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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1447
    작성자 : 다른이의꿈 (가입일자:2012-12-31 방문횟수:862)
    추천 : 5
    조회수 : 288
    IP : 104.158.***.132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20/05/21 13:54:59
    http://todayhumor.com/?panic_101447 모바일
    [장편] 두 번째 달 - 17. 트살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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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ar 155, 아이들을 만나고 20 년 >

    다행히도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대부분의 인공위성들은 큰 문제 없이 자료를 보내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상의 센서들은 상황이 달랐다.

    제대로 된 자료를 보내는 센서는 이제 100 개가 채 되지 않는다.





    센서 기지국에서 보내주는 정보에 따르면 지상의 평균 기온은 현재 섭씨 90 도를 웃돌고 있다.

    온도가 섭씨 170 도에 육박했던 100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지구가 많이 식은 셈이다.

    그래서 절기상 겨울이 되는 극지방에서 구름이 걷힌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는 한 인공위성에서 구름 사이로 물이 흐르는 실시간 영상 자료를 수신 받았다.

    자료를 확인한 나는 우주 정거장의 트살을 호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지상에 물이 흐르는 모습은 처음 봐. 그런데 옛날 사진이나 영상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





    트살의 말이 맞았다.

    그것은 푸른 숲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의 모습이 아니었다.

    망원 렌즈로 확대된 영상에는 어두워진 하얀 벌판에 물줄기를 따라 짙은 갈색 줄이 보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지구에 남겨진 물의 양이 적었다.

    원래 지구에 있던 물의 98%는 우주로 손실되어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는 물의 대부분은 대기를 채우고 있었다.

    지금 지상에 흐르는 물 역시 금방 증발해 사라질 것이다.





    트살이 물었다.

    "혹시 지구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을까? 식물의 씨앗이나 포자 형태의 미생물이라도?"





    이제 나는 트살의 표정을 보면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즉시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이내 결과가 나왔다.

    "아쉽지만 생명체가 남아 있을 확률은 0.001%도 안되는 것으로 계산 결과가 나왔어. 지난 100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상의 온도가 150 도를 웃돌았고, 지금 흐르고 있는 물의 염도 역시 너무 높아서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야."

    트살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인공위성이 보내준 영상에서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공위성의 제어는 우주 정거장에서만 가능했다.

    나는 트살에게 말했다.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데 인공위성 망원경의 배율을 최대한 늘려줄래?"

    트살은 나의 말대로 배율을 늘렸다.

    하지만 영상이 확대되면서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위치가 영상 밖으로 벗어나 버렸다.

    나는 트살에게 정확한 위치 정보를 보냈고,

    트살이 인공위성을 조작하는 사이 물이 흐르는 지상의 모습은 이내 구름에 가려지고 말았다.





    그날 대화를 마치며 트살은 내게 말했다.

    "아에록, 네가 인공위성들을 직접 운전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 Year 165, 아이들을 만나고 30 년 >

    트살과 나무흐는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둘은 여전히 행복한 모습이고,

    최후의 인간인 두 아이들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트살은 지난 10 년 동안 수학 공부에 심취해 있었다.

    응용수학 분야 중 암호학에 특히 관심이 높았고,

    40 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트살은 배움의 열정이 높았다.





    나와 놀이를 하려는 것일까?

    트살은 종종 자신만의 신호 체계를 만들어 나에게 풀어보라 부탁하곤 했다.





    트살이 공부하고 있는 모든 암호학 교재와 자료는 내가 보내준 것이다.

    공들여 만든 신호 체계가 1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풀리면 트살은 허탈한 표정으로 웃곤 했다.





    하루는 트살이 나에게 천문학 자료를 요청했다.

    천문학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별들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에 대한 정보였다.





    한 달이 지나고,

    트살은 나에게 새로운 신호 체계를 만들어 나에게 보내주었다.

    '기록보관소'에 있는 거의 모든 블럭을 연산에 동원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풀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복잡한 신호 체계가 아니었다.

    사용된 문자가 6 개 밖에 없는 비교적 단순한 신호 체계였지만

    그 숨겨진 패턴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작위로 뽑아낸 문자와 차원의 조합이 아니냐 물었고,

    트살은 웃으며 한 달 전 내가 보내준 별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암호 체계를 만들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우주의 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대적인 위치가 바뀐다.

    물론 그 움직임이 매우 느리다.

    하지만 수만 년 단위의 천문학적 시간이 흐르면 밤하늘의 별자리 역시 조금씩 변하게 되어있다.





    트살은 일 년을 24 개의 절기로 나누었고,

    각 절기마다 자정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천정(zenith)을 가로지는 가상의 선을 만들었다.

