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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6B97BaYa0oQ
강만, 하늘
하늘이 세상을 누르고 있다
산과 나무와 마을과 사람들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다 하늘이 없었다면
세상의 것들은 함부로 풍선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서로 부딪히며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저렇게 하늘이 세상을 지그시 누르고 있어서
집들도 제자리에 말뚝을 박아 마을을 이루고
사람들도 뿌리를 내려 나무처럼 순하게 살고 있다
오늘도 자꾸 둥둥 떠오르는 나를
하늘은 푸른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다독인다
참아라
때가 올 것이다
권순자, 검은 늪
어느 날부터
역한 세월의 이끼가 슬어 나락에 빠진 늪
융숭한 나날이 퇴적되어
바닥은 비닐과 음료수 캔으로 뒤덮이고
밤마다 속이 쓰려 토악질을 해댔다
바람에 저며진 파문이 무료하게
끓어오른 거품들을 밀어냈다 끌어당기곤 했다
어디선가 흘러든 시큼한 폐수로
환부는 더 층층이 썩어들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얼굴로 성형된 늪
그 다 죽은 늪이
바람 잔잔하던 날
마지막 힘을 다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검은 침묵을 깨고 눈을 떴다
오래도록 꾹 참아 왔던 말을 내뱉듯
시커먼 가슴팍
그 흉한 구멍 안에서 백련(白蓮) 한 송이 꺼내보였다
온통 검은 바닥에
슬몃 찍힌 흰 점 하나로 늪은 온통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 웅덩이가 아니라 청정한 연못이었음을
그 곳에 남 몰래 쓰레기를 갖다버리던 사람들은
그제야 남 몰래 깨끗한 비밀 하나를 알았다
장석남, 가난을 모시고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는 한가
그저 황혼의 전봇대 그림자가 길고 길 뿐
사납던 이웃집 개도 오늘 하루는 얌전했을 뿐
우연히 생겨난 담 밑 아주까리가
성년이 되니 열매를 맺었다
실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어디 또 그런 데 가서 그 아들 손주가 되겠다
거짓마저도 용서할
맑고 호젓한 가계(家系)
오늘도 드물고 드문 가난을 모신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
수(壽)와 복(福)의
서걱임
김숙경, 그해, 담쟁이
벽이 험난해도 가야만 한다
거기에 나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 없는 가시밭길에선
가시마저도 사다리가 된다
꿈은 언제나 그저 따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손톱에 든 피멍도 내겐 꽃이다
쉼없이 서로의 삶을 동아줄로 엮어 부대끼며 일어선다
회색 벽을 허물며 오르고 또 오르면
가난한 손 서로 맞잡고 엉켜 사는 달동네
내 가난이 가장 풍요로웠던 하늘 아래 첫 동네
이동순, 서역
서역이란 말에는
향긋한 무화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하미과의 단내도 물씬 풍기고
백양나무 가로수 길을 달려가는 노새의 방울 소리도 들린다
그 노새가 끄는 수레에 올라탄
일가족의 도란거리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역이란 말에는
아득한 모래벌판을 성큼성큼 걸어오는
황사바람의 냄새가 난다
그 사이로 악기 반주에 맞추어 휘도는 호선무와
구릿빛 얼굴로 바라보던 위구르 사내의
동그란 모자가 보인다
서역이란 말에는
땅 속에서 파내었다는 비단 조각, 거시서 보았던
천 년 전 물결무늬가 먼저 떠오르고
그 비슷한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상추처럼 웃던
쿠차의 한 처녀가 생각난다
잠시 스쳐간 그녀 내 전생의 사랑이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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