문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청소부들이 설치해 놓은 것임이 분명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그러고보니 전 화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자판기가 나왔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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