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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0775
    작성자 : 냥이박사 (가입일자:2019-01-10 방문횟수:182)
    추천 : 5
    조회수 : 558
    IP : 211.107.***.30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9/09/19 22: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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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날은 살을 에는 추위의 겨울이었다. 우리 꼬맹이들은 꽁꽁 언 호수위에 올라가 한창 담력을 시험 중이었다. 내 앞에 있던 친구가 큰 돌멩이를 얼음 바닥에 내리꽂았다.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친구는 득의양양하게 나보다 앞서 걸어갔다. 녀석은 뒤돌아서 날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는 이리와 보라고 손짓을 보냈다.
       난 발끈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돌 하나가 보였고 또 작은 돌 하나가 보였다. 그러다 녀석이 던진 돌멩이보다 더 커다란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돌멩이를 들자 녀석은 객기부리지 말라며 말리려 들었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보다 더 멀리 돌멩이를 던졌다. - - 소리와 함께 돌멩이는 얼음 바닥을 흠씬 두들기며 나아갔다. 이번에도 얼음은 심하게 언 듯, 전혀 깨지지 않았다.
       난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지나쳐 호수 가운데로 걸어갔다. 녀석은 졌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어때? 내가 더 깡다구가 쌔지? 계속 해볼래?”
       “에휴... 그래. 이번엔 네가 이겼다. 저기 근데...”
     

       녀석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떨려왔다. 대답을 재촉했지만 녀석은 대답 대신 얼음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난 호기심을 느끼며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얼음 바닥을 내려다봤다.
       얼음 바닥은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잠든 채 떠다니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무언가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꽁꽁 언 호수 아래로 누군가 누워있었다. 난 침을 꼴깍 삼키며 그것을 천천히 확인했다.
       중세풍의 찢겨진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 나이는 어려 보였다. 많이 쳐줘야 18살 정도 됐을까? 창백한 피부에 검고 긴 머리카락이 물결에 일렁거렸다. 꽁꽁 언 얼음 속에서 머리카락이 일렁거리는 것이 의아했지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한 달 전, 마을에서 실종된 마리처럼.
     

       “진우야, ... 이 여자 말이야.” 하고 녀석이 물었다.
       “... 그래. 마리 누나랑 닮았네?”
     

       우리가 재차 여자가 마리임을 확인하려던 그때, 얼음 바닥이 쩌저적- 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눈을 감고 있던 여자가 눈을 번쩍- 하고 떴다. 찰나였지만 그녀의 눈이 흰자부분까지 새까맣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호숫가의 뭍으로 달렸다. 그때 함께 달리던 녀석이 제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난 뛰던 것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저 멀리서 얼음 파편이 튀며 창백한 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훅- 하고 공중으로 올라가더니 쿵- 하고 얼음 바닥위에 안착했다.
       뚜둑... 뚜두두둑...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가 공기 중에 맴돌았다. 난 얼이 빠진 녀석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여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여잔 아주 천천히 우릴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어떡해서든지 최대한 빨리 뭍으로 나아가야했다.
       미친 듯이 달린 끝에 뭍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호숫가를 뒤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자욱한 안개가 가득했다.
     

       우린 마을로 돌아가 곧장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낮잠을 자던 촌장을 깨워 방금 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고했다. 촌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마리가 확실하제?”
     

       그날 밤. 난 집에 가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야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소위 방귀 좀 뀐다는 아재들이 모두 회관으로 모였다. 그들은 화통한 시골 아재들답게 꽁꽁 언 호숫가의 얼음을 모조리 깨부숴 시신을 수습하자는 의견을 펼쳤다. 이를 진정시키려던 촌장이었지만 드센 아재들의 압박에 입을 꾹 다물었다. 분위기가 얼음을 깨자는 쪽으로 갈 때쯤 찬물을 끼얹는 이가 있었다.
       잠자코 보고만 있던 무당이었다. 그는 회관으로 오기 전 잠시 호숫가에 다녀왔었다며 지금은 위험하다고 경고를 보냈다.
     

       “지금은 호숫가에 살기(殺氣) 가 가득합니대이. 그것을 꽁꽁 언 얼음이 가두고 있는 것이지요. 봄이 되면 그 살기도 누그러질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더.”
       “아니, 여가 어디라고 무당이 입을 여노?” 하고 한 아재가 역정을 냈다.
     

       무당은 가볍게 아재의 말을 무시한 뒤 날 지긋이 응시했다. 촌장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 여자가 우릴 쫓아왔다는 사실을. 함께 도망쳐 나왔던 친구 녀석은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못하고 방에 처박혀 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겁이 났었다. 그 사실까지 말하게 되면 여자가 날 쫓아올까봐. 무당은 내가 입을 열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시선을 자신에게 역정을 낸 아재로 돌렸다.
     

