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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코타맨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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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101256
    작성자 : 테라코타맨
    추천 : 0
    조회수 : 1751
    IP : 45.24.***.208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20/03/31 12: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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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은 어떻게 연마되는가 (저항군 야전 전투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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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은 어떻게 연마되는가 (저항군 야전 전투교본)



    진주

    ", 정말 행복하고 싶다."

    제국 변방 주변부에서의 삶은 절정의 생명력을 가진 이십 대 청년마저 시들게 한다. 발전과 진보, 만물의 영장이란 설레발은 과학과 역사 교과서 속에만 머물뿐 그의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비좁고 더럽고 시끄러운 반지하방이 그가 거하는 공간 좌표라면 '21.0'은 그가 처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시간 좌표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 사이 딱 한 순간만 튀어 올랐다 사라지는 '지금'이라는 시간의 황금 델타 함수는 습기와 냉기로 가득찬 반지하 공간에 갇혀 있는 그의 육신을 단 한 순간도 구원해주지 못했다.

    절정기이며 봄날이라는 그의 인생은 2월의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차가운 세상의 지면과 맞닿아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아침 햇살의 밝기에 비해 턱없이 크게 들리는 사람들 발소리 자동차 바퀴소리뿐. 하얀 입김과 함께 그의 생일이 밝은 것이다. 두 다리는 아직 이불 속에 둔 채 상체만 일으킨 그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고 눈을 부비고 나서 두 손을 털썩 이불 위에 떨어뜨린다. 손등에 닿는 이불보마저 차갑다.

    ", 정말 오늘만이라도 따뜻하고 싶다."

    마르고 닳도록 기다린 토요일이 생일보다 더 먼저 다가온다. 보장은 고사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일자리에 가 닿기 위해 4년의 젊음과 억 단위의 돈을 쏟아붓는 중인 그는 요즘 부쩍 당장의 작은 행복을 갈망한다. 호황은 사후통보 형식으로만 접하고 불황은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예고편과 속편까지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꿈을 꿀 수 없는 세상에 살면서 얻은 삶의 지혜라고 할까.

    "세상살이는 왜 갈수록 힘들어지는 걸까? 산업혁명 과학혁명 녹색혁명에다가 경제기적, 역사종말론까지 난무하는 세상인데 말이야."

    광화문 네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커피집에서 그는 친구 은성과 마주 앉아 있었다. 영하의 기온으로 얼어붙은 스산한 거리에서 도망쳐 올라간 그곳은 따뜻한 실내에서 토요일 아침의 느긋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백진주! 너답지 못하게 왜 주말 아침부터 징징거려. 세상은 원래 그래. 물리학에서도 그러더만, 엔트로피는 증가한다고. 혁명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다 그냥 책에 쓰여 있는 말일 뿐이라고."

    "과학으로 못 하는 일도 없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발전했다고들 하는데, 세상살이는 그대로도 아니고 왜 자꾸만 더 힘들어지느냔 말이지. 난 그게 정말 궁금해. 제국의 평화와 번영, 그거 헛소리였던 거야?"

    "그게 왜 헛소리야. 누가 군사력으로 제국에게 달려들겠어? 평화! 누가 경제력으로 제국의 군사력을 이길 수 있겠어? 번영! 구구절절 진리의 말씀이구만."

    은성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코웃음쳤다. 따뜻한 실내에서도 그는 두툼한 외투를 벗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마른 얼굴이 파리했다. 은성은 그의 반지하방에서 멀지 않은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은성은 평소에 훨씬 더 과격한 편이었다.

    "선과 악이 존재하는 것은 맞아. 다만, 선은 약한 사람들의 희망 속에 간신히 존재하고 악은 강한 자들의 주먹에 실재하지. 군사적인 패권을 갖고 있다고 자동으로 제국이 되는 게 아냐. 다양성을 품어내고 모두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경제적, 철학적 능력을 갖추어야지, 제 나라만 잘 살겠다고 해서야 그건 깡패 국가일 뿐. 또 제 나라 전체도 아니야. 한 줌도 안 되는 지배계급들만의 사적소유물이지. 놀랍게도 그게 딱 다섯 명이라면 누가 믿겠냐고.."

    하지만 그도 은성도 그뿐이었다. 현실적으로 불평불만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하루하루의 삶은 너무도 생생하여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반면 그런 막대하고 막중한 일들은 너무 거대하여 이미 현미경으로 초점 맞추어진 그들의 눈과 손에는 아예 잡히지도 않았다. 제 시간에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호황과 실시간으로 뼛속까지 파고드는 불황의 살얼음판 널뛰기에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그저 중심 잡고 서 있는 데에 급급할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왜 만나자고 한 거야? 그것도 방학 막바지에."

    "방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집에 그냥 붙어 있을 수가 없어서."

    "그럼 학교 도서관이든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갈 것이지, 커피집에는 왜?"

    "그냥. 옥탑방은 괜찮아?"

    "반지하방보다 더 하면 더 하지 덜 다면 그게 정상적인 우주겠냐?"

    "하기야 제국의 중심부에도 반지하방과 옥탑방은 있을 테니까."

    "어쩌면 더 많고 더 추울지도 몰라. 제국의 빛과 그림자는 제국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가려 가며 각각 어느 한 곳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 중심부라고 해서 빛만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부라고 해서 그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중심부의 그림자가 더 짙고 주변부의 빛이 더 밝을 수도 있지. 기억해. 중심부와 주변부가 따로 있지도 않아. 프랙탈 방식으로 무소부재할 뿐."

    은성의 말대로 중심부의 그림자가 더 짙을지는 몰라도 설혹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들어와 있는 주변부의 그림자가 더 엷어질 것도 아니었다. 두어 시간의 한담 끝에 커피집에서 거리로 나올 때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고 쌓이는 밤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겨울밤보다 더 따뜻하다잖아. 우리 같은 우주의 헐벗은 중생들을 위하여 하늘이 내리시는 이불이라고나 할까."

