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div> <div>#1</div> <div> </div> <div>기름을 네 번 넣는동안 차는 1600키로를 넘게 달렸다.</div> <div>그동안 왕복한 수원 화성 월곡 용인 키로수만 합쳐도 미국횡단의</div> <div>발등만큼은 했으리라. 그리고 2003년식 마이티2는 그자리에서 뻗어버렸다.</div> <div> </div> <div>절실하게 차를 바꾸고 싶었다.</div> <div> </div> <div>렉카는 차를 띄워 보냈는데 나는 곧장 사무실로 가야했으니 휴게소 한복판에서</div> <div>콜택시를 불러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다.</div> <div> </div> <div>요새 장사가 힘들다고, 버는것 없이 차 수리비나 뭐 인건비로 나간다고</div> <div>감정없이 운을 떼며 택시기사와 눈을 마주치던 것이 올해의 첫 번째 실수였다.</div> <div>택시기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div> <div> </div> <div>"그렇죠? 이게 그렇다니까요? 제가 예? 버스를 이십년을 하고 택시를 팔년을 했는데</div> <div>요새같이 어려울 때가 없어요. 이럴때는 국민들이 아니 군인이라도 들고 일어나서</div> <div>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랑 청와대를 싹 점령해야 된다니까요? 전직 대통령은</div> <div>잘못했다고 잡아넘기면서 말이야! 현 대통령은 뭘 잘한다고 아직도 그자리에 있는거냐고!"</div> <div> </div> <div> </div> <div>나는 나와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인물이 가지는 사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div> <div>알고있어본들, 내가 아는 지식과 그 사람이 아는 내용이 다를 뿐더러 서로는 서로의</div> <div>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div> <div>물론 말도안되는 미친소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div> <div> </div> <div>흔히들, 정치성향이 다르거나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택시기사와 싸우거나</div> <div>분위기가 냉랭해진 썰이 많이 올라오곤 한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글쎄요. 저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요."</div> <div> </div> <div> </div> <div>"그래요? 선생님. 선생님같은 분들이 많습니다. 아니 정치에 관심을 안가지니까</div> <div>멋대로들 하는거 아니냐고요!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후진국에 머무르는</div> <div>거라니까요? 정치에 관심을 좀 가져보세요!"</div> <div> </div> <div>저기요. 기사님.</div> <div>장담하건데 기사님의 차에 타면서 정치에 관심없다고 말했던 10명 중 적어도 4명은</div> <div>알면서도 말을 안한겁니다.</div> <div> </div> <div>마음같아서야 동교동계와 4, 5공화국 사이의 첨예한 대립관계 아니 그 이전부터</div> <div>시작된 대한민국 격동의 정치사를 이야기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div> <div>사실 그런것은 별로 그 택시기사에게 중요하지 않아보였다.</div> <div> </div> <div>중요한것은, 자신의 의사가 얼마나 전달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div> <div>그런데 나는 그걸 듣고싶지 않고 우리는 오늘 처음 안 사이기에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div> <div>나는, 정면으로 맞받아치거나 반박하는 대신 아주 얄팍한 말을 건넸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아니 근데, 기사님 참 택시를 오래하셔서 그런지 운전실력이 아주 대단하시네요.</div> <div>저도 화물차 참 오래했지만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힘든점은 없으세요?"</div> <div> </div> <div> </div> <div>예상대로 택시기사는 살아온 이야기부터 시작해 현 택시업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div> <div>줄줄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div> <div>들어야 했던 말보다는 좀 더 듣기 편했으니까.</div> <div> </div> <div>개선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다.</div> <div>우리는 싸우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만 서로 조금 불편한 점이</div> <div>있을지라도, 절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 절충하는 방법을 몰라, 혹은 알면서도</div> <div>자존심때문에 못하는 문제들이 우리앞에 놓여있기에 세상에 전쟁과 기아, 범죄는</div> <div>끊이지 않는 것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본인도 상당히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결론을 내 놓을때가</div> <div>훨씬 많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2.