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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김수영, 검은 우물
외딴곳에 집이 한 채 있으면 하고 생각하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돌투성이 언덕, 뙤약볕에 익은 돌들이
서늘해지는 밤이면 불꽃을 내며 터지고
뜨거운 돌 아래 뱀과 붉은 지네가 우글거리는 곳에
바닥이 안 보이게 우물 하나 파고
밤마다 들여다보며 있고 싶지
우물 바닥 깊은 곳에서 올라와 무화과 잎처럼 펼쳐지는
우우거리는 것들이 더 깊은 울림을 지니도록
두레박이 깨어져라 수면을 때리지
아무리 퍼마셔도 목마른 물이 있지
끊임없이 솟아도 결코 차오르는 법 없는
밑바닥 없는 구멍
우물 바닥은 내 눈보다 더 축축한 검은 빛이지
윤곤강, 나비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문덕수, 꽃과 언어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오세영, 모순의 흙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이동순, 물의 노래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보리
살아생전 영영 돌아가지 못함이라
오늘도 물가에서 잠긴 언덕 바라보고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 꿈에 가위 눌리니
세상사람 우릴 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옮겨간 낯선 곳에 눈물 뿌려 기심매고
거친 땅에 솟은 자갈돌 먼 곳으로 던져가며
다시 살아보려 바둥거리는 깨진 무릎으로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갈 뿐
나는 수몰민. 뿌리째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 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길 흘러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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