    반온반냉의 말을 남기고 돌아서 멀어지는 은성을 보면서 백진주는 시린 손을 호주머니에 넣는 것도 잊은 채 서 있었다. 짧은 해 때문인지 더욱 거세지는 눈발 때문인지 하늘은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그건 맷집이 좋은 강철씨의 경우이고, 아무개씨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내려치면 산산히 부서지기 십상이야. 그대처럼 섬세한 영혼은 시간을 두고 뜸 들여가며 한 층씩 쌓아올려 작품을 만들어가는 삼차원 반도체 같다고나 할까. 아니, 그 이름에 이미 답이 들어 있다고 해야겠군.. 진주는 어떻게 자라는가? 거친 대장장이의 모루와 망치를 찾아올 게 아니라 천연 박막 반도체 제조기 진주조개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조심해. 선은 중심 어딘가에만 머물지만 악은 구석구석 파고 든다는 사실을 말이야. 우리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은 필경 선보다 악일 테니까."

    세상에 대한 냉소가 몸에 배어 있는 은성의 말이었지만 오늘 따라 그 말들이 진주에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온통 불합리한 세상이 그의 존재 어딘가를 자극하는 것이다. 지독한 2월의 추위가 그의 육신을 괴롭히듯 이 거대한 세상의 악은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것은 거악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그런 거악에 끝없이 적응해가다가는 마침내 자신의 존재가 없어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루비

    현실을 조직하고 반영하는 방편으로 출발했지만 점점 더 독립적이 되어 가고 심지어 현실을 종속변수화, 이차화하며 세상의 본체, 본무대가 되어 가는 듯한 가상현실로서의 인터넷. 그 속에 제국의 모든 정보가 모여 있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을 애초에 만들어 내고 운영하는 주체인 제국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비밀 단체에 대한 정보는 겹겹이 숨겨져 있었다. 인터넷의 하드웨어인 서버, 데이터 센터, 유무선 통신망, 전력망까지 모두 한 손아귀에 쥐고 있는 제국의 정보부가 마음만 먹으면 공공서비스망에 잠깐 접속되어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작은 가상 서버까지 다 색출해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 거대한 인터넷의 하부구조 위에 실려서 끊임없이 유동하고 요동하는 인터넷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는 제국의 비밀경찰이 급습할 수 있는 지점과 시점을 꼭 집어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어서, 또 하나의 인터넷을 가동할 수 있는 강력한 수퍼컴퓨터를 별도로 인터넷에 물려 온전히 감시용으로 돌린다 해도 한 바이트의 불순 데이터까지 다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저항군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현재의 수퍼컴퓨터로는 백억 년이 걸려도 깰 수 없다는 암호 시스템으로 보호된 겹겹의 가상현실 보안 단계를 거치고 마지막으로는 현실 속에서 사람을 직접 만나 삼차원 프린터가 꼬깃꼬깃 뭉친 종이공 형태 그대로 눈앞에서 찍어내는 암호 쪽지를 받기까지 했다.

    "환영한다. 저항군에 자원한다니."

    저항군 총사령관을 직접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못했다. 진주와 은성은 화면 속에 나타난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다. 목선이 유려한 미남형의 그 사내는 이십대인 그들의 눈에도 총사령관으로 불리우기에는 너무 젊어보였다. 몇 단계의 보안 시스템을 지나 만난 인물치고는 너무 함량이 낮아 보인다고 할까. 잿빛의 긴 수염에 정수리에서 발목까지 덮는 수사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중후한 직업군인의 노회한 눈빛을 기대했지만, '총사령관'은 영낙없이 밀덕 코스프레를 여태 떨쳐버리지 못한 철없는 삼십대, 전투원으로 쓰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지휘관으로 쓰기에는 너무 나이가 적어보이는 그런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딱 하나, 얼룩덜룩한 위장복에 싸인 어깨는 넓어보였다. 진주의 반지하방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제국은 경제력보다는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제국을 무너뜨리겠다고 하면서 총 한번 잡아본 적 없는 나약한 사람들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총으로 흥한 자 저절로 총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다. 총으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제국을 극복하기 위한 바른 길, 지름길에 들어선 두 사람을 격하게 환영하는 것이다.

    "제국군은 무적의 신화를 쌓아가고 있다. 제국의 육해공군과 해병대, 우주전단, 전략군, 로봇군단은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백만 명을 훌쩍 넘는 군대는 정규전과 게릴라전을 가리지 않고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한다. 제국 자신까지 포함한 온 지구를 수백 번 무균화, 무생명화시킬 수 있는 일만 개의 핵탄두, 미사일, 핵잠수함, 핵배낭과 같은 자살용 사이코패스 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전지구 레이더망, 인터넷 감시망, 인공지능/빅데이터 무기화, 순항미사일 대체용 살인 드론, 테러리스트 표적살해용 스마티스트 폭탄과 같은 첨단무기 시스템은 오직 제국만이 보유하고 있다.

    "그럼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는 어떤가? 초음속 스텔스 전폭기와 유도탄에서 항공모함과 잠수함까지, 심지어 개인 화기와 개인 군장까지 그 모든 분야에서 제국은 전쟁 도구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인회가 바로 재래식 무기 체계를 자신들의 장난감이나 취미생활로 생각하는 자들이지. 태생적으로 오직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괴물들인데 그 두 가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제국의 무기 체계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으며 군사력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취미생활도 하고 돈도 벌고 권력 다지고. 꿩 먹고 알 먹는 경우란 바로 이런 경우다.

    "사이코패스 전력도 공포스럽고 첨단무기 시스템도 가공할 만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때 가장 두려운 게 바로 저 재래식 무기 체계이다. 핵과 첨단 무기 쪽은 그 파괴력의 정도가 너무 심하거나 너무 꼼꼼해서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싫어할 수 있지만 재래식 무기들은 수천년 인류 역사를 통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것들이라 거부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모두 쓸어버리거나 딱 한 사람씩 백발백중으로 저격하지 못하는 그 어정쩡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은 그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괴한 사이비 신앙을 갖게 되었거든. 재래식 무기 체계에 대한 제국 국민들과 피지배국들의 국민들은 그래서 결과적으로 재래식 무기 체계에 의한 전쟁, 전투, 작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문제는 제국이 온 세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도구는 바로 사람들이 우습게 알고 편하게 여기는 재래식 무기 체계라는 점이다."

