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무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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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100401

작성자 : 냥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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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59.1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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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9/06/28 2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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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무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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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1</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내가 사는 시골마을에 오래된 나무가 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그 나무는 대략 500년 정도 됐을까? 긴 세월동안 많은 주름과 신령한 기운을 띄게 됐다. 가령 나무위에 올라가 놀던 꼬마들이 골절상을 입거나, 술에 취한 채 노상방뇨를 했던 이웃 아재들이 고환암에 걸려버린 일들 말이다.</div> <div> 사소한 저주들이 하나둘 쌓이다보니 나무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취급됐다. 나 또한 나무가 두려웠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우리 집은 사과와 벼를 재배했었는데 올해는 흉작이었다. 가뭄도 아니었고 태풍이 온 것도 아니었다. 뿌리, 그것은 오래된 나무의 길고 긴 뿌리였다.</div> <div> 우리가 모르게 뿌리는 사과밭과 논 아래로 뻗어 있었던 것이다. 대지의 양분을 모두 나무에게 빼앗긴 사과와 벼는 힘 한번 못써보고 시들어버렸다.</div> <div> 제로. 올해 우리가 거둔 수확량이라 할 수 있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며칠이 지난 어느 밤이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에이, 씨X. 그깟 나무가 사람보다 위대하다는 거야, 뭐야?”</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분개한 삼촌이 술에 취한 채 삽과 톱을 챙겨 나무로 향했다. 그러나 직접 몸통을 벨 용기는 없었던지 발걸음을 돌렸다. 대신 우리 밭으로 뻗은 뿌리를 잘라버렸다. </div> <div> 그날, 삼촌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것은 나였다. 유일하게 말이다. 그때 삼촌을 말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매사 소심하고 용기가 없던 난 그러지 못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돼지우리 공중에 무언가 걸려있었다. 난 얼핏 그것을 본 듯 했는데 어른들은 어린 내게 무언가 감추려 했다.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난 그리 어리지 않았다. 삼촌이 목을 매 죽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div> <div> 왜냐하면 삼촌의 시신을 처음 본 것도, 이전에 나무를 베러나가는 삼촌을 최초로 본 것도 나였으니까. 비록 두려움에 가족들에게 말하진 못했지만.</div> <div> 그렇게 나와 가깝던 가족을 잃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날이후 우리 가족에겐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밤중에 길을 걷던 할아버지가 새까만 무언가를 목격했고, 어머니는 개울 돌다리를 건너다 누군가 자신의 발을 잡아당겼다고 했다. </div> <div> 그리고 그것은 내게도 나타났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대낮이었다. 가족 모두가 농사일을 지으러 나간 사이 집을 지키게 됐다. 난 마루에 누워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던 참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난 파리가 붙었다고 여기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는데, 그것은 끈질겼다. 짜증이 몰려왔다. “에이씨.” 하는 말과 함께 눈을 떴다.</div> <div> 나무로 된 천장. 분명 나무와 전등으로만 이루어져야 정상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에선 말이다. 하지만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div> <div> 천장을 새까맣게 매우는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무 뿌리였다. 조금씩 움직이던 그것은 나를 향해 뻗어왔다. </div> <div> 소스라치게 놀란 난 문을 박차고 집을 나갔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아빠, 아빠. 집에 이상한 게 있어.”</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가족들이 일하는 밭으로 뛰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빤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뛰어갔다.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현호야, 천장에 뭐가 있다는 거냐?”</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아빠의 말은 어딘가 차가웠다. 난 억울했다. 그것은 분명 내 손이 가리키는 천장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말이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날 밤. 마을 깊은 산중에 기거하던 무당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난 이불을 덮고 잠든 척하며 대화를 엿들었다.</div> <div>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재앙이 무당에게 속속 전해졌다. 무당은 말없이 얘기를 듣더니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가족 중에 어린 여자를 재물로 바치면 해결될 일이라는 것이었다.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닌 시집을 가는 것이라며. </div> <div> 무당의 말이 나온 이후 누군가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내 여동생의 이름, 현정이 말이다. 난 날이 밝아오면 꼭 반대하리라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다음날. 여동생 현정이가 사라졌다. 증발했다고 해야 하나? 