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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YMcbEAclj_4
정영주, 서해, 저 독한 상사
모래가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다
한 번도 빠져보지 못한 서해
동해에 눈 맞추고
항시 그리로만 몸 기울였는데
서해에 맘 주지 못한 죄
오늘은 기어이 물으려는지
발목으로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나를 낚아채 주저앉힌다
푹푹 꺼지는 허방이
눈을 부라리며 삼키려든다
성깔진 이빨 하나 없는 것이
내 몸에 두지 않는 길 하나 열고자
제 마음 내 안에 두고자
가슴까지 모래를 퍼 나른다
서해가 이윽하다는
그대의 전언이 몸에 닿았으나
내 안에 몸 없는 바다일 뿐, 바닥일 뿐
겨우 빠져나와 서해를 돌아보니
아, 바짝 타들어 검은 뻘로 누운
저 독한 상사
벌거벗은 슬픔, 여윈 속살을 보고서야
서해가 절절한 삶이라는 걸 알았다
염창권, 호두껍질 속의 별
껍질 속은 굴곡이 많은 별빛으로 채워졌다
빡빡한 뇌수처럼 생은 좀체 휴식이 없다
별빛을 헤아려 본다
부유하는 먼지 같은
우주는 딱딱한 두개골처럼 소리가 난다
반짝이는 머리통 속 질량은 충분하다
욕정의 신호나 되듯
은밀한 느낌이다
금기의 강이 있다, 건너지 못하는
미확인의 진실이지만
그들은 서로 잇닿아 있다
별들도 사랑을 나눈다
눈빛을 보면 안다
호두껍질을 두드려서 잠든 별을 깨운다
기억의 숲 속으로 번개가 지나가듯
어둠이 파동 치며 긁힌다
이젠 추억의 힘이다
이경임, 바람 한 줄기
바람 속엔 헤아릴 수 없는 냄새와 소리와
얼룩과 소문들이 있다
높은 산맥을 넘은 후 평지에 도달한 바람 속엔
무(無)가 있다
이 바람은 무겁다
이 바람은 무겁지 않다
이 바람의 몸속엔 한 방울의 물기도 없다
없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면
메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는다
없는 사랑이 가득 차오르면 바보처럼 자주 웃는다
꽃들은 텅 빈 나무의 엔진이다
겨울이 지나가면 작란(作亂)이 다시 시작된다
바람 속엔 다시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득하고
이 낮은 지상은 신음 소리들로 가득 채워진다
이대흠, 옛날 우표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먼 데 있는 그대에게 나를 태워 보낼 때
우표를 혀끝으로 붙이면
내 마음도 찰싹 붙어서 그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지 혀가 풀이 되어
그대와 나를 이었던 옛날 우표
그건 다만 추억 속에서나 있었을 뿐이지
어떤 본드나 풀보다도
서로를 단단히 묶을 수 있었던 시절
그대가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우리는 떨어질 수 없었지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사람의 말이 푸르게 돋아
순이 되고 싹이 되고
이파리가 되어 펄럭이다가
마침내 꽃으로 달아올랐던 시절
그대의 손끝에서 만져질 때마다
내 혀는 얼마나 달아올랐을까
그대 혀가 내게로 올 때마다
나는 얼마나 뜨거운 꿈을 꾸었던가
그대의 말과 나의 꿈이 초원을 이루고
이따금은 배부른 말 떼가 언덕을 오르곤 하였지
세상에서 가장 맑은 바람이 혀로 들고
세상에서 가장 순한 귀들이 풀로 듣던 시절
그런 옛날이 내게도 있었지
이우걸, 비누
이 비누를 마지막으로 쓰고 김 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도시는 원인모를 후두염에 걸려 있고
김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
쓰다 둔 그 비누만 한
달이 하나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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