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지켜보는 사람</b></div> <div><br></div> <div>초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div> <div>무서운 이야기는 아닌데, 괜찮으시면 한 번 읽어주세요.</div> <div><br></div> <div>그날은 자전거로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작은 공원을 발견했다.</div> <div>그네, 미끄럼틀과 모래 놀이터만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div> <div><br></div> <div>"이런 곳에 공원이 있었을 줄이야"</div> <div>라는 생각을 하며 멈춰서 있는데,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애가</div> <div>나무 막대기로 땅에 그림 그리는 게 보였다.</div> <div>마침 한가하던 나는 걔랑 놀려고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div> <div>"뭐 그려?"</div> <div>뒤에서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div> <div>"어?! 아.. 사, 사자.."라고 답했다.</div> <div>내가 "같이 놀자"라고 했더니 "..그래도 돼? 그치만.."하고 일어섰다.</div> <div>그 아이는 다리와 팔이 불편한지 "난 달리는 거 못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라고 미안한 듯 말했다.</div> <div>그 아이 이름은 토모야였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div> <div>공원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div> <div>특수 학교에서 스쿨 버스 타고 돌아온 후, 저녁 때까지 이 공원에서 논다고 했다.</div> <div>"이 주변에는 아이가 없어서 여긴 거의 내 전용이야"라며 토코야가 웃었다.</div> <div>토코야는 몸은 좀 불편했지만, 내가 모르는 걸 잔뜩 알고 있었다.</div> <div>특히 동물이나 곤충엔 빠삭해서 금세 사이가 좋아졌다.</div> <div>내가 토코야에게 "척척박사 같아"라고 했더니 부끄러워했다.</div> <div><br></div> <div>한참 둘이서 놀고 있는데, 좀 떨어진 곳에 어느 할아버지가 서있다는 걸 깨달았다.</div> <div>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토모야를 보고 있었다.</div> <div>몸이 투명해서 뒤까지 보였으니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건 바로 알 수 있었다.</div> <div>내가 머리를 조금 숙이자, 그걸 보셨는지 할아버지가 인사해주셨다.</div> <div>마치 "잘 부탁한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div> <div><br></div> <div>그 후에도 우리는 종종 같이 놀곤 했다.</div> <div>할아버지는 여전히 웃으며 토모야를 지켜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날 그네를 타본 적 없다는(손을 꽉 쥘 힘이 없어서) 토모야를 위해</div> <div>아빠 벨트를 몰래 가지고 왔었다.</div> <div>"토모야, 내가 오늘 그네 탈 수 있게 해줄게!"</div> <div>라고 했더니, 토모야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div> <div>"이렇게 하면 탈 수 있어!"</div> <div>나는 토모야와 날 벨트로 묶어서 토모야를 무릎에 앉힌 형태로 그네에 앉았다.</div> <div>그리고 둘이 함께 사슬을 쥐었다.</div> <div>할아버지가 걱정스레 허둥대는 건 보였지만,</div> <div>"무서우면 말해!"라며 멋대로 그네를 저었다.</div> <div>여러가지 알려주는 토모야에게 나도 그네를 타면 보이는 경치를 보여주고 싶었다.</div> <div>'그네 타면 어떤 기분이야?'라고 질문 받았지만, 제대로 답을 못 했으니까..</div> <div>그네를 타고 움직이자마자 토모야가 "와아!"하고 탄성을 질렀다.</div> <div>"굉장하다, 정말! 하늘이 가까워!"</div> <div>"구름에 손이 닿을 것 같아!"</div> <div>"바람이 불어서 너무 좋아! 마치 새가 된 것 같아!"</div> <div>내 생각보다 훨씬 더 기뻐해주니 신이 나서 그만 파김치가 되도록 그네를 저었고</div> <div>거의 멀미 일보직전까지 토모야도 내리려 하지 않았다.</div> <div>둘이서 비틀거리며 그네에서 내려 벨트를 풀자 땅에 드러누웠다.</div> <div>그러던 중에도 토모야는 계속 웃었고, 할아버지도 흐뭇하게 웃으셨다.</div> <div><br></div> <div>다음 일요일에도 토모야와 놀려고 공원으로 향했다.</div> <div>공원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세우는데 옆에서 누가 팔을 꽉 잡았다.</div> <div>"으악!"</div> <div>깜짝 놀라 보니, 토모야의 할아버지였다.</div> <div>무서운 표정으로 뭐라고 하려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div> <div>"네? 네??"</div> <div>당황하는 날 향해 "토모가.. 토모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div> <div>'아! 토모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div> <div>그렇게 생각한 나는 공원으로 달려가서 토모야를 찾아보았다.</div> <div>"토모야! 어디 있어?! 토모야!!"</div> <div>덤불 근처에 토모야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었다.</div> <div>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고, 괴로운 듯 신음하고 있었다.