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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34089
    작성자 : HK.sy.HE (가입일자:2017-04-27 방문횟수:60)
    추천 : 1
    조회수 : 162
    IP : 118.42.***.160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9/08/25 06:36:40
    http://todayhumor.com/?readers_34089 모바일
    [역사판타지]민족혼의 블랙홀 제35화 서자 대 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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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혼의 블랙홀





    제35화 서자 대 얼자





    기나긴 면담을 끝냈으나,



    흥선군과 현부인은



    단칼에 거절하였다.




    실망한 마음을 다독이며



    성남이와 함께 운현궁



    바깥으로 나왔다.




    “잠깐!”






    헐떡이는 소리가 들었다.






    재선이였다.





    서자이지만 종친이다.




    고민하다 일단 말을 높이기로 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재선이 내 앞에 멈추어 섰다. 키가 커서 올려다보아야 했다.




    재은 현주와 똑같이 생긴 커다란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른 체구 위에 커다란 도포가 걸쳐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허술해 보였다.




    “누님 말씀처럼, 만약 네가 우리 셋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나와 혼인해 다오.”



    재선이 말했다.



    “......예?”




    내가 자세히 묻기도 전에, 성남이가 개입했다. 재선의 멱살을 쥐고, 운현궁 담벼락에 밀어붙였다.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아씨께 무슨 수작질이십니까.”




    엄청난 완력에, 마른 몸 전체가 땅 위로 들려 올라간 재선이 발을 버둥거렸다.




    “이거 놔! 무엄하다!”




    “무엄하지 않습니다. 피차 첩의 자식 아닙니까.”




    “이익, 우리 아버지는 왕이...”




    “아니시죠. 그러니 둘 다 똑같은 서자입니다.”




    냉정하게 재선의 말을 끊었다.




    “성남아, 놓아라. 저기 문지기가 오고 있다. 일단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자꾸나.”




    내가 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나와 성남이를 들여보내 주었던 문지기가 놀란 얼굴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성남이는 인상을 쓰며 재선을 놓았다. 발이 땅에 닿은 재선이 콜록거렸다.




    “수작질이 아니다.”



    재선이 말했다.



    “그래, 방금 네가 말한 것처럼 나 또한 너처럼 첩의 자식이다. 안 그래도 종친이라 세도가들한테 견제당하고, 힘 있는 벼슬도 할 수 없는 미령한 집안에다, 거기에서 태어난 미령한 첩의 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장 먼저 태어났는데도 장남 대접을 받지 못했지. 저 싸움 좋아하고 머리가 텅 빈 동생 재면이가 아버지의 공식적인 맏아들이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나를 아끼셔서 동생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뿐이다.”



    그가 입술을 핥았다.



    "남아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야. 위로는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다스리며 가진 재주를 천하에 떨치는 게 뭇 사내들의 야망이다. 그런데 재면이나 명복이는 왕실에 입양되어 나랏님 그 자체가 될 가능성이라도 있지, 나는 아버님의 장자이면서도 장자가 아니고, 종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종친이 아니다. 귀하다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천하다 하기도 애매한 반쪽짜리야. 왕실 종친에게서 난 몸이라 문과에 응시할 수도 없고, 천출에게서 난 얼자라서 무과에 응시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될 가능성 없이 집에서 놀고 먹는 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아는가?"


    말 그대로 몹시 괴로워 보였다.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하려 했다.


    "어딜!"


    성남이가 옆에 서 있다가, 나를 향하던 손길을 뿌리쳤다.


    "흥선군 댁 자제께서 괴롭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세상 천지에 뜻을 이루지 못해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본인 하나 뿐입니까. 어찌하여 우리 아씨께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것입니까."


    재선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데릴사위로 들어가려고."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성남이가 반문했다.


    "예?"


    재선이 처지를 토로했다.


    "운현궁에서 난 개밥의 도토리 신세이다. 현부인 마님께서 특별히 투기가 심한 분은 아니지만, 첩의 아들인데다, 자기 아들보다 먼저 태어난 내가 달가울 리 없으시다. 동생 재은이는 어리고 곧 타처에 시집갈 몸이라 귀여워해 주시지만, 아들은 아니 그렇지 않느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총애하시기는 하지만, 그 총애가 끝나는 순간 어머니와 나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 공산이 크다. 왕의 서자들은 군 대우를 받으며 일평생 귀하게 살 수 있지만, 군의 얼자인 나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지 꼴을 한 파락호 신세로 세도가 집을 돌아다니며 낮술을 얻어드시는 작금엔, 그 얼자인 내가 더욱 갈 데가 없다. 족보에 올려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지. 그런데 족보에 이름 올리는 것은 내가 죽은 뒤에 해도 될 일이고, 당장 산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 마침 자영이라 했나? 소저는 무남독녀 외동딸이고, 귀한 집안이신 현부인 마님과 같은 여흥 민 씨 가문인데다, 민유중 어른의 6대손이니, 내가 그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지금보다는 처지가 나아질 것 같아서 혼인해 달라고 청했다."


    성남이가 성을 냈다.