</div> <div> </div> <div> </div> <div>학교갔다 돌아왔더니, 엄마가 부엌에서 열심히 풀을 쑤고 있었다.</div> <div>김장하기 전에 풀을 쑤어 놔야 김치가 맛있어진다고 했다. 토요일 열두시에 학교를 마치고</div> <div>걸어걸어 집에 오면 한시쯤 되었다. 점심때가 지나도 엄마는 상을 차려주었다.</div> <div>그날은 풀을 쑤었으니 장독대 김치뚜껑을 열어 김칫국물 한사발을 퍼오면 엄마가 막</div> <div>쑤어놓은 풀에 김칫국물을 풀어주었다. 나는 그게 아주 맛있었다.</div> <div> </div> <div>한참 마룻바닥에 앉아 김칫국물 풀어놓은 풀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오셨다.</div> <div>나는 벌떡 일어나,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날따라 아버지는 표정이 밝고</div> <div>'아이고 아들 뭐먹어?' 하고 묻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아니 아빠가 기분이 좋은 날인 것 같았다.</div> <div> </div> <div>"노동자야. 얼른 씻고 옷 입어라. 작은아빠 온다."</div> <div> </div> <div>나는 작은아버지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면, 세살터울 지는 내가 좋아하는 친척동생이 항상 작은아버지를</div> <div>따라 같이 오기 때문이였다. 별다른 좋아하는 이유는 없었다.</div> <div> </div> <div>그런 날은,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우리는 용돈받은것으로 문방구에 가서 로보트를 사서 놀던지</div> <div>아니면 책을 보며 그림을 그리던지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div> <div>아주 운이 좋은 날은 친척형들이 우리 손을 잡고 문방구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사 주거나 놀이터에서</div> <div>같이 놀아주곤 했다.</div> <div> </div> <div>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양은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씻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다.</div> <div>저 공구리 아무렇게나 깔린, 아홉살짜리 아이가 보기에 너무나도 멀고 청명한 하늘이 틈새좁은</div> <div>그 담벼락과 대문 너머로,</div> <div> </div> <div> </div> <div>"혀-엉!"</div> <div> </div> <div>하는 소리가 들려올때, 나는 기쁜 마음 감출 새 없이 밖으로 뛰어나가 동시에 알 수 없는 소리를</div> <div>지르며 뭐 하고 놀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쉴새없이 나눴다.</div> <div> </div> <div>"야. 야. 넌 작은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냐. 야임마. 야!"</div> <div> </div> <div> </div> <div>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그 좁은 대문에서 서로 비키지 않으려 애쓰며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div> <div>말던지, 서로만 아는 언어로 두 손을 맞잡은 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div> <div> </div> <div>우리는 그날 어른들과 함께 홍은동 유진상가 배드민턴 가게로 향했다.</div> <div>토요일 오후 세시쯤? 잘 모르겠다. 이런건 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몇 번인지 모르는 버스를 타고</div> <div>그곳으로 가서는, 어른들이 배드민턴 라켓은 뭐가 좋니 공은 깃털이 좋아야 하냐느니 하면서 이야기할 때</div> <div>우리는 배드민턴 가게 한켠에 있는 조그만 방에 앉아 보거스나 레니게이드 뭐 그런걸 봤다. 레밍턴이였던가.</div> <div>뭐가 중요할까. 어쨌든 함께 뭘 한다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였다.</div> <div> </div> <div>유진상가 뿐만 아니라 홍은동 아니면 불광동 이런 곳들의 상가는 그들만의 냄새같은게 있었다.</div> <div>나는 아직도 그 냄새가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한다. 관리가 안된, 오래된 지하실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div> <div>냄새와 새 제품들의 냄새가 겹쳐 거기에 어른들의 담배냄새와 음식냄새들이 뒤섞인 그런것들이</div> <div>너무 좋았다.</div> <div> </div> <div>우리가 세상을 알고, 세상을 살고 있을 때 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두 아버지 어머니가 말씀하시길,</div> <div>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눈을 피해 몰래 배드민턴채와</div> <div>공을 샀던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테니스를 한다고 테니스채며 가방이며 이것저것 사서</div> <div>두 어머니의 속을 썩였던 마당에 이제 배드민턴까지 섭렵을 한다고 하니 속터지는것이 한두개였을까.</div> <div> </div> <div> </div> <div>우리는 낡은 파라솔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 또는 막연히 갖고싶지만 조르고싶지는 않은 장난감을 파는</div> <div>상가들과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널려있는 마른 생선 그리고 살아있었는지도 모를 닭과 돼지가</div> <div>걸려있는 시장을 돌아다녔다.