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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코타맨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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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 : 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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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101196
    작성자 : 테라코타맨
    추천 : 2
    조회수 : 1215
    IP : 72.83.***.206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20/03/10 11: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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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타고폰



        ㅇㅇㅇ!

        잠에서 깨는 순간은 늘 기분이 더러웠다. 지독한 편두통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인지할 수 없었을 뿐, 잠자는 동안 내내 두개골을 종횡했을 그 편두통이 무의식과 의식 사이 그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잠을 깨는 순간, 무의식에 생긴 균열일 의식의 틈을 비집고 한꺼번에 분출하는 꼴이랄까.

        짧고 강한 그 편두통이 시작되자마자 멈춘 셀폰 자명종은 다행히 아버지를 깨우지는 않았다. 그의 뇌에 동조되어 있는 자명종 자극은 그에게만 의미있는 신호였다. 물샐 틈 없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오감의 그물을 건너뛰어 잠든 그의 뇌에 곧장 꽂히는, 빛도 소리도 진동도 아닌 신호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잔잔한 그의 무의식의 바다 표면에 생겨나 퍼져나가는 초록색 파문같은 신호, 느낌이 아주 상쾌했다. 오감의 자극과 그에 따른 피로를 건너뛴 그 신호는 태어나서 손가락 한번 못 대어본 뇌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계약? 편두통이 멎자마자 떠오른 단어였지만, 그는 먼저 지난 밤을 복기하면서 좀 더 즐기기로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헬멧을 벗고 아침을 시작하기가 싫은 것이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자연광이 영 부담스러웠다.

        정치일번지. 그가 활동하는 웹사이트의 좋은 점은 아직도 텍스트를 기본으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싼 가상현실 인터페이스 장비 대신 원시적인 키보드와 마이크로폰만으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가상현실 인터페이스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애써 만들어낸 착각.

        유산자 의원님, 미적 감각도 이렇게 뛰어난 분인 줄 몰랐네요.”

        평의회가 끝나고 모인 만찬장에서 옆에 앉은 의장이 말했다. 그 또한 의장이 그렇게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 촛점을 잡지 못해 머뭇거리는 어투와 말투에서 백치미까지 느껴지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제 폰트와 목소리에 대한 기호가 그렇게 고급스러웠다고는 할 수 없었던 거겠습니다.”

        그의 말에 의장은 눈부시게 웃어주었다.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까지.

        (나뿐 아니라 그대의 폰트, 말투 취향 또한 그리 고명한 편이 아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문제가 있는 쪽은 그대의 말투보다는 아바타 취향인지도 모르겠는걸.)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의장은 그에 대한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더 정확히는 '그녀는 당신에게 보통 이상의 호감을 갖기 시작했음'. 국회 정보위원회에서의 토론 때였다는데, 모두 다 초록색의 느낌으로 또박또박 쓴 문장의 형태로 주어졌다, 느껴졌다.

        의장의 손가락 느낌이 어깨에서 사라지기 전, 그는 강렬한 행복감에 취해 손을 쭉 뻗어 후식 한 조각을 집어들고 입에 넣었다. 한번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그 과자는 그의 오감을 단숨에 일깨웠다. 그 순간 그는 그 드넓은 만찬장 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느닷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번쩍 뜬 눈에 맨 먼저 들어온 것은 그의 방, 낮은 천정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은 한 군데도 없었지만, 차라리 벗겨졌으면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영원히 벗겨질 것 같지 않은 천박한 빛깔이 거기에 들러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로 발을 늘어뜨린 다음 헬멧을 벗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창문 없는 정사각형의 한 평짜리 방. 그의 움직임에 따라 서서히 밝아지던 조명이, 화장실을 다녀와 침대 한 켠에 등받이를 세우고 벽에 접혀 있던 판을 내려 책상을 만들어 앉고 나니 완전히 밝아졌다. 그의 아침이 밝은 것이었다.

        따로 시간을 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같은 시간대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모두 함께 시작하는 전통적인 아침은 의미가 없었고, 그래서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의 점심은 아무래도 가상현실 속 근사한 만찬장에서 먹을 것이고, 저녁만이 그의 방에 붙어 있는 역시 한 평짜리 부엌에서 혼자 먹는 한 끼가 될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와 함께 하는 저녁을 원하지만 일단 서로의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세상 일이 돌아가는 주요 방식인 가상현실 재택근무를 그는 거부하고 굳이 전통적인 일터에 나가서 일을 하는 소수자의 삶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기본소득만으로 살아가는 그를 아버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젊은 녀석이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나고 해야지, 허구한 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밖에 나가도 친구들 하나 없어요. 모두 온라인으로 만나지 요즘 누가 밖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나요. 아마 아빠 친구분들도 그러실 텐데.”

        아버지는 머쓱한 표정이 되어 어쩌다 마주치는 부엌에서의 짧은 만남을 끝내곤 했다.

        그리고 말이다. 일자리 찾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계속 기본소득에만 기대어 살기에는.. 뭐랄까.. 너무 식물인간 같은 느낌?”

        일자리는 많은데 재미있는 일자리가 없어서요. 재미없는 일을 굳이 찾아서 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그리고 기본소득으로 사는 것이 어때서요? 인간 존엄성 확인의 절정인데..”

        대화가 약간 길어진다면 딱 그 정도였다.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협곡,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다이아몬드 장벽이 존재했다. 하기야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이전과 이후는 질적으로 다른 세상이긴 했다. 아버지 세대가 아무리 발전적으로 생각해본들, 그와 같은 자식 세대가 아무리 퇴행적으로 사고해본들 그 간극이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인류역사상 가장 큰 단절로 절단되어버린 이웃한 두 세대의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신생대와 중생대를 가르는 지층의 단절보다 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었다.

