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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48852
    작성자 : 어떤것
    추천 : 3
    조회수 : 2085
    IP : 59.29.***.11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7/09/03 00:09:58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48852 모바일
    N의 여자친구 썰.txt
    옵션
    • 창작글
    다른 곳에 조금 다른 글로 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약간 편집해서 올립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교시절 우리들의 가장 큰 논쟁거리중 하나는 "과연 우리들 중 누가 가장 먼저 여자친구를 사귀는가?" 였다. 사실 생긴거라곤 쥐며느리나 플라나리아, 짚신벌레 등 인류와는 다소 거리가 먼 면면들을 하고 있는 우리였던지라 저 논쟁은 별로 현실성이 없긴했다. 한번은 단골치킨집에 닭을 기다리다가 저 주제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 중엔 내가 제일 낫다, 아니다 너는 광대높이가 대기권에 진출하고 있으니 차라리 광대뼈로 이족보행을 할지언정 여자친구를 사귈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는 너는 입술이 명란젓 두짝이라 키스는 평생 못할 것이다 등등... 원색적이지만 그래서 더 효과적인 인신공격이 덕담처럼 오고가는 가운데 K가 중재에 나섰다. 어차피 우리들 끼리는 결론이 나지 않으니 제3자의 의견이 제일 정확할거라는 거였다. 과연 논리적인 의견이었다. 곧이어 방금 튀긴 치킨 두마리를 가지고 나오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J가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이모~(평소 아줌마) 저희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어요?"

    아주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머뭇머뭇 치킨을 내려놓으시며 안그래도 단골이라 수십번은 봤을 우리들 얼굴을 한차례 훑어보시고는 조심스럽게 천원을 할인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빠르게 사라지셨다. 사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중 "잘생긴"얼굴을 고르느니 페르마의 마지막 난제나 제논의 역설을 논증하는 편이 빠르리라. 우리는 묵묵히 치킨을 해치웠다. 어차피 다 못생겼다는건 누구나 알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대학교 1학년, 놀랍게도 우리중 가장 먼저 여자친구가 생긴건 N이었다. 100kg대의 거구, 익살맞은(다시말해 인류의 보편적 미관과는 거리가 먼) 얼굴, 짧은다리와 긴 팔, 오로지 먹기위해 태어난듯한 생명체인 N. 내심 우리중에 가장 사람에 가깝게 생겼다는 자부심으로 살던 J는 심인성 복통으로 바닥을 굴렀고 밥을 먹다 그 소식을 들은 K는 그 다음날까지도 체한게 내려가지 않아 고생했다. 의외로 Y는 대충 짐작은 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야 넌 왜 안놀라냐? N이 여친이래잖어!"

    "어.. 어차피 생긴건 다 고만고만하니까 그나마 가장 유머러스한 N이 제일 가능성 있어 보였거든."

    슬프지만 현실이었다.
    N이 보내준 사진에는 눈망울이 또랑또랑하고 약간은 통통해보이는 귀여운 아가씨가 찍혀있었다. 우리는 N을 찍어버리고 싶었다. 사실 온라인에서 알게됬는데, 곧 실제로 만나기로 했다며 우리를 마구 놀려댔다. 우리는 더이상 외모로 N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논리적이거나 치명적인 공격도 "야 이게 여자친구도 없는게 까불어!"라며 삿대질을 하는 N을 침몰시킬 수 없었다. 우리는 네명의 영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N이 우리와의 약속자리에 여자친구를 불러도 되겠냐고 물었다. 사실 그즈음 질투심은 많이 가라앉기도 했고, 사진으로는 워낙 귀여운 아가씨였기에 왜 저딴걸 사귀게 됬냐고 묻고 싶은 맘도 있어서 우리들은 N의 여자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 당일, 어쩐지 우리 모두는 옷에 힘을 좀 주고 나타났다. 속내는 뻔했다. N의 여자친구에게 잘보이면 그 친구들을 소개받을 수 있지않을까 하는 검은 속심이었다. 보이지않는 경쟁심을 불튀기며 N과 그의 여자친구가 기다리기로 한 커피숍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비장했다.

    "야 여기야!"

    멀리 카페 창가자리에 앉아있는 거대한 N의 형체가 보이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리는 빠르게 N의 옆자리를 훑었다. 이상하게도 N의 바로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그 근처에도 여자는 전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도착한 우리가 설마 너 핸드폰 갤러리나 노트북 화면에만 존재하는 여자친구 아니냐며 추궁하자 잠시 화장실에 갔다는 대답을 들었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기말고사 성적 발표날보다 더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숨기며 가능한한 젠틀하고 남자다운 침묵을 지켰다.

    "오빠 친구들이야?"

    어디선가 옥구슬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왔다!'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괴생명체가 서있었다.

    "인사해, 내 여자친구야."

    "아...안녕...하세요. N친구 J입니다."

    그나마 가장 적응력이 빠른 J가 어색하게나마 첫 인사를 건네고서야 우리들은 그 미지의 생명체와 접촉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뎠을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우리는 N에게 그새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귄거냐고 묻고 싶었다.

    "어때, 사진이랑 똑같지?"

    아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인류의 시력이 가진 자존심에 걸고 맹세컨데 저 생명체와 사진속 아가씨는 상동염색체나 뉴런 정도를 제외하면 닮은 구석은 개미눈꼽의 박테리아 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N은 사진속 아가씨와 저 여성형 생명체가 똑같다고 생각하는게 틀림없었다. 친절한 태도, 우리와 함께 있을때와는 전혀 다른 웃음, 그리고 배려까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류의 사진기술이 2세기쯤 진화해서 저정도 뽀샵은 잡티제거와 동등하게 봐줘야 하는 세상이 온게 아닌 이상 N이 실명했거나 그의 여자친구가 사륜안을 개안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 그래. 이쁘시네."

    내심은 그렇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는 N에게 니 여자친구는 어쩌면 인류와는 다른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곧 새내기 커플의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겠다며 자리를 떴다. 멀리 못간다며 손을 흔드는 N의 웃음이 그날따라 많이 안쓰러워보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 어쩐지 앞으로 우리가 사귀게 될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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