</div> <div>"토모야!"</div> <div>다가가보니 옅은 잿빛 아지랑이 같은 게 있었고,</div> <div>할아버지가 필사적으로 떨구려고 하고 있었다.</div> <div><br></div> <div>나는 공원을 가로질러 도로변까지 나가서</div> <div>"저기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하고 힘껏 여러 번 소리쳤다.</div> <div>그리고 토모야 집까지 달려가서</div> <div>문을 두드리며 "아줌마! 토모야가 이상해요! 쓰러져 있어요!"하고 소리쳤다.</div> <div>토모야 네 집은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와 둘이서만 산다고 들었다.</div> <div>이혼한 후 엄마는 자리에 누워 지내는 일이 많아지고 밖엔 잘 안 나간다고 했다.</div> <div>"엄마는.. 날 보면 슬퍼하는 것 같아서.. 공원에서 노는 게 나아"</div> <div>토모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나는 내심 그 아줌마에게 심통이 났다.</div> <div>항상 혼자 놀던 토모야.</div> <div>보려고 하지도 않고, 웃어주지도 않는 그 엄마.</div> <div>지금에서야 우울병에 걸렸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린 내가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div> <div>"아줌마! 나와 봐요!! 아줌마!!"</div> <div>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창백한 표정으로 나왔다.</div> <div>"토모야가 어쨌다고?! 무슨 일인데?"</div> <div>설명하기 힘들어서 아줌마 손을 잡고 공원으로 달려갔다.</div> <div><br></div> <div>공원으로 가보니 내가 소리 지른 걸 들은 어른들 몇 명이 토모야 주변에 모여있었다.</div> <div>"구급차 불렀어!"</div> <div>"꼬마야! 왜 그러니? 내 말 들리니?"</div> <div>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말 걸고 있었다.</div> <div>토모야 주변의 아지랑이 같은 건 아까보다 더 짙은 색을 띠었는데, 거의 검은 색에 가까워졌다.</div> <div>할아버지는 그 아지랑이를 휘젓기도 하고, 들이마시기도 했지만</div> <div>금세 토모야를 감쌌다.</div> <div>나는 이대로 토모야가 죽는 건 아닌가 생각하니 무서워서 울기만 했다.</div> <div>구급차가 와서 아줌마와 토모야를 싣고 간 후에도</div> <div>그 아지랑이가 토모야를 집어삼킬 것만 같아서 계속 울었다.</div> <div><br></div> <div>며칠 후 내가 혼자 공원에 있는데,</div> <div>구급차를 불러준 아줌마가 일부러 와서, 토모야는 다행히 살았다고 말해줬다.</div> <div>맹장염이 심해져서 복막염이 일어났다고 했다.</div> <div>병원이 어딘지 알려달라고 해서 엄마와 같이 병문안 가기로 했다.</div> <div>"많이 아팠을 텐데.. 왜 병원에 바로 안갔을까?"</div> <div>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이상히 여겼지만, 나는 알 것만 같았다.</div> <div>아마 자기 엄마에게 걱정끼치기 싫어서 참았던 거겠지.</div> <div>참고 또 참고.. 너무 참았던 거겠지.</div> <div><br></div> <div>병실에 들어가보니 토모야는 졸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온 걸 보더니 빙긋 웃었다.</div> <div>우리 엄마와 토모야 엄마가 병실을 나서서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div> <div>"이번엔 정말 감사해서.." "아니오 뭘요.." 뭐 그런 소리가 들렸다.</div> <div>침대 곁에 있는 의자에 앉자마자</div> <div>"나.. 구해줘서 고마워"하고 토모야가 말했다.</div> <div>나는 울먹이면서</div> <div>"나만 그런 거 아냐. 믿을지 모르겠지만.. 너희 할아버지가 살려준 거야!"</div> <div>그렇게 말했더니 토모야는 놀라지도 않으며 "..믿어"라고 했다.</div> <div>"왜냐하면.. 내가 공원에서 쓰러졌을 때</div> <div> 내 귓가에서 계속 '힘내! 지면 안 돼!'하고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거든.."</div> <div>토모야가 눈물을 흘리며</div> <div>"그리고 꿈일 수도 있는데..</div> <div> 수술한 후에 '이제 괜찮아'라는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div> <div> 새카만 사람이 '잘 싸웠구나'라고 했어.</div> <div> 할아버지 목소리였어.</div> <div> 그러니까 나는 네 말 믿어.."</div> <div>라고 했다.</div> <div>새카맣게 변한 할아버지..</div> <div>아마 끝까지 그 아지랑이와 싸웠던 거겠지.</div> <div>나와 토모야는 손을 마주 잡으며 "할아버지 덕분이야"라며 울었다.</div> <div><br></div> <div>토모야가 퇴원한 후에도 여전히 사이좋게 놀았다.</div> <div>그리고 실은 지금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div> <div><br></div> <div>지난 달, 토모야는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div> <div>친척들 자리에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div> <div>이상하다 싶어 봤더니 "할아버지"라고 손으로 쓴 팻말이..!</div> <div>지금도 분명 어딘가에서 토모야를 지켜보고 계시겠지.</div> <div>할아버지의 그 미소가 떠오르면서</div> <div>나도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