       “보소, 보소. 이 아재가 저거 집 화장실에 귀신이 나온다고 울면서 내한테 찾아온 거 아십니까들?”
     

       그 순간, 아재는 얼굴이 붉어지며 그런 적이 없다며 말을 더듬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은 회관이 떠나가도록 웃어댔다. 한 상남자의 최후였다.
     

    2
     

       이튿날. 아재들은 무당의 격한 반대에도 불구, 저마다 연장을 손에 쥐었다. 삼삼오오 회관에 모인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호숫가로 나아갔다.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멋대로 개사한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아재들. 난 먼발치서 이들을 따라갔다. 날씨는 무척 좋았다. 겨울 공기치고는 피부를 살짝 적셔주고 햇살은 은은했다.
     

       그에 반해 꽁꽁 언 호숫가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난 먼발치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아재들은 힘을 합쳐 연장을 얼음위로 내리쳤다. - - 하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 슬며시 내 어깨위로 하얀 손이 올라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난 고개를 돌리다 또다시 놀래버렸다. 하얀 손의 정체는 무당이었다.
     

       “진짜 말 안 해줄 거냐?”
     

       난 으아아- 하며 비명을 지르며 쏜살같이 달렸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향했다. 어쩐지 그 여자보다 무당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형이 와있었다. 그는 거실에서 무언가를 몰래 만지작거리던 중이었는데 내가 낸 인기척에 화들짝 놀랬다. 그는 이게 왜 여기 있지?” 라고 하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의아했다.
     

       “네가 본 거... 진짜 마리 맞아?”
       “, 맞을 걸?” 하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형제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 형제도 참 형제다웠다. 형은 불안했던 마음보다 배가 더 고팠던지 라면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난 구시렁대며 물을 담은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불을 켜며 힐끔 형을 쳐다봤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무언가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형의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무언가는 빨간색이었다. 그것은 마치 찢겨진 옷 같았다.
       어딘지 낯이 익었다는 느낌이 들 때쯤 라면이 다 익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휙휙 돌려보니 퍼지지 않고 알맞게 익었다. 조리용 장갑을 낀 채 형 앞에다 냄비채로 라면을 가져다놨다.
     

       “근데 말이야... 그거 알아?”
     

       형이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난 형이 만지작거리던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튀어난 그의 말에 가로막혔다.
     

       “물이 아주 한강이잖아? ? 여기서 헤엄이라도 쳐줘? 박태환처럼?”
     

       그랬다. 라면 물 조절을 못했다.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난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섰다. 하지만 그 와중에 형이 엉덩이로 깔고 앉은 의문의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귓가로는 계속해서 그지 같네, 진짜.” 하고 구시렁대며 라면을 먹는 형의 투정이 들려왔다. 결국 형은 냄비를 엎어버렸다.
     

       호숫가의 얼음은 단 3일 만에 모조리 깨졌다. 아무리 크지 않은 호수라지만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인간에겐 한계란 없었다. 마을 아재들은 연장으로도 모자라 포크레인, 다이너마이트를 공수해 와서 얼음을 모조리 깨부쉈다. 마치 자연의 섭리 따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들뜬 아재들은 경찰과 연계해서 시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몇날 며칠이 지나도록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당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뒤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우연히 언덕 아래를 지나가다 무당과 눈을 마주치곤 또다시 도망쳤다.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마을에 알 수 없는 기괴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에서 어린 소년들이 호숫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아재들은 마리는 안 나타나고 애꿎은 머슴아 들만 죽어나간다고 투덜댔다.
       경찰은 소년들의 사인을 밝혀내고자 애를 썼다. 시골에서 실종에 이은 알 수 없는 사망자 발생에 지방 경찰은 진땀을 흘렸다. 경찰이 밝혀낸 것은 마리와 죽은 소년들은 아무 친분이 없었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유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소년들이 실종되던 밤.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외출이겠거니 했지만 그 결과는 싸늘한 죽음이었다.
       죽은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꽉 다문 시신의 입을 열자 하나같이 빨간 천 조각이 들어있었다는 것이었다. 난 형이 만지작거리던 천 조각을 떠올렸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하늘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무당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재차 할 말이 없냐고 물었지만 난 입을 꾹 다문 채 무당을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무당은 강제로 내 손에다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손을 펼쳐보니 빨간 복주머니였다.
     

       “오늘 밤... 너희 형을 위해 이걸 쓰거라. 그리고... 옳은 선택을 하거래이.”
     

