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개</b></div> <div><br></div> <div>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 한창일 때였다.</div> <div><br></div> <div>나는 외가가 있는 시골에 혼자 놀러갔다.</div> <div>시골이라서 그런지 밤에 할 일이 없어서, 저녁을 먹으면 자는 게 일과였다.</div> <div>특히 잠도 자기 힘들 정도로 심하던 열대야에, 모기장 안에서 뒹굴뒹굴하는데</div> <div>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div> <div>하고 개가 낮게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div> <div>귀기울여 들어보니 물을 가르는 듯한 발소리가 집 앞 길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div> <div>나는 일어나서 툇마루에 나갔는데,</div> <div>잠시 있다보니 우리 집 앞 길 너머에 다시 개가 나타난 것 같았는데 또 지나가는 것 같았다.</div> <div>들개인가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할머니가 오시더니</div> <div>"개 아니냐? 잠깐 나가서 보고 오마"라며 현관으로 가셨다.</div> <div>나는 벽 바로 너머가 꽤 폭 넓은 도랑인 게 기억났다.</div> <div>'아아 도랑 위를 뛰어다니는 거구나'</div> <div>하며, 할머니는 괜찮으신가 걱정 됐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조금 지나자 할머니가 돌아오셨다.</div> <div>"어땠어?"</div> <div>하고 여쭤봤지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으시더니 날 앉히고 얘기하셨다.</div> <div>"저건 원령이란다. 개의 원령. 보면 안 돼"</div> <div>할머니는 종종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셔서,</div> <div>이것도 일부러 하는 이야기이다 싶어서</div> <div>"무슨 귀신인데?"하고 물어봤더니</div> <div>"다리만 넷 있어. 머리는 없고. 그게 도랑 위를 뛰어다니는 거야"</div> <div>상상해보니 소름이 돋았다.</div> <div>"잘 들으렴. 저건 옛부터 여름만 되면 나타나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산개 원령이야.</div> <div> 아이들을 찾아서 밤새 뛰어다니니까 절대로 보면 안 돼"</div> <div>자칭 도시 아이였던 저는, 시골엔 그런 것도 있을 법한 것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겁먹었습니다.</div> <div>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이불 안에 들어갔다.</div> <div>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지만 개의 낮은 울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div> <div>몇 번이나 집 앞을 지나가는 발 소리를 들었을 때, 문득</div> <div>머리도 없는데 어떻게 애들을 데려가는 거지?</div> <div>한 번 궁금해지니 끝이 없었다.</div> <div>개 귀신을 한 번 보고 싶었다.</div> <div>이렇게나 발 소리가 선명히 들리는데 귀신이라고 하니 믿기 힘들었다.</div> <div>할머니가 들려주는 괴담은 어린이의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div> <div>나는 몰래 방을 빠져나가 현관으로 걸어갔다.</div> <div>밖으로 나가보니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도랑을 비추었는데 개 귀신은 안 보였다.</div> <div>나는 모기와 싸우며 집 앞에서 진득하니 기다려보았다.</div> <div>먹이 같은 거라도 던져주면 오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div> <div>헉헉헉 거친 숨소리가 오른손 쪽에서 들려오더니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div> <div>도랑은 어른들 키만한 높이여서</div> <div>위에 있는 이상은 개가 달려들 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차라 자세히 보려고 몸을 내밀어봤다.</div> <div>오렌지빛의 가로등에 개 머리가 보이던 때 나는</div> <div>"할머니가 지어낸 얘기 맞네. 평범한 개잖아"</div> <div>하고 괜시리 이긴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div> <div>그런데 '그것'이 눈 앞을 지나갈 때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div> <div><br></div> <div>개가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div> <div>내가 있는 걸 보지 못 했는지, 충혈된 눈으로 도랑물을 튀기며 뛰어갔다.</div> <div>나는 그 순간 보았다.</div> <div>어린 아이가 턱에 물려 있었다.</div> <div>목이 흔들흔들하는 게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div> <div>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았다.</div> <div>한 걸음도 못 뗄 것 같았는데 "할머니가 이걸 보고도 가만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div> <div>어른들에게 알려야 해. 어른들에게 알려야 해.</div> <div>하지만 이도 덜덜 떨리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데</div> <div>다시 개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돌려보니</div> <div>이번엔 아이 머리가 떨어지고 없었다.</div> <div>그리고 개가 달려갈 때, 내 눈 앞을 아이 머리가 웃는 얼굴로 스윽 따라갔다.</div> <div><br></div> <div>나는 기듯이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 이불 안에 파고 들어가 울었다.</div> <div>할머니는 "저건 원령이야. 원령이야"하며 안아주셨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