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돌아오는 눈</b></div> <div><br></div> <div>1월의 끝자락, 산지기 하루 씨는 산을 돌아보고 내려가고 있었다.</div> <div>왼쪽의 계곡에서 매서운 북풍이 들어올린 가루눈이 불어왔다.</div> <div>가볍게 부는 눈폭풍 같은 느낌의 "돌아오는 눈"이었다.</div> <div>눈보라 너머로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div> <div>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div> <div>휘이잉하고 불어대는 바람 소리를 따라,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그 실루엣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상대방은 보이지 않았다.</div> <div><br></div> <div>다가가보니 그 실루엣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div> <div>같은 동네에 사는 하라 씨였다.</div> <div>"어~~이! 거기서 뭐~~~해?"</div> <div>하루 씨가 말을 걸자, 하라 씨가 천천히 돌아보았다.</div> <div>거친 얼굴이 약간 경직된 것 같이 보였다.</div> <div>"……뭐야, 누군가 했네"</div> <div>"사람을 보고 뭐야는 뭐냐. 그보다 누구랑 말하는 것 같던데"</div> <div>"아, 좀… 쇼타와 이야기 좀 했어…"</div> <div>"뭐?"</div> <div><br></div> <div>하루 씨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div> <div>쇼타는 하라 씨의 외동아들인데</div> <div>작년 봄에 일곱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소아암으로 죽었다.</div> <div><br></div> <div>쇼타가 죽은 후 하라 씨는 그닥 달라진 건 없었다.</div> <div>원래부터 묵묵히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고,</div> <div>모임 같은 곳에서도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예전 그대로였다.</div> <div>비탄에 젖은 것 같은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div> <div>쇼타 장례식 때는 고개 숙이고 우는 아내를 곁눈질로 보고,</div> <div>늘어선 조문객은 마치 원수라도 보듯 노려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런 하라 씨의 행동을 보고,</div> <div>하루 씨의 마음 속에 작넌에 보인 행동들은 일부러 고집을 피운 거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div> <div>아마 그런 행동을 함으로서 억지로 슬픔을 참고 있었던 거겠지.</div> <div>그러고 9개월 정도 지난 오늘까지 그렇게 고집을 피운 것이었다..</div> <div><br></div> <div>"…길을 걷는데 말이야, 토방 쯤 오니까 누가 부르는 것 같더라고.</div> <div> 그래서 그쪽을 보니까 쇼타가 서 있지 뭔가"</div> <div><br></div> <div>하루 씨는 아무 말 없이 하라 씨 말에 귀기울였다.</div> <div>어느 틈엔가 바람이 그쳐, 산 주변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만이 감돌았다.</div> <div><br></div> <div>"쇼타 녀석이 '엄마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라지 뭔가.</div> <div> 그야 나도 쇼타 때문에 그 사람 꽤나 잡았지.</div> <div> '언제까지 울 거야?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다!'라면서 소리치고 말이야"</div> <div><br></div> <div>그 일은 하루 씨도 아내를 통해 들은 바 있었다.</div> <div>시골 아낙네들의 우물가 소문은 빠르니까.</div> <div><br></div> <div>"미안하긴 했지만 나도 멈출 수 없었어.</div> <div> 그렇게 내 기운을 차리려고 한 거지.</div> <div> 아니지, 어쩌면 현실에게서 눈을 돌리려고 한 걸 지도 몰라.</div> <div>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사이에 대화가 끊겼어":</div> <div><br></div> <div>하라 씨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속 말했다.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았다.</div> <div><br></div> <div>"그 녀석이 걱정되었다지 뭔가.</div> <div> 오랜만에 만난 아이한테 잔소리 들을 줄이야.</div> <div> 화도 나고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뭐랄까... 그런데 말이야.."</div> <div><br></div> <div>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멈춰섰다.</div> <div><br></div> <div>"..그런데 하루 씨, 뭐랄까.. 눈물이 멈추질 않는구만"</div> <div><br></div> <div>하늘을 보던 눈가에서 눈물이 펑펑 솟아나더니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가 했더니</div> <div>하라 씨는 그대로 소리내며 울기 시작했다.</div> <div>참고 또 참다가 고집을 피워 참던 하라 씨의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고</div> <div>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커다란 눈물 방울이 눈 위에 토독토독 떨어져 구멍을 냈다.</div> <div>그리고 길 너머에 소복히 쌓인 눈 위에 어린 아이의 발자국이 보였다.</div> <div><br></div> <div>다시 거세진 바람이 눈을 흩날리자, 그 발자국은 순식간에 사라졌다.</div> <div>하지만 하라 씨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깊이 새겨져 남을 것이다.</div> <div>산을 내려간 하라 씨의 굳었던 얼굴은 요즘들어 많이 밝아졌다.</div> <div><br></div> <div>돌아오는 눈이, 시간을 조금 돌려줬던 걸 지도 모르겠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