    루비 총사령관의 말은 갈수록 그럴 듯했다. 지금까지 진주와 은성은 핵과 최첨단 무기 체계만을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의 상징으로 여기고 절망했던 것인데, 총사령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들이 직접 맞닥뜨릴 것은 재래식 무기 체계란 깨우침이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재래식이든 아니든 제국의 무기에 대항하려면 우리도 역시 어떤 무기라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무기를 우리가 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은성이 물었다. 늘 냉소적이기만 하던 그는 지금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에 진주는 적잖게 놀라고 있었다. 그냥 머리와 맨입으로만 하는 거대담론주의자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맞아. 제국을 상대로 싸우려면 결국 우리도 무장해야 하니까. 그 대목에서 나는 지지율은 결국 군사력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여론조사처럼 막연한 데이터가 어떻게 구체적인 군사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나 자신도 당장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론, 그러니까 민심은 그저 컴퓨터 저장 장치에 저장되고 뉴스 화면에 올라오는 실체없는 숫자가 아니라 민중들의 두뇌와 손과 발을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나는 믿는다."

    진주는 은성의 얼굴에 떠오르는 실망의 빛을 놓치지 않았다. 제국의 군사력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열광했다가 논리적인 결론이나 추정도 아닌 신념이나 신앙 쪽으로 급선회하는 총사령관에게 약간의 허탈감을 느끼는 은성을 진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민심은 천심' 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천심이 심리전을 위한 '실탄' 말고 개인화기용 총알로 바뀌어 저항군의 무기고에 쌓이리라는 굳센 믿음은 가상현실 게임 머니 또는 백지어음의 느낌만 났던 것이다.

    "모든 면에서 가장 구체적이어야 할 군사력에서 천심이나 지지율이 바로 무기라고 하니 솔직히 실망입니다. 우리가 지금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 수단인 제국군의 재래식 전력을 논하고 있죠?"

    은성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 역시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보통 그같은 경우 그럴 줄 익히 알고 있었다는 투의 냉소적인 입장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마는 게 은성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기는 많아. 너무 많은 게 탈이지. 따라서 무기 자체보다는 무기가 주어졌을 때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자는 게 우리 저항군의 일차적인 목표야. 그리고 뜬구름 잡는 듯한 천심이 철판을 관통하는 실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천심은 그래도 자연발생적인 민심을 반영한다지만, 그럼 작위적이기 이를 데 없는 광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광고도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 민심과 천심이 거대한 에너지임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마음, 지지, 지원, 정보. 모두 돈이고 힘이지.

    "지지율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그대로 네트웍의 힘이 되는 세상이야. 다시 말하지만 세상의 힘은 네트웍에 존재한다. 전 세계에 깔려 있는, 뭇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실체 중 실체가 바로 우리 저항군, 반군이란 존재야. 그대들이 굳이 실체를 고집한다면 지금 우리의 무기고에는 플라스틱 비비탄을 발사하는 모의전투용 공기총밖에 없다. 실망했는가?"

    저항군은 제국을 눈을 피해 밀덕 곧 군사 매니아들로 위장하고 있다는 게 저항군 총사령관의 마지막 설명이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백만 군데의 모의전투장과 지역별로 조직되어 있는 밀덕 동호회가 바로 저항군의 실체라는 것이었다.

    "저항군이야 밀덕후들이야? 플라스틱 총알로 제국 군대를 제압하겠다는 게 말이 돼?"

    루비 총사령관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은성이 진주에게 말했다. 그는 어지간히 실망한 눈치였다. 밀덕후들의 마케팅에 완전히 속았다는 것이었다.

    "군사적인 저항마저도 일상생활 속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나한테는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리던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냥꾼이 훌륭한 병사 되고 농기구가 무기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나저나 제국의 중심부마저도 그렇게 사는 게 팍팍하다니 걱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진주는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 화면 속 루비 총사령관은 제국의 심장부에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주변부에 살고 있는 진주와 은성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른 게 있었다면 막강한 제국의 힘에 기죽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제국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로 플라스틱 총알을 발사하는 공기총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들처럼 젊다면 나는 제국의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제국의 군대에 들어가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제국군의 장교가 될 것이다. 일단."

    루비 총사령관의 말이었지만, 은성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는 것이다.

    "밀덕들 상상력 뛰어나네. 밀덕 게임을 참 진지하게들 한다. 전쟁을 진짜 게임으로 생각하나 봐. 겹겹이 쳐진 그 보안장치와 의식들이 다 게임의 일부라니 정말 실망이야. 제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위장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정교한 게임에 지나지 않았어."

    "전쟁과 게임,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도 있지 않을까.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은 실전처럼 한다는 말도 있잖아. 밀덕이나 모의전투 클럽 같은 것은 제국의 비밀경찰의 눈을 피하는 방법으로서는 훌륭하고."

    진주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는 저항군, 아니 루비 총사령관의 모의전투 클럽에 가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국의 주변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짐승 같은 삶을 이어가기는 싫었다. 인류 역사의 필수 요소, 군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오렌지

    제국이란 원래 하드 파워뿐 아니라 소프트 파워를 자신의 한계 너머로 발사하고 발산하여 문화, 인종, 국경과 같은 인위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제국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제국의 안과 밖의 구별이 뚜렷했다. 제국이란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국이라면 당연히 초월해야 할 국경이란 개념은 흐릿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뚜렷해지고 있었다. 제국과 주변국 사이에 물리적인 장벽이 설치되기에 이를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제국은 제국이라고 할 수 없었다. 통상적인 국가 체제간 국제관계에 흔한 중심국과 주변국이 있을 뿐, 하나의 유기적인 제국 체제의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그 군사력으로 억지로 끌고가는 기생적인 경제력으로 제국을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제국에서는 오인회와 그 주변에 포진한 한줌 정도의 지배계급 외에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제국의 중심부라 해야 할 중심국의 직할 국민들이나 주변국의 국민들이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유기적인 체제로 돌아가야 할 제국이 실은 국경이란 장벽으로 갈갈이 찢겨 있어서 삼투압으로 작동하는 하이에나 자본 말고는 아무것도 소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운영체제에 따라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국은 역사의 종착역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체제 변혁은 고사하고 사소한 개량주의마저 반체제로 몰고 있는 터였다.