    3
     

       집 뒤편에 위치한 산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에 올려둔 탁상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옆 침대에 누워있는 형을 몰래 감시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가만히 품안에서 복주머니를 꺼내 열어보았다. 손을 쑥- 집어넣어 안에 든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그러자 복주머니 위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그것.
       바로 인형이었다. 그것도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바비 인형 말이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이것이 지금 이 상황과 어떤 접점이 있을까? 고민해봤지만 답을 찾진 못했다. 낮은 한숨과 함께 형을 다시 쳐다봤다.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잠시 인형을 보다 형을 보기 위해 눈을 들었는데 형이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 ! 깜빡이 좀 키고 들어오자. !”
       “... 못 봤냐?”
     

       멀뚱멀뚱 형을 쳐다만 봤다. 대체 무엇을 못 봤냐는 것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방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글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방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못 봤다고 답하자 형은 한숨과 함께 다시 누워버렸다.
       탁상시계의 똑딱- 똑딱- 소리가 옅게 울려 퍼졌다. 난 멍하니 그 소리를 듣다 깜빡 잠이 들었다.
     

       이윽고 잠이 들었다는 것을 인지한 난 번쩍- 하고 눈을 떴다. 급히 형이 누운 침대를 쳐다봤지만 형은 없었다. 아차- 하는 마음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 어쩌면 마리일지 모르는 여자였다. 그녀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찢어진 빨간 원피스... 그리고 핏기 없는 얼굴과 흰자 없이 검은 동공으로 가득한 눈. 난 그 동공 속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어딘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은 낯이 익었다. 그 사람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형이었다. 형을 부르려던 그때 마리가 따라오면 죽어.” 라고 말했다. 그녀는 곧장 내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마치 유리가 찢어질 정도의 커다랗고 소름 돋는 소리였다.
     

       또다시 눈을 떴다. 난 잔뜩 움츠러진 어깨로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침대에 형이 없었다. 허둥지둥 방 주변을 맴돌다가 창문을 열었다.
       까만 밤 아래로 가로등 몇 개가 힘없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터벅터벅... 어디론가 걸어가는 형이 보였다. 난 급한 맘에 무당이 건네준 물건도 잊은 채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더군다나 겨울이었다. 형을 뒤쫓아 뛰던 난 볼이 따끔거림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작은 칼이 피부를 난도질 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 보이는 형을 따라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숨이 차오를 정도로 달려도 형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난 그때 무당이 건네준 물건을 놔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돌아가기엔 늦은 것 같았다. 약간의 고민은 있었지만 형을 집으로 데려온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여자, 마리만 나타나지 않는다면야.
       힘겹게 형과의 거리를 5미터까지 좁히고는 그제야 알아챘다. 형의 목적지가 호숫가임을. 형의 손에는 빨간 천 조각이 쥐여져있었다.
       난 그것이 얼마 전 형이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만지작거리던, 변사체로 발견된 소년들의 입에서 발견됐던, 그리고... 마리가 입고 있던 찢어진 원피스의 천 조각임을 기억해냈다.
     

       형의 앞을 양팔을 벌린 채 가로막았다. 형은 무언가에 홀린 듯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난 주위를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 거기 누구 없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어디선가 야옹- 하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무서움에 눈을 지그시 감자 형은 내 옆을 슥- 지나쳐 호숫가로 나아갔다. 난 뒤돌아서서 형의 손을 잡았지만 그는 휙- 하고 손을 뿌리쳤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기에 형을 뒤에서 와락 안고 버텼지만 그는 몸을 뒤틀며 날 떨쳐냈다. 그 바람에 차가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난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어 호숫가를 바라봤다.
       자욱한 안개로 가득 찬 호숫가. 저 멀리서 희미하게 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뭍에 우뚝 선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형의 옆에 섰다. 막지 못할 거면 우선 따라가 볼 심산이다. 종착지에 간다면 분명 막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확신은 못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잠시 후, 물결소리를 내며 뭍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룻배였다. 그 위에 사람도 없었고 노도 없었다. 그 말은 저절로 왔다는 것이다.
       형이 나룻배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나룻배가 천천히 뭍에서 멀어지려했다. 난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나룻배 위로 뛰어 올랐다.
     

    4
     

       배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호숫가의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자욱하던 안개는 없어질 기미를 안보였다. 난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 형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멍한 듯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형은 손에 쥔 빨간 천을 입으로 가져가려했다. 불현 듯 죽은 소년들의 입안에서 발견된 것이 빨간 천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형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완력이 나보다 더 쌔서 그런지 움직임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결국 양손으로 형의 손목을 잡은 채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형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 나룻배가 멈췄다.
     

       적막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형도 움직임을 멈췄다. 난 이대로 해가 뜰 때까지 함께 있으면 괜찮겠다는 예상을 했다. 아무래도 용기내서 따라오길 잘한 것 같았다. 하지만 벌떡- 하고 일어선 형이 자발적으로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난 크게 당황하며 형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양발을 나룻배에 고정시키며 버텼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형을 구하려던 그때 첨벙... 첨벙... 하며 헤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한 손 하나가 나룻배 위로 올라왔다. 그 손은 나룻배를 잠깐 누르더니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솟구쳤다.
       마리였다.
     