        (엄마만 살아계셨어도.. 동생이 살아있다면..)

        아버지와의 대화 끝에는 늘 그런 생각이 그의 마음 속에 메아리쳤다. 아버지도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늘 아버지 주변에 맴도는 슬픔의 그림자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야만적인 인간세상의 약육강식의 결말이었고 의료사고였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으며, 그의 가족의 온갖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한창 예민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던 동생의 죽음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아내를 지키지 못한 남편으로서 아버지는 강박증에 시달렸고 오프라인 일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온라인으로 도피한 실정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죽인 세상이 무서웠다. 사람의 목숨보다도 돈을 더 우선하는 세상을 두려워하다가, 두려워하다가 증오의 단계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맴돌이만 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식구가 넷이었을 때 살았던 열여섯 평에서 지금의 네 평짜리로 쫄아든 거주공간은 그의 오프라인 공포증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공간이 작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 일어날 무대가 그만큼 작다는 것이니까. 식구 수의 제곱으로 늘어나는 거주공간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여섯 자, 일 미터 팔십 센티미터인 정육면체 모양의 단위 공간들을 잇대어 만든 것이었는데, 그는 그 엄밀한 산수가 마음에 꼭 들었다. 그의 뇌가 달리 처리해야 할 불확실성이 최소화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식구 수의 제곱에 해당하는 거주공간에 사는 건 아니었다. 그가 사는 구역에서야 그같은 철칙이 적용되었지만, 어디에선가는 식구단위 공간을 수의 제곱 대신 세제곱만큼 쌓아올려 전후좌우뿐 아니라 위아래로 확장되는 삼차원의 유연성, 사차원의 자유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빠져드는 온라인의 환상적인 세계가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의 세계에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와 같은 유연성과 자유도를 갖는 오프라인 세상에 대한 정보 역시 비밀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유연성과 자유도 측면에서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따라올 수는 없지, 그럼.)

        그의 온라인 친구들 가운데 실제로 그와 같이 세제곱의 별칙이 적용되는 오프라인 세상을 동경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다. 보름 전, 그와 같은 오프라인 세상을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의문의 사나이를 처음 만난 것은 국회에서의 의정활동을 마치고, 아니 국회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온라인 뒷골목을 전전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오프라인과 완전히 단절되는 온라인에서 얼굴과 이름을 비롯하여 고정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을 조정자라고 소개했다. 선술집에서였다.

        가장 향기로운 술로!!”

        이십 세기 중반쯤 유행했던 중절모를 살짝 눌러쓴 웬 미모의 남자가 옆자리에 홀로 앉아 있다가 그의 탁자에 합석하더니 호기롭게 술을 주문했던 것이다. 온라인 세계의 돈이 오프라인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고 해도, 돈은 돈인지라, 공기처럼 공기중 미세먼지처럼 만민에게 평등하지는 않은 것, 결국 온라인의 경제법칙에서도 비싼 것은 역시 비싼 것임을 생각할 때 그는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부자임에 틀림없었다.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그는 이미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신상정보가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정보는 온라인 세계에서 물과 공기와 같은 것, 그의 신상정보 같은 정도는 편의점에서 병에 든 물처럼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놀라지 않았다. 한번도 물병처럼 정보를 사본 적이 없는, 온라인도 오프라인처럼 살아가는, 곧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프롤레타리아인 그는 상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마 상대방 같은 온라인 부르주아 같으면, 대화하면서도 이면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구매하여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낯선 사내에 대해 금방 실시간으로 그 신상정보를 털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그 게임을 하시는 분인가요? 어느 지역구에서 활동하시는지요?”

        그는 자기도 모르게 느긋해지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더욱 그러하게 되었다.

        의원은 아니고요. 저는 로비스트입니다.”

        사내는 활짝 웃었는데, 이는 무척이나 희었고, 눈웃음에는 선한 인상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그 또한 그가 엄청 부자인 것을, 온라인 세계에서 돈을 많이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얼굴, 그와 같은 높은 품질의 아바타를 아무나 구매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한 신뢰감을 주는 극강의 미남 아바타? 어쩌면 그를 포함한 수천 명이 등원하여 활동하는 '정치일번지' 게임 전체보다 더 비쌀 것 같았다.

        (나라를 기울게 하고, 커다란 성채에 보석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같이) 살 수 있는 미인이라더니! ~)

        로비스트라면 어느 쪽인가요?”

        그의 질문에 로비스트 '조정자'는 그저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렸을 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두 '진실'하지 않은 가상현실에서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는 투의 반응치고는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느낌은 백 퍼센트 나의 것이겠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물론 백 퍼센트는 보장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술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가상현실 속에서 술을. 현실 속 술이 뇌와 오감의 사고능력과 인지능력을 일정부분 마비시키고 왜곡한다면, 가상현실 속 술은 화학물질의 도움 없이 뇌를 해킹하여 유사한 효과를 일으키는데, 그와 같은 고급의 술은 뇌에 그 어떠한 작용도 가할 수 있을 터였다. 술 취한 느낌은 의식의 표면에서는 말끔하게 걷어내고 의식의 심연만 취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해골 복잡한 현실의 피안인 이 가상현실에 들어와서도 현실의 해골을 껴안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 싶었다.

        술은 과연 무척 향기롭고 감미로웠다.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오감이 오히려 예리해지는 느낌이었다.그는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 보았다.

