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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U6BFaC8rzk
이경임, 반 고흐의 귀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나무는 장신구를 떼어버리듯
사소한 귀들을 떨어뜨렸다
모호한 악기들처럼
나무를 흔들던 잎사귀들이 사라졌다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나무는
늘 귀가 아팠다
허공이 흔들리는 잎사귀들로 꽉 채워져서
나무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세상을 떠돌며 바람이 묻혀온
울음소리들이
나무의 귓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했다
제 몸속의 것이 아닌 울음소리들이
제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까지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시끄러운 귀들이 죽을 때마다 해바라기가 피고
별이 빛났다
나무는 간신히 한 그루의 텅 빈 귀가 된 것이다
금동원, 수제비
산다는 게 말이지
멸치 우려낸 국물에 뚝뚝 떼어낸
까짓 것 대충, 밀가루 반죽처럼
야들야들 쫀득쫀득 희한하게 씹히는
수제비 맛 같기만 하다면야
몇 번이고 뜨거워도, 뜨거워도
웃을 것 같단 말이지
이홍섭, 소름
당신은 내가 껴안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다
사랑이 소름이 되어 꽃 피던 시절이다
당신은 내가 껴안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다
미움이 소름이 되어 꽃 지던 시절이다
소름과 소름이 진달래 능선을 넘어가는 봄날
황영숙, 그 남자에게
까맣게 눈썹이 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
그 검은 눈썹 아래 더욱더 깊어 있는
눈이 아득한 남자를 만나고 싶다
그의 눈 그늘 속에 들어가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을 바라보며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먼 산 구름처럼
슬픔에 잠겨 있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김환식, 등고선
낡은 지도 한 장을 펴놓고
내 삶의 등고선을 찾아 다녔다
때로는 접히고 구겨진 곳에서
길을 잃고 허둥거렸다
그럴 때는, 나침판도 없이 살아온
내가 바보스러웠다
두서없이 오른 산정에서도
더 높은 산을 향해 버릇처럼 한숨을 쉬었다
초행길이 아닌 삶은 없을 것인데
행로는 언제나 낯설고 고단했다
벼랑을 타고 계곡을 건넜다
몇 날을 그렇게 걷고 걸었지만
돌아다보면, 늘 처음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삶이 그런 것이란 것을
등고선을 몇 바퀴 돌고 난 후에야 문득 알게 된 것이다
삶은 등고선 속에 갇혀 사는 우범자이기 때문이다
출구가 없는 울타리 속에는
애증의 발자국도 갇혀 있었다
산다는 것이
경계와 변방을 더듬어 가는 한 생의 이력이라면
등고선과 등고선 사이의 틈새는
진솔한 삶과 삶의 유효거리일 것이다
담담한 생각들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는데
더 낯설어진 눈썹은 허공처럼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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