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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story_439860
    작성자 : 저녁먹자
    추천 : 19
    조회수 : 3295
    IP : 124.49.***.35
    댓글 : 15개
    등록시간 : 2015/08/16 17:33:47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9860 모바일
    분위기가 특이한 여자 이야기 2
      '너무 늦었잖아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아직까지 내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한마디.
     
     잠시 눈을 마주한 그 시간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여자의 표정을 하나하나 다 읽을 수 있었다.
    돌아서기 전 마지막 표정도 놓치지않았다.
     지금 처한 내 상황에 비해 그리 나쁘지않은 표정이었다.
     
    분위기가 특이한 그 여자는
    무슨 말을 더 하려는 듯 싶더니 그냥 그렇게 친구들과 돌아갔고,

    나는 혼자 거기에 있었다.
    집에 돌아와도 나는 거기에 있었다.
    마지막 그 얼굴이 눈 앞에서 사리지지 않았다.
     
    캠퍼스가 참 낯설게 느껴졌다.
    아직은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도 못했다.
    내 눈에는 있지도않은 그 얼굴만 보였다.
     
    며칠 후에 나는 그 낯선 캠퍼스의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시간도 모르고 앉아있는데 옆에 누가 앉았었나보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분위기가 특이한 그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또 말도 없이 잠시 눈을 바라봤다.
    이 때는 알 수 없었지만
    묘한 표정으로 눈을 바라보는게 그 여자의 특이한 분위기였다.
    반응할 새도 없이 나는 또 굳었다.
     
    그 여자가 먼저 입을 뗐다.
    일 년만에 뜬금없이 나타나서 연락처나 묻는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궁금해서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혼자 앉아있는 날 보고 말을 걸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 굳어있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궁금했다면서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태연한지,
    왜 모든 것을 다 알고있었던 것처럼 차분한건지 궁금해졌다.
    당황하지도 않고 어떻게 '너무 늦었잖아요'같은 말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나는 질문도 대답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아무런 말없이 있다가 드디어 내가 말했다.
     
    '저기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그 여자는 이 멘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가만히 뭘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가방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또 내 얼굴을 보더니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돌아갔다.
    이새끼 뭐지.. 하는 눈빛이었다.
     
    이 여자가 내 눈을 바라보면 나는 그대로 고장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특이한 그 여자는 언제나 차분했다.
    차분한 목소리, 차분한 표정, 차분한 눈빛에는 따뜻함이 들어있었고
    포근하게 날 감싸주기 시작했다.
     
    같이있어서 정말 좋았다.
    손을 잡으면 기운이 났고 눈을 보면 자신이 생겼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사랑스러운 것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너만 옆에 있어준다면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았고
    영원히 꿈 속에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변해갔다.
    누가봐도 밝고 자신이 넘치는 사람으로.
    모든 것은 그 여자 덕분이었다.
     
    결혼하고 싶어졌다.
    영원히 이 여자와 같이 있고싶었다.
     
    4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여전히 눈만 봐도 행복하던 그 날,
     
    나는 이별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막지도 못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위기가 특이한 그 여자는
    내게 연락처를 줬을 때나 헤어지자고 말하는 지금이나 표정이 같았다.
    알 수 없는 그 분위기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나 혼자였다.
    이미 달라진 내가 말려도 그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말리고 있으면서도 막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3년이 흘렀다.
     
    힘든 시간을 다 보내고 이제는 괜찮아졌을 어느 날이었다.

    그 여자에게 배운 커피를 마시러 간 어느 카페의 문을 열었을 때,
    저 멀리 카운터 앞에 익숙한 분위기가 있었다.
     
    또 다시 몸이 굳어버렸다.
     
    '..같이 마실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특이한 그 여자는 그렇게 날 떠나갔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가 좋아하던 만델링을 주문했다.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토록 할 말이 많았는데
    밤새 전해도 끝나지 않을만큼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네가 웃을지
    어떤 말을 해야 네가 화를 낼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너를 그렇게 보고싶어했는데 네가 낯설었다.
     
    너는 어색해진 우리 사이가 아무렇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너는 괜찮을까
     
    나는 분명 너를 잘 알았는데
    네 마음을 네 눈빛을 다 알고있었는데
    우리가 이럴 리 없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다시 만난대도 나는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한숨을 쉬고 알았다.

    아름다운 시절의 너도
    내가 그리워하던 너도
    너를 닮은 다른 사람들도
    전부 너였구나.
     

    아주 긴 첫사랑이 끝나던 그 순간이었다.
    출처 일기장
    저녁먹자의 꼬릿말입니다
    사실 분위기가 특이한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잊으면서 썼던 시도,
    시간이 더 지나고 성격이 차분한 다른 여자를 만나 잠시 반했던 얘기도
    오유에 다 올렸었어요 

    익명으로 올렸던거라 지금 다시 찾아보실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랬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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