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안녕하세요. 글쓰기 연습 중인 공돼입니다.</p> <p>글을 읽고난 소감이라면 욕이든 비방이든 좋습니다. 제 글을 쓰레기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주제가 별로다", "말투가 별로다", "지루하다"같은 추상적인 소감도 저에게 귀중한 공부가 됩니다. 한 분이라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p> <p><br></p> <p>-완전한 창작-</p> <p> 창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고통'이다.</p> <p>이런 글쓰기 연습조차 고통을 느낀다.</p> <p>내가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글을 가려 써야 하기 때문이다.</p> <p>개성 있는 주제, 신선한 내용, 앞뒤가 맞는 주장, 사람들의 관심.</p> <p>장애물이 많다.</p> <p>어찌어찌 글이 마무리되면 '나의 글'이 완성된다.</p> <p>오늘따라 '글'앞에 '나의'라는 표현이 눈에 밟힌다.</p> <p>"정말 내 것일까"</p> <p>"완벽히 나만의 창작일까"</p> <p><br></p> <p> 의문은 의문을 낳고, 한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p> <p>"완전한 창작은 존재하는가"</p> <p>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완전한 창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p> <p>그들의 그림을 '표절'이라고 주장할만한 단서와 증거들은 이미 불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p> <p>명곡의 한 소절은 무명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습작의 한 소절과 일치할 수도 있다.</p> <p>"증거가 없기 때문에", "내가 처음 본 것이니까", "개성 있으니까"</p> <p>완전한 창작이라는 여러 가지 주장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증명이 될 수는 없다.</p> <p>완전한 창작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된다.</p> <p>누군가의 글, 누군가의 노래, 누군가의 그림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창작물에 녹아들지 않기를 기도한다.</p> <p>이 창작의 '굴레'는 합리화를 하든, 자기최면을 걸든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p> <p>그 굴레가 풀리지 않는 한 창작과 고통은 언제나 함께 일 것이다.</p> <p>보잘것없지만, 다음 문단부터 굴레를 벗어나는 발버둥을 쳐보겠다. </p> <p><br>'완전한 창작'이라는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p> <p>완전한 창작은 '창조'를 의미한다.</p> <p>나는 신이 되려고 했다.</p> <p>세상에는 피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도 존재한다.</p> <p>사람들은 그들에게 "왜 남의 얼굴 표절했어?"라고 따질 수 없다.</p> <p>생각도 마찬가지다.</p> <p>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p> <p>그들은 "내 생각이 먼저였어"라며 다투지 않는다.</p> <p>오히려 공감하고 가까이 두려 한다.</p> <p>나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창작의 본질이고 순리라고 생각한다.</p> <p>하지만 저작권은 '닮은 얼굴'과 '같은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p> <p>현대인들은 '창작 = 저작권' 곧 '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순리를 역행한다.</p> <p><br> 저작권 문제의 근본은 양심과 확률에 있다.</p> <p>남의 것을 허락 없이 차용하지 않았다면 창작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p> <p>그와 동시에,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생각하든 세상에 비슷한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p> <p>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단 하나뿐이야"라며 목숨 걸고 확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p> <p>"비슷한 것이 존재할 수 있어도, 이것은 분명 내가 만들었다"라는 말에는 목숨을 걸 수 있다.</p> <p>창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만, 창작에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p> <p>그 기반을 튼튼히 해주는 것은 여전히 양심이다.</p> <p>자신의 양심은 튼튼한데 창작에 고통을 느낀다면, 창조를 시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p> <p>'완전한 창작' 욕구는, 창작 자체를 방해한다.</p> <p>나는 이런 사고방식으로 창작의 고통 중 하나를 덜어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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