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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4642
    작성자 : 다른이의꿈
    추천 : 13
    조회수 : 3079
    IP : 162.158.***.89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7/08/08 06:17:26
    http://todayhumor.com/?panic_94642 모바일
    [단편] 샤워 중 사라지는 시간
    옵션
    • 창작글
    3 분. 샤워를 하면서 사라진 시간이다. <br><br><br>물로 머리를 적시고 샤워기를 잠근다. <br><br>샴푸를 짜내어 머리에 묻히고 머리칼을 비비기 시작한다. <br><br>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br><br>샤워기의 물을 틀기 위해 수도꼭지에 손이 닿는 순간. <br><br>정신줄을 놓고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br><br>물을 트는 대신 손을 머리로 옮겨 더듬는다. <br><br>샴푸 거품이 풍성하다. <br><br>하지만 머리를 어떻게 감았는지 기억이 없다. <br><br>매일 샤워를 할 때 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br><br><br>-----<br>지난 토요일 김현정 대리에게 함께 영화를 보자는 문자를 받았다. <br><br>나보다 두 살 위인 김현정 대리는 홍보실에서 일한다. <br><br>홍보실에서 회사 광고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 팀 사업이 광고의 주요 내용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br><br>팀의 막내인 내가 홍보팀에서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일을 맡았고, 지난주는 일주일 내내 김현정 대리와 함께 일했다. <br><br>금요일 퇴근 직전 급하게 자료를 보내달라는 부탁에 툴툴거리며 보내줬는데, 고맙다고 영화표를 준비 했단다. <br><br>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함께 영화보자는 문자를 확인한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야호!<br><br><br>-----<br>다음날 김현정 대리와 영화를 보러 나가기 전에 사워를 하는데 들뜬 마음에 노래가 절로 나왔다. <br><br>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어느 순간 음률이 끊겼고, 이 때 처음으로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r><br><br>-----<br>김현정 대리와 영화를 보고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했다. <br><br>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빠르게 가까워졌다. <br><br>헤어짐이 아쉬운 저녁, 나는 그녀에게 나의 원룸에서 자고 가라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br><br><br>---<br>현정과 사랑을 나누고 함께 잠든 밤 생생한 꿈을 꿨다. <br><br>꿈 속의 나는 병원에 있었다. <br><br>지금의 내가 아니었지만 분명 나였다. <br><br>그냥 일반 병원이 아닌 죽음을 준비하는 시설의 작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br><br>온 몸에 고통이 밀려왔고, 이내 간호사가 들어와 링거에 진통제를 넣어주었다. <br><br>정신이 또렸해지며 남은 시간이 불과 몇 분도 안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br><br>나의 몸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모아 나의 오감을 되살리고 있었다. <br><br>‘그래 마지막 1 분은 그냥 이렇게 느껴보자.’ <br><br>코 끝에 느껴지는 호흡 하나 하나. <br><br>담요에서 올라오는 섬유 유연제 냄새. <br><br>창 블라인드의 흔들리는 나무가지의 그림자. <br><br>가습기가 만들어 내는 낮은 기계음. <br><br>내 앙상한 손을 잡고 있는 한 남자의 체온. <br><br>나는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br><br>'마지막 인사로 무슨 말을 해줄까?' <br><br>내가 입을 벌리자 그는 가까이 다가왔다. <br><br>“오빠…”<br><br>그가 고개를 끄덕였다.<br><br>“나 머리 좀 쓰다듬어줘.”<br><br>그는 말없이 모자를 벗겼고, 머리털 한 올 없는 머리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br><br>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익숙하게 느껴졌다.<br><br>“이제 나 가야할 시간인 것 같아.”<br><br>나의 두 눈에 마른 눈물이 흘렀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은 멈추었다. <br><br>그는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br><br>“오빠, 약속 하나만 해줘.”<br><br>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br><br>“꼭 좋은 사람 만나고… 나 만큼 사랑해줘.”<br><br>그는 대답 대신 나의 가슴 위로 얼굴을 묻었다. <br><br>마지막 힘을 짜내어 두 팔을 모아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br><br>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면서 눈이 감겼다. <br><br>그의 머리결의 곱슬거리는 느낌이 손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br><br>귀를 찌르는 심전도 기계의 경고음, <br><br>의사를 호출하는 간호사의 급한 목소리, <br><br>그리고 나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의 흐느낌이 <br><br>마치 라디오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한참을 이어졌다.