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어느 날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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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30748

작성자 :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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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7/12/29 0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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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어느 날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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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div> <div>어느 날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div> <div>퇴근 후 신발도 벗지 않고 소파에 몸을 맡긴 내게 고양이는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화가 난 표정이었다. 고양이는 화장실의 모래를 벌써 이주일이나 갈아주지 않아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다. </div> <div>“네가 요새 너 힘든 건 아는데, 이건 정성의 문제야. 정성. 무슨 말인지 알지?” </div> <div>갑자기 일어난 당황스러운 일에 입을 열고 그저 멍하니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div> <div>“그 멍한 표정은 또 뭐야? 알아들은 거야?”</div> <div>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신발을 벗는 것도 잊어버렸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div> <div>“잘못 들었을 거야.”</div> <div>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div> <div>곧 연말이고 바쁘다 보니 정신이 잠시 어떻게 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득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div> <div>수업에 늦은 대학생처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고양이는 소파 한 구석에 앉아 털을 손질하고 있었다. </div> <div>벗은 신발을 들고 조용히 신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div> <div>다행히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div> <div>“휴우.”</div> <div>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허리를 굽혀 신발장에 신발을 내려놓았다. 조용히 다시 방에 들어가기 위해 일어서는데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혀를 내밀어 앞발을 손질 하면서 한쪽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div> <div>방금 전 고양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div> <div>최근 바쁘다는 이유로 사료도 잘 챙겨주지 않고 화장실도 청소해 주지 않았다.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div> <div>사료와 물을 채워 넣고, 화장실의 모래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모래에서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div> <div>“읍….”</div> <div>나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div> <div>“거봐. 내가 더럽다고 그랬잖아. 너 같으면 그런 곳에서 볼일을 보고 싶겠냐?”</div> <div>화들짝 놀라 쓰레기봉투를 떨어뜨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봉투에서 터져 나온 모래가 거실을 어지럽혔다.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거실에는 나와 고양이 밖에 없었다. </div> <div>“뭐야, 너 오늘 어디 아프냐? 행동이 조금 이상한데.”</div> <div>거실의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열이 나듯 땀이 났다. 한동안 고양이를 마주보며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거실에 쏟아진 모래에서 오래된 암모니아 냄새가 올라왔다. </div> <div> </div> <div>그날 이후 나는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곧 집 밖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고양이 외의 다른 동물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집 주변을 지나가는 강아지, 새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처다 볼 뿐이었다. </div> <div>고양이들은 각각 지내는 곳에 따라 개성 있는 말투를 구사했다. 절에 사는 고양이는 언제나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었으며, 수산시장에 사는 고양이는 오늘 어디 생선이 좋다는 이야기를 내게 항상 들려주었다. </div> <div>“보살님, 오늘도 평온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불전함은 오른쪽에 있습니다.”</div> <div>“이봐, 거기 아가씨. 오늘은 저기 102동에서 파는 고등어가 품질이 좋다냥. 아침에 잡아온 신선한 물건인데 하나 사지 않겠냥? 혹시 많이 사서 남으면 나한테 한 마리 줘도 된다냥.”</div> <div>나이트클럽과 술집 근처에 사는 고양이들은 항상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양아치와 조폭들에게 말을 배운 덕인지 사람도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험한 말들을 구사했다. </div> <div>“이야, 씌이뻘.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렇게 야려보냐 이 콩만한 년이.” </div> <div>“아따 어떤 조막만한 년이 어서 우리 형님을 야려봐샀소? 확 앞발로 할켜부러불라마. 험한 꼴 보기 전에 어여 안 사라지냐?” </div> <div>“아이고오 형님 거 쓸데없는 거 내비두고 얼른 들어 오이소. 오늘 물 좋은 아들하고, 요 앞에서 가져온 생선으로 쫙 차려 놨심다.”</div> <div>물이 좋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 호기심이 동하긴 했지만, 치켜드는 발톱이 무서워서 그 뒤로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 </div> <div>평소 제일 많이 이야기를 하는 고양이는 당연히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나비였다. 나비는 까만 턱시도를 입고 있는 것이 딱 나비 같다며 남자친구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작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가 데리고 살았던 녀석은 은연중에 그의 말투, 성격을 닮아있었다. </div> <div>무심한 듯 아닌 듯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가 그랬고, 고양이인 주제에 생선을 싫어하는 점이 그랬다. </div> <div>“넌 왜 생선을 싫어하는 거야?”</div> <div>“글쎄, 네가 오이를 싫어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난 비린 건 싫어해.” </div> <div>“정말? 고양이들도 그런 걸 따져?”</div> <div>“…사람들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생각 하는 경향이 있어. 고양이니까 당연히 생선을 좋아할 거라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아. 그리고 이 생선. 요 앞 수산시장 녀석 말만 듣고 사온 것 같은데, 그 녀석 말은 듣지 않는 게 좋아. 완전 사기꾼…, 어이쿠. 여기 웬 빨간 점이.” </div> <div>내가 손에 든 레이저 포인트를 움직이자 나비가 재빨리 쫓아갔다.</div> <div>“이봐, 내가 이 레이저 포인트 놀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이쿠. 이런 놓쳤군.”