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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33949
    작성자 : HK.sy.HE
    추천 : 1
    조회수 : 615
    IP : 175.223.***.179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9/07/18 01:34:08
    http://todayhumor.com/?readers_33949 모바일
    [역사판타지소설연재]민족혼의블랙홀


    [연재소설]

    민족혼(民族魂)의 블랙홀(Blackhole)



    -제1부-

    살해당한 자의 변(辨)


    제1화 죽은 뒤, 돌아보다.


    제1장 죽음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눈앞에서 살수(殺手)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살다보니 신분이 높은 계집년도 다 죽여보는군.”

    살수는 검은 복면을 쓰고, 기다란 일본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도(刀)가 나를 겨냥했다. 주위에서 여인들이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두려웠다. 티를 내지 않았다. 단호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내가 여기 있으니, 다른 자들을 해치지 말라. 사냥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턱을 높게 치켜들고 오연히 말했다.

    “안됩니다!”

    저 멀리서 손재주 좋던 아이 한 명이 소리쳤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다른 살수에게 한 대 맞았는지 곧 짧은 비명소리를 내고는 잠잠해졌다.

    “내가 부덕(不德)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실로 나의 한(恨)일세.”

    일본도가 점점 가까워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나의 배를 느리게 쓸었다. 치밀어 오르는 공포감 속에서도, 쥐를 죽이기 전에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살수에게 짜증이 났다.

    그때였다.

    “그 손 치우지 못할까!”

    내 뒤쪽에서 그가 일갈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왔다. 나를 구하러.

    순간 번쩍거리는 빛이 망막을 스쳤다. 목에 둔탁한 충격이 일었다. 다음 순간, 목 아래가 허전해지면서 시야가 반전했다. 검(劍) 끝이 살수를 궤뚫었다. 총소리가 들렸다. 그가 살수를 죽이고 총에 맞았다. 나는 손을 내밀려 했다. 그러나 머리와 분리된 내 몸은 더 이상 내 명령을 듣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 전체가 주마등처럼 한 컷 한 컷 스쳐 지나갔다.

    시야가 암전(暗轉)했다.




    제2장 영혼의 블랙홀


    제1절 궁(宮)을 나서며


    어둠이 내렸다. 정신은 맑았다. 꿈을 꾸고 있나. 뺨을 꼬집어보려고 했다. 손을 볼로 가져갔다. 아프지 않았다. 잠시 멍했다. 그러다가, 방금 전에는 그를 만질 수 없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내 머리가 몸과 분리되었다는 사실도.

    결론은 단 하나. 나는 죽었다. 깨달음에 이르자 갑자기 시야가 확 밝아졌다. 목이 잘린 내 시신을, 나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시신을 내려다보는 살수들을 내려다보았다. 살수들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죽은 다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죽인 자신들의 동료가 검에 궤뚫려 죽은 다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왕비의 옥문은 과연 어떻게 생겼노.”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내 시체에 남아 있던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죽은 다음이라 그런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살폈다. 죽어가면서도, 나는 그를 걱정했다. 나를 구하려다 총에 맞았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이 (눈이 있다면) 죽은 내 눈에도 분명했다. 아직 살아 있었다. 총 맞은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내 시체를 집적대는 놈들에게 아직도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이미 죽었는데. 아직도.

    날 위해 비명을 지르던 손재주 좋은 아이를 찾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 있었다.

    죽으니 시야가 넓어졌다.

    살아 있을 때 아무리 찾아도 없던 남편이 저쪽 구석에서 내 시체를 보며 떨고 있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에게도 죽음은 똑같이 두렵다.

    나에게 아들을 빼앗겼다고 믿은 아버지가, 나의 죽음으로 되찾은 아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알까. 나는 단 한 순간도 아들을 빼앗은 적이 없다. 스스로 날고자 하는 것을 도왔을 뿐.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시선이 조각난 내 육체를 훑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심히 (이미 존재하지 않는) 몸을 돌렸다. 몸이 존재하였을 때, 잠시나마 나는 어머니라고 불리었다. 한 명에게서, 만인에게서.

    부모님에게 내가 그러하였듯이, 나 또한 남은 혈육이 하나뿐이었다. 단 하나 남은 혈육이 약관(弱冠)을 넘긴 후에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려 했다. 스물 둘 나의 아들은 고깃덩어리가 된 나의 육체를 보고도 냉정하지 못하였다. “어마마마!”를 외치며 뛰어나가려는 아들을 남편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너 역시 어미와 똑같이 죽고 싶으냐? 지금 죽으면 한낱 개죽음일 뿐이다. 살아서 어미의 못 다한 한(恨)을 이루라.’

    살아있었다면 내 입에서 나올 말이 내 남편 입에서 나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궁(宮)을 나섰다. 왕조 개창 이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궁을 지키던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은 나의 죽음에 전원 기가 쇠하였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호국영령이 쇠하여 나의 죽음이 앞당겨진 것인가. 나의 죽음으로 인해 호국영령이 쇠한 것인가. 죽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마 가지 못하겠구나. 떠나려는 나를 배웅하며 수문장의 영혼이 피눈물을 흘렸다.

    ‘불초 소인이 부족하여 마마를 지키지 못하였사옵니다.’

    조선 왕실을 수호하던 다른 혼령들 역시 뒤따라 피눈물을 흘리며 웅웅 울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민 끝에 (존재하지 않는) 입을 열었다.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나다. 내 넋이 스러질 때까지......’

    (존재하지 않는) 등을 돌려 궁을 빠져 나갔다.


