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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989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99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4/26 10:58:57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897 모바일
    [BGM]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재무남겨진 가을

     

     

     

    움켜진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흔들리는 풀잎으로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박 속 같은 눈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난 조롱박으로 퍼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2.jpg

    박재열독서

     

     

     

    오늘 읽는 책 위로 얇은 유리 층 하나 파르르 떨리네

    이걸 지층이라 부를까지진이라 부를까

    아무리 지진에 자물통 채우고 책상 다리 찔러 침잠하려 해도

    몸의 내밀한 소린 터파기처럼 유리 층을 부수네

    책 속의 작은 꽃가마울컥울컥 행간을 헤치고 올라오네

    우린 못 보아도댐이 무너지고몸 안의 들녘이란 들녘이 다 범람하는데

    꼭 같은 페이지꼭 같은 모서리예사로운 앉음새

    모두 겹꽃무리의 집단행동이라 속단하고

    애써 침잠해 보려 하지만

    통꽃무리들이 소나기처럼 우두둑유리 현관문을 두들겨

    그래도 그냥 보통명사의 항의라고 속단하고

    여느 때처럼 2쪽 다 읽고 3쪽 넘기며

    그저 그런 거라고 귀 접어 둘정말 그저 그런 일일까







    3.jpg

    김경연애

     

     

     

    나는 꽃의 슬픈 살갗을 가진 탕아

    편식주의자인 사내의 불길한 애인

    애초 그대와 내가 바닥없는 미궁이었을 때

    얼마나 많은 바다가 우리의 밤을 핥고 갔는가

     

    내 몸 어디에 앉을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 미타산 저물 무렵처럼

    나와 어떻게 이별할지 끙끙대는 어린 연애

    유리창처럼 닦아주고 싶은 저나이 어린 연애의 등

     

    투정할 새도 없이 그는 가고

    흰 배롱나무 꽃자리에 백악기의 새처럼 앉아

    나를 살피는 연애

     

    아직 가보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정글정글도 늙어

    그 늙은 정글의 늑골에 두리기둥 박는 일만 같아

    밤이 미타산으로 엉덩이를 슬쩍 걸치듯

    그대의 호명을 기다리는

     

    껍질까지 벗어 던져야 돌아오는 연애

    생의 난간 같은 연애







    4.jpg

    문태준역전 이발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이 살고 있고

    말라 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 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5.jpg

    최영철막걸리

     

     

     

    쌀뜨물 같은 이것

    목마른 속을 뻥 뚫어 놓고 가는 이것

    한두 잔에도 배가 든든한 이것

    가슴이 더워져 오는 이것

    신 김치 한 조각 노가리 한 쪽

    손가락만 빨아도 탓하지 않는 이것

    허옇다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다가

    벌컥벌컥 샘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이것

    한 잔은 얼음 같고 세 잔은 불같고

    다섯 잔 일곱 잔은 강 같고

    열두어 잔은 바다 같아

    둥실 떠내려가며 기분만 좋은 이것

    어머니 가슴팍에 파묻혀 빨던

    첫 젖맛 같은 이것

    시원하고 텁텁하고 왁자한 이것

    어둑한 밤의 노래가 아니라

    환한 햇볕 아래 흥이 오르는 이것

    반은 양식이고 반은 술이고

    반은 회상이고 반은 용기백배이다가

    날 저물어 흥얼흥얼 흙으로 스며드는

    순하디 순한 이것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0/04/26 19:45:30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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