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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9696
    작성자 : 통통볼 (가입일자:2012-11-15 방문횟수:1619)
    추천 : 3
    조회수 : 167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3/27 08:23:39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696 모바일
    [BGM] 나는 나를 씻어낼 줄 모른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0BhwAaPY4tQ






    1.jpg

    이건청미나리꽝에 관한 기억

     

     

     

    그 집 뒤엔 미나리꽝이 있고

    미나리꽝 뒤엔 기찻길이 있었다.

    미나리꽝 미나리가 연초록으로 피어오르던 어느 날

    화물을 가득 실은 기차가 미나리꽝 근처에 섰던 적이 있다

    화물칸에는 무명천으로 싼 하얀 상자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전쟁이 멎고고향 찾아가는 유골상자들이었다

    미나리꽝 햇미나리 향기 흩어지는 봄날이었다







    2.jpg

    최승호텔레비전

     

     

     

    하늘이라는 무한(無限화면에는

    구름의 드라마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수줍은지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

    이번 여름의 주인공은

    태풍 루사가 아니었을까

    루사는 비석과 무덤들을 넘어뜨렸고

    오랜만에 뼈들은 진흙더미에서 나와

    붉은 강물에 뛰어들었네

    불멸을 향한 절규들

    울음 울던 말매미들이 사라지고

    단풍이 높은 산봉우리에서 내려오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산 좋아하는 이들을 마지못해 따라나서도

    개울가에서 그냥 혼자 어슬렁거리고 싶네

    누가 염치도 없이 버렸을까

    휑하니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무슨 면목 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박혀있네

    텅 빈 텔레비전에서는

    쉬임없이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







    3.jpg

    김혜순모래 여자

     

     

     

    모래 속에서 여자를 들어올렸다

    여자는 머리털 하나 상한 데가 없이 깨끗했다

     

    여자는 그가 떠난 후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전해졌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도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와서 여자를 데려갔다

    옷을 벗기고 소금물에 담그고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었다고 했다

     

    여자의 그가 전장에서 죽고

    나라마저 멀리멀리 떠나버렸다고 했건만

    여자는 목숨을 삼킨 채

    세상에다 제 풀을 풀어놓진 않았다

    몸속으로 칼날이 들락거려도 감은 눈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자를 다시 꿰매 유리관 속에 뉘었다

    기다리는 그는 오지 않고 사방에서 손가락들이 몰려왔다

     

    모래 속에 숨은 여자를 끌어올려

    종이 위에 부려 놓은 두 손을 날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낙타를 타고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꿈마다 여자가 따라와서

    검은 눈 번쩍 떴다

    여자의 눈꺼풀 속이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넓었다







    4.jpg

    김재진장마

     

     

     

    햇볕에 말리고 싶어도 내 마음

    불러내어 말릴 수 없다

    더러우면서도 더러운 줄 모르는 내 마음의 쓰레기통

    씻어내고 싶어도 나는 나를

    씻어낼 줄 모른다

    삶이란 하나의 거대한 착각

    제대로 볼 수 없어 온몸이 아프다







    5.jpg

    권현형최초의 사람

     

     

     

    챙이 커다란 청모자를 쓴 아이가

    제 동화책 속에서 걸어 나와

    검정 에나멜 구두로 땅을 두드린다

    최초의 사람인 듯 최초의 걸음인 듯

    갸우뚱 갸우뚱 질문을 던지며 걸어 다니다

    집을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봄의 부랑자들,

    길바닥에 떨어져 누운 꽃점들을 두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비르비종 마을의 여인처럼 가만 무릎을 꿇는다

    이삭 줍듯 경건하게 주워 올려 본래의 둥지

    나무 가까이에 도로 놓아준다 방생하듯

    봄날의 바다에 꽃의 흰 꼬리를 풀어 놓아준다

    꽃 줍는 아가야황한 백낮에 길 잃은

    한 점 한 점을 무슨 수로 네가 다 거둘 것이냐

    몸져누운 세상의 아픈 뼈들을 무슨 수로

    일으켜 세울 것이냐 한 번 떨어져 나온 자리로는

    다시 돌아갈 길 없다

    네가 옮긴 첫 발자국이 그토록 무겁고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기억하거라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0/03/27 08:36:23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2] 2020/03/27 08:48:26  121.181.***.114  Wally  639613
    [3] 2020/04/04 23:46:30  175.123.***.79  renovatiost  27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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