    제2절 저승의 흑혈(黑穴)


    나 어릴 적 지내던 생가를 빠르게 훑었다. 찬물에 손을 담가 쌀을 씻던 우물가를 일별하고, 푸르른 산과 들, 내 고향 강산을 떠났다.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갔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하였으나, 하늘로, 하늘로 계속 올라가자 생전 머물던 땅 전체가 파아란 구슬처럼 둥글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깜깜한 하늘을 보았다. 멀리서 별이 빛나고 있었다. 어릴 때 들은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떠올렸다. 직녀자리로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저절로 직녀자리 별들이 떠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눈앞의 모든 별들이 둥글게 보이더니 휙휙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갔을까. 영원이라고도 할 만한 시간 동안 직녀자리를 이루는 별을 보며 날아간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푸르게 빛나는 직녀자리 별들이 보였다. 별들은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것을 둘러싸고 그 주위를 돌고 있었다.

    ‘검은[黑] 구멍[穴]? 여기 이 흑혈(黑穴)로 들어가면 직녀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별들과 함께 돌며 춤을 추다가, 자연스럽게 원을 그리며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3절 이 땅에 머무는 생명의 눈물


    검은 구멍 안에서는 아무런 사건(事件)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름하여 사건의 지평선을 지났다고 해야 하나. 너무 어두웠다. 빛이 단 한 점도 없어서, 심지어 나 자신이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춥다.’

    따뜻한 불을 쬐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자 눈앞에 손을 녹일 딱 그 정도 크기의 불이 동그랗게 떠올랐다. 살아있을 적 불과 다른 점은, 불이 완전한 공 모양을 이루며 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도, 땅도, 바닥도, 천장도 없는 곳이었다.

    불을 쬘 생각에 양손을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새하얀 손만 한 쌍 드러났다. 심지어 나 자신이 보아도 내가 귀신같았다. 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나 자신에게도.

    그 때였다.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나는 순간 빛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불을 쬐고 있을 뿐이었다.

    피곤했다. 졸렸다.

    여기에서 쓰러져 잠들면 어떻게 될까.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도, 저벅거린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발걸음이 이쪽을 향했다.

    내 손을 녹여주던 불길에 발걸음 소리의 주인이 얼굴을 비추었다.

    “그”였다.

    그가 말했다.

    “소인, 칼 쓰는 호위 300명을 거느리고 마마를 지키고 있었습니다요. 그러나 마마께서는 스스로 왜적에게 다가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내가 말했다.

    “주상 전하가 사시는 곳을 왜놈들이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꼴을 보아 하니, 내통한 놈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얼굴을 아는 자들이 이미 배신했는데, 도망갈 데도 없는 궁에서 숨어있어 봐야 개죽음당하는 것은 어차피 똑같지 않느냐. 게다가 놈들은 나인들과 궁녀들을 죽이고 있었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나 하나이니. 차라리 내가 빨리 나서서 죽어주면 그들이 내 사람들을 덜 죽일 것 아니겠느냐. 마지막으로, 너희는 칼을 지녔지만 놈들은 총을 갖고 있었다. 칼이 무슨 수로 총을 이긴다는 말이냐? 대낮에 왜놈들이 쳐들어와 공공연하게 나를 죽일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나라가 기울었다고 할 것이다. 나라가 기운 것은 어머니인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 책임을 지고 빨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좌우지간 내 시체가 더 이상 욕보이지 않도록 지켜주어 고마웠다. 역시 너도 그 때 죽은 것이냐?”

    그가 대답했다.

    “아니오. 총을 맞기는 하였으나, 마마를 죽이고 시체를 능욕한 놈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마마를 살릴 수는 없는 법. 왜놈들이 물러간 후에, 마마를 지키지 못한 죄를 묻길래 멍석에 말려 맞아 죽었습니다.”

    기가 막혔다.

    “뭐?”

    그가 원망했다.

    “마마께서 이전에 변을 당하셨을 때처럼, 궁녀로 변장하고 조금만 더 버티셨으면, 설령 칼 밖에 없더라도 지켜 드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총을 한 발 쏘면 장전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다소의 희생이 따랐겠지만 마마가 죽지 않게 지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저 멀리 빛 속에서 누군가 또 걸어왔다.

    “소녀, 마마를 모시던 침선(針線)이옵니다.”

    나는 놀랐다.

    “너는 손재주 좋은 그 아이로구나! 내 분명 네가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나를 내어 줄테니 너와 다른 아이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는데......”

    침선(針線)이 원망했다.

    “마마께서는 댓발부터 지엄한 궁에 쳐들어와 마마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난동을 피우는 낭인들이 마마의 말씀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으셨습니까. 어찌 그리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마마는 사셨어야 했습니다. 오히려 마마가 끝까지 숨어 계셨다면, 우리는 깨끗하게 죽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마가 먼저 돌아가시자, 그들은 우리를 겁간한 후 비참하게 죽였습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빛 속에서 여자들이 차례로 걸어왔다. 나를 둘러쌌다.

    “당신이 그러고도 나라의 국모라고 말할 수 있어?”

    그 중 한 명이 내게 삿대질했다.

    “우리 아기들을 굶겨 가면서 세금 뜯어가더니, 고대광실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왜놈들에게 죽어 버리면 다야?”

    다른 한 명이 거들었다.

    “옳소! 나라에 충성하라고 강요했으면서, 정작 필요할 땐 백성을 돌보지 않았지. 그래서 우릴 지켜주는 나랏님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그래서...”

    또 다른 한 명이 울며 아우성쳤다.

    “당신이 죽은 뒤,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어. 졸지에 우리 모두는 부모 없는 고아 신세가 됐지. 굶기를 밥 먹 듯 하다가, 좋은 일자리가 있으니 따라 오라고 해서 갔더니......

    나는 고작 열 세 살이었어.”

    “그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영혼들이 살아생전 느꼈던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자들이 차례로 걸어왔다. 옹기종기 나를 중심으로 모였다.

