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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0754
    작성자 : 환상괴담 (가입일자:2012-03-20 방문횟수:624)
    추천 : 7
    조회수 : 1115
    IP : 1.176.***.221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9/09/15 17:14:34
    http://todayhumor.com/?panic_100754 모바일
    [환상괴담 어게인] 씨앗공포증
    1.<br><br>아직 찬바람이 섞여있는 4월의 봄, <br><br>겨울잠 끝에 깨어난 자연은 어느새 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br>멋진 경치 속에 시원하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내 차는 지금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br><br> " 아빠 있지, 저번에 내가 말한 아싸 있잖아! 이번에 조별과제 하는데 또 연락 불통인거 있지? 완전 짜증나. "<br> " 누구? 성격 좀 삐리하다던 그 친구 말이가? "<br> " 친구는 무슨 친구야? 그냥 아싸라니까. "<br> " 아싸가 뭐고? "<br> " 아웃사이더 줄임말. "<br> " 은따? "<br> " 엉. 그거랑 비슷하네. "<br><br>학교, 대학, 군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세상 속 언제나 '은따'는 존재했다.<br>왕따, 고문관, 일못, 어떤 식으로 불려지든 꼭 한 명씩은 있다. <br><br>딱히 잘못한 게 없더라도 은따가 될 수 있다.<br>은따로 낙인 찍힌 순간 생존은 그 자체로 잘못이 된다. <br>약점은 약점대로 물어뜯고, 약점이 없으면 약점을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br>그 악습이 잘못인 줄 알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도 그 고리를 끊어야 하겠지.<br>그러나 그런 영웅은 없다. <br><br>있어도 내 이야기는 아니다. <br>오히려 은따를 한 명 만들어 놓고나면 나머지 구성원들의 결속력은 강해지곤 한다.<br><br>엿같은 일이지.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br><br> " 듣고 있어? 우씨, 걔가 그렇다니깐. 완전 하는 일마다 밉상이야. 그러니까 맨날 밥도 혼자 먹지. "<br> " 에이- 누가 뭘 어째 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사람을 외롭게 하면 쓰나? 니라도 좀 잘 대해줘라. "<br> " 뭘 잘 해줘, 나만 이상한 사람 될 건데. 그리고 걔가 그렇게 미움 받을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잖아. "<br> " 그 얘기는 고마하자, 아무튼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대주면서 서울에서 대학 다니게 해줬으면 남 일에<br> 너무 열올리지말고 니 하는 공부만 열심히 하그라. 최소한 니가 나서서 괴롭히지는 말고. 알겠제? "<br> " 그거야 당연하지, 나도 앞에선 아무 소리도 안 해. 내 코가 석자인데 뭘. "<br><br>그 말을 마지막으로 차 안에는 바퀴소리만 맴돌고, 핸드폰으로 뭘 보는지 깔깔 웃어대는 딸아이의 목소리가<br> 창 밖의 고향 가는 경치에 겹치자 잊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던 옛 기억이 다시금 뇌리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br><br><br>2.<br><br> ...<br><br>무찌르자 공산당-! <br><br>몇천만이냐 삼천만-! <br><br>대한넘어 가는 길 저기로구나-!<br><br> " 어? 누가 고무줄 짤랐노? "<br> " 으헤헤, 나지롱- 약오르제? "<br> " 야! 니 진짜 선생님한테 다 말할끼다! " <br> " 말해봐라매, 말해봐라! 우르르 약오르제! "<br> " 저 새끼를 진짜! "<br><br>여자아이들이 뛰놀던 고무줄을 끊어놓고 도망가는 땅꼬마, <br>처음 저지른 일이 아니었기에 참다 못한 한 아이가 쫓아가려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이 되려 말렸다.<br>그리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멀찍이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던 우리를 향해 힘껏 소리 질렀다.