    오렌지의 삶이 그랬다. 세계의 심장 뉴욕에서 모든 주변국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제국 시민권 소지자로서 그의 삶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제국'답게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적 개량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제도와 전국민의료보험제도는 최소한에 그쳤고 기본소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생존마저도 오직 자기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해야 했다. 그런 마당에 일자리의 보장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었다. 실물경제든 금융경제든 경제는 모조리 시장의 손에 맡겨야지 정치가 개입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가장 정치적인 순수경제주의에 따라 제국의 국내 경제에서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시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거시적으로는 확실성이 지배하는 경제, 승률이 조작되어 있는 슬롯머신 경제에서, 99퍼센트에 속하는 그는 불확실성 세계의 게임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오렌지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다. 일자리는 없었다. 일거리가 있을 뿐이다. 일감은 여러 경로로 들어왔지만 확실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부르는 단가와 시장의 가격변동곡선이 교차하는 시점과 지점에서 일회성 거래가 이루어지고 제국의 국민총생산은 올라가고 그는 일당으로 생활비를 버는 것이다. 그의 기준으로 벌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불확실성 때문에 일거리마다 그는 몇날며칠 밤잠을 설쳐가며 전력투구했다. 시장이라는 변화무쌍, 변덕무쌍의 불가사리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감이 있을 때 확실히 벌어두지 않으면, 시장의 미세한 요동과 불운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이 서너개 나란히 늘어서는 사태가 발생하면 그는 21세기 대명천지에서 말 그대로 굶어죽고 얼어죽을 수도 있었다. 제국의 중심 뉴욕의 겨울은 살인적이었다. 그의 안으로 곡기가 끊기도 밖으로 전기가 끊기면 말이 되든 안 되든 그저 죽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는 전기도 끊겨 보았고 곡기도 끊겨 보았다. 다행히 두 개의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진 않았다. 그런 경험 이후, 그는 비로소 프로그래밍 시장에서 한 명의 훌륭하기 짝이 없는 프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시스템의 불안정은 개인적으로 구축한 버퍼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산전수전 다 겪은 전천후 능력자가 된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거리라도 신의 은총으로 감사하고 혼을 담아 해내는 영적인 프로그래머가 된 것이다.

    제국에서의 삶은 그렇게 짜릿하고 박진감이 흘러 넘쳤다. 발전의 적은 안주하는 것.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강박적으로 혁신하고 개량하는 생존경쟁의 법칙이 오늘날의 제국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예정된 운명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자기 하기에 달려 있을 뿐. 포텐셜의 정상에서 그렇게 굴러떨어지기 시작한 수억의 사람들이 한데 엉킨 거대한 바이오 매스는 가속에 가속을 더하여 포텐셜의 기슭에서는 이제 아무도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벼락 같이 구르며 모든 것을 깔아뭉개고 있는 중이었다.

    오렌지가 최근에 끝낸 일감은 사람 인터넷과 사물 인터넷에서 매순간 생산되고 소비되는 수백수천 경 바이트의 빅데이터를 처리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국가보안 프로그램이었다. 수천 명의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들이 참여하는 대형 정부 프로젝트였다. 그 규모와 성격으로 볼 때 최소한 국립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추진할 법도 했지만 제국 정부는 독실한 자본주의 신도답게 철밥통이 보장되는 국립연구소 연구원들보다 비용은 낮추고 품질과 생산성은 높일 프리랜서들에게 프로젝트를 맞긴 것이었다. 주사위 놀음으로 세상 굴러가게 만들기, 그것은 오인회의 재테크 기법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들은 이길 수밖에 없으면서도 긴장과 재미 가득한 게임을 좋아하니까.

    "거기나 여기나, 제국 국민들이나 우리나 사는 게 비슷비슷하네요. 이래가지고서야 굳이 제국 시민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겠는데요.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아직 많긴 하지만요."

    "우리들은 딱 두 가지 경우에 제국 시민 되길 잘 했다고 생각하지. 바로 영화와 뉴스를 볼 때. 제국의 힘과 위대함, 아름다움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으니까."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형이 하는 일을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을까요?"

    진주는 화면 속 오렌지를 쳐다보았다. 그는 제국 타도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세상을 떠돌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비행기는 물론이고 자동차나 지하철을 탈 필요는 없었다. 이미 태반의 현실이 가상현실로 들어간 세상이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십중팔구가 가상현실 속에서 이루어졌다. 실질적인 군사력을 움직이려는 루비 총사령관 빼고는 아무도 높은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지 않고 만나주었다.

    "생활비 또는 밥 벌이 시간 빼고는 나는 주로 내 블로그에서 놀고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내 블로그를 같이 운영해보면 어떨까 해. 사람으로 나서 제 목소리는 확실히 내면서 살아야지 싶어 시작한 블로그야."

    "추적을 피하기 위해 몇 개의 서버들을 징검다리 삼아 인터넷에 잠깐잠깐씩 접속하는 익명의 비밀 블로그이겠지요?"

    "아니야. 늘 접속되어 있고 아무나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는 그런 블로그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진실 뿐, 어쩔 땐 너무 무미건조한 사실뿐이긴 하지만 말이야."

    오렌지 블로그는 통계 수치 위주의 정보가 올라가 있었다. 제국의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사회, 문화, 교육에다 스포츠까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분야에서 정부 또는 민간이 공표한 사실 자료들을 1차 가공만 거친 상태로 올려놓고 있었다. 모두 인터넷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들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결과물들로서 무수한 도표와 표 그리고 수치 자료들이었다. 가장 강한 무기는 진실 자체라며 제국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제국 국민 하나하나를 그 거울 앞에 앉히는 게 목표라고 했다. 스토리 텔링이 중요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팩트 체크가 더 우선적이고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황금

    제국 최장기수에 등극하는 데 무려 백 년이 걸렸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을 넘고 110가 넘은 지 벌써 수십 년째, 죄수 많기로 유명한 제국의 감옥에서 몇 년만에 최장기 수감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골든 파이, 119살 노인이다.

