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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109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76
    IP : 175.213.***.18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12/24 10:36:58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097 모바일
    [BGM] 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은림, 태양중독자




    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장엄한 빛들을 쏘아대며 돌고 도는 저것에게 환장하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태양에게


    사육당하는 중이다

    엉겨 붙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호명한 적 없는 태양에게


    부글부글 대드는 중이다

    막무가내 달려드는 중이다

    내 시야의 전부이지만 단 한 번도 응시한 적 없는 태양에게

    저, 붉은 것에게


    그러니, 이제는 말하자

    왜 아직 나는 증발하지 못했는가

    왜 아직 고여서 출렁이는가

    갈증은 왜 내게 고통이 아닌가


    데인 상처는 너무 쉽게 흉터가 된다

    태양은 악착같이 이글거리고

    너는 또다시 증발되는 중이지만

     

     

     

     

     

     

    2.jpg

     

    염명순, 꿈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이고 나면

    어김없이 아프다

    아버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어요

    아버지의 쓸쓸한 생애는

    부산 근교 함경남도 단천 동산에 묻히셨어요

    얘야, 고향도 떠나왔는데 어딘들 못 가겠느냐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

    다시는 시를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픈 꿈의 머리맡에서 누가

    이마를 짚어주는 듯했는데

    밥 많이 먹으라고 언니의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3.jpg

     

    최두석, 누에 이야기




    누에의 집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고개를 들고 정지한 모습을 느낄 뿐이다

    몇 달이고 계속되던 잠에서 깨는 날

    다만 깨어 있으려는 노력으로 꿈틀대지만

    곧잘 다시 잠에 취하기 마련

    그러나 깨어 있는 지혜를 깨친 누에는

    계속 입을 놀려 이야기의 실을 뽑아낸다

    이야기는 이야기끼리 스스로 엉켜 집을 짓고

    과연 희한한 집짓기를 마쳤을 때

    자신은 어느새 집 속에 갇혀 있다

     

     

     

     

     

     

    4.jpg

     

    정군칠, 무릎 꿇은 나무




    모슬포 바닷가, 검은 모래밭

    서쪽으로 몸 기운 소나무들이 있다

    매서운 바람과 센 물살에도 속수무책인 나무들

    오금 저리는 앉은뱅이의 생을 견딘다

    저 록키산맥의 수목한계선

    생존을 위해 무릎 꿇은 나무들도

    혹한이 스며든 관절의 마디들을 다스린다

    곧 튕겨져 나갈 것처럼 한쪽으로 당겨진 나이테의 시간들이

    공명의 가장 깊은 바이올린으로 다시 태어난다

    곧게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의 뼈

    그 흰 뼈의 깊은 품이

    세상의 죄스러운 것들을 더욱 죄스럽게 한다

     

     

     

     

     

     

    5.jpg

     

    조태일, 소멸




    산들과 잠시나마

    고요히 지내려고

    산에 오르면


    산들은 저희들끼리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한 점 티끌도 안 보이게

    나를 지운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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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24 19:57:59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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