<br><br> " 유대준 전민재 박상우! 다 느그가 시킸제? 나쁜 놈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머스마가? 꼬추 떼라! "<br> " 닥치라! 우리가 안 시킸그든! 가스나들아! "<br><br>일은 땅꼬마가 저질렀지만 사주한 쪽은 우리 3인방이라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br>멀리 한 바퀴를 돌고 돌아 땅꼬마는 우리 앞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br>형석이, 우리가 갖고 놀다시피 하는 녀석의 이름이다.<br><br> " 헥헥, 대준이, 내 잘 했제. 성공이제. "<br> " 마, 장난하나? 아이스께끼는 왜 안 하는데. "<br> " 아 맞다.. 아이스께끼.. 미안. "<br><br>대준이는 우리 3인방의 우두머리로, 동네에서도 골목대장을 하며 넘긴 달력이 몇 장씩이나 되는 녀석이었다.<br>키도 덩치도 중학생 수준이라 웬만한 남자애들은 대준이 앞에선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못 하기 일쑤였다.<br>민재는 눈치가 빠르고 영악한 면이 있어서 부족한 덩치를 대준이 옆에 붙어다니는 걸로 만회하는 놈이었고,<br>나는 대준이와 어릴 적부터 친했던 터라 남자들끼리의 서열 경쟁에서 운좋게 빠져나와있는 놈이었다.<br>같은 학교면서 한 동네에 사는 우리였으니 매일 어울려노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문제는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다.<br>여름엔 멱 감고 겨울엔 썰매를 끌며 온갖 놀이를 하고 또 하다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재미가 뚝 떨어졌다.<br>그러다 재미를 들인 것이 바로 형석이 괴롭히기, <br><br>일명 '마루타 놀이'였다.<br><br> " 가만히 있어라, 움직이면 두 대다. 알았나. "<br> " 미안, 진짜 미안, 함만 봐주라.. "<br> "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러다 눈 맞는다. "<br><br>여름이면 땟국물이 줄줄 흘렀고, 겨울엔 무릎과 팔꿈치 밑이 하얗게 피어올라있던 형석이.<br>머리엔 커다란 땜빵이 있고 사이사이 이가 살고있던, 길에 떨어진 사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워빨던,<br>모두 어렵고 배 굶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혀를 끌끌 차는 살림살이 아래에서 자라던 형석이.<br><br> " 민재! 상우! 임마 잡아봐봐. " <br> " 대준이- 아이스께끼 잘 할게, 미안, 미안- "<br><br>딱,딱,따악- <br>아파서 고개를 이리 돌려도 한 방, 저리 돌려도 한 방, 한 방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br> 어른이 맞아도 아플 딱밤이 몇 번씩이나 날아들었다. 기어코 눈물이 터졌다. 빨리 운게 다행일지도 모른다.<br>어차피 우리는 울 때까지 때릴 셈이었다.<br><br> " 으허억- 끄윽. 끄윽. "<br> " 마. 어른들한테 고자질 하면 뒤진다. 알았나. 쳐울지마라. 머스마가 그것도 못 참나? "<br><br>울리려고 때려놓고 울면 그치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게 떳떳하지 못 한 일인 줄은 알고 있었다.<br>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br>단지 선생이나 어른들에게 들키면 혼나기 때문에 몰래 갖고 놀아야하는 긴장감 있는 놀이일뿐.<br><br>형석이는 울며 온몸을 들썩였지만 양옆에서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에 우리로부터 벗어나지 못 했고,<br>몇 번을 더 꿈틀대다 대준이에게 멱살을 잡히고서야 힘이 빠진듯 늘어졌다. <br><br>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소리는 속으로 삼켰다. <br><br>이 이상 대준이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딱밤이 아니라 주먹이 날아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br><br><br>3.<br>시간이 제법 흘러 어느덧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br>곧 해가 자취를 감추면 마을 곳곳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겠지만 형석이네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br>어머니는 진작에 집을 나가시고,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형석이 단둘이 사는 형석이네.