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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학자인 성현(成俔 1439~1504년)이 1525년에 쓴 책인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귀신과 싸웠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의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성현의 이웃집에는 기재추(奇宰樞)라는 뛰어난 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죽자 손자인 기유(奇裕)가 집안의 일을 맡았는데 얼마 후에 집안에 나쁜 일들이 있다고 해서 기유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떠났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 성현이 기유의 이웃집 사람들한테 자초지정을 묻자, 그들은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기유의 집에서 어떤 아이 종이 문 밖에 서 있었는데, 문득 그 등에 무슨 물건이 붙어서 그 무게가 무겁고 견딜 수가 없어서,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보려고 하면 전혀 찾을 수가 없는 일들이 계속되어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렸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이 밥을 지으려 하면 여러 가지 괴이한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솥뚜껑은 그대로 있는데 똥이 솥 안에 가득하거나, 밥은 뜰에 흩어져 있고 그릇은 공중을 떠돌며, 큰 솥이 저절로 들려서 공중을 떠돌다가 큰 종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텃밭의 채소가 모조리 파헤쳐지고 잠깐 사이에 채소들이 말라버렸습니다.
게다가 자물쇠로 잠근 옷장이 풀려져 옷이 모두 대들보 위에 늘어져 있고, 아무도 불을 때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궁이에서 불빛이 일어나고, 만약 그걸 이상하게 여겨 사람이 끄려고 하면 불이 문간방에 옮겨 붙어 화재가 일어나는 식이니 제정신이라면 도저히 버틸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유명한 학자의 손자라는 자부심 때문에 기유는 "이 집은 내 조상이 살았던 곳이며, 사내 대장부가 어찌 귀신을 두려워하겠느냐?"라면서 얼마 동안 집 안에 버티고 앉아 있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얼마 버티지 못했는데, 밥그릇이 저절로 옮겨지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갑자기 똥이 얼굴에 날아오는 참변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을 두고 기유가 "이게 무슨 행패인가?"라고 화를 내면 허공에서 "너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냐?"라는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와 더욱 으스스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집을 떠난 기유도 얼마 후에 병에 걸려 죽었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기유의 외사촌 동생인 유계량(柳繼亮)이 역모를 꾸미다가 죽었는데, 아무래도 그 영혼이 기유의 집으로 들어가서 저렇게 행패를 부린다."라고 수근거렸습니다.
출처 |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332~3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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