    제국 정부 컴퓨터를 해킹하여 1 테라바이트 넘는 기밀 정보를 빼내 공개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된 때는 19살 무렵이었다. 제국 역사상 최악의 해킹 사건을 일으킨 그를 제국 정부와 법원은 가장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어 세상과 격리했지만, 뜻있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를 '테라'리스트란 애칭으로 불렀다. 백년 중에서 처음 팔십 년 동안은 제국 정부가 그리고 마지막 이십 년 동안은 그가 가석방을 거부했다. 제국의 사법기관과 대중매체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필요할 때마다 그를 위험천만한 크래커, 빨갱이, 테러범, 매국노로 색칠하고 덧칠하기에 바빴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그가 세상에 내보낼 수 있도록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한 달에 20 킬로바이트였다. 2만 자 남짓, 그 길지 않은 문자 정보 안에 혹시라도 해킹 코드가 숨어있을까 봐 제국 정부는 그의 말을 아날로그 방식 녹취록으로 만든 다음 음색까지 없앤 기계 목소리로 재녹음하여 내보냈다. 마지막까지 그 정보는 컴퓨터나 인터넷으로 처리되거나 전송되지 않았다.

    제국 정부의 그 모든 노력과 극히 제한된 세상과의 소통 채널에도 불구하고 전설의 해커 골든 파이는 꾸준한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의 백 살 생일과 수감 백 주년기념일은 대중의 관심이 폭발는 기회가 되었다. 그가 한 달에 한 번씩 세상에 내보내는 20 킬로바이트는 무수히 복사되어 기계 목소리 원본과 텍스트로 옮긴 문자본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녔으며 기상천외한 해석본들이 나돌기도 했다.

    "한 달에 20 킬로바이트로 제한되어 있는 세상과의 소통 채널에 만족하십니까?"

    "처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침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정보 통제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물론 내가 해커라는 특수한 범주에 속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수준의 인권을 주장한다 한들 저들이 받아들여줄 리 만무하지만, 내가 세상에 내보내는 정보 하나하나에 제국 정부가 보인 그토록 민감한 반응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며 과장되어 있다고 억울해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한 달에 20 킬로바이트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지금은 순간순간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보의 생산, 저장, 유통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테라바이트, 겹테라/요타바이트 (10^24) 속도로 이루어지는 세상이죠. 이런 상황에서 많은 정보는 정보의 바다를 더 크게 만드는 동시에 더 탁하게 만드는 작용을 합니다. 내가 생산한 정보의 수명이 길기를 원한다면 내가 생산하는 정보의 양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지간히 정제해서는 인터넷의 넓고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데 메모리와 컴퓨팅 파워만 잡아먹는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말지요. 나는 그 사이 제국 정부의 본의아닌 도움 덕분에 제가 생산하는 정보를 제련, 정련, 정제하며 갈고 닦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백년 동안 100 메가바이트 넘게 쌓였는데 그만하면 인류의 기록보관 시스템에 크게 부담되진 않는 크기라고 보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 관계에서 표정과 말투가 언어 그 자체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고 합니다.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정부는 오직 문자 정보만 내보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사전달에서 표정과 말투와 같은 비언어적인 형식이 언어 그 자체의 형식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내가 직접 제어하고 조절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서 비언어적인 요소들은 언어적인 요소에 비해 그 가능성 면에서 현저히 떨어집니다. 주로 의식 작용에서 나오는 언어와 주로 무의식 작용에서 나오는 비언어적인 요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무미건조할지는 몰라도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언어 쪽을 고르겠습니다. 비언어적으로 본의 아니게 오해받기 보다는 언어적으로 확실히 이해시켜 주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문자는 정보 표현수단의 제왕이잖아요. 그리고 결국 컴퓨터가 인류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게 될 터인데 컴퓨터에게 가장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이기도 하겠구요."

    "해킹 천재, 컴퓨터 천재로 유명하신데, 감옥 안에서 보낸 지난 백 년 동안 컴퓨터를 한번도 만져보지 못하고 아예 그 근처에도 못 가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괜찮은가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내보내는 20 킬로바이트 문자열이 해킹 코드일 수 있다고 제국 정부는 보고 있는 듯합니다. 단 한 줄짜리 프로그램으로도 컴퓨터를 영원히 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에게 의미 있는 일을 시키기에, 그러니까 제국 정부 컴퓨터를 해킹하기에 20 킬로바이트는 좀 적은 감이 있겠지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컴퓨터는 훨씬 더 수다스러운 편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지난 백 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진보한 것 같더군요. 인공지능이 완성 직전의 단계에 와 있다구요. 완성되면 인공지능이 천연지능과 같아져 컴퓨터가 인간이 된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프로그래밍의 대상에는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도 포함될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라는 최첨단 인공지능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그것은 실은 내가 지난 백 년 동안 해온 일입니다. 인간 영혼 해킹하기, 인간 마음 프로그래밍. 그러고 보면 나의 20 킬로바이트짜리 짧은 글들, 해킹 코드가 맞긴 맞았던 셈이군요."

    "그 짧은 글, 기계소리 녹음본이 무수한 낭송본으로 재녹음되어 인터넷에 되올려지는 것을 보면 말씀하신 그대로네요. 하나의 목소리가 수백, 수천만의 목소리로 메아리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최장 장기수라는 사실은 투쟁을 가장 길게 끌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제국과 어떻게 싸워야 하고 어떻게 오래 싸울 수 있을까요?"

    "제국의 채찍과 당근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감옥 안과 밖을 막론하고 밀려오는 제국의 힘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국의 막강한 힘의 근원인 우리 안에 있는 탐욕 버리기, 그리고 대량소비사회인 세상과의 주요 소통방식인 소비로 투표하기 정도가 되겠죠. 물론 내 안의 탐욕을 버려야 할 무엇인가로 알아차리기도 힘들고 실제로 버려나가기도 어렵습니다. 명상을 추천합니다. 겉에서 보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뇌 그리고 생각 감정 오감의 문제이거든요. 나와 세상을 잇는 인식 채널과 소통채널을 제국에게 장악당하면 모든 게 끝입니다. 마지막으로 조바심 내지 않고 인내하기. 바위조차 모래더미로 부서져내리게 하는 시간이라는 마법은 빅뱅 이후 만유의 운명이니까. 제국 최장기수인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복역한 만큼 제국의 수명을 짧게 했다고.. 믿습니다."