<br>그나마 마을 토박이로 자라며 이 집 저 집에 쌓아온 공덕이 있어 아예 외면받지는 않았기에 마을 사람들이<br> 곡식철이면 곡식에, 김치 담근 날엔 김치, 아버지와 아들내미가 굶어죽진 않을만큼 슬그머니 밀어넣어줬고,<br>그렇기에 담장 너머로 형석이네 집을 훔쳐보면 김치며, 나물을 척척 올린 밥숟가락을 입이 미어터져라<br> 쑤셔넣곤 쩝쩝대는 형석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br><br>우리도 눈칫밥 먹어가며 학교 다니는 마당에 밥 짓는 연기 하나 피어오르지 않는 집에서, <br><br>동네에 밥을 빌어먹으며 돈까지 받아 같은 학교에 다니는 형석이였기에 우리가 더욱 괴롭혔는지도 모른다. <br><br>모르긴 몰라도 우리 집만해도 여태껏 그 집에 갖다준 반찬거리가 부식으로 치면 고기 한 근 값어치는 했다.<br><br>그럼에도 우리에겐 밥 시간을 앞두곤 형석이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br>비록 빌어먹는 집이라 욕할 지언정,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한 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었을까.<br>밥 한 술 뜬다는 게 얼마나 신성한 행위인지 누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꼬르륵거리는 배꼽이 말해주는 시대였다.<br><br>논둑 앞에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우리 앞으론 그렇게 얼마간의 평화를 허락받은 형석이가<br> 혼자 신난 채로 논두렁을 헤집고 있었다. 혼자 하는 공기놀이가 끝난 뒤론 갑자기 우렁이를 잡겠다더니<br> 젖기는 싫은 모양인지 바지를 훌렁 벗어던지고 고추를 덜렁거리며 물 위를 찰박찰박 뛰어다녔다. <br><br> " 점마 저게 냅두니까-.. "<br> " 대준이, 참아라. 저녁이다이가. "<br><br>내 만류에 대준이는 혀를 쯧쯧 차며 자리에 앉았지만 막상 그러고나니 이번엔 내가 심심함을 견딜 수 없었다.<br>재밌을만한 게 어디 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솜털 같은 씨앗이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고 있었다.<br>무심코 손으로 잡는 순간 굉장히 간질간질한 느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br>화들짝 놀라 손을 흔드니 씨앗은 어느새 날개를 모두 잃고 아주 얇은 도깨비풀 같은 모양이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br><br> " 으앗, 이기 뭐꼬! "<br> " 와? 와? 뭔데? "<br> " ... 어데서 날라온거지? "<br><br>영문을 모르는 표정의 대준이와 민재를 놔두고 씨앗이 날아온 방향으로 땅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가보니<br> 드문드문 민들레를 닮은 독특한 씨앗이 자라있는 걸 발견했다.<br><br> " 대준이! 민재! 와봐! 이거 민들레가? 아이제? "<br> " 민들레 아이네. 잎이 빨갛다이가. "<br><br>조금 전 겪었던 기묘한 느낌을 아무리 설명해도 '에이' 하는 녀석들의 반응에 발끈한 나는 씨앗이 달린 줄기를 꺾어든 뒤 <br><br> 발가벗은 채 우렁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형석이를 향해 있는 힘껏 씨앗에 대고 바람을 불었다.<br>후우! 그러자 내가 봤던 씨앗과 똑같은 씨앗들이 저마다 날개를 달고 형석이의 맨등으로 날아갔다.<br><br> " 으힉! "<br><br>형석이는 허리를 활처럼 튕기며 제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br><br> " 봐라! 내 말 맞제? "<br><br>으쓱하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우와 진짜였네'하고 나를 추켜세워주긴 커녕 녀석들은 배를 부여잡고 푸하하<br> 한바탕 웃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씨앗을 하나씩 꺾어왔다.