난 어젯밤 가족들이 잠든 현정을 재물로 바쳤음을 직감했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style="text-align:center;">2</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며칠, 아니 한 달이 지났다. 우리 가족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여동생을 희생해서 얻은 평화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했다.</div> <div> 개울가에 앉아 돌을 던졌다. 내가 한심했다. 왜 진즉에 다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을까?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렇게 후회하는 걸까? 난 아직 어렸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에 신물이 났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몸을 일으켜 납작한 돌을 던졌다. 돌은 두 번 첨벙 거리더니 가라앉아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더 나아가지 못하는 나와 같았다.</div> <div> 그때였다. 내 뒤편으로 인기척이 들리더니 내 눈앞으로 돌 하나가 수차례, 아니 몇 십번이라 해야 하나? 물수제비가 수면 위를 첨벙거리며 나아갔다. 뒤돌아보자 한 사내가 서있었다. 딸꾹- 하는 소리와 함께 새빨간 얼굴이 보였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나이도 어린 녀석이... 땅 꺼지겠다, 이 자식아.”</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뭐라 대꾸할 말을 찾아보려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침묵하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보던 사내는 피식- 하고 웃더니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아, 왜 때려요?”</div> <div> “소문 듣고 왔다. 이 마을에 나무귀신의 저주를 받아 자식을 재물로 바친 미친 집이 있다던데... 그게 너네집이지?”</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문이 턱하고 막혔는데, 사내가 마저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을 퇴마사라 밝히며 어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전하라 했다. 자신은 마을회관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도 덧붙이며 말이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늦은 오후. 일을 마친 가족들이 집에 한데 모였다. 난 퇴마사를 만났다고 말하며 도움을 받자고 했다. 이제라도 여동생을 되찾아오자며 말이다.</div> <div> 하지만 가족들은 마른 한숨만 푹푹 내쉴 뿐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구하자는 얘기는커녕 여동생은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갔다고 했다. 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날이 밝아오자 난 마을 회관으로 단신으로 걸어갔다. 가족 중에 나 혼자라도 나간다면 동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div> <div> </div> <div> 개울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려 했다. 이 다리를 건너야만 회관으로 당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뗄 때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div> <div> 무언가 발을 잡아당겼다는 말. 난 애써 태연한 척하며 걸었는데 무언가 발목을 감싸 쥐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자 얼마 전 천장에서 본 그것. </div> <div> 뿌리가 내 발목을 감싸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겁에 질린 채 그것을 발에서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린 나의 완력으론 역부족이었던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div> <div> 힘을 줄수록 그것은 나를 물가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울상이 되어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 누군가 나타나 뿌리를 부숴버렸다. 고개를 들자 퇴마사였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나이스 타이밍.”</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퇴마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개울을 건널 수 있었다. 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퇴마사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 거렸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근데... 혼자 왔니?”</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내가 그렇다고 말하자 퇴마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실성한 듯 웃다가 “이런, 제기랄.” 이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div> <div> 난 시간이 걸려도 사례는 충분히 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이건 너 같은 겁보가 할 수 있는 게 아냐. 할 수 있겠어?”</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자 퇴마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오늘 밤, 내가 나무 몸통에 톱질을 할 수 있으면 돕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관으로 떠났다. </div> <div> 난 할 수 있다고 대꾸했었지만 망설임이 앞섰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집에 돌아오고 난 뒤 밤이 되지 않길 기도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벽에 걸린 시계는 째깍- 거리며 굴러갔다. </div> <div> 마침내 해가 떨어졌다.</div> <div> </div> <div> 난 어른들 몰래 창고에서 톱을 꺼내 들었다. 눈을 들어 저 멀리 우뚝 솟은 나무를 쳐다봤다. 그것은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div> <div> 여러 생각들이 오고갔다. 삼촌이 홀로 뿌리를 베러나가던 순간, 여동생을 재물로 바쳐야하는 회의에서 반대를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들 말이다. 하나같이 용기가 없어 일을 그르쳤다. 난 톱을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나무 앞에 섰다. 나무는 대략 20미터의 높이에 몸통이 어른 세 명을 합친 둘레였다. 나무껍질에는 무수히 난 상처가 보였는데 이 흔적을 남긴 이들은 모두 합당한 대가를 치렀으리라. 하지만 난, 여동생을 구해야했다. </div> <div> 눈을 질끈 감고 나무에 갖다 댄 톱에 힘을 주려했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style="text-align:center;">3</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누군가 내 손에 든 톱을 거칠게 뺏어 던졌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퇴마사가 보였다. 