    “당신이 우리나랄 망하게 한 장본인이야?”

    처음부터 싸우자는 기세로 말했다.

    “당신을 비롯한 왕실이 똑바로만 행동했으면! 우릴 지켰다면! 그랬으면!”

    “궁궐이나 지어대고, 무당을 찾아 제사나 지내고, 너희가 한 게 뭐 있어?”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우리가 나랏님께 직접 호소하려고 들고 일어나니까, 너희가 어떻게 했어? 입만 열면 백성의 아버지니 어머니니 하던 너희가, 왜놈들이랑 되놈들을 끌어다가 우릴 죽였잖아!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백성의 부모라고 할 수 있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을 죽여 달라고 남한테 부탁하는가?”

    “당신이 사돈의 팔촌까지 관직에 앉히고, 나랏돈 다 빼돌려서 나라가 망했어!”

    “당신이랑 당신 시아버지랑 권력 갖고 싸우는 동안에, 병사들은 모래 섞인 쌀을 먹었어!”

    “당신이 죽은 뒤, 왜놈들이 나라를 빼앗아 갔어. 덕분에 집안에 있던 쌀 한 톨, 숟가락 하나까지 바쳐야 했어.”

    “쌀이나 숟가락뿐이면 다행이게? 사내들은 전쟁터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고, 공장이나 광산에서 콩깻묵 먹어가며 일하고, 폭탄 맞고, 계집들도 전쟁터에 끌려가......”

    눈이 있어야 할 곳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나는 한참 침묵했다. 시간 개념이 없으니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망을 담아 떠들던 다른 영혼들도 결국에는 모두들 조용해졌다. 내가 말했다.

    “살아있을 적에 국모로 불렸는데, 결국 이리 죽어 이름값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죽으면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될 거라 생각했었다. 허나 너희들이 이리 된 것을 보니, 내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쳤구나. 특히 어머니라 불렸으면서, 자식인 너희들을 보듬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나 죽은 뒤 왜놈들이 너흴 이리도 욕보였구나. 나 역시 왜놈과 되놈, 아라사(鵝羅斯; 러시아) 놈들이 우리 강토를 호시탐탐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나로서는 내가 가진 모든 힘과 지혜를 짜내어 자식들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턱없이 모자랐음이다. 너희나, 나나 결국에는 구천에 떠도는 넋이 되어 버렸구나.”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한 점에서 들어오던 하얀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나와 나를 둘러싼 영혼 전체를 밝혔다.

    “저기, 저 벽을 보아라. 지금까지 너희가 물은 것에 대한 답이다.”

    벽면에 내 생(生)이 물처럼 흘렀다.


    제3장 탄생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빛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거꾸로 보이던 기억이 희미하다.

    “따님입니다!”

    한 여인이 기쁜 듯이 외쳤다. 온통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들인줄 알았는데......”

    방금 내가 빠져나온 몸의 주인이 말했다. 실망한 기색이었다. 지쳐 보였다.

    “울지 않네요?”

    그제서야 갓 태어난 나는 정신을 차리고 몇 마디 하려고 했다. 모든 시도는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끝났다.

    드르륵.

    미닫이가 열렸다.

    “부인! 수고 많았소!!”

    방 안을 재빨리 둘러본 남자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아니됩니다. 부정타요!!”

    타박을 하면서도, 나를 받은 여인은 재빠른 솜씨로 나를 씻긴 다음 따스한 감촉이 나는 천으로 싸서 남자에게 안겨주었다.

    “아들이 아니어서......”

    맥없는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요. 부인! 나는 정말로 기쁘다오! 요즘 같은 난세에 살아남기에는 아들보다는 딸이 더 낫지 않겠소? 먼저 가 버린 우리 아이들의 동생을 낳아준 것만 하더라도 나는 그대에게 지극히 감사하다오.”

    남자는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진실로 기뻤는지 나를 품 안에 꼬옥 안고 빙빙 돌았다.

    “어디 보자~ 사내아이면 자현(慈鉉), 계집아이면 자영(慈映)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 네가 자라 시집갈 때가 되면 네 이름 민, 자, 영, 세 글자를 함에 떡~하니 새겨주도록 하마. 우선은 무럭~ 무럭~ 잘~ 자라거라!”

    나를 낳은 여인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이름을 시기한 원귀(冤鬼)에게 부정을 탈 수 있으니, 어릴 적에는 아명(兒名)을 지어주시어요.”

    그 때부터 나는 아영(阿英)이라고 불렸다.


    제4장. 성장


    제1절. 될 성 부른 떡잎


    알고 보니 내게는 오빠와 언니가 한 명씩 있었다. 나 다음으로 여동생도 태어났다. 그러나 누구도 나만큼 오래 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이를 많이 잃은 부모 슬하에서 외동딸로 자라게 되었다.

    고운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 품에 안겨 백일(百日)상 앞에 앉아 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태어난지 고작 석 달 열흘밖에 안 된 아기를 위하여 값비싼 색동옷을 지어 입혔던 것이다.

    돌잔치 상을 받을 때에는 뜰을 가득 메운 친척들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붓을 잡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자꾸 명주실 쪽으로 밀치면서 수명이 길어지기를 기원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기였을 적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뿌! 뿌!”라고 외치며 아버지가 자주 쓰시던 붓을 잡고자 하였다. 평소 아버지가 글을 쓰실 적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많았다. 내 작은 주먹으로도 쥘 수 있을 것 같아 만져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먹물이 묻는다며, 내가 엉금엉금 기어가도 결코 주지 않았던 까닭이다.

    “방금 ‘붓’이라고 했어?”

    “계집애가 신통하기도 하지.”

    “어린 것이 영특한데? 말도 하고.”

    “이쁜 것! 우리 며느리 삼고 싶다!”