    골든 파이 인터뷰. 진주가 그를 만났다. 그의 20 킬로바이트 중 일부를 오렌지 블로그에 싣기로 했다.

    에메랄드

    연방수사국과 총기국의 합동작전은 싱겁게 끝났다. 황무지 한 가운데에 있는 그 작은 마을에는 그들의 이목을 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채색의 긴 통짜옷을 입은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좁고 작은 흙집에는 컴퓨터 말고는 전기를 쓰는 가구도 살림살이도 별로 없었다. 마을 옆 너른 황무지에 일정한 간격으로 들어선 둥글납작한 온실들은 인상적이었다. 지붕은 태양전지판을 겸한 햇빛 조절판이었고 벽체는 유리와 세라믹 판재로 되어 있어 이음매가 눈에 띄게 깔끔했다. 한겨울인데도 온실 안은 작물들로 꽉 차 있어 온통 초록색이었다.

    "저게 다 뭡니까?"

    두툼한 방탄복에 투박하게 생긴 소총을 들쳐맨 지휘관이 취옥에게 물었다. 그가 데려온 수십 명의 부하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범죄 현장을 덮치러 온 특수요원들이 갑자기 관광객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마을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 식량, 에너지가 모두 저기에서 나오니까요. 한 채에 1/4에이커씩이니 저 온실들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백 에이커쯤 될 겁니다."

    "그렇게 큰 땅이라면 천 명 아니라 만 명도 먹여살리겠는데요."

    "물론 우리 공동체에서 다 소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 식량, 에너지는 사유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우리 공동체의 생각입니다. 대부분 이 지역에서 지역화폐 거래나 물물교환으로 소비되지요."

    "일년 내내 비도 거의 오지 않는 이 사막, 황무지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깥은 열지옥이지만 온실 안은 식물들에게 천국이지요. 온도와 습도 그리고 일조량까지 자동으로 조절되거든요. 그것도 온실마다 다른 기후로. 한대, 온대, 아열대, 열대는 물론이고 고랭지 기후까지 우리 농장에는 없는 기후대가 없을 정도입니다. 식물, 특히 작물에 관한 한 이곳은 지구의 축소판, 진정한 '제국'인 셈이죠. 네바다 엠파이어 농장."

    "이곳은 사막을 태양전지판으로 뒤덮어 놓아 에너지는 충분한 테니 온도와 일조량 조절은 가능하겠지만 습도, 즉 물까지 그렇다고 하니 그 점이 놀랍네요. 이 정도 메마른 지역에서는 지하수도 엄청 깊이 들어가야 할 테고 말입니다. 없는 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귀하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막 공동체의 장로 룻 에머럴드. 반갑습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저는 연방수사국 서부 기동대 소속 타미 테일러입니다."

    녹색 보석 취옥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룻은 타미 테일러가 마음에 들었다. 무지막지한 연방수사국 수사원이 아니라 손자 같은 느낌이었다. 공동체에 세밀한 관심 기울이는 모습이 좋았다.

    "저 온실 하나하나가 우주선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수분에 관한 한 완전한 기밀이 유지되고 있거든요. 출입구마다 우주선에서 볼 수 있는 기밀실이 설치되어 한번 안으로 들어간 물은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 지역은 화성처럼 건조하다고들 하는데 저 온실 하나하나가 화성의 표면, 화성 사막에 건설한 화성식민지라고 상상해 보세요."

    ", 그러고 보니 입고 계신 옷은 바로 과학소설 화성연대기에 나올 법한.."

    "맞아요. 초록 통짜 두루마기."

    엠파이어 농장이 타미의 눈앞에서 화성식민지로 변신하고 있었다. 취옥 장로를 비롯한 공동체 사람들이 화성인으로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은 서로막역한 옛 친구 같다고 생각했다.

    타미 테일러는 며칠 만에 네바다 엠파이어 농장으로 되돌아왔다.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제국 정부는 더욱 더 엠파이어 농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제국 정부가 연방수사국과 총기국을 엠파이어 농장에 보낸 이유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신경을 건드린 부분은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공동체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사실보다는 취옥이란 한 개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확실한 물증은 없었지만 일종의 종교적인 공동체라고 연방수사국에서는 보고 있었다.

    주류, 담배, 총기, 폭발물 단속 기구인 재무부 소속 총기국은 원래 그 물품들 자체를 단속하자는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돈이 되는 그 물품들을 당국의 관리 아래에 묶어두자는 것이 그 주요한 목적이었다. 이번에도 불법 주류 담배 단속이 공동체를 급습한 표면적인 이유였다. 현장 지휘관인 타미 테일러마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정한 이유는 주류, 담배, 총기, 폭발물로 대표되는 세속성을 완전히, 그것도 성공적으로 버리는 듯한 공동체 자체를 탄압하자는 것이었다. 엠파이어 농장은 최근 확대일로에 있는 소공동체 운동의 첫 성공사례였다. 가장 열악한 자연환경이랄 수 있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그것도 매우 모범적으로 살아남은 취옥 장로의 공동체는 세속화의 정점에 있는 제국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였다. 무려 '역사의 종언'으로 군림하고 있는 제국이란 삶의 모델이 난데없는 대체재의 등장에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타미 테일러의 즉석 회심은 에머럴드 공동체의 힘이 제국의 최정예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사의 오랜 문제인 비폭력 저항과 폭력 탄압의 효용성을 제국 정부는 저울질하고 있었다.

    사파이어

    "에머럴드 공동체의 인터넷 연결성은 별 게 없습니다. 천여 개에 달하는 온실들에 설치되어 있는 사물 인터넷도, 공동체 구성원들의 개인 컴퓨터를 연결하는 사람 인터넷도 기본적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들만의 인트라넷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제국 전역에 깔려 있는 다른 공동체들과는 별도의 서버를 통한 일반 인터넷으로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인트라넷을 해킹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 참, 곤란하군. 그들 공동체에 침입해서 그들만의 인트라넷에 직접 하드와이어드 연결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방법은 이미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레드 사파이어의 말에 국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타미 테일러, 서부 기동대 대장이었던 타미 테일러의 일은 두고두고 연방수사국 안에서 회자되는 사건이었다.