    (천정: 관측자의 머리 꼭대기 방향)

    그리고 천정을 지나는 가상의 선에 위치하는 별 중에서 가장 밝은 6 개의 별이 밝기 순으로 선택되었다.

    이렇게 선택된 각각의 별들이 천문학적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방향을 12 개의 방향으로 나누어 분류했다.





    즉, 12 진법의 24 차원, 그리고 6 개의 문자를 가지는 비교적 간단한 신호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무척 기발한 발상이었다.

    나의 칭찬에 트살은 미소지으면 말했다.

    "아에록, 이 암호 체계의 중요한 특징이 무엇인지 아니?"

    "글쎄... 네가 10 년 가까이 공부한 암호학 이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

    트살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태양이 우리 은하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누구나 이 신호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거야."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특징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신호 체계는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 느리긴 하지만 밤하늘의 별들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절기에 속한 별이 서쪽 방향으로 이동한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별은 두 번째 절기에 관찰되는 별로 바뀌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만 년 단위의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신호 체계가 아님은 분명했다.





    트살은 스스로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물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별이 움직이면서 신호 체계가 바뀌지 않느냐고.

    나의 물음에 트살은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그거야! 이 신호 체계를 이용하면 신호를 발신한 사람이 언제 신호를 보냈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게 바로 두 번째 중요한 특징이야. 신호 체계 자체가 일종의 시계인 셈이지."

    트살의 대답에 나는 그냥 발신 시간을 전파 신호에 실어서 보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97.2%.

    트살의 얼굴 표정에서 분석되는 만족감의 수치였다.

    이렇게 높은 만족감을 느끼는 트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트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 Year 171, 아이들을 만나고 37 년 >
     
    트살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우주 정거장의 중앙 컨트롤 장치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를 드디어 풀었다고.





    우주 정거장의 중앙 컨트롤 장치는 매우 정교한 암호로 잠겨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반인류주의 단체가 우주 정거장의 중앙 컨트롤 장치를 접근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훈련을 받던 연구소가 반인류주의자들에게 장악되었을 때

    그들은 우주 정거장을 추락시키려 했었다.

    종말 이후 인간이 남겨지면 안된다는 그들의 믿음을 실제로 실행한 것이었다.

    다행히 추진 장치가 작동된 것을 눈치 챈 우주 정거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서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주 정거장의 중앙 컨트롤 장치는 정교한 암호로 보호되었고,

    지구를 공전하는 모든 인공위성은 우주 정거장의 명령만을 따르도록 변경이 되었다.





    순간 익숙하지 않은 전파 신호가 들어왔다.

    선물을 보냈다는 트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것이 무슨 신호인지 알아차렸다.





    전파 신호는 7 년전 트살이 개발한 신호 체계를 이용해 해독할 수 있었다.

    해독된 전파 정보는 다름 아닌 우주 정거장의 중앙 컨트롤 장치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였다.





    암호를 입력하자 중앙 컨트롤 장치의 데이터들이 수신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공위성의 운전과 통제 정보들이 자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우주 정거장의 추진 장치를 비롯한 모든 기계 장치들의 실시간 운전과 제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우주 정거장의 내부와 외부에 위치한 카메라를 통해 우주 정거장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지난 33 년 동안 나는 트살과 나무흐가 알려주는 단편적인 정보를 조합해 우주 정거장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실시간 영상에서 보이는 우주 정거장의 전체적인 모양새와 구조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파손된 장비와 낡아진 외부 표면은 200 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가장 다르게 느껴진 곳은 바로 정원이었다.

    그곳은 온통 초록빛의 식물로 가득차 있었고,

    특히 벽과 천장은 온통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정원의 문은 사람이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흙길로 이어져 있었다.

    흙길 양 옆에는 보라색과 노란색의 튤립 꽃이 빽빽이 피어있었고,

    그렇게 꽃길을 가로지르면 야채를 기르는 밭이 나왔다.

    그리고 한 그루의 낮은 나무에는 붉은 빛 과일이 열려 있었다.

    나무 아래 그늘에는 두 개의 낡은 나무 의자가 서로를 마주보게 놓여 있었는데,

    꽃밭을 향해 위치한 의자가 나무흐의 것이었고,

    반대편 곡물을 수확하기 위해 심어진 기장 식물을 향한 의자는 트살의 것이었다.





    우주 정거장의 복도와 몇몇 방의 내부를 보여주는 영상 역시 접근이 가능했다.

    그리고 영상 속 나무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트살에게 물었다.

    "나무흐는 이 시간에 벌써 잠자리에 든 거야?"

    트살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나무흐가... 요즘.. 많이 아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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