    "우리 아씨께서 무슨 발받침대입니까? 신분 상승을 위한 데릴사위의 제물이 되라니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오늘 보니 자색이 곱고 아리따우며, 제왕학의 기초인 대학 전체를 줄줄 외더군. 나한테 시집오면 필경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낳아줄 것 같아. 거기다 좋은 집안의 딸이기까지 하니, 내 자식이나 손자 대쯤에서는, 못해도 4대 이후에는 더는 얼자의 자식이나 손자란 말을 듣지 않고, 과거에 내리 합격한 명문가를 이룰 수 있을 성 싶다. 내게는 왕실의 피가 흐르니 더욱 그렇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아들과 손자, 4대까지 내다보는 안목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렇지만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시 성남이가 말을 가로챘다.

    “우리 아씨는 씨받이 암말이 아닙니다. 그 입으로 다시 한 번 아씨를 모욕하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재선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 암말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게 뭐가 있지? 요즘 양반들 하는 것들 보면, 사내는 씨내리 종마, 계집은 씨받이 암말보다 나을 게 없다네! 누가 누가 더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귀한 집안과 혼약을 맺느냐. 어느 집안에서 아들을 더 많이 낳아 과거 합격자를 더 많이 내느냐.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양반님네들을 더 많이 내느냐로 가문의 서열이 갈리지 않나. 그나마 우리집 같은 종친부는 아예 그런 경쟁조차 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어. 왕의 씨가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 왕의 친척이 요직을 독차지하여 불공평하다나, 뭐라나. 그런데 왕의 씨가 관직을 독차지하는 것은 아니 되고, 안동 김 씨나 여흥 민 씨 같은 특정 가문이 독차지하는 것은 되나 보지? 어찌하여 대대로 중요한 벼슬자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가문 출신만 차지하는 거야? 정녕 ‘대학’에서 나오는 것처럼,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가정을 잘 관리하며,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서 천하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군자의 자질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과거시험을 거쳐, 관직에 올라 상감마마를 보필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저 몇몇 가문끼리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를 나눠먹고, 또 그 자리를 부정한 방법을 써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다이지 않나. 그래서 나도 그 굿판에 끼고 싶어, 지금 당장은 아니 되더라도 다음 대를 기약하여 굿에 나온 떡을 나누어 먹자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양반 가문의 자제 하나 하나가 모두 씨받이, 씨내리 역할을 하는 게 현실인데, 그게 어찌 자네 아씨를 모욕하는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어째서 민 소저가 ‘자네’ 아씨가 되는 거지? 자네 혹시 소저에게 마음이 있나?”

    성남이의 얼굴이 잘 익은 자두빛으로 변했다. 이윽고 천천히 대답했다.

    “......네. 지금 말씀하신 것, 저 또한 한 번씩 다 해 본 생각입니다. 다만 저는 가문의 부흥 따위는 손톱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씨와 평생 함께 있고 싶어서, 직접 아씨의 아버님이신 사도시 첨정 어른께 말씀드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데릴사위를 들이지 않고, 양자로 가문을 잇겠다는 첨정 나으리의 결심이 확고합니다. 마음에 품으신 뜻은 심원하나, 다른 양반댁 규수와의 혼인을 통해 이루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재선이 말했다.

    “민 소저의 아버님은 지금 병세가 위중하여 오늘 내일 한다던데? 그렇다면 소저 마음먹기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소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소저가 어머님을 잘 설득하면 원하는 곳으로 시집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네. 내 그래서 소저의 의사를 직접 물어보는 것이야.”

    드디어 대답했다.

    “불초하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소녀를 어여삐 봐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혼인은 인륜지대사라 하여, 제 혼사에 대해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결정하셨고, 돌아가신다 하여 그 약속이 깨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동생분 되십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반가의 여식을 취하시어 후대에 길이 남길 명문가를 일구소서.”

    -작가의 한 마디-


    0 미령(靡寧): 어른, 특히 임금의 몸이 병으로 인해 불편함. 재선이는 ‘미령’이란 단어를 씀으로써, 종친 집안의 불편한 위치와, 그 집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를 표현하려는 듯함.


    0 얼자(孽子): 조선시대 첩의 자식으로는 서자와 얼자가 있었음. 서자는 양인 첩에게서 나온 자식이고, 얼자는 천인 첩에게서 나온 자식임. 엄마가 노비면 자식도 따라서 노비가 되는 노비종모법의 영향으로 얼자 역시 천인 취급 받음. 작중에서 재선은 어미가 천인이지만, 아비가 왕족이므로 주위에서 편의상 그냥 서자라고 불러줌.

    원칙상 양인 첩을 어머니로 둔 성남이가 하대하는 것이 맞지만, 성남이는 판서 아들이고 재선이는 흥선군 아들이라 성남이가 임의로 높임말 쓰고 재선이가 반말 쓰는 상황. 아버지 공식 계급을 따질 때 혈통(종친)이 능력(판서)에 우선하는 사회였음. 현실적으로 자영이의 신분은 인현왕후 피가 섞인 양반 직계 6대손이라 부계+모계 모두 합쳐 재선이보다 높지만, 재선이가 아버지 왕족빨+남존여비+연장자 버프로 자영이에게 하대하는 것임. 과거시험에 응시하려면 4대 내 혈통에 천인 피가 섞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음. 이의는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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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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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25 07:12:01  111.91.***.223  윤인석  72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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