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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0671
    작성자 : 불안먹는하마 (가입일자:2019-03-29 방문횟수:88)
    추천 : 9
    조회수 : 430
    IP : 59.10.***.118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9/08/15 23:32:11
    http://todayhumor.com/?panic_100671 모바일
    그녀를 찾아 절망 속으로 들어갔다(5)
    옵션
    • 창작글
    그 분은 저희 매장 vip였어요. , 그냥 vip아니고, vvip. 매일 출근 도장 찍었어요.”
     

    백화점 명품 매장 직원인 유지수. 그녀는 진수와 함께 카페에 와있었다. 높은 천장, 간격이 널찍한 좌석. 사람이 많은 가운데 소란함에 묻혀 프라이버시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그런 곳이다. 진수는 목이 타는지 시커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쉬지 않고 들이켰다. 지수는 투명색 컵 겉면에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괜히 만져보았다. 지문만 남기고 지저분하게 흩어지는 액체.
     

    커다란 덩치, 길쭉하고 굵은 선을 가진 얼굴에 곱슬 머리, 눈은 퀭하고 코와 턱밑에 거뭇하게 올라온 턱수염. 그녀 앞에 그런 짐승같은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와 자신의 고객을 찾는다. 그녀의 남편이란다.
     

    솔직히, 남편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젊잖아요 그 분이, 누구와 같이 살 성격도 아니구.”
     

    그녀는 진수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뭔가 묵직한 걸 안고 있는 듯한 그에게는 잔잔한 물결만이 느껴졌다. 덤비지 않는 길들여진 곰이랄까.
     

    이 곳에 온 지는 솔직히 음.. 몇 달 안 됐어요. 그럼에도 단기간에 vvip가 된 것은 이례적인 거죠. 요즘 부자들도 그렇게 안 사는걸요. 그런데 그 분은 카드도 아니고 현찰로 통 크게 샀어요. 제 실적도 팍팍 올려주니 그만큼 고마운 분도 없죠. 그리고 저하고 이름도 똑같으니깐 더 친근하게 지냈죠. 혹시 재벌가 며느리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럼 그 사람 여기서 일 한 적 없는 건가요? 저번에 같은 직원 출구로 나오는 걸 봤거든요.”
     

    , 저희 매장은요 vvip고객님들을 위한 1인 패션쇼를 하거든요. 그때 맞을 거예요. 그걸 보고 같이 직원 출구로 나왔거든요. ! 그때 몰래 쳐다보시고 계신 분이 였구나..
    그분이 어쩐지 서두르시더라고요.”
     

    현금다발로 계산하며 명품을 소비했단다. 기가 막힌다.
     

    언제 마지막으로 여기 들렸나요.”
     

    어제? 아니다 오늘이요. 저희 매장뿐만 아니라 다른 매장도 돌아다니면서 엄청나게 쇼핑하고 나갔어요. 오늘이 이 백화점 오는 게 마지막이다 싶을 정도로 알짜배기 비싼 물건만 쏙쏙 골라갔어요. 진짜 거짓말 안 치고 한번에 1억이 넘게 쓰고 갔어요. 무시무시했죠.”
     

    갑자기 그 광경이 생각난 듯 신나게 떠들었다.
     

    “1억이요? 몇 개나 샀길래...”
     

    에이 몇 개라니요. 진짜 비싼 가방 한두 개만 사도 그 정도는 넘어요. 남편분이 돈을 많이 버시나 봐요?”
     

    방석집 여자들, 그리고 진수의 보증금과 융자로 받은 돈을 들고 산 것이 분명하다. 거침없이 쓰고 다닌다. 어딘가 갈증 난 사람처럼 명품을 사들인다. 그는 자신의 미래, 아이, , 어머니, 여동생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정말 사실일까? 지금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아니요, 그 사람 돈 아닙니다. 훔친 돈이죠. 남 등쳐먹은 돈으로 그쪽 실적 올려준 거 같네요.”
     

    지수는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 어디로 간다는 말 없나요. 평소에 어디에 산다거나 이런 말 들은 적 있어요?”
     

    진수는 처음에는 거짓이라 믿었고, 그녀를 찾아 자신이 생각한 것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왜 그랬는지. 왜 나였는지. 그런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차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그이기에.
     

    그런 말은 없었어요. 그렇게 깊은 이야기는 안 했어요. 오면 항상 명품 이야기뿐이었어요. 새로운 명품을 걸치고 돌아다니면서 남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즐기는 것 같았거든요. 그 정도가 심했어요.”
     

    진수는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한번 훑었다. 찾을까, 자신이 죽을까. 미련 없는 이 세상. 서랍 속 청산가리 가루가 보였다. 한번 툭 털어 넣으면 끝인데. 그는 백화점에서 일할 때 오른쪽 가슴에 꽂는 은색 명찰을 그녀 앞에 두었다. 유지수라고 적혀있는 명찰.
     

    , 제가 잃어버려서 한동안 찾았는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어요. 항상 집에 오면 탁자 위에 올려 두었죠. 자신은 백화점에서 일한다. 정당하게 일한다. 보라는 듯이."
     

    혹시 지수가 찾아오면 지수씨가 이 번호로 전화 좀 부탁드릴게요.”
     

    두꺼운 엄지와 검지 중간에 낀 진수의 명함. 가녀리고 하얀 그녀의 손가락으로 그것을 잡는다.
     

    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습한 공기가 가득한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여름 저녁. 온몸에 감싼 에어컨 냉기가 순식간에 꺼졌다. 그렇게 진수는 한동안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
     

    골목 초입 낡은 파출소 앞. 지명수배전단지가 한쪽이 떨어진 채 위태롭게 걸려있다. 경찰을 상징하는 무궁화 위 독수리. 푸른 불빛을 내뱉고 있는 파출소의 간판이 깜빡거린다. 주위로 불빛이 반가운 나방과 날파리들이 춤을 춘다. 그 앞에 진수는 유리문 넘어를 가만히 쳐다본다.
     

    사장님은요, 그 실종되었다는 분과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 실종신고뿐만 아니라 가출신고도 안 됩니다. 죄송해요. 법적으로 그런 겁니다.”
     

    이제 막 순경을 단 젊은 남자가 글씨를 읽듯 딱딱하게 말을 했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 지수와 그는 남이었다. 가족인줄 알았더니, 남남이었다. 그는 파출소 옆으로 뚫린 암흑 골목으로 들어갔다. 갈색 벽돌이 표면에 불규칙적으로 붙어 있는 낡은 빌라, 칠이 벗겨진 낡은 철문이 반쯤 열린 사람이 살 것 같지 않는 주택들. 그 가운데 세워진 낡고 허름한 3층짜리 시멘트 건물.
     

    3층 유리창 하나하나에 ’ ‘’ ‘이라는 붉은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허연 백열등 불빛이 틈사이로 흘러 나온다. 진수는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불빛 하나 안 들어오는 쓰레기가 가득한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했다.
     

    양쪽에 늘어져 있는 연한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진 문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페인트를 칠하고 마르기 전 흘러내린 흔적들이 물방울 형태로 곳곳에 튀어나와있다.
     

    심부름 센터. 고객 신원 보장 확실
     

    진수는 오른쪽 끝 마지막 문 앞에 섰다. 몇 분이 지나고 결심을 했다는 듯 은색 둥근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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