<br><br> " 후우-! "<br> " 푸후우-! "<br> " 푸푸푸우! "<br><br> " 으갸악, 으햐햐! "<br><br>무너질 모래성을 하루종일 쌓고 부수는 게 아직까진 놀이가 되는 나이의 우리였기에, <br><br>씨앗을 불면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춤을 추는 광경은 충분히 우리에게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br><br>어느새 나도 씨앗의 기묘한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형석이에게 불었던 처음의 목적을 망각한 채, <br><br>형석이의 그러한 반응 자체를 즐기기 위해 씨앗을 따오고 있었다.<br>제일 많이 부는 사람이 오늘의 영웅이라도 될 것처럼 우리는 곳곳에 있던 씨앗을 모두 가져다 불었다.<br><br> " 야! 민재! 상우! 내 봐봐! "<br><br>호기롭게 외치는 대준이를 쳐다보니 언제 그리도 모았는지 열 송이도 넘게 씨앗을 따와선,<br><br> " 하압- 우푸푸! "<br><br>마침 논두렁 쪽으로 쌀쌀하게 불어주는 바람을 타고 씨앗이 날아가 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양이 달라붙었다.<br>형석이의 등에 마치 모자이크를 해놓은듯 온통 도깨비풀 같은 씨앗이 달라붙어있었다.<br><br> " 으히이잇! 으햐아! "<br><br>그 모습에 대준이가 으쓱거리자 민재와 나도 '기다리봐!'하곤 한 번에 더 많은 양을 불기 위해 채집에 나섰다.<br>그때 이미 해는 저물어 고개를 거의 땅에 쳐박지 않으면 씨앗을 찾기 힘들 정도로 어둠이 깊었다. <br><br> " 전민재! 니 밥 무러 안 오고 여기서 뭐하노! "<br> " 어, 엄마.. "<br> " 빨리 안 오나! "<br> " 대준이, 상우, 내 갈게.. 내일 보자. "<br><br> ... 열다섯개 한 번에 불기를 목표로 손에 모으고 있던 세 송이를 땅에 버리고, <br><br>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이미 달이 노랗게 떠있었다. <br><br>그제서야 두려움이 밀려왔다. 밥 짓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먹고 치웠을 시간이다.<br>혹시 우리 엄마도 날 찾으러 오신 건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니 그새 더 높아진 달이 논둑을 비췄다.<br>처음엔 드문드문 보이는 수준이던 씨앗이 아예 찾기 힘들 지경이 되어있었고, <br><br>그 와중에 보이던 한 송이는 대준이가 뚝 끊어가버렸다. <br><br> " 야, 대준이, 우리도 인자 집에 가자. "<br> " 이것까지만 불고. "<br><br>내 두려운 마음과는 달리 대준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br>몇 마리 잡지도 못한 우렁이를 손에 든 채 어디 놔뒀는지 모를 바지를 찾아다니는 형석이에게 마지막 씨앗이 날아갔다.<br><br> " 히이익-! "<br><br>달빛 아래 춤추듯 경련하는 그림자가 일으킨 물장구가 방울마다 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br><br> ' 아..! '<br><br>그제서야 보는 내가 따끔할 정도로 처참한 형석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br>소름이 끼쳤다. <br><br>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br>그러나 그 때,<br><br> " 야이 자식아, 지금이 몇 시인데 놀고 있노! 어! "<br> " 어무이, 그게 아니구요.. "<br> " 아니긴 뭐가 아이라! 집에서 걱정한단 생각은 안 하나? 이 자슥아, 어! "<br><br>회초리까지 들고 오신 어머니께 매질 세례을 받으며 대준이에게 안녕 한 마디 하지 못 하고 집으로 끌려갔다.<br>그 무거운 발걸음 때문에 형석이를 향한 걱정은 금새 불씨도 없이 꺼져버렸다.<br>수 백, 어쩌면 수 천 개의 씨앗이 달라붙었을 남의 아픔보단 방금 맞은 회초리로 인한 내 아픔이 더 아팠으니까.<br><br><br>4.<br><br> " 시간도 못 지키는 놈이 후에 커서 지랑 즈그 새끼 밥그릇은 우째 지킬라고 그라노! "<br><br>어머니께 맞은 종아리가 퉁퉁, 울다가 부은 눈도 퉁퉁, <br><br>그 꼴로 지청구를 먹어가며 찬밥을 먹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묵묵히 계시던 아버지께선 어머니를 만류하셨다.<br><br> " 고마 해라. 머스마가 한참 설칠 나이 아이가, 너무 나무라지마라. 얼라 기죽는다. "<br> " 그라믄 당신이 뭐라고 좀 하소. "<br> " 알긋다. 어데서 놀았는가 몰라도 아가 거지꼴이네. 씻김시로 내가 잘 말할구마. "<br><br>아버지 덕에 혼은 더 이상 나지 않았고, 흙을 묻혀온 터라 아버지께선 따뜻하게 데운 물에 목욕을 손수 시켜주시며<br> 시간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천천히 읇어주셨다. <br><br>머리에 부어주시는 물 속에 몰래 눈물도 따라보냈다.