        선술집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팔십년대의 감성에 맞추어져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그 시대의 무용담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봐서 고객도 실제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중절모 쓴 조정자는 차림은 오십년대였지만 그 차림새의 세련됨으로 인하여 추억이니 복고니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따금씩 시야 한쪽 구석에서만 잡히는 옷감의 사이키델릭한 반짝거림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정면으로 보려고 눈을 돌리는 순간 사라지곤 했다. 가상현실 속에서조차 그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끊임없이 내뿜고 있었다.

        유산자 의원께서는 정보위원회에서 정부비밀공개법을 입안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법안은 그만 두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리 가상현실, 가상국회라고 하지만 너무 자극적인 정책이나 법안은 곤란합니다. 가상국회는 열린 공간이란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디에서 들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알고 계신 거겠지요. 그 법안은 처음부터 쭉 비공개로 논의되고 있는데 말이죠.”

        시종 그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 이 사내의 신뢰감 가득한 차림새에 경계심이 일었다. 그는 그 특별한 술의 취기를 떨쳐버리려는 듯 눈을 감고 머리를 한 차례 흔들었다. 처음부터 인지할 수 없었던 취기는 그렇게 한다고 떨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정부 사람이군요. 가상국회를 '그림자 정부'라고 치켜세우더니 이제 와서 탄압하려는 것입니까?”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개인 또는 정부의 적절한 비밀보장은 개인의 사생활과 정부의 행정력의 보호와 유지에 필수라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

        그는 그럴 리가 있겠냐는 그 사내의 대답이 자신의 질문 어느 부분에 대한 것인지 의문이 갔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개인과 정부의 적절한 비밀보장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분들이, 그림자 정부의 비밀에 대해서는 무심한 편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군요. 정보위원회를 해킹하고 있었던 겁니까?”

        정부비밀공개법이 시행된다면 가상국회, 그림자 정부에도 적용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너무 앞서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폐해가 얼마나 극심하든지, 입안 단계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거야말로 나의 급소를 상대방의 손에 서로 쥐어준 꼴이 되어버렸네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아끼고 챙겨주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하하!”

        그도 따라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내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술기운 탓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들 두 사람이 상대방의 수법을 상대에게 펼치고 있는 셈이었으니, 그 그림에는 분명히 해학적인 대목이 있었다.

        정보위원회에서 입안하고 있는 정부비밀공개법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 통칭되는 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는 권력을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기반으로 하여 추진되고 있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손'의 원조는 소위 시장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다면체'라는 이름의 양자컴퓨터를 정부 중앙 컴퓨터로 가동하고 나서부터 매크로, 마이크로, 나노 경제를 망라한 모든 시장 정보를 빅데이터로 수집하고 처리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다면체에게 물어봐. 다 보여!”

        한때 경제학회 컨퍼런스에서 대유행이 되었던 우스갯소리였다. 그렇게 시장은 죽었고 대신 다면체를 장악한 정부가 시장 대신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사회의 비밀은 건물로 치자면 뼈대인 골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아는 모양의 세상으로 서 있는 것이거든요. 유 의원께서도 동의하시죠? 아니, 서우주씨!”

        그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디까지 비밀이어야 하고 어디서부터 공개해야 하는지 그 경계가 자꾸만 흐릿해지고 있었다. 정치일번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유산자 의원의 우유부단함이 온라인에서조차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본명까지 알고 있는 상대에게 느끼는 두려움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 그러니까 그의 거주공간이 들어 있는 (37.46:126.95) 구역을 벗어나 본 것은 거의 십 년만이었다. 그 구역의 중심에 있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집에서 가까운 공공장소인,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장터공간과 공원공간이 바로 그의 오프라인 우주의 끝이었다. 주로 먹거리인 기본 필수품은 기체 또는 액체의 형태로 그의 부엌까지 연결되어 있는 크고 작은 관을 통해 직접 배달되었기 때문에 고체이거나 덩어리가 큰 것이 아니라면 거주공간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실은 집 밖으로 나서본 지도 오래된 터라, 상하좌우 직각으로 만나고 점점 커지는 미로와 같은 통로를 빠져나가면서 되돌아올 일이 걱정되어 그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통로가 커짐에 따라 오가는 사람들은 그만큼 또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 또한 그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주 오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시선을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 뒤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가 시선이 되어 뜨끈하기도 하고 싸늘하기도 한 적외선이 되어 날아와서 그의 뒤통수에 꽂히는 느낌이었다. 사시사철 변함이 없는 거주공간 안팎의 쾌적하다는 온도에도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는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선이나 뚫을 수 없는 벽이나 건널 수 없는 깊은 협곡 같은 게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적지는 바로 (37.55:125.96) 구역. 지하철을 몇번이나 갈아타야 했는지 모른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뻥 뚫린 거대한 반구형 공간의 중심에 한 오래된 석조 건물이 뾰족하게 반구의 천정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그 공간은 우중충한 회색빛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반구형 공간의 천정 한쪽 구석이 흐릿하게 밝은 모양이 놀랍게도 실제의 하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앉아 있는 곳은 그 커다란 반구의 시작 부분에 해당했기 때문에 그 전체적인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곧 비가 뿌릴 것 같은데요.”

        그는 그 기묘한 공간에 풍덩 빠져 있다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돌아선 그의 눈에 들어온 이는 조정자였다. 그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 그를 위아래로 쳐다보기만 했다. 온라인 정치일번지의 로비스트, 그가 온라인에서와 똑같은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얼굴도 실물 그대로였던가요? 온라인 촌사람을 오프라인에서도 놀라게 하시는군요.”