<br><br>흐느끼던 그의 목소리는 잠이 깨고도 한참을 뇌리에 남았다. <br><br>그는 나를 지연이라 불렀다.<br><br><br>-----<br>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눈을 떴다. <br><br>현정은 손을 옮겨 나의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br><br>“무슨 꿈을 꿨길래 그렇게 울어?”<br><br>차분한 기분이 여운처럼 이어졌다. <br><br>나는 한참을 현정을 바라보다 대답했다.<br><br>“꿈에 어떤 사람이 죽었어.”<br><br>“누가 죽었는데?”<br><br>“음—내가 죽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br><br>“자신이 죽는 꿈은 길몽이래.”<br><br>그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br><br>꿈 속 남자의 손이 머리의 맨 살을 스치던 느낌이 되살아났다.<br><br>“자기는 머리결이 너무 좋아. 욕실에 린스도 없던데, 쓰는 샴푸 내가 가져가서 써야겠다.”<br><br>현정의 말에 기억이 사라지는 현상이 혹시 샴푸의 화학 성분, 뭐 그런 것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br><br>“누나. 혹시 어제 머리 감으면서 별일 없었어?”<br><br><br>-----<br>꼬치꼬치 캐묻는 현정에게 나는 샤워 중 기억이 사라지는 이야기를 해주었다.<br><br>“그럼 어제 저녁에 샤워할 때도 그랬어?”<br><br>“응.”<br><br>“와—신기하다.”<br><br>“하—나는 좀 심각해. 병원에 가볼까 생각 중이야.”<br><br>“미안—그런데 그런 병이 있어?”<br><br>“글쎄—없지 않을까?”<br><br>“음—너 머리 감을 동안 내가 한 번 봐줄까?”<br><br>현정과 함께 샤워를 한다는 생각에 심각했던 기분은 사라졌고 나는 야릇한 미소와 함께 얼굴을 붉혔다.<br><br>“어머—미쳤어. 난 옷 입고 봐주기만 하는 거야. 흥!”<br><br><br>-----<br>현정이 볼 수 있게 샤워 커튼을 반 쯤 열어놓았다. <br><br>알몸으로 샤워를 하려니 옆에서 보고 있는 현정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br><br>내가 불편해 하는 걸 눈치 챘는지 현정이 말했다.<br><br>“어젯밤엔 한 마리 굶주린 야수 같더니 왜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 하고 그래?”<br><br>“샤워 끝나면 또 덥쳐줄테니 기다리라고. 어흥!”<br><br>현정의 웃음소리와 함께 물을 틀고 샤워를 시작했다. <br><br>머리를 물에 적시고 샴푸를 짜서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br><br><br>-----<br>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속옷을 입은 채 뚜껑이 덮힌 변기에 앉아 있었다. <br><br>현정은 욕실 문 밖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br><br>“누나…”<br><br>내가 변기에서 몸을 일으키자 현정은 뒷걸음 치며 말했다.<br><br>“이..일어나지마.”<br><br>나는 다시 변기 뚜껑 위에 앉았다.<br><br>“누나…”<br><br>현정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br><br>“나 갈께. 앞으로 이런 장난 하지마.”<br><br>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급히 옷가지와 가방을 챙겼다. <br><br>나는 다시 일어서며 서둘러 그녀를 불렀다.<br><br>“누나. 잠깐만.”<br><br>“일어나지마. 제발. 나 무서우니까. 나 나갈 때까지 그냥 거기에 있어줘.”<br><br>나는 그녀의 말 대로 변기에 다시 앉았다. <br><br>머리에서 바르다 만 샴푸가 흘러내리고 있었다.<br><br><br>-----<br>그 날 오후 현정에게 그렇게 나와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br><br>나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br><br>내가 장난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중인격이나 해리성정체장애 의사를 찾아보라고 했다. <br><br>그리고 그녀는 우리 만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br><br>나는 심각하게 떨리는 현정의 목소리에 차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 가 없었다.<br><br><br>-----<br>지난 월요일 회사에서 현정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br><br>그 날 머리를 감던 나는 욕실에서 현정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br><br>현정에게 욕실에서 나가달라 했고, 몸을 닦지도 않고 급히 옷을 입더란다. <br><br>그리고는 변기에 앉아서 횡설수설 하며 이상한 이야기를 했단다. <br><br>암투병으로 죽은 아내에게 왔다고. <br><br>머리가 다시 자라면 머리를 반드시 감겨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br><br>수많은 약속을 했는데 지킨게 하나도 없다고.<br><br>그리고 나에게 ‘지연’이라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다고. <br><br>그렇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br><b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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