<br><br>목욕을 마치고 아버지께서 내 몸의 물기를 닦아주시던 중에,<br><br> " 이게 뭐고..? "<br> " 와예? "<br> " 가만히 있으봐라. "<br> " 앗 따거! "<br> " 상우야, 이기 뭐고? "<br> " ... 어라? "<br><br>형석이에게 불던 씨앗이다.<br><br> " 조심하면서 놀아라. 어째 놀길래 도깨비풀이 맨살에 붙어가 들어오노. "<br> " 예. "<br><br>아버지 몰래 거울 앞에 서서 살피니 어깻죽지에 아주 조그맣게 동그란 자국이 남아있었다.<br>아직 따끔거리는 부분을 더듬거리니 무언가 손가락에 닿는 느낌이 들어 살을 주물거리니 꼬불꼬불한 흰색 돌기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br><br> " ... "<br><br>끝까지 당겨보니 새끼손톱만한 길이다.<br><br> " 으, 씨바.. "<br><br>대충 바깥에 버리곤 일찍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통 오질 않았다.<br><br> ' 그럼 형석이는..? 형석이는.. '<br><br><br>5.<br>형석이가 결석했다.<br>웬일로 형석이 아버지로부터 학교에 전화가 와서 형석이가 아파서 학교에 못 온다고 알리셨다며 <br><br> 담임 선생님께서는 급우들에게 무언가 아는 일이 없냐고 물어오셨다. <br><br>모두 알 턱이 없어 한 목소리로 '아니요'라고 했지만,<br>오직 나 혼자만 마음 속으로 무언가 찝찝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br><br>민재와 대준이는 아예 씨앗이 원인일 거라곤 짐작조차 하지 않는듯 오히려 '이 자슥 꾀병이네'라며 투덜대고 있었다. <br><br>쉬는 시간에 대준이에게 다가가서 형석이 집에 가보자고 권했지만 대준이는 싫어했다.<br>보통 술에 절어있던 형석이 아버지로부터 몇 번 곤란을 겪었기에 그런 거겠지.<br>거듭 부탁하자 대준이도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br><br> " 금마 그거 꾀병일기다. 어제까지 설치던 놈인데. 오늘 함 가보자. 꾀병이면 그냥은 못 넘어간다. "<br> " 고맙다, 대준이. 근데.. 니 어제 씨앗 혹시 달라붙거나 그런 거 없었나? "<br> " 내? 내는 안 붙어있던데. 나도 한 번 내한테 불어볼걸 그랬네. 내도 좀 궁금했는데. 근데 와? "<br> " 아니다. 마치고 형석이 집에나 가보자. "<br> " 뭐고? 새끼.. 알았다. 민재한테도 가자고 말해놔라. "<br><br>학교를 마치자마자 우리 3인방은 각자의 집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형석이 집으로 향했다.<br>엎드린 대준이 등 위를 밟고 올라서서 담벼락 너머 형석이네 집을 들여다봤다.<br><br>- 하하하핫- 우히히 ! <br><br> " 야, 형석이 점마 웃는 소리 들린다. "<br> " 맞제? 낸 한참전부터 듣고 있었다. 봐라, 꾀병 맞다이가. "<br><br>마루 앞에 놓여진 신발을 살피니 형석이가 신고 다니는 다 떨어져가는 싸구려 고무신 하나뿐.<br>내 첩보를 신호탄 삼아 한 명씩 차례로 담을 넘은 뒤 형석이네 마당으로 내려섰고,<br>형석이의 웃음소리를 따라 미닫이식 문 앞에 살며시 도착했다.<br>혹시 알아채면 꾀병을 부릴까 싶어 기척을 숨긴 채, 우리는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형석이의 웃음을 듣고 있었다.<br><br><br> ' 하나! 둘! 셋! '<br><br>숫자 셋을 셈과 동시에 문을 탁 소리가 나도록 세게 열었지만 이불 속에 들어가있는 형석이는 고개조차 내밀지 않았다.<br><br> " 이 자슥아, 학교 땡땡이 치니까 웃음이 실실 나오나? 이불 속에 숨는다고 못 찾을 거 같나, 니 바보가? "<br> " 힉,힉히힉! "<br> " 마, 돌았나? 쳐웃나? "<br><br>윽박에도 비웃듯 웃음을 날리는 형석이에게 잔뜩 화가 난 대준이가 단숨에 이불을 걷어차버렸다.<br><br> " 으아악! 씨팔! "<br><br>그와 동시에 우리 세 명은 욕을 내뱉으며 방 모서리로 달아났다.<br><br> " 혀, 형석이.. 니.. 괜찮나? 니 진짜 아픈거였나? "<br> " 하악, 학-..! 대..주이.. 밍..재.. 사아..앙..우.. "<br> " 야, 괜찮나? 아프면 말하지 마라! "<br><br>그렇게 말하면서도 셋 중 어느 누구도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 했다.<br>발가벗은 채 이불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형석이의 전신에 흰 돌기가 길쭉하게 튀어나와있었다.