</div> <div>절대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 </div> <div>“그래도 적어도 밥 먹는 중에 이런 장난은 하지 않는 것이…, 쳇. 재빠르군.”</div> <div>나비는 불만스러운 듯 이야기했지만, 몸은 솔직했다.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자세를 낮춘 채 나보다도 더 집중해서 레이저 포인트를 쫓았다. 잡을 수 있는 물체였다면, 이미 몇 번이고 잡혔을 것이다. </div> <div>남자친구가 죽은 후 딱히 다른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나에게 있어, 저녁 시간 나비와 놀아주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div> <div> </div> <div>겨울이 오고 나비와 나는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졌다. 레이저 포인트를 가지고 놀지도 않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화장실은 다시 더러워졌고, 사료는 말라 비틀어져 굳어갔다. </div> <div>작년 겨울, 남자친구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비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소리 없이 나의 삶에 남자친구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밀어 넣었다. </div> <div>사인은 심장마비였다. </div> <div>대학교 커플로 시작한 우리는 남자친구가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잡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딱히 결혼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 외에 가장 오랫동안 만난 사람이었다. </div> <div>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항상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의 우울은 곰팡이처럼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었다. </div> <div>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도 있었고,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잠만 잘 때도 있었다. </div> <div>고양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 후로부터 조금 나아졌던 나의 우울증은 겨울이 오면서부터 다시 심해졌다. </div> <div>“이봐.”</div> <div>회사에서 돌아오면 항상 나비가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딘가 조금 아픈 것 같았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잠이 오지 않으면 항상 수면제를 먹었고, 악몽에 시달리며 아침을 맞이했다. </div> <div></div> <div>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div> <div>어둠 속에서 퀴퀴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발을 벗어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div> <div>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div> <div>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div> <div>방에서 나와 거실의 불을 켰다. </div> <div>나비가 항상 앉아 있던 소파 위에 쓰러져 있었다. 달려가 나비의 몸에 손을 댔다. 불덩이처럼 몸이 뜨거웠다.</div> <div>“…뭐냐, 왔냐.”</div> <div>그제야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 챈 듯 나비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div> <div>“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아픈 거야?”</div> <div>다급하게 물었지만 나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쌕쌕거리며 힘겹게 숨을 쉴 뿐이었다. 며칠간 몸이 안 좋아 보였는데, 그냥 놔둔 것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비를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온갖 상상이 날개를 펼치며 뛰어놀았다. 문을 잠그지도 않은 채 거리로 나와 동물병원을 향해 뛰어갔다. </div> <div>쓸데없이 다시 남자친구 생각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남자친구와 나비의 모습이 겹쳐졌다. </div> <div>“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div> <div>그렇게 울먹이며 미친 사람처럼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도로 위를 뛰었다. </div> <div>“뭐냐…, 너 문 단속은 제대로 한 거냐? 칠칠맞게 열고 나온 건 아니겠지….”</div> <div>아직 말을 할 힘은 남은 듯 나비가 중얼거렸다. </div> <div>“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div> <div>“쳇…, 쪽팔리게스리.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div> <div>“안 돼. 절대로…,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div> <div>삼류 영화의 주인공 같은 대사를 나누면서 도로를 질주했다. 차가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발에서 피가 났다. </div> <div>발은 피투성이가 되고 얼굴에서는 눈물, 콧물 다 흘린 채 동물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div> <div>퇴근을 준비하던 수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는 처참한 내 몰골에 테러리스트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나비를 받아 들었다. 증상은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나비 죽으면 나도 못 산다고 그렇게 질질 짜면서 추태를 부렸다. </div> <div>잠시 후 수의사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멈췄던 눈물, 콧물을 다시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다.</div> <div>눈앞에는 언제 아팠냐는 듯 선생님과 장난을 치는 나비의 모습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나비가 토해낸 생선 찌꺼기와 뼛조각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나비는 나를 보더니 쪽팔린 듯 구석으로 숨기 시작했다. </div> <div>수의사 선생님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div> <div>“고양이한테 생선은 안 주는 게 좋아요.”</div> <div> </div> <div>병원에서 빌린 슬리퍼를 신고 가슴에 나비를 안은 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진심으로 발이 아팠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우습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div> <div>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단순히 목에 뼈가 걸린 것이었다니 쓴웃음이 났다. 한편으로는 여태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div> <div>“너 생선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냐?”</div> <div>나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div> <div>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방금 전까지 환자였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div> <div>“집에 가면 청소나 해야겠다….”</div> <div>그 중얼거림에 대답하듯 나비가 웃었다. </div> <div> </div> <div>Fin.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고양이와 우울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써본 글입니다. 정작 우울증에 걸려본 적은 없어서, 묘사가 약한게 조금 아쉽네요. 글자수 4,975자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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