        온라인 세계를 가상현실로 속일 수 있듯이, 오프라인 세계를 증강현실로 속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 하늘만 하더라도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하늘도 속이는데 하물며 땅이며 사람 속이는 거야 뭐 일도 아니죠. 하하하!”

        그의 목소리, 웃음소리마저 온라인에서와 마찬가지여서 그의 입은 떡 벌어지고 말았다.

        서 선생, 온라인 세상에서 가장 구현하기 힘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때 영화업계에서 '3''4'니 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오감을 속이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감의 해상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는 것은 잘 아실 테고요.”

        글쎄요.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 세상을 원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프라인 세상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될 텐데,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세상을 모사하려고만 한다면, 귀찮게 온라인 세상을 만들 게 아니라 그냥 오프라인 세상에 머물면 될 일 아닐까요.”

        그는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공간을 우러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길거리에 나와 있는 탁자와 의자에 앉아 있던 터라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간신히 끌어내렸고, 마침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눈길을 돌릴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구현하기가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육감입니다, 오감이 아니고.”

        그는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사람 좋은 눈빛이었지만 특별히 장난기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육감? 그것 참 의외로군요. 그나저나 '조정자'도 오프라인 본명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요?”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을 신호삼듯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길거리 탁자를 버리고 금속의 반구형 끝자락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2층 창가에 자리잡은 그들은 차를 한 잔씩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콩알만한 빗줄기가 시원하게 유리창을 두드렸다.

        , 이런 호사를 다 누리다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를 실제로 맞아본 게, 내리는 비를 맨눈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 거주공간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그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야외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장벽만큼 옥내와 옥외 사이에도 벽이 생겨나 점점 높아져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을 옥내에 가두더니 그것도 모자라 온라인 세상이라는 이중삼중의 감옥에 가두어 가고 있는 셈이었다.

        이 종교공간은 정말 대단하군요. 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천둥번개까지 끌어들이다니, 증강현실치고는 특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기야 종교공간에서 하늘을 빼면 곤란해지겠군요, 하하하!”

        그는 어렵사리 조정자에게 눈길을 되돌렸다. 천둥 소리가 멀리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조 선생께선 온라인에서 구현하기 가장 힘든 것이 육감이라 하셨는데, 그게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주제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정자'라는 가명을 고집하는 사내가 얼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온라인에서 그의 옷 겉에 흐르던 형광의 윤기가 다시금 번지르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 육감! 서 선생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육감, 그러니까 하늘의 기운이나 사람의 심기 등을 감지할 수 있는 그런 오감 너머의 감각이 존재한다고 믿으십니까?”

        하늘도 사람도 가짜인 온라인 세상에서 가짜의 기운과 심기를 읽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프라인의 무의미에서도 의미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온라인 세상이니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조 구루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사내는 꼰 다리를 흔들며 소리내어 웃었다.

        제가 무슨 유닉스 시대의 고수도 아닌데 구루라니, 감당할 수 없습니다, !”

        서 선생께서는 어떤 셀폰을 쓰고 계시나요?”

        웃음기를 거둔 조정자 사내가 깊은 눈빛으로 그에게 물어왔다.

        시민폰 쓰고 있습니다.”

        그는 얼굴이 약간 뜨뜻해짐을 느꼈다. 시민폰,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성능이 낮은, 정부가 배급한 바로 그 셀폰이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들어가버린 세상에서 온라인에 접속하기 위한 기본 인터페이스이자 터미널인 셀폰은 오장육부, 사지, 열손가락 가운데 하나의 지위까지 격상한 외장 기관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정부는 셀폰 고유의 인증 기능을 신분증과 통합하여, 최근에는 신분증 대용으로 셀폰을 지급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게 바로 시민폰이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감시활동의 결정판이란 말도 나돌았지만 거의 모든 시민들이 다 쓰고 있는 셀폰이기도 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시민폰은 모든 사람들이 자나깨나 들고 다니는, 신체의 일부로 달고 다니는 지경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시민폰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능력이 된다면 누구라도 그보다 성능이 좋고,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다른 개인폰을 갖고 싶어했다.

        그것을 업그레이드해드리겠습니다. 정치일번지, 아니 그림자 국회 정보위원회 유 의원 정도면, 그 직위에 걸맞는 특별한 셀폰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능력이 제겐 없군요. 시민폰만으로도 정치일번지 의정활동 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구요. 기본 아바타를 통한 문자와 음성 입력으로 충분히 잘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약간 실망스러워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셀폰을 출시하는 어느 큰 회사의 로비스트 또는 그보다 수준이 낮은 마케팅 전문가의 하수인일 거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끄나풀이 아닌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역시 아니었다. 비밀경찰이 되었든 정보국이 되었든 정부기관이 나서서 무엇인가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일번지 국회 의정활동이 과연 그림자 내각, 그림자 국회를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망하셨나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셀폰의 필드 테스트가 맞긴 한데, 아마도 서 선생이 짐작하고 있는 그런 종류는 아닐 것입니다. 벌써 잊으신 것은 아니겠죠? 시장은 더 이상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는다는 거. 우리 모두, 그러니까 소비자든, 기업이든, 정부든, 그리고 그런 게 아직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마도 빅데이터라는 버터 조각처럼 녹아내려 구멍 숭숭 뚫린 빵 여기저기에 모두 스며들어버린 시장이든 이제 '다면체'만 상대하면 된다는 걸 말입니다. , 다면체가 개인, 기업, 정부, 시장과 더불어 다면기 바둑을 둔다고 해야겠네요. 하하하!”

