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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102262
    작성자 : 다른이의꿈
    추천 : 4
    조회수 : 665
    IP : 104.158.***.132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21/04/26 11:59:58
    http://todayhumor.com/?panic_102262 모바일
    [단편] 우진(愚盡), 어리석음이 다하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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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달려 우리는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br><br>나는 그녀를 따라 아파트로 올라갔고, <br><br>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 앞에 나란히 섰다. <br><br>그녀가 나를 보고 말했다. <br><br>“잘 보세요.”<br><br>19750426<br><br>도어락의 비밀번호는 다름 아닌 여덟자리 나의 생년월일이었다. <br><br>이 사람들 도대체 누구일까?<br><br><br><br><br>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br><br>“어머! 생각보다 괜찮네.”<br><br>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 방긋 웃으며 말했다. <br><br>“우리 회장님, 벌써 화가 많이 풀리신 것 같은데요?”<br><br>“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죠?”<br><br>그녀는 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br><br>대신 식탁에 놓여있는 자동차 스마트키와 명함을 집어 나에게 건넸다.<br><br>“이곳에 지내시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여기 박 실장님에게 연락하시면 돼요. 그리고 차는.. 아마 지하 주차장에 있을 거 같은데.. 직접 찾아보세요.”<br><br>그녀는 자신의 지갑을 열어 카드를 하나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br><br>“이건 제 카드인데, 편하게 사용하셔도 됩니다.”<br><br>“대체.. 이게.. 왜.. 나에게 왜.. 이런 걸….”<br><br>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br><br>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br><br>“그건 나중에 차차 알려드릴게요. 그동안 어떤 분일지 정말 많이 궁금했는데.. 오늘 이렇게 식사도 같이 하고.. 진짜 반가웠습니다.”<br><br>그녀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br><br>편히 쉬라는 말과 함께 문 밖으로 사라졌다. <br><br><br><br><br>그렇게 그녀가 나가고, <br><br>나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br><br>지금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br><br>진짜 나는 한강물에 빠져 죽은 상태이고, <br><br>여기 보이는 모든 것이 그저 환각이 아닐까?<br><br>양쪽 손 아래 느껴지는 소파의 스웨이드 가죽. <br><br>부드럽다. <br><br>나는 손을 올려 볼을 꼬집어 보았다. <br><br>아프다. <br><br>환각은 아니다. <br><br>이 사람들 도대체 누굴까? <br><br>그녀가 준 신용카드를 집어 이름을 확인했다. <br><br>LEE WOO JUNG<br><br>이우정.. 이우정.. 이우정….<br><br>이름을 되뇌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다. <br><br><br><br><br>아파트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br><br>인터넷과 케이블 방송은 물론이고, <br><br>밥솥을 비롯한 간단한 취사도구, <br><br>그리고 쌀과 밑반찬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br><br>단 한가지 준비되지 않은 점이 있다면, <br><br>그것은 샤워를 하고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이었다. <br><br><br><br><br>다음날. <br><br>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스마트키를 누르자, <br><br>주차장 입구 바로 앞에 세워진 검정색 중형차의 라이트가 반짝였다. <br><br>간단한 옷가지를 사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다. <br><br>가장 먼저 남성 속옷을 파는 매장에 들어갔고, <br><br>물건을 골라 계산을 위해 카드를 내밀었다. <br><br>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돌려준 직원이 말했다. <br><br>“고객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br><br>“무슨.. 일이죠?”<br><br>“딱 1분이면 됩니다.”<br><br><br><br>그녀의 말대로 정말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두 명의 백화점 직원이 내 앞에 나타났다.<br><br>그중 정장을 입고 있는 남성이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br><br>“정말 죄송합니다. 주차장에서 차량 번호를 인식하는 기계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br><br>그리고 그들은 나를 백화점 안쪽, 조금은 비밀스러운 장소로 안내했는데, <br><br>그곳에는 고급스러운 휴식 공간에 개인용 피팅룸이 준비되어 있었다. <br><br>아마.. 말로만 듣던 VVIP 전용 쇼핑 공간인 듯 했다. <br><br><br><br><br>쇼핑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왔고, <br><br>이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br><br>백화점에서 받은 서비스로 미루어.. <br><br>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br><br><br><br>예상대로 검색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br><br>증권가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br><br>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그녀는, <br><br>고졸의 학력으로 4대 증권사 중 하나인 이수투자금융에 입사했고, <br><br>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단 3년만에 임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br><br>소문에 의하면 가상화폐에도 손을 대고 있으며, <br><br>가상화폐를 통한 수익만 수백억 규모일 것이라고 했다. <br><br>그리고 그녀는 증권가에서 ‘미여사', <br><br>정확히는 ‘미엿사'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br><br>그것은 ‘미래를 엿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br><br><br><br><br><br>나는 전공을 살린 소소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br><br>일자리를 구하는데 박 실장의 도움이 컸다. <br><br>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우정 상무의 도움일 것이다. <br><br><br><br><br><br>이우정 상무는 종종 나를 찾았다. <br><br>회사일로 많이 바쁜 듯 했지만, <br><br>그녀는 늘 일주일에 한번 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 <br><br><br><br><br><br>하루는 식사를 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br><br>“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br><br>“앗! 그래 보여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보던데.. 하하!”<br><br><br><br>요즘 나는 경제면 뉴스 기사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br><br>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br><br>내가 주식 투자를 하는 것도, <br><br>경제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br><br>그냥 자꾸 눈이 간다. <br><br><br><br>“인터넷 기사에서 봤어요. 이수투자금융의 3/4분기 실적이 많이 줄었다고 하던데.. 그거 때문이죠?”<br><br>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br><br>“그건 아니에요. 다음주에 주주총회가 있는데, 경영권 관련해서 준비할 일이 조금 있거든요.”<br><br>“일도 좋은데.. 건강은 꼭 챙기면서 일하세요.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건강은 젊을 때부터 잘 관리해야 해요.”