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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9181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290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1/14 11:46:52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181 모바일
    [BGM] 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한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yz8YlDUZAyg






    1.jpg

    황희순숨바꼭질

     

     

     

    커튼 사이로 칼날 같은 햇살이 들어온다

    세상과 통하는 길이 저랬다좁은 그 길을 여닫으며

    칼날 같은 말과 눈빛만 오래 주고받았다

    꼭꼭 커튼을 여미지만 여민 틈새로

    더욱더 예리한 빛이 스며든다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커튼을 열지 않을 거야

    살을 파고드는 빛은

    들숨과 날숨으로 천천히 삭이면 돼

    낮은 천장에 닿은 숨 절절 녹아내리는여기는

    아늑한 무덤

    아들아어미의 실종을 말하지 마라

    영원히 종적을 감추고 싶지만꼬리가 너무 길어

    비어지려는 징그러운 이 긴 꼬리를

    손에 둘둘 말아 쥐고잠시

    칼날을 피해 숨어있을 뿐이니아들아

    어미의 무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2.jpg

    조은꽃과 꽃 사이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과 꽃 사이에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도드라지게 아름다운 꽃들은

    그 거리가 한결 절묘하다

     

    꽃과 꽃 사이 꿀벌이 난다

    안개가 피어오른다

    낙타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바람이 살얼음을 걷으며 분다

     

    향기가 어둠의 계단을

    반짝이며 뛰어 오르내린다

     

    봉긋해지는 열매들은

    서로의 거리를

    앙큼하게 좁힌다







    3.jpg

    정현종그 사이에

     

     

     

    순간에서 순간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협곡이 있고

    산맥이 있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그림자들,

    무거워한숨과도 같고

    가벼워웃음과도 같은

    그림자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그림자들







    4.jpg

    장영숙초대

     

     

     

    먼 산처럼 무심하던 그가

    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한다

    백 년 된 아름드리 벚나무에

    꽃이 피었다고황홀하다고

    섬진강 숭어처럼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살다 보니 이렇게

    신의 음성을 듣게 되는 날도 오는구나

    한 백 년쯤 더 기다려야 올 것 같은

    경이로운 시간들이

    그와 나 사이에도 이렇게 오는구나

    순고 앞 정류장에서 64번 버스를 타고

    나는 그가 부임해온 상사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이사 천을 끼고 굽이굽이 아름다운 상사길

    찻집 연우당을 지나 작은 면사무소를 지나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보게 꽃 잔치가 열린 그곳

    그 곳에 그가 있다

    30년 먼 산보니 같던 그가

    잘 익은 나무향기를 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5.jpg

    박영희단 하루라도 좋으니

     

     

     

    단 하루라도 좋으니

    형광등 끄고 잠들어봤으면

    누군가와 밤이 새도록 이야기 한 번 나눠봤으면

    철창에 조각난 달이 아닌 온달 한 번 보았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따뜻한 방에서 한숨 푹 자봤으면

    탄불 지핀 아랫목에서 삼십 분만 누워봤으면

    욕탕에 들어가 언 몸 한 번 담가봤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흠뻑 비에 젖어봤으면

    밤길 한 번 거닐어봤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잠에서 깨어난 아침 누군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그리운 이의 얼굴 한 번 어루만질 수 있었으면

    마루방 구석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 그만 죽였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딸에게 전화 한 번 걸어봤으면

    검열 거치지 않은 편지 한 번 써봤으면

    접견 온 친구와 한 시간만 이야기 나눠봤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단 하루라도 좋으니

    내 방문 내 손으로 열 수 있었으면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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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4 19:43:39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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