        오프라인인데도 사내는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온라인에서 내 아바타를 해킹한 것처럼 오프라인에서도 내 뇌를 실시간 해킹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요? 내장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투명 물고기에 지나지 않는 나와 같은 개인이 다면체의 프락치가 아닌 타인과 다면체가 전혀 개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만나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은 최신 셀폰의 무료 필드 테스트를 제안받는다?”

        우와! 대단하십니다! 과연 정보위원회의 스타 의원답습니다. 그림자 국회가 아니라 그림자 내각의 일원이 되셔야겠습니다.”

        사내는 호들갑을 떨며 짝짝짝 손뼉을 쳐댔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정부와 다면체의 사람임을 털어놓았고, 온라인 세상의 유산자 의원이자 오프라인 세상의 시민 서우주는 정부와 다면체의 신형 셀폰 필드 테스트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첫째, 점점 더 '민회'가 되어가고 있는 정치일번지에서 정부비밀공개법은 계속 논의해도 상관없습니다. 둘째,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터인데, 우리 사이의 모든 대화에서 '다면체'라는 말은 빼도록 하겠습니다. 양자컴퓨터는 정부의 수많은 통치기구 통치자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목에서의 주객전도는 정부에서 달가워하지 않거든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조정자 사내는 한 눈을 찡긋 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웃옷 안쪽 호주머니에서 자신의 셀폰을 꺼내 탁자 위에 놓고 나서, 말없이 그를 향해 오른손을 살짝 들어 눈초리와 동조된 손짓을 했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그도 자신의 셀폰을 꺼내 조정자 사내의 셀폰 옆에 내려놓았다.

        두 개의 셀폰은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깔이었다. 겉으로 구별이 안 되는 영락없는 시민폰이었다. 의아해하는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은 채, 조정자 사내는 셀폰 하나를 집어들었다. 눈빛이 다시 장난스러워졌다. 필드 테스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의 삶은 겉으로는 별로 변함이 없었다. 유산자/서우주로서 온라인/오프라인을 오가는 생활은 그 현격한 차이 때문에 굳이 이중생활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그런 평온한 삶이 계속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출근하면 정치적 감각이 반짝반짝 빛을 내는 노련한 정치일번지의 스타로서의 유산자 의원, 오프라인으로 퇴근하면 네 평의 거주공간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라인의 해시계에 맞춰 토막잠을 자는 기본소득 생활자이자 오타쿠로서의 서우주가 되는 그런 생활.

        변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밀 필드 테스트를 위해 조정자 사내가 준 셀폰은 역시 보통의 시민폰이 아니었다. 문자와 음성을 주요 입출력 장치로 사용하고 늘 무료 공간만을 기웃거리던 그의 온라인 생활은 단번에 3, 4디를 넘어 5디로 치달으며 최고의 등급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게다가 아바타를 그때그때 바꾸며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숨길 수 있어, 온라인 세상에서는 말 그대로 '무소부재 전지전능'이었다.

        유 의원 자신에 대한 정보는 물론 모두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정부가 비밀리에 생산하고 철통같이 보관하고 있는 비밀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소부재 전지전능, 오직 자신의 사생활과 권리-의무에 관한 한 그렇다는 것이죠. 우주의 중심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드리는 것입니다. 타인들은 물론 그들 나름의 작은 우주의 중심을 만들 것이고, 유 의원께서는 그들의 우주에 침범할 수 없게 되어 있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구요.”

        조정자 사내와는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날 필요가 없었다. 오프라인보다 더 안전한 온라인에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절대보안이 가능한, 온라인 시공간에서 완전히 분리된 작은 거품 같은 임시 시공간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분 거냐? 너 같은 사시사철 겨울잠만 자던 곰 같은 녀석이 운동이라니?”

        집을 나서는 그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눈빛에 의혹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을 맞추려고요. 마음의 운동은 온라인에서, 몸의 운동은 오프라인에서!”

        그리고 그는 아버지에게 웃어보였다. 아버지도 따라 웃었다. 아마도 어머니 죽음 이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소리내어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온라인으로 도피해 길을 잃고 헤매던 정신과 오프라인에 홀로 유배되어 메말라 가던 육체가 다시 만나 완전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그는 해석했다. 새로운 셀폰이 그의 몸과 마음을 긴밀하게 접속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리라.


        온라인 세상에서의 시위는 가볍고 빠르고 편리했다. 정치일번지에서 시위 공지가 뜨자마자 온라인 세상 전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평소 그는 특히 오프라인의 거리 시위처럼 절제되지 않은 정치행위를 좋아하지 않았다. 비록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곳은 아닐지라도 정치일번지 국회처럼 평화적이며 나름 절차를 갖춘 여론 형성과 전파를 위한 온라인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시위대의 무질서한 함성, 진압경찰들의 곤봉과 방패, 교통체증, 먼지와 열기가 뒤범벅되는 오프라인 거리 시위를 벌일 필요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온라인 거리 시위? 그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면체의 가동 이후 버퍼링이 사라진 온라인 세상에서의 거리 시위라면 비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정부쪽에서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유연하게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시위대쪽에서도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많은 도구들이 가능한 상황에서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 필요가 전혀 없을 테니까, 시위대는 효과적인 시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정부는 상황을 관리하면서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생생한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공짜로 얻게 될 것이었다. 군중들의 평상적인 온라인 활동에서 채집되는 자료들은 정보의 밀도가 너무 낮고 내용에 은유가 많아서 빅데이터 처리도 어려웠고 그 결과도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 반면, 온라인 거리 시위는 정보의 밀도와 내용의 직접성에서 최고였다. 그리고 오프라인 시위에 비해 물리적인 전개 양상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다는, 사회 전체의 정치적 압력도 낮추고, 어떤 때는 군중들 자신도 잘 모른다는, 정부로서는 늘 두려움의 대상인 99퍼센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딱 그 경우였던 것이다.

