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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23479
    작성자 : 문장수집가
    추천 : 3
    조회수 : 486
    IP : 210.110.***.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6/01/05 21:56:45
    http://todayhumor.com/?readers_23479 모바일
    [문장수집-124]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올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출처 황지우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문장수집가의 꼬릿말입니다
    "헤, 내가 아플 일이 있나. 문장에 이리 빠져 사는데." -by 스파게티조아

    삶을 깨우는 문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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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8 10:01:49  122.43.***.29  petrichor  540299
    [2] 2016/05/05 11:37:46  222.239.***.251  메리고라운드  569397
    [3] 2016/05/05 13:54:56  49.173.***.205  사바나의저녁  57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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