<br>다닥다닥, 팽이버섯 같기도 하고 콩나물 같기도 한 뿌리가 씨앗의 자리를 대신해 몸밖으로 자라나고 있었다.<br><br> " 호.. 혹시 저거 씨앗 때문 아이가? "<br><br>민재의 말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br><br> " 학, 학! 끄윽, 끅, 하학!.. "<br><br>눈은 감아도 귀는 닫을 수 없었다.<br><br>그 자리에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아도 소리는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br> '하하하' 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br><br>그건 넘어가는 숨을 간신히 붙잡고 힘겹게 사투하는 형석이의 비참한 숨소리였다.<br>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눈이 튀어나올듯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br><br>그 순간을 넘기면 몸에 진이 빠져버렸는지 창백해진 채 내쉬지 못 했던 숨이 급히 튀어나오는 소리, <br><br><br> '하악! 하악! 하악!..'<br><br> " 학- 학! 살려줘, 살려줘! "<br> " 야.. 조금만 참아봐라! "<br><br>살려달라고 말했다.<br>그렇게 괴롭히고, 때리고, 울려도 들을 수 없었던 말을 하고 있었다.<br>울상을 지은 채 우리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도깨비풀 형태의 씨앗을 손으로 집어 떼내기 시작했지만<br> 이미 등에서 자라난 돌기가 서로 얽히며 살과 살 사이를 뚫고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었다.<br><br> " 이, 이건 어떻게 안 되나? "<br><br>민재가 살에서 나와 다른 살을 뚫고 바느질하듯 얽혀있는 뿌리 몇 개를 집어 떼내어 보려하자,<br><br> " 갸아악! "<br><br>끓는 소리를 내며 형석이가 몸을 비틀었고 그 완력에 우리 셋 모두가 뒹굴었다.<br>보통 기운으론 낼 수 없었을 힘이다. 평소에 이정도로 힘이 셌다면 우리 중에 누구도 형석이를 괴롭힐 수 없었다.<br><br> " 학, 하악! 하악.. 켁.. 살려..줘.. "<br><br>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br>계속되는 경련과 고통, <br><br>그 순간에도 자라나고 있을 꼬불꼬불한 돌기들,<br><br><br>이번만큼은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br>듣는 이의 귀를 긁어대는 비명과, 그 뒤에 이어지는 신음에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br><br><br>6.<br>있는 힘껏 달려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보니 저녁이 깊었다.<br>하지만 동네 어디서도 밥 짓는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br><br>발 없는 소문이 벌써 돌고 돌아 마을 사람 모두가 형석이네 집에 모여있었다. <br><br>잔칫날에도 이만한 인파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br><br> " 아아악- 죽여줘-, 죽여줘어어! "<br><br>살려줘, 살려줘, 하던 형석이가 언제부턴가 그냥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br>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다. <br>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가버릴 정도의 고통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br>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괴로워야 나오는 감정인가.<br>돌기는 갈수록 빨리 돋아나서 이제 전신이 하얗게 덮혀있었다.<br><br> " 형석아, 아파도 참그라! 니 낫고자 하는기다! 조금만 참아라! "<br><br>목공소 아저씨가 들고온 톱으로 형석이의 전신을 휘감은 뿌리를 잘라내기 시작했다.<br>서걱! 서걱! 갈아내는 소리와 함께 흰 돌기들이 땅바닥에 쏟아졌지만 동시에 형석이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br><br> " 끄아아악! 아파-! "<br><br>돌기가 안과 밖으로 자라 근육과 내장을 잡고 있기에 돌기가 받는 충격이 그대로 살과 뼈에 전해졌던 걸까.