<br><br>나의 잔소리에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br><br>“네, 꼭 그럴게요.”<br><br><br><br>그날 식사를 마치고, <br><br>나는 그녀에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br><br>“이제는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요. 그동안 잘 썼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아파트에서도 나와 독립할 생각이에요.”<br><br>“아파트는 회장님이 준비해주신 거라, 제가 뭐라 할 말은 없는데.. 이 카드는 제가 드리는 거에요. 선물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쓰시면, 제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br><br>그녀는 아이같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br><br>“이건 진심이에요.”<br><br>“...”<br><br>“그리고 신용카드가 하나는 필요하실 거에요.”<br><br><br><br>그녀의 말이 맞았다. <br><br>은우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 <br><br>제3금융권까지 대출을 받은 것이 그 이유였다. <br><br>대출 만기일이 지나자마자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br><br>신용카드는 물론이고 모든 신용거래가 중지되고 말았다. <br><br><br><br>나의 표정을 눈치 챈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br><br>“그리고 제3금융권 대출을 받으신 건, 회장님이 10원도 도와주지 말라고 못을 박으신 터라.. 그건 이해해주세요.”<br><br>“내가 이해를 하고 말고가 있나요. 지금 이렇게 도움 받고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인데..”<br><br>그녀는 방긋 웃으며 카드를 나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br><br>“그렇게 고마우시면, 이 카드 다시 받아주세요. 음.. 그냥.. 이건.. 그냥.. 뭐랄까? 딸 같은 사람이 주는 선물?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될까요? 네?”<br><br><br><br>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그녀가 좋았다. <br><br>그녀를 볼 때마다 오래전 현정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br><br>성적인 대상으로 이우정 상무에게 끌리는 것은 아니었다. <br><br>그녀를 향한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br><br>그녀의 말대로.. <br><br>딸을 향한 부모의 마음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r><br>물론 나는 결혼을 한 경험도, <br><br>자녀를 가져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br><br>그냥 추측일 뿐이다. <br><br><br><br><br><br>시간은 흘렀다. <br><br>대출금을 거의 갚아갈 무렵이었다. <br><br>이우정 상무와 한 달 동안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br><br>그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br><br>아마도 그녀가 전무로 진급을 한 직후였기 때문에, <br><br>회사일로 바쁜 줄로만 알았다. <br><br><br><br>한 달만에 나타난 그녀의 머리에는 하얀색 리본이 달린 핀이 꼽혀 있었다. <br><br>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다 비운 후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br><br>“지난 주에 회장님이, 아니.. 엄마가 돌아가셨어요.”<br><br>“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제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고 계실 겁니다.”<br><br>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br><br>몇가지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쳐지났다. <br><br>“엄마가 죽기 전에 아저씨에게 남긴 말이 있어요.”<br><br>“혹시.. 어머니 성함이….”<br><br>그녀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br><br>“맞아요, 이현정. 아저씨 처음 만난 날, 엄마 이름을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br><br>“그럼.. 혹시….”<br><br>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고, <br><br>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br><br>“엄마 말이 맞다면, 내가 아저씨 딸이 맞을 거에요.”<br><br>“...”<br><br>“그동안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요.”<br><br>그리고 그녀는 현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br><br>그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br><br><br><br><br>현정은 전생에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br><br>그것도 한 번이 아닌, 아주 많이 반복해서 살았다고 한다. <br><br>반복되는 삶 속에서 현정은 나와 결혼을 하고, <br><br>우정을 낳아 우리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지만.. <br><br>우정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 <br><br>나는 은우라는 젊은 여자에 빠져 현정과 이혼을 요구하고, <br><br>결국 사기로 전재산을 날린다고 한다. <br><br>반복되는 삶에서 현정은 나의 외도를 막으려 백방으로 애를 쓰지만, <br><br>늘 같은 결과였다고.. <br><br><br><br><br>우정은 빈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br><br>“1999년 10월 17일, 종로3가 파고다 빌딩 앞을 기억하시나요?”<br><br><br><br>1999년 10월이면 코스모스 졸업 후 작은 출판사에 취업을 했을 무렵이고, <br><br>출판사 사무실은 파고다 빌딩 4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br><br><br><br>“혹시.. 그곳에서 내가 현정을 처음 만나는 건가요?”<br><br>우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br><br>“바로 이전 삶이었대요. 엄마는 그곳에서 아저씨에게 길을 묻지 않았어요. 엄마는 자신의 삶을 직접 바꿔보자는 결정을 내린 거죠. 더이상 비참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대요.”<br><br>“...”<br><br>“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엄마가 지금까지 살았던 삶 중에 가장 힘들었던 삶이었대요. 그날 아저씨에게 길을 묻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그랬어요.”<br><br>“왜.. 그렇게 후회를 한 건가요?”<br><br>나의 물음에 우정은 말없이 검지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br><br>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제스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br><br>잠시 후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br><br>“엄마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내가 엄마에게 이번 삶은 괜찮았는지 물어봤어요.”<br><br>“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던가요?”<br><br>“참 좋았대요. 너무 좋았고, 더없이 좋았대요. 그래도 마음 속 깊이 꾸욱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아빠 없이 나를 키운 거라고 그러더라구요.”<br><br>우정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다 이야기를 계속했다. <br><br>“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말했어요. 아빠 없어도 된다고.. 어릴 때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어요.”<br><br><br><br>< 끝 ><br><div><br></div> <div><br></div> <div>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r></div> <div>마지막 부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을 했습니다.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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