    친척들이 활기차게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중 마지막 말을 내뱉은 부인의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부인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 아영아! 이리 온.”

    미소 짓는 얼굴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내 전리품인 붓을 오른손에 꽉 쥔 채. 기실 나는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하는 성정은 아니었다. 부인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일말의 흥미도 없었을 것이다.

    “옛다. 여기 있다. 아가!”

    부인은 내가 입은 다홍치마에 청실과 홍실로 수놓은 주머니를 달아 주셨다. 금색 바탕의 주머니에는 아름다운 필체로 무언가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도록 목숨 명(命)자와 복 복(福)자를 새겨 만든 거란다. 한 쌍으로 만들었으니 너 한 개 가지렴. 돌 선물이야.”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청실과 홍실이 곱게 아로새겨져 내 마음을 잡아 끌었다. 갖고프다. 손이 저절로 뻗어 나갔다.

    “가므파아우아~”

    “응? 감읍(感泣; 감사해 마지않는다는 뜻)한다고? 아이고~ 기특한 처자로세. 예의바르기도 하지.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뭐라 하는가. 부부부 옹알이 했더니 붓이라고 치켜세우질 않나. 갖고 싶다고 말했더니 감읍한다는 어려운 단어로 바꾸어 듣질 않나.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니 내가 무얼 말하든, 친척들은 박수를 치면서 될 성 부른 떡잎이라, 아들로 태어났다면 장원급제할 신동이라 일컬었다. 부모님 역시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

    그 때였다.

    “아이구~ 현부인 마님! 몸을 푸신 지 채 백 일도 안 되셨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데 계시면 부정탑니다!”

    아기를 업은 나이 지긋한 어멈이 달려왔다.

    “얼른 들어가십시오. 대감께서도 걱정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인은 도리어 웃음을 지으며 어멈 등 뒤에서 아기를 받아 안았다. 아기인 나보다 더 작은 아기였다.

    “아영아. 보렴. 내 아들 명복이란다.”


    -다음 화에서 계속-




    민족혼의 블랙홀


    제2화 구두(口頭) 계약


    제2절. 무당의 예언


    이유 없는 호의(好意)는 없다. 흑혈(黑穴) 벽에 비치는, 돌잔치 당시의 장면을 되돌아보고 있으니, 새삼 의아해졌다. 친정에 내려와 아기를 낳은지 백 일도 채 안 된 산모가, 무리해서 나의 돌잔치에 참석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을까. 친자식도 아닌데, 돌쟁이 아기가 무얼 해도 기꺼워하는 눈치였다. 더구나 당시 내가 선물로 받은 주머니는, 그에게 주기 전까지 거의 평생을 지니고 다녀도 빛이 바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미리 공들여 준비한 태가 역력하였다. 조금 더 시점을 넓혀, 당시의 나는 볼 수 없었던 뒤뜰로 시선을 옮겼다.

    뒤뜰에서는 아버지와 현부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따님이 영특하여, 장래를 기대해도 될 듯합니다.”

    현부인이 포문을 열었다.

    “허허, 고맙소이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이리 내왕하여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보다도, 득남(得男, 아들 낳음)을 경하(慶賀)드립니다. 왕실의 경사입니다.”

    아버지가 답례로 인사하셨다.

    “아닙니다. 마침 친정에 해산(解産) 차 정양하러 온 김에, 경사가 있다 하니 잠시 들렀을 뿐입니다. 우리가 남입니까. 여양부원군 문정공 어른(6대조 민유중을 일컬음)의 후손이 아닙니까.”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오갔다. 결국 현부인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명복이를 회임하고 나서, 태몽(胎夢)이 상서로워, 점괘를 보았습니다.”

    이 꿈 내용은 살아있을 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아직도 귀에 선한 내용.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었지.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심지어 꿈속에서도 천둥번개가 울리는 듯 했지. 푸른 용을 보았네. 알에서 깨어나 막 날갯짓을 하는데, 위로 커다랗고 하얀 용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날 수가 없었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 하며 비가 억수같이 오는 가운데, 먹구름을 뚫고 붉은 호랑이가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백룡과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결전을 벌였어. 결국에는 백룡이 막고 있던 푸른 용을 날게 해 주었지. 그러자 백룡이 저 멀리 날아가더니 검은 털을 지닌 장끼 한 마리를 불러오더군. 검은 장끼는 곧 붉은 용의 목을 쪼아 치명상을 입혔네. 붉은 용이 땅으로 추락하자, 이번에는 저를 불러온 백룡을 공격하지 뭔가. 한참 치고 받고 싸울 때, 거대한 해일이 몰아쳐 용과 장끼를 휩쓸더니, 어디선가 천조(泉鳥) 한 마리가 날아와 검은 장끼에게 불을 뿜어 쓰러뜨렸어. 이렇듯 새들까지 날아와 용과 한참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광경을 구경하던 차에 잠에서 깨어버렸네.”

    이 시점에서, 현부인은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다 풀지는 않았다. 변형시켜 짧게 말했다.

    “용이 승천한다는 길몽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안색이 대번에 새하얘졌다.

    “부군께서는 흥선군이라. 이런 꿈을 남이, 특히 안동 김씨 집안에서 알게 되면 결코 좋을 것이 없습니다. 자칫 대역죄로 문초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음입니다. 아직 후사가 없으시기는 하지만, 안동 김씨 집안에서 중전마마를 내지 않았습니까.”

    현부인이 진중하게 말했다.

    “나 역시 이를 알기에, 가장 신뢰하는 친척인 그대에게만 털어놓는 바요.”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하며 쩔쩔맸다.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조상의 음덕으로 작은 벼슬을 하나 맡아 섬기는 불초 소인일 뿐입니다.”