        아버지, 오늘 밤은 온라인에 더 오래 접속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아세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대신, 하루에 세 번씩 한 해 내내 먹어도 질릴래야 질릴 수도 없는, 아무 맛도 없고 그저 정체불명의 잿빛 죽처럼 보이는, '국민균형식'이나마 함께 먹는 저녁 시간에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가 언제 너를 온라인에서 억지로 끌어낸 적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99센트 운동' 그 첫번째 거리 시위라며. 잘 해봐라. 온라인 시위라니 내가 직접 가보기는 힘들 것 같으니.”

        아니, 그걸 어떻게?”

        그는 숟가락을 허공에 멈춘 채 아버지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99센트 운동. 모든 사람에게 99센트의 무한 정보이용료를 적용하여 1퍼센트와 99퍼센트 정보 불균형을 없애자는 운동. 우리 같은 오프라인 외계인에게도 이미 홍보가 다 되었지. 이번 시위 조직자들 중에 대단한 홍보전략가가 끼어 있나 보더라. 딱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했더군.”

        아버지도 무료 시민폰을 갖고 있었지만, 오프라인 직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업무 중에도 업무 이후에도 온라인에 접속하는 일이 거의 없어 온라인 세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할만 했다. 솔직히 시민폰으로 온라인 세상에 접속하여 의미 또는 재미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유산자/서우주의 문자-음성 기반 정치활동은 무척 예외적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 보았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지만 예순이 넘은 아버지는 그가 온라인 세상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있었던 지난 십 년 사이에 참 많이도 늙어 있었다. 흰 머리 그리고 얼굴이고 손이고 할 것 없이 들어찬 잔주름. 아버지는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 오프라인 노동자이자 인구의 99퍼센트에 이르는 정보극빈자로서 이중으로 소외되고 있는 최신, 최후의 불가촉천민이었다. 카스트 제도 자체를, 정보의 바다를 아예 벗어난 불가촉천민.


        정보는 돈이다. 아니, 오히려 돈이 정보의 한 형태라고 해야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물론이고, 모든 게 전자적으로 혹은 가상현실로 존재하고 서로 관계하는 온라인에서 고급 정보는 1퍼센트가 틀어쥐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정보의 극심한 불균형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들어 유지하고 정치와 경제를 조정하고 천심이라는 인심 마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그리고 오프라인 세상에서 바로 신이 되어 있었다. 무소부재 전지전능, 빈 말이 아니었다. 따라서 고급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1퍼센트는 온 세상의 부와 돈을 거머쥐고 있는 그 1퍼센트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다시, 정보는 돈과 권력 그 자체이며,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물신의 전자적 표현이기도 했다.

        유산자 의원님, 오늘 저녁 같이 하실까요? 제가 자주 가는 맛집이 있는데 초대하고 싶어요.”

        그의 가짜 시민폰의 위력은 대단했다. 정치일번지 국회 안에서의 그의 위치도 달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의 시민폰이 제공하는 기본 아바타로 나서기보다는 문자와 텍스트로만 활동하여, 갈수록 부자들이 점령해가고 있는 정치일번지에서 본의 아닌 신비주의 덕을 보긴 했지만, 동시에 얼굴 없는 의정 활동은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신비주의를 벗고 세련된 아바타를 입고 나타난 그는 곧장 정치일번지 핵심 중의 핵심으로, 과거에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1퍼센트 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치일번지 최강의 미모를 자랑하는 정보위원회 의장의 주말 초대는 서우주를 순간적으로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했다.

        ! 그래도 될까요? 그럴까요? 좋습니다. 지금 바로 가시죠. 어디인가요? 국회 주위에 그런 맛집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 맛집은 그의 시민폰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있었다.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에 있는, 그의 뇌파가 요리되는 게 아니라, 지하농장에서 우직한 농부로봇이 직접 길러낸 온갖 식재료가 첨단 요리사로봇에 의해 요리되는, 그러니까 전두엽과 송과체 대신 혀와 코로 즐겨야 하는 그런 요리집.

        오감의 가장 미세한 부분을 의식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정도로 건드리는 가상현실 속 최후의 비현실성이 제거되는 오프라인에서 정보위원회 의장, 셜리는 훨씬 더 눈이 부시는 미인이었다. 1퍼센트에 드는 그녀의 부는 온라인 속 아바타에게만 세례를 베푼 게 아닌 모양이었다.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맞춘 잿빛 죽으로 평생을 살았던 그의 혀는 오로지 맛과 향과 멋만을 추구하는 듣도 보도 못한 동서고금의 온갖 무지재빛 요리에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 가운데 술은 그를 온통 뒤흔들고 있었다. “오프라인의 것으로서 유일하게 온라인를 곧바로 해킹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바로 그것.

        셜리.. 무척 예쁜 이름입니다. 정보위원회 의장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그는 요리와 술과 미인에 흠뻑 취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창도 문도 없는 사각, 아니 팔각과 육면의 공간이었다. 바닥 한 가운데에 놓인 탁자와 의자 둘을 뺀다면 아무 것도 없는 그 공간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 보이도록 환했지만 어디에도 조명등은 보이지 않았다. 공기 분자 하나 하나에 나노 개똥벌레라도 가둬 놓은 것일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요?”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앞에서, 셜리가 벽에서 걸어나와 맞은편에 앉았다. 여전히 눈이 부신 눈웃음.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맛집에서.. 술에 취했네요.”

