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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9718
    작성자 : 통통볼 (가입일자:2012-11-15 방문횟수:1619)
    추천 : 1
    조회수 : 165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3/30 09:37:58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718 모바일
    [BGM] 어머니는 기다림을 내게 물려주셨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D68QmHIgjAo






    1.jpg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 놓은 껌

    그 많은 이빨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 준 껌







    2.jpg

    이병률뒷모습

     

     

     

    왜 추운 데 서서 돌아가지 않는가

    돌아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끝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쌀로 쌀에서 고요로 사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구덩이가 많아

    그 차가운 존재들을 뛰어넘고 넘어서만 돌아가려 하는 것인가

    추워지려는 것이다

    지난 봄 자고 일어난 자리에 가득 진 목련꽃잎들을 생각한 생각들이

    눈길에 찍힌 작은 목숨들의 발자국이

    발자국에서 빗방울로 빗방울에서 우주의 침묵으로

    한통속으로 엉겨들어조그맣게 얼룩이라도 되어

    이 천지간의 물결들의 최선들을 비벼대서

    숨결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돌아온다는 당신과 떠난 당신은 같은 온도인가

    그 사이 온통 가득한 허공을 밟고 뒤편의 뒷맛을 밟더라도

    하나를 두고 하나를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한곳을 가리키며 떨리는 나침반처럼

    눈부시게 눈부시게 떨리는 뒷모습에게

    그러니 벌거벗고 서 있는 뒷모습에게

    왜 그리 한없이 서 있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3.jpg

    박형준

     

     

     

    어머니는 젊은 날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

    땡볕에 잘 말린 고추를 빻아

    섬으로 장사 떠나셨던 어머니

    함지박에 고춧가루를 이고

    여름에 떠났던 어머니는 가을이 되어 돌아오셨다

    월남치마에서 파도소리가 서걱거렸다

    우리는 옴팍집에서 기와집으로 이사를 갔다

    해당화 한 그루가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건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섬으로 떠나고 해당화 꽃은 가을까지

    꽃이 말라비틀어진 자리에 빨간 멍을 간직했다

    나는 공동우물가에서 저녁 해가 지고

    한참을 떠 있는 장관 속에서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고춧가루를 다 팔고 빈 함지박에

    달무리 지는 밤길을 이고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이제 팔순이 되셨다

    어느 날 새벽에 소녀처럼 들떠서 전화를 하셨다

    사흘이 지나 활짝 핀 해당화 옆에서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이 도착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

    심장이 고춧가루처럼 타버려

    소닷가루 아홉 말을 잡수신 어머니

    목을 뚝뚝 부러뜨리며 지는 그런 삶을 몰랐다

    밑뿌리부터 환하게 핀 해당화 꽃으로

    언제나 지고 나서도 빨간 멍 자국을 간직했다

    어머니는 기다림을 내게 물려주셨다







    4.jpg

    길상호비의 뜨개질

     

     

     

    너는 비를 가지고 뜨개질을 한다

    중간 중간 바람을 날실로 넣어 짠

    비의 목도리가밤이 지나면

    저 거리에 길게 펼쳐질 것이다

    엉킨 구름을 풀어 만들어내는

    비의 가닥들은 너무나 차가워서

    목도리를 두를 수 있는 사람

    그리 흔하지 않다

    거리 귀퉁이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새벽녘 딱딱하게 굳은 몸에

    그 목도리를 두르고 떠났다던가

    버려진 개들이 물어뜯어

    올이 터진 목도리를 보았다던가

    가끔 소문이 들려오지만

    확실한 건 없다

    비의 뜨개질이 시작되는 너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다는 것 말고

    빗줄기가 뜨거운 네 눈물이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다







    5.jpg

    임영석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거미는 밤마다 어둠을 끌어다가

    나뭇가지에 묶는다 하루 이틀

    묶어 본 솜씨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어둠을 묶어 놓겠다고

    거미줄을 풀어 나뭇가지에 묶는다

    어둠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뭇가지가 휘어져도

    그 휘어진 나뭇가지에 어둠을 또 묶는다

    묶인 어둠 속에서 별들이 떠오른다

    거미가 어둠을 꽁꽁 묶어 놓아야

    그 어둠 속으로 별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거미가 수천 년 동안 어둠을 묶어 온 사연만큼

    나뭇가지가 남쪽으로 늘어져 있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따뜻한 남쪽으로 별들이 떠오르게

    너무 많은 어둠을 남쪽으로만 묶었던

    거미의 습관 때문에 나무도 남쪽으로만

    나뭇가지를 키워 왔는가 보다 이젠 모든 것이

    혼자서도 어둠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수천 년 동안 거미가 가르친

    어둠을 묶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거미는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뜨는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었나 보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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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30 21:13:09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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