    "에머럴드 공동체가 그렇게 위험한 조직일까요? 그냥 사막에 틀어박혀 농사 지으며 조용히 사는, 약간 이상한 종교 공동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만."

    "그들이 우리 연방수사국 컴퓨터를 해킹한다거나 정부기관 건물이나 육해공군 기지를 습격하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들은 제국 국민들의 마음을 해킹하고 습격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무섭고도 가장 물리치지 힘든 적이라고 할 수 있지."

    국장은 말했고, 그는 그게 무슨 말인지 그 대화 이전부터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연방수사국의 인터넷 보안을 담당하는 실무 책임자로서 에머럴드 공동체들간의 인터넷 통신을 직접 해킹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연방수사국이 에머럴드 공동체를 침투한 최초의 성공사례였으며 동시에 최대의 실패사례이기도 했다. 그 해킹으로 국장은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에머럴드 공동체 네트웍의 주요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가장 유능한 해커를 한 사람, 절반쯤 잃게 되었다. 에머럴드 공동체를 향한 레드 사파이어의 심정적인 동조는 처음엔 사파이어 자신도 눈치재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처리하는 일급정보들을 평범하기 그지 없는 상태로 희석하여 여기저기 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도적인 희석과 왜곡을 몇 단계 거친 정보들은 오렌지 블로그에 나타나기도 했고 에머럴드 공동체가 우연히 볼 수 있는 곳에 뿌려져 있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크기는 그 제국이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용량에 비례해왔다. 제국이 크면 클수록 좋은지 어떤지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크기라는 150명은 원시적인 수렵채집 공동체부터 씨족 공동체까지 그 집단의 크기에 반영되었고 문자와 파발마 같은 정보의 저장과 유통의 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들이 꾸려나갈 수 있는 집단의 크기도 부족, 국가, 고대 제국 순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사람 인터넷과 사물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생산, 저장, 유통이 극적으로 발달한 상황에서 당금의 제국 형성은 자연스러운 역사 발전 단계라고도 했다.

    사파이어의 생각은 달랐다. 정보의 중앙집중화와 정부에 의한 독점에는 반대였다. 그 주체의 허접함을 가까이에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사유화된 제국에서 정보의 독점은 제국에 건전한 응집력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제국의 크기에 비례한 시스템의 파괴적인 왜곡을 야기했다. 그때그때 적절하게 방출되고 해소되어야 할 긴장이 축적되며 시스템 전체를 박살낼 수 있는 파국의 순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오인회라는 작은 그릇에 거대한 제국을 욱여넣으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그는 제국, 더 엄밀히 말해서 오인회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적절하게 유출하여 제국의 내압을 낮추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다.

    동시에 그는 제국 정부가 요구하는 표준화된 충성서약 또한 진심으로 존중했다. 인륜, 인권, 헌법, 공공의 이익에 충실하겠다는 충성서약 그 어디에도 오인회는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자기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제국 최고의 해커인 레드 사파이어가 자기자신의 마음에 가하는 일종의 은밀한 고난도 해킹이었다. 급진적인 정보민주주의를 외치는 크랙커 조직은 많았다. 그들을 잡아내는 것은 그의 주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고급 인력들을 제국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제국의 낭비라고 그는 생각했다. 크래커 조직들을 적발해내어 감옥이란 세탁과정을 거쳐 연방수사국의 수사요원으로 거듭나게 하기. 그의 반제국 투쟁법, 아니 진정한 친제국 충성법이었다. 제국이란 동전에는 양면이 필요하니까.

    인디고

    와카 인디고는 전체가 투명돔으로 덮여 있는 내쉬빌의 관문을 빠져나와서 뒤를 돌아봤다. 돔 중앙에 뿔 두 개가 솟아오른 고층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반구형인 투명돔은 그와 같은 대도시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초가을의 햇빛을 받아 투명곡면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투명돔은 측지선 모양 틀에 끼운 극도로 얇고 가볍고 강한 나노섬유막으로 구성되었다. 도시 전체를 둘러싼 반구형 지붕, 재료공학의 위대한 승리 가운데 하나였다. 실은 그와 같은 최첨단 투명돔 때문에 인디고는 대자연 속 오래된 삶 또한 뒤늦게 되찾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말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어 내쉬빌 투명돔에서 멀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사람 구경을 실컷 했다. 투명돔 바로 바깥에는 뻥 뚫린 맨 하늘을 좋아하는 그와 같은 신유목민들이 몰려들어 장마당을 펼치고 있었다.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유목민들이었지만 원래 뿔뿔이 흩어져 있기 마련인 그들 또한 한 군데에 많은 수로 모여 있으면 그 자체로서 큰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투명돔의 아름다움에 이어 대도시가 좋은 점 두번째쯤이 바로 유목민들에게 이정표와 장터 노릇을 해준다는 점이었다. 드넓은 초원에 흩어져 사는 유목민들을 대도시 바로 옆 한 군데에 모아주기 때문에 도시의 정착민과 초원의 유목민 사이에 물품과 정보 교환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자연스럽게 되어 주었다. 그와 같은 생산적인 경계의 활성화 덕분에 도시는 더 도시다워지고 초원은 더 초원다워지면서도 두 문명의 충돌은 모든 면에서 점점 더 평화로워지고 있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장마당이 끝나는 지점은 벌써 초원이었다. 그는 날렵하게 말에 올라 고삐를 풀고 등자에 끼운 양발로 가볍게 말 옆구리를 건드렸다. 말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가 걸음마와 함께 배운 기마술이 그의 무의식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고삐를 쥔 손, 안장 위 엉덩이, 말 옆구리를 끼고 있는 다리와 등자에 걸친 발에 느껴져 오던 말의 움직임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전설 속 반인반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그의 귀밑을 간질이고 모자 아래로 드러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나갔다. 그는 온몸에서 열기가 뻗칠 때까지 말을 달려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동중인 버팔로 떼와 그의 부족을 따라잡으려면 족히 이틀은 더 달려야 했다. 오십만 마리나 되는 거대한 무리로 완전히 회복한 북아메리카 대륙의 버팔로 떼는 여름에 벌써 메인주에서 출발해서 인디애나 쪽 중서부를 에돌아 월동지 조지아주를 목표로 천천히 남하중이었던 것이다.