    오프라인의 취기가 유 의원님을 온라인까지 모시고 왔지요. 저녁은 즐거우셨나요?”

        의장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디에도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보위원회가 해킹당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유 의원님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래서 잠시 모셔왔는데, 뇌 스캔으로는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네요. 어떻게 된 거죠? 갑자기 신비주의를 벗고 1퍼센트 클럽에 혜성처럼 초신성처럼 나타나셨는데..”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머리통에 스스로 군밤이라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온라인 세상, 가상현실의 세계라고 하지만 물리법칙을 대놓고 깨뜨리는 곳이 정부의 손아귀가 아니고 그 어디이겠는가 말이다. 현실 세계에 조물주 섭리의 일부인 물리가 있다면, 가상현실 세계에는 현실 세계의 물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엄연한 가상현실 물리가 있었다. 현실 세계의 물리에 인간들의 정신 세계를 접속하기 위한 인터페이스를 최소한으로 가미한 것인데, 최적 디자인의 극한이라 할 수 있는 현실 물리의 효율을 이어받지 못한다면, 가상현실을 가동하는 데에 들어가는 실시간 계산 정보량과 에너지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전세계적인 시스템 붕괴에 이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프라인이라는 아날로그 컴퓨팅을 기본적으로 디지털 컴퓨팅적인 요소가 필수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문자 기반 뇌인터페이스에 다 구겨넣을 수는 없다는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면 아무리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여도 질량 가진 입자를 광속 가까이 가속할 수는 있어도 광속에 이르게 할 수는 없는 상황과 비슷했다.

        의장, 저를 납치한 것이로군요, 해킹한 것이로군요.”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오프라인에서 고급 술 대접했더니 온라인에서 주사 부리는 격이군요”

        가상현실 물리까지 무리해가며 변형시키며 가둔 마당에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잔뜩 긴장했다. 정치일번지는 단순한 정치 게임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정부비밀공개법 같은 장난감 법안을 밤샘 토론하며 재미 삼아 정부에 반대하면서, 안 그래도 국회가 폐지된 마당에 쌓여가는 정치사회적 압력을 빼는 게 아니라 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신의 납치감금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인간의 기본법을 심각하게 위반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사태의 절반은 유 의원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에 따른 저의 초대였을 뿐이에요.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정부에서 그 어떤 논리를 내세우든, 한 시민으로서 저는 이 상황을 납치로 느끼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국가와 정부는 시민의 권리를 적극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구요. 그리고 하나 더. 가상현실 물리를 깨뜨린다는 것은 온라인 세계에 대한 테러로서 엄연한 불법이란 점도 분명히 해둡니다.”

        가상현실 물리를 해킹하는 것은 자칫 온라인 세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가상현실 시스템에 비이상적으로 폭주하거나 멈추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오프라인 세상과 함께 인간 세상의 두 날개가 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의 파괴는 인간 세상의 전멱적인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오프라인 세상이 인간세상의 물리적 토대를 이룬다면 온라인 세상은 인간세상의 집단 자의식 그 자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 세상을 한 인간에 비유하자면 뇌나 정신을 다쳐 식물인간의 상태에 빠져버릴 수도 있었다.

        엄청난 말씀을 하시는군요. 유 의원님은 정부의 비밀경찰에 연행된 게 아니고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변호사 앱 운운하시기 전에 걱정하고 있는 분들이나 안심시킬 생각 좀 하시죠.”

        의장은 한쪽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투명해지며 건너편으로 두 사람이 보였다. 바로 아버지와 조정자 사내였다.

        국회도 법원도 없는 마당에 비밀경찰은 고사하고 경찰이나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식으로 자원을 낭비한다는 것은 인류애에 대한 모독이고 태만이고 도발이겠지요.”

        의장은 벌써 일어나 벽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투명한 벽은 문이 되었고 그녀는 그 문을 열었다.

        너는 도대체! 무슨 터무니 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냐?”

        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의 두 어깨를 움켜잡으며 낮게 부르짖었다. 조정자 사내는 아버지의 등뒤에서 빙글거리고 있다가 앞쪽으로 나서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장 각하, 유 의원이 변호사 앱을 작동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의 셀폰은 되돌려주셔야 할 것입니다. 정부조직개편법이 통과된 지 10 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정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많이 낮으시더군요. 그리고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반한, 시민연합체로서의 국가와 정부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개인적인, 집단적인 안녕과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시민의 권리 보호는 국가와 정부의 일차적인 의무라는 것도 상기시켜 드리고 싶네요. 셀폰을 빼앗는다는 것은, 아니 해킹한다는 것은 바로 그의 뇌를 해킹하여 그의 시민권의 상징과 그에 따른 모든 법적 보호를 박탈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군중 앞에서 그의 아바타를 발가벗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마치 가까운 친구에게 투정부리듯 가벼운 어조로 말하는 조정자 사내에게 의장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딱딱하게 말했다.

        정부 시스템을 신뢰하라는 설교는 내가 아니라 유산자 의원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정부비밀공개법과 같은 얼토당토 않은 걸로 군중들을 선동해도 좋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그 오래된 정부조직개편법까지 들먹이는 그쪽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비정규직 공무원?”

        비정규직 공무원? 하하하!”