    “점괘를 보아 준 이가 말하기를, 용이 여의주를 얻으면 능히 이길 수 있다 하였소. 인현왕후 마마께옵서 후손의 몸을 빌어, 다시 환생하신다는 말 들은 적이 있지요?”

    이것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우리 집안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왕후(王后)를 배출해 왔다. 가장 유명한 분은 숙종 대의 인현왕후(仁顯王后)이시다. 인현왕후는 여양부원군이자 나의 6대조 할아버지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중전으로 간택되어, 희빈 장씨와 경쟁하며 한(恨) 많은 세월을 보낸 분이다. 희빈 장씨가 사약을 마심으로써 총애 경쟁에서는 승리하였으나, 궁극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여, 후계자 경쟁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숨지기 직전, 인현왕후는 친정 쪽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대를 이어 다오.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 집안에만 전해 내려오는 비사(祕史)였다.

    현부인이 계속 말했다.

    “저는, 귀댁의 따님이 바로 인현왕후의 현신(現身)이라 생각합니다.”

    “......”

    “나라의 기둥이요, 백성의 어머니가 났으므로, 태중의 용이 여의주를 얻으면 능히 이길 수도 있다고 하더이다.”

    “한낱 무당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엄청난 말씀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한낱 무당이 아닙니다. 지금껏 못 맞춘 점괘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용합니다. 더구나 천기를 아무에게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며, 입도 무겁습니다.”

    “...백성의 어머니라 하심은......”

    “예. 장차 국모가 될 재목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따님을 제 며느리로 주십시오.”

    “아직 어린 아기일 뿐입니다. 붓을 잡은 것도 우연이고, 조금 총기가 도는 것을 가지고, 너무 확대해석하시는 것 아닙니까.”

    “예언이 있었고,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심지어 상서로운 태몽까지 꾸고 힘들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요. 마침 이 시기에 태어난 여아(女兒)로서, 벌써 말도 할 줄 아는 그대 따님을 며느리로 삼지 못한다면, 대체 누구를 며느리로 맞이하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현부인은 내켜 하지 않는 아버지를 붙잡고 혼담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합시다. 11촌 아제께서 따님을 우리 흥선군 집안에 며느리로 주소서. 대신 아영이 남동생이 생기지 않을 경우, 마땅히 제 남동생 승호를 양자로 보내어, 선영들의 제사를 모시올 적에, 후사가 끊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래 뵈도 여양부원군 어르신의 직계 종손(宗孫) 아니십니까.”

    아버지는 ‘대를 잇는다.’는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나를 아끼고 사랑해도, 결국 나는 딸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신중하게 조건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흥선군께서도 허락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결코 필설(筆舌)로 담아서는 아니 될 것이오.”

    비록 안동김씨 일족으로부터 강화도령이라 천대를 받고, 공공연히 무시당하기는 하나, 선대 주상 전하가 살아 계신 시점에서, 용이니 여의주니 왕후의 환생이니 하는 단어는 결코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말 뿐이긴 하지만, 혼인계약이 성사되자, 현부인이 싱그럽게 웃었다. 때를 맞추어, 현부인이 안고 있던 아기가 잠에서 깨어 날카롭게 울었다. 이날로부터 평생, 현부인은 진심으로 나를 인현왕후의 현신이라 여기고 아꼈다.



    제3화 나 어릴 적 꿈





    제3절 일대일 조기교육



    돌잔치 이후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현부인은 산후조리를 마치고 아들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셨다. 종친 집안이라 사대문 내 운현궁(雲峴宮)에 산다고 들었다.

    돌잔치 때 붓을 잡은 여파로, 아버지께서는 젖도 채 떼지 않은 나에게 글을 가르치시려고 들었다. 본디 여아들의 돌잔치 상에는 색지, 자, 실 따위를 놓는 법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드물게 생각이 열린 분이셨다.

    “운영전(조선시대 소설)에 보면, 궁의 여인들이 뛰어난 글재주를 겨루지 않느냐. 여아로 태어났다고 하여, 과거시험을 보지 못한다고 하여, 학문에 들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부모 된 도리가 아니다. 붓도 함께 놓아, 고를 기회를 주도록 하여라.”

    이것이 바로 돌상에서 내가 붓을 잡고 신동이라 칭송받게 된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종이를 아끼기 위하여 아버지가 마련해 주신 장소에 앉아, 바위 위에 먹물 묻힌 붓을 들고 장난삼아 이리저리 휘두르는 수준이었으나, 서너 살이 되자 획에 제법 힘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네 살 때에는 소학(小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다섯 살 때에는 천자문(千字文)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에 새겼다. 외워서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를 동네방네 자랑하는 대신,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며 함구하시었다. 그러나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제4절 제사 지내다가 굶는 집안



    아버지는 왕비를 두 번이나 배출한 집안의 직계 종손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음서로 관직에 나아가셨다. 그러나 이미 조정은 벼슬아치들로 인해 포화상태였다. 아버지의 온후한 인품과 관대한 성정으로, 보직 이동을 거듭하여 영주군수 자리에 오르셨지만, 내심 되찾기를 원하던 5대조 민유중(閔維重)의 영의정 자리까지는 도저히 무리였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정승의 좌는 과거 장원급제자도 결코 오를 수 없는 자리였다.

    영주군수 자리에서 받는 모든 녹봉은 제사를 지내는데 들어갔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다른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의 5대조 민유중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서, 우리 집안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5대조를 비롯한 모든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면, 우리 집 곳간에는 쌀 한 톨 남지 않았다. 심지어 집안 여성들은 딸이건 며느리건 할 것 없이 따로 모여 인현왕후를 추모하는 시간을 별도로 갖기까지 하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김만중의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와, 어느 궁녀가 썼다는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를 구해다가 읽어주시며, 현숙한 여인이 될 것을 귀가 닳도록 당부하셨다.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인현왕후는 덕이 넘치는 모성의 표상이요, 희빈 장씨는 사악하고 악독한 여우였다.



