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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0721
    작성자 : 달과그림자
    추천 : 11
    조회수 : 1135
    IP : 223.53.***.116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6/09/17 00:57:43
    http://todayhumor.com/?panic_90721 모바일
    차창 밖으로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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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소리만이 조용히 들려왔다. 차에 가만 앉아 차장 밖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일그러져 보인다. 204동. 나의 집. 아니, 우리 집의 동 입구에 써 있는 글씨가 빗물에 굴절되 우글우글하게 보였다.

     우웅- 우웅-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눈치 없는 핸드폰이 운다. 그러나 여자는 조용히 울지 않는다.

     구불구불 빗줄기가 창을 따라 흘러내린다. 긴 꼬리를 그리며 창 아래로 떨어져 가는 빗물은 자신이 추락하고 있는 것을 아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찰나를 누리는 것일까.

     우웅-우웅-

     텔레비전에서 광고질하던 최신형 휴대폰은 정말 시끄럽게도 울었다. 부재중 전화 3통, 문자 메세지 13개. 카톡은 그보다 많았다.
     
     [곧 갈게.]

    가장 마지막으로 온 카톡을 확인하고서 배터리를 빼버렸다.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이번엔 내 것이었다.

     뚜르르- 뚜르르르-

     '하늘같은 남편님♥' 이라고 저장되있는 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갔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다.

     [지금은 통화중.....]

     야박한 여자의 안내목소리가 대신 들렸다. 휴대폰을 던져버리려하다가 아직 16개월이나 약정이 남았음을 떠올리고는 관둔다. 대신 핸들에 머리를 쿵쿵 찧는다.

     이번엔 아까 다른 폰으로 보내보았던 카톡을 보내보기로 했다.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며. 아는 신들의 이름을 모두 부르면서 한 자 한자 조그만 쿼티 키보드로 두들긴다.

     

    ㅇ ㅕ ㅂ ㅗ



     [여보 나 너무 아파. 와주면 안 될까....?] 1

     창문 밖의 빗방울들은 땅 아래로 쳐박히며 단말마를 낸다. 지금은 끔찍하지만 저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도 있었다.

     아름답지는 않았어도 싱그러웠던 20대. 사람 없는 아늑한 카페, 갑자기 온 비에 당황하던 당신, 그리고 우산이 있었던 나. 하나의 우산 아래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 

     빼놓는 것을 깜빡한 가방 안의 애물단지가 당신과 걸어갈 핑계가 되어 행복했다. 내 어깨가 젖은 것이 신경쓰이기보단 당신이 젖지 않는게 기뻤다. 

     빗물은 내 눈에도 흐른다. 차에서 비가 샐리는 없을텐데도 내 눈엔 빗물이 흘렀다. 그걸 훔치면서도 나는 뚫어지게 내가 보낸 톡을 노려봤다.

     [여보 나 너무 아파. 와 주면 안 될까....?]

     1이 사라지자 당신이 처음 내게 문자를 줬을 때의 그 감정이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설레하며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여자의 휴대폰과 다르게 문자도, 부재중 전화도 전혀 찍히지 않는다. 

     당신이 보인다. 당신은 빨간 우산을 들고 급하게 나온 듯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서 뛰쳐나왔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나는 당신의 번호를, 하늘같은 남편님♥의 번호를 두들긴다. 곧이어 신호가 가고, 당신은 멈추어 서 전화를 받는다.

     [아, 무슨 일인데?]

     짜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으로도, 차창 밖으로도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두 번 죽었다.

     "여보..... 나 지금 너무 아파요......."

     [아, 그래?]

     관심있는 척 포장하려는 목소리가 들린다.

     [방금 실은 회사에서 전화가 왔거든, 미안해. 잠깐 나가볼게. 잠깐이면 돼.]

     "오늘은 일요일인데....?"

     [그러는 너도 잠깐 볼일이 있다며 나한테 니 새끼 던져두고 나갔잖아. 잠깐이야.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려. 재준이도 혼자서 있어봐야지.]

     당신이 툭툭 내던지는 변명에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하고 나는 계속 죽었다. 수화기 건너로도, 차창 밖으로도 당신은 나를 계속 찔렀다.

     우리집 통장을 퍼다가 그녀에게 줄 정도임은 알았으나 3살짜리 아이를 혼자 두고 가버릴 정도로 그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깊은 줄은 몰랐다. 여보 나 지금 너무 아파요.

     "정말 아름다운 로맨스네......"


     [뭐?]


     "정말 아름다운 로맨스라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렇지 않아? 남편의 말은 무시하고 뒷자석 그녀에게 동의를 구한다. 

    ............

     그녀는 대답 대신 로프 위로 혀를 축 늘어뜨린다.

     [너 이상해.]

     남편이 내게 소리를 지르다 가라앉힌다. 그러나 속삭임만큼이나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판타지 영화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어디가 아파...? 병원 같이 가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런데 내가 정말 급하거든...?]

     "여자 만나러 가는 건 아니고?"

     [야, 너..... 진짜 할 말이 없다. 너 그거 의부증이야. 정신병이라고. 병원 한 번 가봐라. 네가 미쳤다고 하지 내가 바람폈다고 하겠냐.]

     여자의 휴대폰으로 보낸 '아프니 와달라'는 문자에는 안절부절 못하다 달려나가면서 아내의 똑같은 문자와 전화에는 잘도 그런 소리를 한다. 

     차라리 내가 성적 매력이 없다고, 나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해주지 그랬어. 애 낳고서 망가진 내 몸이 싫다 말하지 그랬어. 

     "나는 차라리 당신이 솔직하길 바랐어."

     그랬다면, 당신이 나에게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 말해주었다면. 나는 그런대로 납득했을지도 몰랐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고, 나는 비가 내리는 거리를 기억 속에서 걸으며 흐릿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밀어두었을지도 모른다.

     [아, 더 할 말이라도 있어? 난 가볼테니 재준이 걱정되면 일찍 들어가보던가. 애는 엄마 밑에서 커야지.]

     그렇지만 당신은 날 죽였다. 어깨가 흠뻑 젖어 다음 날 감기에 걸려 혼미한 정신에서도 당신의 무심한 문자 하나에 기뻐하던 20대의 나를, 결혼해달라 귀를 붉히면서 내밀던 반지에 부끄럽게도 울어버렸던 나를, 당신과의 아이를 가졌을 때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춤을 추던 나를.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 많은 나들을 난도질해 죽였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했던 수 많은 나는 그렇게 죽었다.

     "끊을게."

     무감각하게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뭐야, 시X."

     창밖의 당신은 갑자기 끊긴 전화에 천박한 욕설을 궁시렁대며 내뱉는다. 그리고 마저 그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녀에게 가는 당신을 도와주기로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나게 되었듯 당신과 그녀도 이어주기로 한다. 그래서 당신이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브레이크를 풀고 악셀을 밟는다.


     충격이 도달하기 전까지 당신은 앞만보고 급하게 뛰어간다. 그래서 옆에 어떤 차가 당신에게 달려드는지도 보지 못한다.
     


      곧 차창 밖으로 빨간 우산과 함께 빨간 당신이 내렸다.
    출처 글 짜내는 くコ: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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