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은 이야기는 여기에: <a target="_blank" href="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anic&no=97708&s_no=97708&page=1" target="_blank">[단편] 한국말을 하는 이유 (1/2)</a><br>그럼 두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br><br>------------------<br>내일 캐나다로 출국이어서 나는 노인의 집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br><br>읍내의 모텔에서 묵는다고 말을 꺼냈다가 노인에게 혼쭐이 났다. <br><br>그리고 오후에는 홀로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br><br>알버타의 겨울 바람만큼 매서운 칼바람이 쉼없이 불어왔다. <br><br>추운 날씨에 노인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위령비에서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br><br>나는 4살 때 죽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br><br>집에 큰 불이 났고, 화마는 엄마와 엄마의 물건, 그리고 엄마의 기억까지 모두 삼켜버렸다.<br><br>엄마 체취도, 엄마 얼굴도, 심지어는 엄마의 장례식까지 온전하게 기억에 남은게 없다.<br><br>그나마 몇가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엄마 이름 그리고 그 이름에 얽힌 사연이다.<br><br>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이곳 Battle of White Horse에서 전사했다고 한다.<br><br>얼마 후 엄마가 태어났고, 외할머니는 엄마의 이름을 이곳 지명을 따서 Whitehorse로 지었다고 한다.<br><br>나는 한나절 내내 찬바람을 맞으며 백마고지 전투 위령비 주변을 서성였다.<br><br>날이 저물고 나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다.<br><br><br>==<br>다음날 늦지 않게 출발하기 위해 미리 짐을 준비했다.<br><br>짐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옷이라 특별히 정리할 것도 없었다.<br><br>노인은 내 옷가지를 모아 빨래를 해 널어놓았으니 내일 아침이면 마를 것이라 했다.<br><br>아차 싶었다.<br><br>건조대에 걸린 얇은 외투의 안주머니를 확인했다.<br><br>물어 젖어 눅눅해진 여권이 나왔다.<br><br>나는 여권을 펼치고 들러붙은 페이지를 한장한장 조심스럽게 떼어냈다.<br><br>다행히 사진과 개인정보가 있는 첫페이지는 코팅이 되어있어 멀쩡해 보였다.<br><br>노인은 연신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br><br>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며 노인을 안심시켰다.<br><br>노인은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무척 속상해 하였다.<br><br><br>==<br>다음날 오전.<br><br>나는 출발하기 전 서울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br><br>원래는 새 여권으로 재발급 받아야 하는데,<br><br>여권 상태가 양호한 듯 하고 비행기가 오늘 출발하니 우선 인천공항으로 가라고 했다.<br><br>제 3국을 경유하지 않아서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데만 문제가 없으면 괜찮을 거라 했다. <br><br>하지만 여권 훼손 정도에 따라 토론토 공항에서 캐나다 입국이 조금 늦어질 수는 있다 했다.<br><br><br>==<br>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티켓 발권과 출국심사는 순조로웠다. <br><br>그런데 문제는 토론토 공항에 도착해서 터졌다. <br><br>여권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며 나는 별도의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br><br>3시간을 기다려 이민국 직원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br><br>여권이 훼손되어서 신원확인이 필요했다. <br><br>이민국 직원은 여권,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카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분증을 가져갔다. <br><br>한참동안 컴퓨터로 확인을 하다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신원확인이 안된다 했다.<br><br>과거에 내가 이름을 바꾼 적이 있는지 물었다. <br><br>나는 여권 발급 받을 때 출생증명서 (birth certificate) 때문에 애먹은 생각이 나서 말했다.<br><br>“(이름을 바꾼적은 없는데, 제 출생증명서에는 성이 McNeil이 아니고 MacNeil로 적혀있어요.)”<br><br>“(성을 나중에 바꾼 건가요?)”<br><br>“(바꾼 건 아니고, 아버지 말로는... 출생신고 사무소 서기가 실수로 잘못 받아 적었다고 들었어요. 출생증명서가 나온 후에는 고칠 수 없었고요.)”<br><br>이민국 직원은 컴퓨터로 다시 확인을 했고, 이내 입국심사 도장을 찍어줬다. <br><br>직원은 이민국 시스템 상에 나의 성이 MacNeil로 되어있다 했다. <br><br>그래서 McNeil로 개명신청을 먼저 한 후에 여권을 재발급 받으라고 알려줬다. <br><br>입국심사는 끝났지만 내가 직접 경찰을 만나 확인할 사항이 있다 했다.<br><br>나는 무슨일인지 물었고 이민국 직원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했다.<br><br>경찰에게 직접 들으라며 나를 공항 내 경찰 사무실로 보냈다.<br><br><br>==<br>경찰 사무실에서 2시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경찰관에게 이민국 직원이 준 서류를 건넬 수 있었다. <br><br>경찰관은 나에게 미국 여권이 있느냐고 물었다. <br><br>미국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미국 여권이 있느냐고 답했고, <br><br>나는 경찰관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br><br>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미국에서 태아난 미국 시민권자란다. <br><br>캐나다에서 태어났어도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나에게 미국 시민권이 있다 했다.<br><br>“(하하. 아마도 이민국에서 신원확인이 잘못된 것 같네요. 저희 부모님은 알버타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br><br>“(어머니 이름이 Whitehorse MacNeil, 아버지 이름이 David MacNeil 아닌가요?)”<br><br>“(맞긴 한데…)”<br><br>“(Whitehorse MacNeil이 16년 전에 당신 실종신고를 냈어요. 올해까지 매년 실종신고 갱신을 해왔고요.)”<br><br>경찰관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br><br>“(그래서 저는 지금 당신이 Whitehorse MacNeil을 만날 의사가 있는지 묻는거에요.)"<br><br>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매년 나의 실종신고를 해왔다는 말에 머리 속이 멍해졌다.<br><br>경찰관은 종이 한장을 내밀었고 여전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br><br>“(Whiltehorse MacNeil과 만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이 서류에 표시하고 서명해서 제출하면 됩니다.)”