<br>형석이는 괴성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그 표정을 읽을 순 없었다. <br><br>이미 얼굴마저도 뿌리에 완전히 감겨있었다. <br><br>언제부턴가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br><br>사람들이 형석이로부터 떨어져나온 조각들을 만져보곤 완전 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br><br> " 아가 와 소리도 없노? 맥을 짚어야된다! 김씨, 여기 좀 쳐내봐라, 맨살이 보여야 맥을 짚지! "<br> " 알겠심더, 아이고.. 형석아! 들리면 들린다고 말 좀 해봐라, 정신 차리라! 아가! 형석아! "<br><br>목공소 아저씨가 형석이의 팔에 붙은 돌기를 잘라내며 계속 말을 걸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br>아마 모두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br><br> " 아가 와 이라노.. 우짜믄 좋노.. 누가 이랬노.. 어느 천벌 받을 놈의 짓이고.. "<br><br>한 할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내 고개는 절로 숙여졌다.<br>누가 그랬을까. <br>끝까지 형석이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br>우리가 친구라서? 아니면 그런 이야기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br>그러나 이미 답을 얻기엔 늦었다.<br><br><br> " …… 죽읏다… 가뿟다…. "<br><br>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br>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세음보살 소리 속에서 형석이는 고요하게 누워있었다.<br><br> " 얼라들은 저런 거 보는 거 아이다. "<br><br>어머니께선 형석이의 주검을 바라보던 내 눈을 가리셨다.<br><br> ' 어무이.. 저는 다 봤어요.. '<br><br><br>7.<br>형석이의 주검은 어른이 들어가는 크기의 관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br>결국 주검을 몇 번씩이나 깎아서 최대한 사람 모양을 갖추게 한 다음 관에 넣었지만<br> 어른들이 관을 지고 산으로 올라갈 적엔 또 다시 뚜껑이 불룩히 솟아오른 느낌이 들었다.<br><br>그 뒤 소문을 통해 들은 소식으론 형석이 아버지는 형석이를 산에 묻으러 가는 길에 나타났다고 한다.<br>다만 산 채가 아니라 나무에 목을 매단 채로 나타났다. <br><br>하루 앞 뒤로 그렇게 형석이네 부자는 세상을 떠났다.<br><br><br>8.<br><br> " 으히히히! "<br><br>… 딸의 웃음소리에 기어코 또 떠올려버렸다. <br><br>이미 삼십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 선명해.<br>잊자, 제발 잊어버리자. 이미 끝난 일이다. <br><br> " 시골 다 왔는데 이상한 거 그만 보고 할머니한테 전화 한 번 해봐라. "<br> " 할머니? 알았어. "<br><br>점점 고향 마을에 가까워지고 있다.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다.<br>정든 풍경이다.. 굳이 그런 일들 말고도 추억할 거리는 얼마든지 있어.<br>그 날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자.<br><br> " 아빠, 할머니 전화 안 받으시는데? "<br> " 할아버지한테 해봐라. "<br> " 두 분 다 안 받으셔. "<br> " 밭에 가셨나.. "<br> " 근데 아빠 지금 보니까 우리 시골 경치 진짜 좋다- "<br> " 도시랑 틀리제? 이런 곳이 진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아이가. "<br> " 대박, 진짠가봐~ 공기가 틀리긴 틀린건가? 아빠 저기 산에 봐봐! 4월인데 눈 쌓인 거 봐! 완전 스키장이야! "<br><br>딸의 말에 운전하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던 뒷산을 힐끔 쳐다보자 과연 산이 계절을 잊은듯 아직 새하얗다.<br><br> " 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른 곳엔 눈 온 데 없던데.. "<br> " 우와- 차 좀 세워봐, 아빠! 사진 하나 찍고가요! "<br> " 그래라, 올해는 눈 보기 힘들었는데 4월에 눈을 다 보네. "<br><br>사진을 찍자는 딸의 말에 겸사겸사 멀리서 고향 경치도 미리 보고 들어갈 겸 차를 세웠다.<br><br> " 후아- 공기 좋고! "<br><br>기지개를 켠 뒤 카메라로 몇 장씩이나 계속 사진을 찍는 딸 옆에서 담배 한 개피를 물려는 순간,<br>하하하..