    제5절 폭풍 속에서 스쳐 지나간 한 줄기 낭만



    어머니가 몸이 약하시어, 어멈이 행랑채에 살며 일을 도왔다. 반가의 부인은 몸종, 머슴이나 노비를 거느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안은 원경왕후와 인현왕후를 배출한 명문가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배를 곯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가 군민(君民)들을 착취하여 재산을 박박 긁어모으는 탐관오리인 것도 아니었다. 제삿밥을 인근에 나누어 줌으로써 제사상 차리는 날 당일에 들어가는 엄청난 노동력은 어느 정도 해결을 했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평일에까지 우리 집을 돌보아 줄 일꾼에게 줄 삯은 없었다. 다행히 어멈은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떠나지 않고 행랑채에 남아 있었다. 어멈은 우리 어머니에게 젖을 먹였던 유모의 딸이었다. 젊은 시절, 당시 왕실의 외척이라 일컬으며 한창 기세가 등등하던 홍씨 집안의 자손 한 명이, 어여쁜 처녀였던 어멈을 첩으로 삼겠노라고 약조하여 아들을 낳게 하였다. 그러나 잘 나가던 홍씨 집안은 최고점에 있던 1인이 세도를 잃자 급격히 몰락하였고, 어멈은 어린 아들과 함께 남겨졌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아기를 낳은 어멈에 대해 그 어떤 타박도 하지 않고, 아이와 더불어 몸을 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었다. 덕분에 나는 또래 친구가 생겼고, 성남(聖南)이와 더불어 놀 수 있었다. 뒤에 드러나는 이유에서, 나는 성남이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어릴 때만 해도, 비록 말투에서는 상하관계가 있을지언정, 아이들 마음속에는 위아래, 반상의 구별, 지위고하가 없었다.

    여섯 살 때의 시간이 눈앞에 흘러간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 앞에서 동몽선습(童蒙先習) 낭독을 마치고는, 소꿉놀이를 하고 싶어서 성남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때, 어디선가 성남이가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온몸이 맞은 자국, 할퀸 자국, 꼬집힌 자국으로 가득해 성한 곳이 없었으나, 표정만은 득의양양하였다. 

    오뚝한 코가 깨져 속이 상했다.

    “성남아, 왜 이렇게 다쳤어?”

    내가 물었다.

    “마을 아이들이 아씨를 욕했어요! 아씨가 말도 빨리 하고, 남자도 못 읽는 글을 읽는 게 귀신이 씌어서 그런 거래요! 인현왕후 귀신이 씌였다면서, 굿을 해야 풀 수 있다는 거예요. ‘너희 아씨는 귀~신이야!’라면서 아이들이 저를 놀렸어요. 화가 나서 아이들 모두를 때려주었죠.” 

    어린 마음에도 기가 막혔다.

    “마을 아이들이 몇 명인데, 그 많은 아이들이 너 혼자를 에워싸고 때리더냐? 너는 또 그 많은 아이들을 혼자 상대했고?”

    내가 다그쳤다.

    “아씨더러 귀신이라는데, 그럼 제가 가만있겠습니까? 아씨에게 나쁘게 대하는 자는, 제가 지옥 끝까지 달려가서 물고를 내 버릴 거예요.”

    성남이가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돌잔치 당시 아버지와 현부인이 나누었던 대화가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 소문이 와전된 듯 하다. 다행인 것은, 아버지께서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오지에 부임했던 덕에, 인현왕후의 현신이니 귀신이니 하는 소문이 한양까지는 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랬다면, 나는 왜놈의 칼에 유명을 다 하기 훨씬 이전에, 역적으로 몰려 3대가 능지처참을 당하거나, 만의 하나 그런 꼴을 모면하였더라도, 이전 주상전하의 후궁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내가 말했다.

    “마을 아이들이 나를 경원(敬遠)시 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필경 군수의 자제라고, 질시하는 것일게다.”

    성남이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니오. 경원이나 질시 같은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르겠지만, 제 눈에도 아씨처럼 곱고 영민한 분은 다시 없어요.”

    그러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옥으로 만든 가락지였다.

    “아씨, 이걸 받으시고, 장성하여서는 저와 혼인해주세요!”

    성남이는 무릎을 꿇고 내게 옥가락지를 내밀었다. 

    온몸이 다쳐 피투성이가 된 채 가락지를 내미는 태도가 자못 비장하였다.

    어린 내 눈에도, 가락지는 몹시 귀해 보였다.

    “성남아, 이건 대체 어디서 났어?”

    가락지를 덥석 받지 못했다. 

    일단 물어보았다.

    “마을 아이들을 때려주고, 화가 덜 풀려서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배 좌수네 집을 찾아갔어요. 당신 자식이 아씨에게 귀신 씌었다고 말한 걸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죠. 군수께서 이를 아시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한 마디만 했는데, 좌수가 지레 겁먹어서, 이걸 주더군요. 쪽빛이 너무 고와서, 아씨 주려고 가져왔습니다.” 

    요컨대 내가 욕 먹는게 싫어서, 욕하는 애 부모에게 가서 따졌더니 입막음용으로 뇌물을 상납했다는 것이다. 내가 옥가락지를 보면서 망설이고 있자, 성남이가 다시 말했다.

    “아씨, 아씨는 참으로 고우세요. 저는 평생 아씨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러니 커서 제게 시집 와 주세요.”

    나를 위해 싸우고 온 성남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성남이가 내 손가락에 옥가락지를 끼워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노호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이냐!”