<br><br><br>==<br>나는 그 간단한 서류를 벌벌 떨면서 작성했고 서명한 서류를 경찰관에게 건넸다.<br><br>나는 경찰관에게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칸에 내가 제대로 표시를 했느냐고 물었고, <br><br>그가 ‘Yes, you did.’라고 말한 것까지 나는 기억한다.<br><br>그 다음은 내가 어떻게 경찰 사무실을 나왔고 어떻게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br><br><br>==<br>다음날 나는 경찰로부터 엄마의 주소와 연락처를 받았다. <br><br>엄마는 미국 텍사스 달라스 공항에서 토론토로 오는 중이라 했다.<br><br>나는 공항으로 나갔다.<br><br>도착장 게이트 앞에 Whitehorse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기다렸다.<br><br>한사람 한사람 지나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땀이 흘러 종이를 들고 있기 힘들었다.<br><br>시간은 계속 흘렀다.<br><br>혹시 엄마가 이름을 못 보고 지나친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br><br>그때 한 중년 여성이 내가 들고 있던 종이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br><br>그녀는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나에게 걸어왔다. <br><br>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br><br>“…Brian?”<br><br>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두손으로 나의 얼굴을 감쌌다.<br><br>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br><br>“I am so sorry… so sorry… I am sorry, Brian.”<br><br>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br><br>‘Mom’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br><br>나는 내가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br><br>그 순간 머리도 마음도 모두 고장이 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br><br><br>==<br>엄마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br><br>우리 가족의 성은 MacNeil이 맞다 했다.<br><br>엄마는 아빠와 미국 텍사스 한 도시에서 만났단다.<br><br>둘이 결혼을 할 즈음 아빠는 캐나다로 건너가 살자고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br><br>엄마가 이유를 물으면 아빠는 캐나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게 꿈이라 했다.<br><br>결국 엄마와 아빠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알버타의 작은 시골마을에 정착했다.<br><br>결혼 후 아빠는 엄마가 외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점점 싫어했다 한다. <br><br>엄마 역시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집에서만 지내는게 힘들지는 않았다고.<br><br>하지만 나중에는 친정 부모님과 가끔씩 전화하는 것 마져도 아빠가 싫어해서 많이 서운했다고.<br><br>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빠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단다.<br><br>반면에 아빠는 마을 사람들 한명 한명 무척 친하게 어울렸다고 한다.<br><br>아빠가 마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알고 지내서 엄마 역시 굳이 친구를 만들 필요성을 못느꼈다고.<br><br>하지만 나의 첫돌이 지나고, 엄마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즈음...<br><br>아빠의 폭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br><br>엄마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고사하고,<br><br>자신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할 친구 하나 없었다고 했다. <br><br><br>==<br>엄마는 나에게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거라 했다. <br><br>하지만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br><br>나는 아빠에게 맞으며 자랐다. <br><br>아빠가 술을 마신 날은 심하게 맞곤 했다.<br><br>나는 어릴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맞으며 자라는 줄 알았다. <br><br>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의 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br><br>그리고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br><br>학교 선생님에게 아빠의 폭력에 대해 알렸다.<br><br>마을 구성원 전부가 친척 같은 아주 작은 마을. <br><br>아빠의 가까운 친구의 아내였던 선생님은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br><br>결국 나만 아버지 험담을 하고 다니는 질나쁜 아이 취급을 받았다.<br><br><br>==<br>엄마는 아빠의 폭력 견디며 그렇게 2년을 살았다고 한다. <br><br>마을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엄마는 걸어서 집과 마을을 탈출했다고. <br><br>일주일 후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를 데리러 왔을때 아빠는 이미 나를 데리고 마을에서 사라졌다고 한다.<br><br><br>==<br>내가 엄마 이름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br><br>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은 외할아버지가 아니고 외할아버지의 큰형, 그러니까 엄마의 큰아버지였다. <br><br>그분의 유해는 전쟁이 끝나고 15년이 지나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br><br>그분의 유해가 돌아온 해 외할머니는 엄마를 임신했고,<br><br>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남자 아이면 Louis, <br><br>여자 아이면 Whiltehorse로 아기의 이름을 준비했다고 한다.<br><br><br>==<br>엄마를 만나고 두달여가 지난 오늘...<br><br>나는 엄마와 함께 텍사스의 달라스-포트워스 국립묘지를 찾았다. <br><br>나는 그분 묘소의 작은 비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br><br>‘Louis Strassmann (1930-1952) Came Back Home in 1968.’<br><br>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주머니에서 노인에게 받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냈다. <br><br>나는 목걸이를 비석 아래 내려놓고 속삭였다.<br><br>“Thanks for bringing my mom back.”<br><br><br>— 끝 —<br><br>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