        세 사람은 셜리의 개인 가상현실 공간에서 함께 빠져 나와, 곧바로 서우주의 거주공간으로 이동했다. 부엌 식탁에 마주 앉은 세 사람은 조정자가 가져온 술을 마셨다.

        정말 비정규직 공무원인가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 거주공간은 이미 깨끗해졌답니다. 최후의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고요.”

        약간 취기가 오른 그가 조정자를 건너다 보며 묻자, 조정자는 서우주 대신 그의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그는 말없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럼 이 아이가 놀았다는 정치일번지 국회 게임이란 것도 모두 정부의 작품이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정부조직개편법으로 전근대적인 대의민주주의 기구들이 철폐되었는데도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요.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라도 않을 텐데요.”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그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제가 의장에게 잡힌 것을 어떻게들 아셨는지..”

        나는 의장에게 직접 연락을 받고 간 것이지. 너를 잡아놓고 나를 불러들였으니 협박이 다음 순서였겠지. 난 옆방에서 처음부터 대화를 듣게 하더군.”

        유 의원이 오프라인에서 의장을 만날 때부터 이상하다 싶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납치하기, 이건 의장으로선 꽤나 머리를 쓴 한 수였죠. 오프라인에서 납치하여 오프라인에 억류하고 있었다면 그건 너무 명백한 불법이 되는 것이라 몸은 오프라인 상에 두고, 셀폰만을 해킹하여 온라인에 자발적으로 접속한 것처럼 모양을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유 의원을 보호하는 척이라도 한다면 납치범이 미담의 주인공이라도 될 판이니까요.”

        그는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았지만, 의장이 왜 그런 무리수를 두어 가면서까지 자신을 억류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접근하여 셀폰 업그레이드를 해주고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자신을 보호 또는 감시하고 있는 조정자 사내와, 딱 보기에도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는 술기운이 남은 듯, 의장의 해킹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혼란스럽기만 했다.

        의장의 정체는 무엇이죠? 궁금하기는 조 선생도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 의원의 아버님께서는 과거 온라인 거부 운동에 투신하신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게 된 것은 의장으로 대표되는 지난 정부의 비밀 공작에 따른 것이죠.”

        벌써 옛날 이야기가 되었군요. 세상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가는 것이 역사의 대세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상의 모든 오프라인 것들이 온라인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갑자기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어디 한 개인의 힘으로 될 일인가요? 오프라인이 온라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기생하는 악이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 맺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는 것인데.”

        아버지는 온라인 세상에서 오프라인으로 숨은 도피자가 아니라 온라인 천국이란 장밋빛 정부 공약에 속지 않고 오프라인에 남은 전통주의자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운동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대응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귀결되고 아버지는 더욱더 오프라인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조 선생께선 '지난 정부'라고 했는데, 그 사이에 변한 것이 있다는 것인가요? 의장이 불법적인 납치까지 저지를 정도였다면 저들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인데, 지금의 정부는 1퍼센트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정부 시스템은 헌법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1퍼센트의 특권은 헌법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구요. 정치일번지 온라인 국회는 1퍼센트, 그들의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유 의원은 그런 속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조 선생은 어느 쪽인가요? 지난 정부? 지금 정부?”

        조정자는 한동안 웃기만 했다.

        저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인간성이 공히 꽃 피우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해커들의 일원입니다. 저들이 버린 오프라인을 접수하여 정화하고 저들이 새로운 멋잇감으로 삼으려는 온라인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정부로 치자면 물론 지금 정부를 지지합니다. 의장과는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는 사이라고 해야겠습니다.”

        ~! 그 낮은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세 사람은 동시에 허기를 느꼈다. 인구가 천만이 넘는 이 거대한 3차원 도시 곳곳을 모세혈관처럼 잇고 있는 배급관을 따라 저녁밥이 도착했다는 신호였던 것이다.

        앞에 놓인 뜨거운 죽 그릇을 두 손으로 잡으며 그가 조정자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비정규직 공무원인가요?”

        저는 말하자면 '다면체'의 수천 명의 고객 가운데 하나이죠. , 이상하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유 의원이 갖고 있는 시민폰, 아니 베타고폰과 똑같은 걸 저도 갖고 있을 뿐, 나나 유 의원이나 다른 것은 없으니까요.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는 베타고 '다면체'는 그의 아바타인 베타고폰을 통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알려줍니다. 정보 민주주의죠. 정보의 독점을 권력의 방편으로 썼던 수천 년의 관행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사생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다면체'는 내게 꼭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정보의 대부분은 내게만 의미가 있는 그런 것들이죠.

        다만 나와 베타고 사이에는 완전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베타고는 내 셀폰을 언제든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의 마음이나 뇌를 언제든 액세스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보 가운데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줍니다. 완전한 정보 민주화라고 할까요.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이란 잔 물결은 그대로 살아있겠지만 정보의 바다가 평평해지도록 말이죠.

        “(정보)자본주의와 (다면체)인본주의 사이의 체제 경쟁은 끝났습니다. 모든 자본 곧 정보는 이미 다면체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면체'는 진정한 '시민' 모집 캠페인중입니다. 유 의원과 아버님께선 정보의 불평등이 사라진 세상에 초대된 것입니다. 정보의 독점과 조작을 일삼는 투기꾼들은 자본주의를 택하겠지만, 젊은이들과 평화주의자들은 모두 인본주의로 몰리고 있습니다.

        두 분을 환영합니다.

        “1퍼센트가 아니라,

        “99퍼센트가 아니라,

        온전한 세상, 완전한 세상에 오신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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