무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퇴마사는 이내 잇몸이 보일정도로 웃어보였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만하면 됐다. 어지간한 사내놈보단 네가 낫겠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퇴마사는 오늘은 늦었으니 집에서 잠을 청하고 동이 트는 대로 나무 앞으로 나오라 했다. </div> <div> 난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여동생을 구할 기회를 얻었지만 떨리는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나무 앞. 퇴마사는 등에 짊어진 가방에 무언가 가득 담은 듯 어깨가 축 쳐진 인상이었다. 우린 조금 피곤했지만 눈빛만은 생기가 넘쳤다. 난 퇴마사의 안내를 받으며 산속으로 걸어갔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한참을 걸어 올라갔을까? 숨에 부칠 때쯤 퇴마사가 걸음을 멈췄다. 손에 든 나침반 같은 물건을 품에 넣은 퇴마사는 이곳에서 여동생을 구해야된다고 했다.</div> <div> 어떻게 구해야 되냐는 물음에 퇴마사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뭘 어떡해? 싸워야지.”</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퇴마사는 가방을 내려놓고 가져온 물건을 하나 둘 꺼내들었다. 곧장 부적으로 묶은 동아줄을 나무에다 두르고, 바닥에는 매미 유충을 잔뜩 깔았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까지 뿌려댔다.</div> <div>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자 퇴마사는 귀찮아하는 듯 했지만 답해줬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이건 부비트랩, 그리고 매미 유충은 나무뿌리의 양분을 먹어. 우리가 상대하는 게 나무니까 이해되지? 아, 이 물은... 사람으로 치면 바이러스를 유발하는 병균 같은 거야.”</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렇게 우린 바위틈에 숨어 해가 지길 기다렸다. 퇴마사는 단검과 라이터를 건넸다. 자기가 도와달라고 할 때 그것을 사용해야한다며. 반드시.</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산속에 어둠이 내리깔렸다. 부엉이와 들개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조용한 것보단 낫다는 생각을 하고 밤하늘을 보자 보름달이 보였다. 그것도 거대한.</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쉬익... 쉬익... 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산중에 울던 동물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최상위 포식자가 나타나자 숨죽인 사냥감들처럼 말이다.</div> <div> 그 소리는 마치 구렁이가 바닥을 기는 것 같기도 하고, 커다란 쇠가 바닥을 긁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우리가 설치한 함정으로 다가왔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소리 없이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난 어렴풋이 그것이 나무귀신임을 알았다.</div> <div> 그것은 뿌리에 둘러싸인 거대한 사람 형태였다. 난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무귀신의 얼굴을 집중해서 봤다. 어디선가 낯이 익었다.</div> <div> 나무귀신은 얼마 전 여동생을 재물로 바쳐야한다던 무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역시, 이 마을의 무당이 나무귀신이었군.”</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퇴마사는 칼을 손에 쥔 채 나갈 채비를 했다. 그는 내게 신호를 받으면 빨간 뿌리를 자르라고 했다. 그럼 여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퇴마사는 말을 마치고는 나무귀신을 향해 뛰쳐나갔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퇴마사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뿌리를 칼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공격하는 나무귀신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했다. 그는 동아줄을 등진 채 나무를 유인한 뒤, 나무가 다가오자 몸을 잽싸게 피했다. 나무가 동아줄에 닿자 부적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쾅-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귀신을 감싼 뿌리들이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땅바닥... 아니 땅속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벌레들이 무언가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매미 유충들일 것이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나무귀신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졌다. 퇴마사는 그 틈에 상당 부분의 뿌리를 베어내고 나무귀신의 본체를 공격하고 있었다. 넋 놓고 화려한 대결을 지켜보던 난 퇴마사의 외침에 정신이 들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뭘 보고만 있어? 땅위로 솟아난 뿌리 중에 빨간 뿌리를 찾아.”</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정신을 차리고 땅을 보자 커다란 뿌리들이 솟아나 꿈틀대고 있었다. 난 눈을 돌려 빨간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style="text-align:center;">4</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땅 위로 꿈틀거리는 빨간 무언가... 내가 찾던 뿌리가 보였다. 난 단검을 손에 쥔 채 뿌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다른 뿌리들이 날 가로막으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아저씨, 뿌리가 절 공격한다는 말은 없었잖아요?”</div> <div> “내가 말했잖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퇴마사는 갈수록 힘이 빠져 가는데 비해 나무귀신은 점점 힘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div> <div> 난 항상 묻어가길 원했지,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무언가를 해결해본 적이 없었다. </div> <div> 하지만 저 뿌리들 어딘가에 여동생이 있을 것이다. 내가 용기만 낸다면 구해낼 수 있는 문제다. 그렇게 머리로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퇴마사의 옆구리가 뿌리에 찔렸다. 빨간 선혈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거대한 문제 같았다. </div> <div> 망설이던 사이 뿌리가 내 손에 쥐여져있던 단검을 뺏어갔다. 