</div> <div> </div> <div>아버지는 저기 동생이랑 손잡고 가서 담배 하나 주세요 하고 이야기하고 오너라</div> <div>하면 쪼르르 달려가 담배 사오면, 아버지 하나 작은아버지 하나씩 주신 동전 두 개 손에 받아들고 좋아했었다.<br></div> <div> </div> <div>한손에는 아버지가 쥐어준 새 배드민턴가방과 공, 다른 한손에는 엄마몰래 사준 딱히 갖고싶지는 않았던</div> <div>즐거운 로보트가 들려있고 오늘만큼은 뭘 졸라도 좋지만 굳이 조를 필요를 못느꼈던 하루.</div> <div> </div> <div> </div> <div>아버지들은 작은 일탈에, 아들들은 뜻모를 즐거움에 들썩거렸던 어느 토요일 오후에 우리는 또 버스를</div> <div>타고 종암동 큰아버지댁으로 가서는, 밤을 샐 것처럼 이어지던 대화가 밤늦게서야 끝나 택시를 타고 또</div> <div>어른들이 작은아버지댁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아버지들처럼 밤새 커피한잔을 놓고 이야기하던 어머니들이</div> <div>계셨다. 양 손에 아들이며 남편이며 할 것 없이 잔뜩 뭔가를 손에 들고 오니 당황하면서도</div> <div> </div> <div>'뭘 이렇게 많이 사셨대요' 하며 그래도 맥주 소주에 시장에서 산 아무 마른안주나 펴놓고 밤새 이야기가</div> <div>끊이지 않았던 밤. 할머니는 상석에 앉아 아들 며느리가 주는 술을 받아드시며 억센 북한 사투리 섞인</div> <div>웃음소리로 어허허허 웃던 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날은 내가 기억하는 아주 즐거웠던 어린시절 중 하나.</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 흐리고 맑았던 하늘은 두 번은 볼 수 없었다.</div> <div>그 냄새도 그날의 즐거움도 두 번 볼 수 없었다.</div> <div>그 날의 기억은 그 날의 기억. 그 시절 그 곳에 있던 나는 나.</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3.</div> <div> </div> <div>최근 며칠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div> <div>오늘은 아주 겨우 집에 기어들어온 날이다.</div> <div>명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일하러 나가야 했다.</div> <div>지방사는 직원이 명절 마지막 날 아침에 올라와 쉬고 있었지만</div> <div>여독을 생각하면 부를 수가 없었기에 혼자 밤 10시부터 새벽 네시까지</div> <div>긴 밤을 보냈다. 그땐 그게, 그 일만 끝나면 집에가서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일주일이 거의 끝나기 직전에서야 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옘병.</div> <div> </div> <div> </div> <div>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냉장고에서 좋아하는 테라와 참이슬을 꺼내 대충</div> <div>찬장 한구석에 박혀있는 김과 참치를 꺼내왔다. 컴퓨터 앞에 소맥잔을 놓고</div> <div>좀비랜드2를 켠 뒤 내 자신에게 '한잔해 십새야' 를 중얼거리며 소주와 맥주를</div> <div>적절한 비율로 따라 마시며 영화를 봤다.</div> <div> </div> <div>뭐 결국 남는건 콜롬비아 영화사 로고가 좀비들을 패죽이는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div> <div>않는다.</div> <div> </div> <div> </div> <div>오늘 만약 일이 일찍 끝났다면, 나는 용산 건담베이스에서 사고싶었던 풀아머 건담 썬더볼트와</div> <div>주황색 스프레이를 사서 집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여지없이 저녁 여덟시 반이 되어서야</div> <div>서울에 올 수 있었고 나는 아주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열심히 산 하루를 보낸 나를 다독였다.</div> <div> </div> <div>오늘 잠깐 쉬고 나면,</div> <div>내일은 또 아침 여덟시 반까지 현장에 나가야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div> <div>내가 일을 하던 말던, 시간은 흘러갈테고 기왕 흘러갈 시간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버는 방향이</div> <div>나에겐 이롭겠지. 그러다 요행히 한가해지면 내 손엔 건담이 들려있을 것이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4</div> <div> </div> <div>술을 너무 많이 마셔 괴롭다.</div> <div>사실 이 글들은 술을 먹고 쓴 글이다.</div> <div>원래는 조금만 먹고 자려고 했는데, 먹다보니 한잔이 한병 한병이 세병이 넘어가고</div> <div>나에겐 원래대로의 하루 그 마무리밖에 남지 않았다.</div> <div>이러고 내일 아침에는 또 부들거리며 일어나겠지.</div> <div> </div> <div>그런들 뭐.</div> <div>살아온 세월돌뿌리가 땅에 박혀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때에는</div> <div>내 인생이 변할 일이 없을거라고 장담하고 살았는데 그나마 이제는 돈이라도 벌며</div> <div>하고싶은 것 어물쩡하며 살고있으니 나에게 미래는 썩 나쁜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라는</div> <div>생각이 나를 지배한다.<br></div> <div>그래도 술은 좀 끊어볼까.</div> <div>끊긴 뭘. 말이나 하지말던가.</div>