    -제4화에서 계속- 



    제4화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

     

    제6절 사정변경의 여지를 둔 거절

     

    “지금 뭐 하는 짓들이냐!”

    아버지가 댓돌에 서서 소리를 지르셨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법도가 지엄하거늘!”

    큰 소리를 치시지만, 실제로 우리가 한 것은 나란히 서서 가락지를 주고받는 것 정도였다.

    “아버님. 저는 올해 여섯 살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남이와 놀아도 아무 말씀도 아니 하셨지 않습니까. 어째서 갑자기 노(怒)를 발(發)하시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 역시 갑자기 소리를 지르신 것이 머쓱해졌는지, 헛기침을 큼큼 하셨다.

    “아영아, 내 아까부터 너희가 하는 말을 다 들었느니라. 성남아, 네가 모시는 아가씨가 험구(險口)의 대상이 됨을 분하게 여겨, 떨치고 일어나 저들을 응징(膺懲)한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다. 내 기꺼이 치하하마. 그러나 이 세상에는 법도가 있단다.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고, 또.......”

    “대감께서는 지금 제가 천한 몸에서 태어나, 아씨께 감히 혼인을 청함을 탓하시는 것입니까?”

    언제나 어린아이의 말투로 대화하던 성남이의 언변이 갑자기 유창해졌다. 표정이 진지해졌다. 평소 순한 눈매를 곱게 접어 웃던 표정이 어느 새 매서워졌다. 타박상이 생긴 진한 눈썹, 그 아래 커다란 밤색 눈동자에 흰자가 깨끗한 눈 주위에 든 푸른 멍, 오뚝한 코가 뻗어 내려가는 중간에 깨진 상처,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분노에 찬 표정과 어우러졌다. 어머니와 함께 자주 가던 절 벽에 그려진 그림 같았다.

    아버지조차 그 기세에 눌리었다.

    “아...아니, 그것이 아니다. 성남이 네가 천하다고, 감히 누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부계(父系)로 따지면, 너 역시 남양 홍씨 명문가의 말예(末裔)가 아니더냐. 다만,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딸아이의 혼인을 결정하는 것은 마땅히 아비인 나와 어미인 마님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너희 둘이 사사로이 가락지 따위를 교환하여 결(結)을 맺을 일이 아니다.”

    유모의 딸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아버지의 신분이 높다고 하여 존중해 주는 도량은 당시 흔치 않은 것이었다. 성남이 역시 다소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소인, 비록 지금은 미천한 몸이나, 장차 무과(武科)로 입신양명하여 키워주신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아버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기백이 매우 장하다. 능히 나라를 구할 장수가 되겠구나. 그러나 아영이에게는 내 이미 약조해 둔 혼처가 있다. 정말 미안하구나.”

    정혼자가 있다는 답에도, 성남이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아씨께서는 벌써 소학과 천자문, 동몽선습을 읽을 정도로 재기발랄하시고, 월궁항아가 울고 갈 정도로 미모가 빼어나십니다. 아씨가 귀신들렸다고 음해하는 세력은 비단 이 마을 사람들에게만 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장차 수많은 여인들이 아씨를 투기하여 해칠 것이고, 수많은 사내들이 아씨를 차지하고자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에서 피 튀기게 싸움)를 벌일 것입니다. 청컨대, 제게 아씨를 지키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혼약이 성사되지 못한다면, 아씨를 강제로 수절시키지 마옵시고, 제게도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성남이가 한 번에 이렇게 길게,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긴 하였으나, 늘 해요체를 사용하며 아이처럼 대화하던 소년이 한 말이라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눈을 깜빡거리며 멍하니 있자, 성남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아버지는 굴복하셨다.

    “허허허, 네가 아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구나. 그래, 만약 아씨를 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네가 응징하도록 하여라. 먼 훗날 아영이가 혼자가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에는 네게 기회를 주도록 하마.”

     

     

    제7절 아버지를 살리려는 어머니의 노력

     

    인자하게 허허 웃으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셨다.

    "윽!"

    "아버지!"

    "대감마님!"

    나와 성남이가 아버지를 양쪽에서 부축하였다.

    아버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처럼 괴로워하셨다.

    우리는 아버지를 방으로 옮겼다.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대경실색하셨다.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 어린 내가 보기엔 세상에서 가장 어여쁘셨다. 어머니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가 누우신 아버지를 붙들고 정신 차리라고, 어서 일어나 보시라고 외치는 동안, 나는 성남이를 보내 의원을 불러왔다.

    진맥을 하던 의원이 침중하게 말했다.

    “기(氣)가 약하고, 맥박이 불규칙합니다. 몸을 조섭(調攝; 돌보다)하고 정양(靜養; 병 치료를 위해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며 요양)하여야 합니다. 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도 몸에 무리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의원은 아버지에게 침을 놓고, 약을 지어줄 테니 찾으러 오라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며칠이 지났다.

    의원이 지어준 약을 계속해서 달여 먹였지만, 한 번 쓰러졌던 아버지의 건강은 더 이상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주 군수로서의 일도 밀려서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절박해지셨다. 어머니와 혼례를 올리기 이전, 아버지는 첫 부인을 잃고 삼 년 상을 치렀다. 평생 홀로 살고자 하였으나, 가문의 종손이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불효(不孝)라는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였다. 서른 중반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를 재취(再娶)로 맞이하여 나를 낳으셨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십 대 후반에 아버지와 혼인하여, 아직도 서른이 채 되지 않으셨다. 이대로 아버지가 잘못 되기라도 하시면, 어머니는 평생 청상(靑孀) 과부로 늙으셔야 하는 것이었다.

