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공허한 얼굴</b></div> <div><br></div> <div>책에 실린 이야기를 써도 되나?</div> <div>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귀신 체험담 모음집 같은 책이었는데.</div> <div><br></div> <div>화자 A의 체험담이다. 내가 맘대로 각색도 좀 했다.</div> <div><br></div> <div>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반 친구 B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div> <div><br></div> <div>두 사람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집에 가는 방향도 같아서 함께 하교하곤 했다.</div> <div>둘 다 오컬트 쪽을 좋아하는지라 무서운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었고</div> <div>덕분에 하교 길에는 무서운 이야기를 누가 더 잘하나 내기하듯 서로 말하곤 했다.</div> <div>그 날도 함께 하교하던 중, B가 급했는지 가는 길에 있는 공원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div> <div>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A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div> <div>조금 시간이 지나자 안색이 바뀐 B가 나왔다.</div> <div>"그 놈 어디갔어?"</div> <div>그 놈이라니 대체 누구 말이냐고 물었더니,</div> <div>중학생 정도 되는 남자 애가 나왔을 거라고 했다.</div> <div>A는 계속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보지도 못 했다.</div> <div>B의 설명은 아래와 같았다.</div> <div>소변기에 볼일을 보고 있는데 누가 "똑똑"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뒤돌아봤더니 변기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div> <div>그래서 '아, 휴지가 없어서 안에서 누가 노크한 건가' 싶어서</div> <div>B는 볼일을 다 본 후, 닫혀 있던 문을 노크해보았다.</div> <div>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div> <div>혹시나하고 문을 열어봤더니, 문이 열렸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div> <div>이상하다 싶어서 화장실을 나오려던 그때</div> <div>입구 끝에 왼쪽 몸만 보이게 내민,</div> <div>학생 모자를 쓴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B를 빤히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div> <div>깜짝 놀라하던 순간 그 얼굴이 그대로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div> <div>그래서 B가 A에게 그 놈이 언제 나갔냐고 물은 것이다.</div> <div>하지만 A는 정말 아무도 보지 못 했다.</div> <div>계속 화장실 앞에 서 있었으니, 누가 지나갔다면 못 봤을 리가 없다.</div> <div>A는 B가 잘못 본 게 아니냐고 가볍게 생각했지만</div> <div>B는 분명 똑똑히 봤다며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div> <div><br></div> <div>그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div> <div>쉬는 시간에 B가 화장실이나 어디 가려고 교실에서 나가기만 하면</div> <div>반드시 입구 문 끝에 얼굴을 왼쪽 반만 내밀고 무표정하게 A를 빤히 보고나서 사라졌다.</div> <div>A는 놀라긴 했지만, B 말을 무시했던 자기에게 화가나서 저러며 장난치는 거라 생각했다.</div> <div>하지만 하루 이틀이 아닌, 며칠이나 계속 그런 행동이 이어졌다.</div> <div>무표정하게 계속 쳐다보니 불쾌했다.</div> <div>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div> <div>그래서 A가 B에게 따졌다.</div> <div>입구에서 얼굴 내밀고 장난치는 거 이제 그만하라고.</div> <div>그러자 B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라고 했다.</div> <div>장난 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상한 점도 있었다.</div> <div>B는 얼굴을 반만 내밀고 있는데, 그런 자세에서 어깨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div> <div>어깨도 내밀지 않고, 얼굴을 평행하게 반만 내미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다.</div> <div><br></div> <div>그날은 교실 이동 수업이 있었다.</div> <div>A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앞서 걸어가는 B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div> <div>입구에서 얼굴을 내미는 게 B가 아니면 대체 누구지?</div> <div>앞서 가는 B가 꺾어진 복도를 꺾어간 순간, 복도 벽에 B 얼굴이 반만 스윽하고 나왔다.</div> <div>그리고 공허한 표정으로 A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div> <div>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div> <div>B의 얼굴이, 도무지 키가 닿을 수 없는 천장 쪽에서 보였던 것이다.</div> <div>A는 경악했지만, B를 뒤쫓아 복도를 꺾어갔다.</div> <div>눈 앞에는 평범하게 걸어가는 B가 보였다. A는 소름이 끼쳤다.</div> <div>그날 후 A는 B가 교실에서 나설 때는 절대 문을 보지 않게 되었다.</div> <div><br></div> <div>딱히 B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일 없이 세월이 흘렀고</div> <div>둘 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div> <div>학교 자체가 가까워서 둘이 같이 하숙할 집을 찾아 다녔는데</div> <div>꽤나 괜찮은 집을 찾게 되었다.</div> <div>A, B 그리고 부동산 사람 이렇게 셋이서 직접 집을 보기 위해 아파트에 가보았다.</div> <div>지은지 얼마 안 된데다, 가장 윗층의 깔끔한 방이었다. 집세도 쌌다.</div> <div>A와 B는 감동했고, 부동산 측 사람도 싱글벙글 웃었다.</div> <div>계약할까 말까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B가 보이지 않았다.</div> <div>원룸인데 대체 어디로 간 거지? 하고 A와 부동산 사람이 당황하며 찾았다.</div> <div>둘이서 베란다 쪽을 보니, 베란다 왼쪽 끝에 B의 왼쪽 얼굴만 스윽 나왔다.</div> <div>뭐하냐고 A가 말을 걸려다가</div> <div>"발 디딜 곳도 없는데 어떻게 저기에.."하는 부동산 업자가 말하는 순간</div> <div>B의 얼굴이 재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div> <div><br></div> <div>B는 자살로 처리되었다.</div> <div>지금도 그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