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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6209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97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8/09/14 17:58:34
    http://todayhumor.com/?lovestory_86209 모바일
    [BGM]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1.jpg

    신달자파도

     

     

     

    누가 저렇게 푸른 종이를 마구잡이로 구겨 놓았는가

    구겨져도 가락이 있구나

    나날이 구겨지기만 했던

    생의 한 페이지를

    거칠게 구겨 쓰레기통에 확 던지는

    그 팔의 가락으로

    푸르게 심줄이 떨리는

    그 힘 한 줄기로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궁극의 힘







    2.jpg

    고정희망월리 비명(碑銘)

     

     

     

    한 세대 긋고 지난 업보가 어디

    망월리에 잠든 넋뿐이랴만

    한 시대가 쌓아올린 어둠의 낟가리에

    불쏘시개 되어 하늘 툭 틔우고

    황산벌 슻가마로 묻힌 저들이

    오늘은 가는 달 붙잡고 묻는구나

    내 죄값을 달에게 둗는구나

    한 세대 긁고 지난 칼 자국이

    어디 내 죄값뿐이랴만

    매가 달과 마주서니 속물일 뿐이어서

    국화 한 다발도 속될 뿐이어서

    달로 떠오르는 네 외짝눈과 만나니

    부끄럽구나

    한 평 땅 덮지 못할 내 빛

    무력한 근심이나 보태는 오늘







    3.jpg

    오세영구름

     

     

     

    구름은

    하늘 유리창을 닦는 걸레

    쥐어짜면 주르르

    물이 흐른다

     

    입김으로 훅 불어

    지우고 보고지우고

    다시 들여다보는 늙은 신의

    호기심어린 눈빛







    4.jpg

    배한봉복숭아를 솎으며

     

     

     

    열매를 솎아보면 알지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 처음엔

    열매 많이 다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고

    아니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제대로 솎지 못했다네

    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

    삶도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

    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

    나무는 제 살점 떼어내는 일이니 아파하겠지만

    굵게 잘 자라라고

    부모님 같은 손길로 열매를 솎는 5월 아침

    세상살이 내 마음 솎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았네







    5.jpg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8/09/15 10:02:42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2] 2018/09/18 06:51:28  211.108.***.72  그냥그녀  40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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