    “한양으로... 일단 한양으로 가면, 더 나은 의원과 더 좋은 약이 있을 것이야. 친정도 그곳에 있으니 만일의 경우 도움을 청하기도 더욱 용이할 것이야. 차라리 벼슬을 그만두고 쉬었으면 좋겠지만, 곳간에 쌀 한 톨도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몸을 조섭하고 정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명문가의 딸로서, 어머니는 모든 인맥(人脈)을 총동원하여 아버지를 살리려 하셨다. 조정에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모든 일가친척에게 편지를 쓰고, 근처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에게는 직접 찾아가 아버지가 얼마나 효심이 지극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사대부(士大夫)인지 여부를 강조하셨다. 장릉 참봉, 과천 현감, 임피 현령, 영주 군수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톨의 쌀도 사사로이 쓰지 않았으며, 농사를 장려하고 민심을 살피어 백성을 부강하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한 충신이라는 점, 5대조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의 묘소를 끝까지 지키며, 부모의 삼년상 각각 6년을 고이 치른 효자인 점, 심지어 일개 아녀자(첫째 부인을 말한다)의 상(喪)을 당하여서도, 상복을 입고 무덤 곁에서 3년 동안 지조를 지킨 점, 합계 총 9년 동안이나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효(孝)와 충(忠), 절개(節槪)를 지키느라 건강이 쇠하여진 점을 끊임없이 내세우셨다. 이를 나라에서 치하(致賀)하고, 내직(內職; 한양 내부에서 수행하는 직책, 지방으로 도는 외직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외직보다 더 좋은 벼슬자리인 것으로 평가받았다.)을 주어 장려(獎勵)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겠느냐고 열변을 토하셨다.

    어머니의 설득이 통하였는지, 또는 외할아버지가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했던, 어머니의 집안이 아직 세도가 조금 남아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아버지는 조선 최남단 오지에 위치한 영주 군수에서, 종4품 사도시(司䆃寺; 궁중의 쌀이나 장을 맡아 관리하던 관청) 첨정(僉正; 최고관리자 지위)으로 승진하여 수도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한양으로 다시 올라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전에 사복시(司僕寺; 왕이 타던 가마나 말, 수레, 마구와 목축을 맡아 관리하던 관청) 주부(注簿; 종6품 실무자)로 재직할 적에 아버지가 보이셨던 성실함과 더불어, 아랫사람에게 관대하고 윗사람에게 공손한 인품이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유모가 낳은 아들인 성남이에게 보이셨던 태도를 바탕으로 추측한 바이다.

     

     

    제8절 아버지의 죽음

     

    그러나 벼슬에 제수되는 것과, 새로운 벼슬을 얻기 위해 부임지를 옮기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수도까지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복시 주부 시절 위로는 종1품 사복시제조에서, 아래로는 종6품 주부를 보필하는 마부, 가마꾼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인망을 다져놓은 덕에, 아버지가 아픈 몸으로 한양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전해들은 사복시에서 말과 수레를 내어 주었다. 그러나 경상도 영주에서 경기 한양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처음에는 나와 어머니, 아버지가 다함께 수레를 탔으나, 세 사람의 무게를 힘겨워한 말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지 못하고 멈출 때가 잦았다. 결국 나와 어머니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성남이 모자(母子)는 처음부터 말을 끌고 걸었다. 말이 있다고는 하나, 처음 쓰러지신 이후, 아버지는 제대로 걷기 어려워하는 병자가 되었다. 비록 스스로 걷지 않아도 되었으나, 수레가 계속해서 덜컹거리는 통에 병이 더욱 깊어지셨다. 산 하나를 넘으면 다음 산이 기다리고 있었고, 해가 져서 민가에 신세를 질 때마다, 아버지의 상태는 매일 매일 악화되었다. 이론적으로는 역참에 들러 역마를 바꾸어 타고 가면 사흘 내에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역(驛)에 가 보니, 각 역(驛)마다 운영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아니하여, 역을 지키는 관리들이 말을 팔아 생활비에 충당해 버린 사례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경상도 영주까지 말 한 필이나마 수레와 함께 제대로 당도한 것이 기적이었다.

     

    “물, 물을 다오...”

    아버지가 수레에 늘어져 힘없이 말씀하셨다. 지친 말이 수레를 끌고 걷는 속도는 어린 나조차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는 얼른 아버지의 입술에 물을 대 주었다.

    “아버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시면 한양입니다. 사도시는 쌀을 관장하는 관청이라지 않습니까? 그곳에 가면 쌀밥을 실컷 드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끼!”

    갑자기 그 말을 들은 아버지의 눈빛이 형형해지며, 나를 꾸짖으셨다.

    “사도시는 나라의 쌀을 관장하는 기관이어늘, 어찌 관리의 몸으로 사사로이 나라 창고의 쌀로 배를 채우겠느냐? 차라리 죽음이 가(加)하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쌀밥 한 공기조차 제대로 드시지 못해 나날이 말라 가는 아버지가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시무룩해진 내 손을 잡으셨다.

    “아가, 아영아, 네 진명 ‘민자영’을 사주단자와 함께 시댁에 보내는 날까지 살기를 기대하였노라. 그러나 이제 틀린 것 같구나. 네가 내 대신 오래오래 살아 다오. 아들도 많이 낳고, 딸은 한 명만 낳고, 낭군에게 어여삐 여김을 받으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내 옆에 있던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인, 젊은 나이에 내게 시집와 이렇게 예쁜 딸을 낳아 주어서 고맙소. 고생만 시키다가 이제 먼저 가게 되었구려. 사실, 사실... 내 11촌... 손아래조카이자 흥선군 부인이 되시는...... 현부인께서 말하길, 우리, 우리 아영이가......”

    거기까지 말씀하셨을 때였다.

    “게 섰거라!”

    커다란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제5화에서 계속-

     

     

     

     


     

    제5장 가례(嘉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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