설상가상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라이터뿐이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뿌리는 쓰러진 퇴마사를 향해 뻗쳐갔다. 퇴마사가 내게 무언가 소리를 질러댔지만 내 귀에는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난 귀를 막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div> <div> 이렇게 또다시 철저히 지켜만 보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용기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내 목소리를 낸단 말인가? 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div> <div> 그때였다. 어디선가... “오빠.” 하고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 소리가 촉매제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내 가슴속에 불꽃이 일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촘촘하게 쓰여 있었다. </div> <div> 난 빨간 뿌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뿌리들이 내 몸에 상처를 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목표는 단 하나, 빨간 뿌리였다. 퇴마사를 공격하던 나무귀신은 방향을 내게 틀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래, 바로 그거라고.” 하고 퇴마사가 나를 북돋아줬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빨간 뿌리를 향해 불과 1미터를 앞뒀다. 어느새 나무귀신도 그 앞까지 다가왔다. 난 빨간 뿌리에 라이터를 갖다 대려다 방향을 틀었다. 나무귀신 본체로 말이다. </div> <div> 칙- 하고 불을 켰다. 그러자 기다란 불꽃이 치솟더니 나무귀신에게로 옮겨 붙었다. 나무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난 고개를 돌려 퇴마사를 봤다.</div> <div>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이젠 숨어들지 않을 거예요.”</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난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쥐고 빨간 뿌리를 갈랐다. 그리고 한참동안 난도질을 했다. 현정아, 현정아. 오빠가 미안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칼질을 하다 보니 여동생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난 잠들어있는 여동생을 뿌리 속에서 끄집어냈다.</div> <div> 뺨을 때리고, 흔들어보았다. 그러자 여동생은 초록빛의 물을 왈칵 쏟더니 눈을 떴다. 난 여동생을 힘껏 껴안았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나무귀신이 땅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퇴마사는 일격을 가하려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발라당 누워버렸다. 그는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말과 함께 내일까지 나무를 베어야한다고 했다. 뿌리가 아닌 몸체를 말이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반가움과 우려가 반쯤 섞인 반응이 나왔다. 돌아와서 기쁘지만 저주가 두려웠던 것이다. 난 다음날, 혼자서라도 나무를 베겠다고 다짐하며 동생을 옆에 재운 채 뜬 눈으로 밤을 샜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해가 떴다. 난 곧장 톱을 챙겨 나무로 향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나무에 톱을 댄 채 썰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부스러기가 흩날렸지만 어린 내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꼬맹이가 톱질을 하기에는 나무 몸통이 너무나 컸다.</div> <div> 잠시 후, 우리 가족이 우려 섞인 눈빛으로 내 뒤에 서있는 게 느껴졌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톱질을 이어나갔다.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때였다. 여동생을 재물로 바쳐야한다던 무당이 나타났다. 그는 어딘가 불에 그슬린 듯한 인상이었다. 난 그가 나무귀신임을 이제는 안다.</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뭣들 해? 이 자식이 하는 걸 당장 안 막고? 그리고 여자애가 왜 여기 있어? 자자, 다시 아이를 재물로 바치면 나무귀신께서 노여워하지 않으실 거야. 내 말을 믿어.”</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가족들은 나와 무당, 그리고 여동생을 번갈아 바라봤다. 난 가족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무를 베어버릴 것이다. 비록 저주를 받는다할지라도 난 용기를 낼 것이다.</div> <div> 지금 하는 일은 옮은 일이고, 충분히 용기를 낼 일이니까. </div> <div style="font-size:11pt;"> </div> <div> 그때였다. 가족 중에 어른들이 뒤에서 도끼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무당의 격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에 도끼질을 해댔다.</div> <div> 무당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무당의 몸에 불이 붙었다. 그는 괴로워하며 마을 언덕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끝없이... 끝없이...</div> <div> 우리 가족은 여동생을 둘러쌌다. 저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론 침묵하거나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겠다며 여동생을 안아줬다. </div> <div> 난 뭔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베어진 나무 앞으로 탁 트여진 마을 전경이 보였다.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새롭게 보게 됐다.</div> <div> 난 그날 키가 자랐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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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9/06/29 00:37:06 211.206.***.239 힌디둥둥 270804
[3] 2019/06/29 06:12:35 172.68.***.133 김여리 447594
[4] 2019/06/29 08:04:18 220.127.***.43 랑해 41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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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19/06/30 07:38:20 119.198.***.219 ★치치 21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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