    반자짜리 칼, 22구경 총, 이틀치 식량, 둘둘 만 간이천막뿐인 단촐한 행장이라 안 그래도 지구력 좋기로 유명한 그의 몽골마는 해가 지기 전에 100마일을 주파했다. 절벽 아래 움푹 패인 바위에 기대어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말을 천막 안 한 귀퉁이에 들인 다음 그는 침낭 속에 들어갔다. 기분좋은 하루치 피로가 몰려오며 그의 의식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말 위에서 반인반마가 되어 질주했듯이 바위 위에 누운 그는 곧장 물아일체의 상태에 들었다.

    "참 잘 했다!"

    그의 의식과 수면 사이 날카로운 경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니까 지극히 영적인 희열이 끼어들었다. 대도시를 떠나 초원으로 돌아오기로 한 자신의 하루 전 결정이 바로 그 순간, 하늘과 땅에 반반씩 닿아 있는 그 좁은 공간에서 새삼 만족스러웠다. 열다섯 살 생일 다음날부터 딱 3년이 되는 어제까지 살아왔던 내쉬빌이 딱히 나쁘지 않았다. 제국의 척추인 '도시문명 보호구역' 100군데, 곧 백 개의 도시 가운데에서도 내쉬빌은 상위 2할에 드는 대도시인데다 음악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살기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지하 진공 터널을 '비행' 자기부상 열차망으로 연결해놓은100개의 투명돔 도시들은 온갖 편리와 안락으로 가득한 동화 속 유리성 같았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되는 날, 바로 어제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그는 초원으로 되돌아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투명돔 속 온도까지 오인회가 조절하는 도시는 한번 흔들었다 놓으면 예쁜 집 위로 반짝이는 눈이 내리는 작은 유리공이나 유리어항 같아서, 그는 어느 순간 숨을 쉴 수조차 없는 답답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하여 결국 유리지붕을 뒤집어 쓰고 지하터널로 파고들어간 제국의 대도시를 떠나 지수화풍을 맨몸으로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하지만 하늘로 탁 트인 지상에서의 삶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백 개의 거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제국 도시민들의 고속철도망에 비한다면 유목민들의 쾌마도 달팽이나 진배없겠지만, 그는 점과 선에 갇히기보다 제국이 버린 드넓은 지평면 위를 떠도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열여덟 살 생일에 와카 인디고라는 한 청년은 진정한 유목민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었다.

    "제국을 굳이 무너뜨릴 필요가 있을까요?"

    인디고가 진주에게 말했다. 오렌지 블로그의 기자, 진주는 와카 인디고의 부족 체로키를 방문했다가 3년간의 도시 의무거주를 마치고 내쉬빌에서 돌아온 그를 만난 것이다. 뾰족하게 솟은 티피 천막 한 가운데에서 불타는 모닥불이 열기와 빛으로 두 사람을 감쌌다. 테네시 스모키 산맥 따라 소용돌이치는 초겨울 찬바람 한 가운데에 열과 빛의 작은 섬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점과 선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전혀 새로운 관점이군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유목민은 현재 제국 인구의 1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국과 도시민들의 이해불가, 놀라움 속에 그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유목민이 2, 3할 대를 넘어선다고 합시다. 그래도 제국이 지금처럼 유목민들이 자기들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수수방관하리라고 보시나요? 그들은 이미 유목민들의 자녀들이 3년 동안 의무적으로 도시에 나가 살도록, 그리고 나서 도시민의 삶과 유목민의 삶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국이 유목민 출신 청년들을 성숙한 한 인간으로 대접하는 것은 물론 아니죠. 그들은 유목민 말살 정책을 이미 시작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도시민들은 편리와 안락에 현혹되어 점과 선에 갇힌 유리공 속 삶에 만족합니다. 우리 유목민은 불편하지만 기동성 있는 삶, 무소부재의 삶, 가벼운 삶을 추구합니다. 바라기는 도시민과 유목민의 구성 비율이 제국 정부, 특히 오인회를 자극하지 않는 황금비에서 안정되기를 희망합니다. 만약 유목민의 삶이 제국의 도시민들 사이에서 대세가 된다면 제국은 결국 자동소멸 과정을 거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도시민들이 과연, 제국이 우려할 만큼 대규모로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포기할까요? 도회지적인 삶의 마력을 오히려 믿어보겠습니다."

    와카 인디고는 유목민의 삶이 좋았다. 제국의 당근과 맞바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수정

    제국은 흡사 살아있는 하나의 생물체 같았다. 자신의 내부를 규정하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그 외부로부터 자신의 내부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그 외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형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규정하고 그토록 보호하려는 제국의 내부도 끊임없는 변화의 도상에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였다. 하지만 진정한 제국이 되려면 생물체 한 개체만으로는 부족했다. 하나의 종으로도 부족했다. 진정한 제국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고 포함하는 생태계 전체여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 한 국가가 제국으로 불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막무가내로 그냥 그렇게 부르고 마는 것이었다.

    오인회의 사적 소유물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 제국을 뒤엎을 묘안도 필요하지 않았다. 묘안일수록 제국을 대체할 신제국의 맹아가 정상적으로 여물 시간을 단축할지도 모른다. 자체의 모순과 타락이 익어서 자중지란과 자멸의 수순을 밟을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촉매와 같은 사건이나 상황도 나쁘지 않다. 발생하기 어려운 과정을 유도하지만 자신은 다치는 않는 촉매 말이다. 굳이 폭력적인 수단을 쓰겠다면 전체 구조에 미세한 불균형을 야기함으로써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짜부러지도록 하는 폭파해체의 수법으로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제국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 이름이 존재할 뿐이다."

    진주는 오렌지 블로그에 그렇게 썼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제국은 즉시 그 실체가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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