<br><br> '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br><br>하하하ㅡ!<br><br> ' 어디서 잔치라도 하는 모양이지. '<br><br>하, 하, 학!<br><br> ' …!! '<br><br>순간 손이 떨려와 담배를 놓치고 말았다.<br><br> " 사진 그만 찍고 차에 타라! 빨리! "<br><br>- 학, 학, 히힉, 학, 학…!<br><br> " 왜에! 아빠 담배 벌써 다 폈어? 좀 기다려봐- "<br> " 타라고 안 카나! 빨리 타라! "<br> " 우씨, 아빠가 찍어도 된다며! 말이 왜 틀려? "<br><br>자초지종을 설명할 겨를도 없이 딸을 차에 태우고 난 뒤 마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br>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고, 전염되듯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br>웃는 소리가 아니다. 분명하다.<br><br>- 힉, 히익, 학, 하학, 으하악-! <br><br>마을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비로소 소리의 정체가 명확해졌다.<br>이 소리는 형석이가 내던 절규다, <br><br>생과 사에 반쯤 걸친 채로 차라리 죽기를 소원하던 그 절망이다!<br>흡사 웃는 소리처럼 들렸기에 더욱 비참했던 죽음의 소리다!<br><br>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와 서있기 힘들었다.<br>순간 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딸이 튀어나왔다.<br><br> " 아빠, 이것 좀 봐! 눈 오는데? "<br><br>4월.. 맑은 날에.. 눈..?<br>아니.<br>이건.. 눈이 아니야.<br> '씨앗'이다!<br><br> " 차에 들어가라고 안 하드나! "<br><br>딸을 밀치듯 좌석에 앉히고 문을 닫은 뒤 최대한 빨리 운전석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br>궁시렁거리며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딸의 카메라를 빼앗아 급히 뒷산을 확대했다.<br><br> " … 이기 뭐고. "<br><br>뒷산은 눈에 덮혀있지 않았다.<br>뒷산을 하얗게 덮고 있는 건 거대한 뿌리, <br>형석이의 몸에 자라나던 뿌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뿌리가 산을 집어삼킨 채<br> 씨앗비를 뿌리고 있다.<br><br>수 천만? 아니, 수 억? 가늠할 수조차 없는 씨앗바람이 불어오고 있다.<br>형석이를 괴롭히던 우리 3인방이 형석이 등 뒤로 씨앗을 후후 불어대던 그 날 처럼,<br>형석이가 묻혀있는 저 산이 세상을 향해 똑같은 씨앗을 바람에 실어 후후 불어대고 있다.<br><br>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br><br>나도 모르게 어릴 적 형석이 집에서 들었던 할머니들의 불경을 따라하며 후진을 시작했다.<br>벗어나야 한다…! 세상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br><br> " 으히익! "<br><br>순간 딸이 웃었다.<br><br>아니.<br><br> '형석이'가 웃었다.   
    환상괴담의 꼬릿말입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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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16 01:43:23  121.125.***.193  요우달  310383
    [2] 2019/09/16 03:40:01  1.235.***.126  하얀마녀  664862
    [3] 2019/09/16 13:44:09  108.162.***.117  모땐가시나  550572
    [4] 2019/09/16 21:26:11  178.115.***.137  오지리  770642
    [5] 2019/09/20 15:19:59  180.66.***.73  zzzzㅋ  12959
    [6] 2019/09/24 07:39:50  106.246.***.41  시인의창  636241
    [7] 2019/10/04 16:23:59  125.177.***.25  네게가는길  308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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