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꽤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br>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너무 일찍 한글을 익히는 바람에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아버려 한창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 시기에 혼자 많은 책과 동무하며 지내 버렸다<br>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우리 어머니도 이 아이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켜버렸다<br>더 큰 실수는 추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사립학교에 넣은 것이다 (제비뽑기 8번 구슬을 뽑은 내 잘못이기도 하다)<br>그 학교 학부모들은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많았다<br>의사, 기업가 정도는 그 무리에선 평범한 수준이고 카지노, 조선소, 조폭 보스 등의 자제분 집에 방문하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br>십 여년 간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땅이라고 매년 신문기사로 나오던 곳 건물주 아이도 동급생으로 있었다</p> <p>그 무리에 섞여 6년을 보내다가 도시에서 가장 슬럼가의 입구에 위치한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br>그 전엔 내가 사는 도시에 그런 동네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br>그 동네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와 사고방식은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라 문화 충격이 컸다(게다가 생경한 다른 지방 사투리를 썼다)<br>아, 그 동네 아이들 전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 그 중 대략 30%에 해당하는 친구들 얘기다<br>마치 어느날 갑자기 정글 속에 불시착해서 원숭이 무리들과 마주친 느낌이 들 정도였다<br>다행히 일진 집단 부류는 없어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가정폭력이 일상화된 집의 아이들은 이미 폭력을 깊이 체화해서 사소한 말다툼으로 끝날 일에도 별 고민도 없이 주먹이 튀어 나오는 일이 빈번했다 거의 매일 학교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br>그런 점도 충격이긴 했지만 그들의 세계와 큰 거리감을 느낀 건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br>도벽이 있는 아이도 있었고 뻔한 거짓말을 자주 하는 아이, 매사 남 탓을 하는 아이 등등 <br>향상심이나 고양감 따위는 그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p> <p>어떤 아이는 마치 '누구나 중학생쯤 되면 당연히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하루에 몇 가치 피냐고 묻기에, 안 핀다고 대답하니 깜짝 놀라며 아직 한 번도 안 피워봤다는 거냐고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 안 피워봤냐며 의심하는 눈길을 보냈다<br>질 나쁜 아이들은 뒷산에서 본드도 불고 하는 지경이니 담배 정도는 새우깡 정도의 기호품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br>서로 각자 몸담고 있는 세계의 일반적인 기준이 너무 다르니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폭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br>근주자적 근묵자흑이라고, 그들과 섞여 지내다 보니 욕도 배우고 주먹질도 하곤 했는데, 여러차례 결코 섞일 수 없는 큰 괴리를 절감하고 보니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br>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고 물리적 폭력을 사용한 적이 없다</p> <p>물론 경제 사정이 어려운 집 자식 중에서도 순수하고 솔직하고 이해심 깊은 아이들도 많았다<br>그 집에 놀러가면 집은 좀 허름했지만 역시나 어머니나 동생들과의 관계가 끈끈하고 화목했다</p> <p>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학년에서 싸움으로 순위권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나를 좋아해서 류승범 영화에 나오는, 학교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막아놓은 어두운 공간(랭킹 순위권에 있는 아이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에 종종 데려가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br>최신가요를 야리꾸리한 내용으로 개사한 노래로 나를 웃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모터 달린 자전거 뒤에 태워서 집에 바래다 주기도 했다</p> <p>대학에 입학한 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에, 틈 날 때마다 농장이나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형호텔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노가다를 한 적도 있다 </p> <p>돈을 모아 여행을 자주 다녔다. 위험할 뻔한 순간도 많이 겪었으나 용케 무사했다</p> <p>군대에 가니 상하 위계서열이 기수별로 나눠져서 사병 간 폭언 폭행 부조리가 만연한 내무반 문화에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어도 고참이 되고 나니 그나마 좀 마음 편하게 지냈다<br>고참이 된 이후로 내무 부조리가 많이 줄어들긴 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어떤 것을 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니 후임들도 눈치가 보였는지 개인적인 일을 후임들에게 미루지 않았다<br></p> <p>군대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경험은 농촌 출신들을 많이 만나 본 것이다<br>그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 일을 거들며 자랐기에 모든 걸 몸으로 익히고 배워서, 정말이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어 보였다<br>이것 저것 변명도 잘 하지 않고 공치사도 없고 남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기 보단 이미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br>정치적 올바름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진정한 '남자다움'이 뭔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br>우연히 내가 만난 이들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멋있는 사람들이라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이들이었다</p> <p>몇 년 전에, 그동안 몇 번이나 교도소를 다녀온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br>옳고 그름에 대한 주제를 놓고 몇 시간 동안 얘길 나누다가 내가 완고하게 주장을 꺾지 않자, 그가 갑자기 장애를 가진 부위를 불쑥 꺼내었다<br>'어릴 적에 이것 때문에 얼마나 컴플렉스가 많았겠냐, 너는 내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다'라고 말했다<br>실제로 나는 그의 고통을 반 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의 행동에 대해 안일하게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br>몇 달 후 그는 똑같은 죄로 다시 구치소로 끌려 갔다 그 죄는 다른 어떤 나라들에서는 죄로 취급받지 않는 모양이다</p> <p><br>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글을 끄적였는지는 까먹어 버렸는데, <br>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테두리 안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기 마련이고<br>내가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세계가 있고 그들의 세계 속에서는 그들만의 다른 기준이 있을텐데 </p> <p>그들의 행동이 틀리게 보일지라도 내가 함부로 옳다 그르다 평가하기엔 내가 그들의 세계에 살아보지 않은 이상 주제넘은 짓일 것이란 것</p> <p>일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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