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우리 할아버지는 손녀인 내가 봐도 무척 신사다운 분이셨다.</div> <div><br></div> <div>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술, 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 도박이나 여자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데다 채식주의를 고수하셨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런 대부분의 습관이,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 생겼다는 것이었다.</div> <div><br></div> <div>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 습관이 완전히 바뀔 정도의 지옥을 보셨던 것이리라.</div> <div><br></div> <div>아직도 할아버지가 전우의 이름을 새긴 위패 같은 것을 불단에 올려두고 열심히 빌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런 할아버지도 8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부터 치매 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어느날 이른 아침, 큰소리로 [하나! 둘!] 하고 구령을 외치며 상의를 탈의한채 집 주위를 달리고 계셨다.</div> <div><br></div> <div>그것이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언젠가는 한낮에 사이렌을 울리며 [퇴각! 퇴각!] 이라고 외치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셨다.</div> <div><br></div> <div>어느 밤에는 [소등, 소등!] 이라며 집 안의 불빛을 모두 끄면서 다니셨다.</div> <div><br></div> <div>나중에 새언니에게 들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다 꺼져서 무척 놀랐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아무래도 증상이 나타나면 일시적으로 전쟁 중의 행동이 나오는 듯 했다.</div> <div><br></div> <div>이전 할아버지의 온화한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그럼에도 폭력을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div> <div><br></div> <div>다만 집이 근처인 내가 아들과 함께 친정에서 저녁을 먹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메뉴는 스키야키.</div> <div><br></div> <div>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언제나 고기 요리는 쳐다보지도 않는 분이었다.</div> <div><br></div> <div>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고기를 먹는 것까지 뭐라 하지는 않으셨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함께 식사는 하지만, 손은 대지 않으실 터였다.</div> <div><br></div> <div>[너희들 공양은 했느냐!]</div> <div><br></div> <div>갑작스러운 고함에, 식탁의 시간은 순간적으로 멈췄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소리를 지른 할아버지를 모두가 바라보자, 할아버지는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투덜거리더니 냄비에서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갑자기 원래의 힘없는 목소리로 [이것은 어느 고기냐...?] 라고 어머니에게 물었다.</div> <div><br></div> <div>잠시 머뭇거리던 어머니가 근처 정육점 이름을 말하자, [그런 걸 물어본게 아니야!] 라며 또 화를 내며 말하셨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혈압이 오른 것인지 할아버지는 가볍게 두세번 머리를 흔든 뒤, 그대로 식탁에서 일어나 가버리셨다.</div> <div><br></div> <div>어머니가 뒤를 따라갔지만 조금 뒤 돌아오셨다.</div> <div><br></div> <div>아무래도 불단에 있는 것 같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불단 앞에서 손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div> <div><br></div> <div>그 후 식탁은 조용했다.</div> <div><br></div> <div>아들은 반쯤 울상을 짓고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반년 정도 뒤 할아버지가 입원하고,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사이 몇 번 정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div> <div><br></div> <div>당시에는 단순한 치매 증세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도대체 뭘 드셨던 걸까?] 라는 말을 해 요즘 계속 마음에 걸린다.</div> <div><br></div> <div>전쟁통에 시달리던 할아버지.</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물자라고는 전혀 없는 전쟁터.</div> <div><br></div> <div>공양을 한 후에야 먹은 고기.</div> <div><br></div> <div>그리고 위패와 기도.</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할아버지, 무엇을 드셨던 건가요?</div> <div><br></div> <div>출처: <a target="_blank" href="https://vkepitaph.tistory.com/673?category=348476">https://vkepitaph.tistory.com/673?category=348476</a>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