       난 형을 뒤편에 두고 마리 앞에 섰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형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공중에 떠있는 마리를 올려다봤다.
       마리의 얼굴은 새파랬다. 찢겨진 원피스 사이로 보이는 속살도 새파랬다. 마치 온몸이 동상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천천히 내려와 나룻배에 걸터앉았다.
       죽었지만 무척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한때 남몰래 짝사랑했던 누나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난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 마리 누나. 이러지 마. 누난 나도 알고... 우리 형도 알잖아?”
       “......”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난 그녀의 눈을 쳐다보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양 눈에 하나였던 동공이 천천히... 분열되며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에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녀가 내 옆을 슥 지나쳐 형에게로 다가가는 것이 느껴졌다. 감았던 눈을 뜨고 그녀의 원피스를 부여잡았다. 그때 내 아랫도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난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실례를 해버렸다.
     

       그때였다. 안개를 뚫고 누군가 나룻배를 저어 오는 것이 보였다. 희미했던 모습이 점차 선명해지자 든든한 구원군을 얻은 듯 했다. 바로 무당이었다. 그는 다급히 내게 외쳤다.
     

       “내가 준거 어쨌냐?!”
       “...집에 놓고 왔어요!”
       “자랑이다, 이 자식아!”
     

       마리는 무당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형의 허리를 감싸 안고 양손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천천히... 나룻배 위로 올라가더니 형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했다. 내가 형의 옷깃을 잡고 버티는 사이, 무당은 내가 탄 나룻배로 넘어왔다. 그는 염주를 손에 건채 무언가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마리의 차가웠던 표정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형을 놓고는 물속으로 첨벙- 하고 들어가버렸다.
     

       “... 끝인가요?”
       “아니, 끝나지 않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마리가 다시 솟구쳤다. 그녀는 커다란 괴음을 냈는데 난 그것이 너무 무서워 두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다시 우뚝 일어나 무당과 함께 형 앞에 섰다. 마리는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춘 채 날 내려다봤다.
     

       “진우야, 누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그만 비켜줄래?”
       “안 된다! 그럼 우리 형을 죽일 거잖아?”
       “...넌 사실 알고 있잖아? 그날 밤에 일어난 일.”
     

       무당이 흘깃하며 날 쳐다봤다. 그때 난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무 말을 못하자 무당은 바보 같으니라고...” 혀를 찼다. 무당은 품안에서 바비 인형을 꺼내 들었다. 마리는 인형을 보며 비웃다가 갑자기 고통스러워했다.
    인형에는 빨간 피로 쓰인 주문으로 가득했다. “이건 인도의 성스러운 소의 피로 쓴 주문이다. 넌 더는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무당이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마리는 그럼에도 형을 끌고 가려 나룻배로 다가왔다. 다가갈수록 그녀의 몸과 인형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무당은 불붙은 인형을 쥐며 버티려했지만 그만 놓쳐버렸다. 마리가 형을 다시 붙잡고 물속으로 들어가려했다.
     

       “...내가 대신 말할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누나.”
     

       마리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그녀는 날 빤히 쳐다봤다. 마리는 그 말을 어긴다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해가 떴다. 우린 노를 저어 뭍으로 나아갔다. 그동안 우린 말이 없었다. 형은 여전히 멍한 채로 빨간 천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형이 아무 말도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러기에 마리 누나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형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난 곧장 관할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밝혔다. 마리와 죽은 소년들에 대해서. 경찰 한 명이 녹음기를 켜고는 내 말을 잠자코 듣기 시작했다.
     

       “우리 형과 그 친구들이... 가출한 마리 누나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었어요.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 같았어요. 누나는 매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빨간 원피스를 입었으니까.
       그러다 그 날 밤... 전 호숫가에서 놀다가 우연히 형네 패거리와 마리 누나를 훔쳐보게 됐어요. 형과 누나는 돈 문제로 다투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 어떤 형이 화를 참지 못해 누나를 밀었었는데... 누나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일어나지 못했어요. 그러자 형들이... 나룻배를 구해다 누나를 싣고는 호수 깊은 곳에 빠뜨리는 것을 봤어요.”
       “... 그럼 왜 형을 신고하지 않았니?”
       “그건...”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경찰은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때 난 마리 누나를 떠올렸다. 생전에 밝게 웃어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던 것을.
      난 경찰에게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형이 가족이었으니까요.”
     

      호숫가.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만연한 듯, 뭍가에 심어진 나무에 초록빛이 감돌았다. 무당은 호숫가를 향해 두 번 꾸벅 절을 하고는 마리의 성불을 기원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수색대원들의 여자 시신이 발견됐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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